2년 가까이 긱블의 여러 작품을 소개했지만, 이번 작품은 남다릅니다. 우선 이 작품에만 무려 5명의 긱블 메이커가 참여했습니다. 보통은 한두 명, 많아야 세 명이었지만 이번에는 긱블의 거의 모든 메이커들이 합심했습니다. 그만큼 정말 많은 요소가 작품 안에 들어있겠죠.
또 하나 남다른 점은 작품의 목적입니다. 긱블은 쓸데없는 모든 것을 만든다고 우리 뇌리에 박혀있지만, 이번 작품은 멋들어진 곳에 전시될 예정입니다. 뜻깊은 의미를 담아서 말이죠.
회전수 줄이는 기어비 매직
2009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업’을 아시나요. 지금 중학교 3학년이 네 살일 때 나왔던 영화이니 조금은 오래된 영화죠. 하지만 집 위에 수만 개의 풍선을 매달고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장면만큼은 1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행복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긱블은 바로 이 장면을 재현해 풍선을 매달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집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우선 풍선은 시각 장애인 풍선 아티스트인 고홍석 작가가 맡아줬습니다. 보통 공중에 뜨는 풍선이라고 하면 헬륨을 충전한 풍선을 사용합니다. 고 작가는 초대형의 헬륨 풍선을 딱 하나만 사용했습니다. 대신 그 위로 질소를 충전한 작은 풍선들을 덮어서 마치 수천 개로 구성된 풍선 다발처럼 보이게 만들었죠. 적은 수의 풍선으로 공중에 떠 오르는 풍성한 풍선 다발이 만들어졌습니다. 풍선의 부력은 대략 30kg 정도로 측정됐습니다. 8세 어린이 정도는 거뜬히 하늘로 올려보낼 정도의 힘입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보다 훨씬 무거운 장치를 집 아래에 달아줘야겠네요.
그 무거운 장치와 집은 긱블의 몫입니다. 긱블은 단순히 일정 높이에 떠 있거나 점점 높이 올라가 영영 사라져 버리는 집이 아니라,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집을 만들 겁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세 개의 목재함을 만들어 그 위로 사람 세 명이 동시에 올라설 때 집이 정해진 높이까지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그럼 당연히 집을 올리거나 내려줄 장치가 필요하겠네요. 설계를 맡은 잭키 님은 그 핵심 장치로 승강 모듈인 ‘윈치’를 떠올렸습니다. 윈치는 엘리베이터에 많이 사용되는 장치로, 끈과 연결된 고리를 물체에 걸어 동력기로 당깁니다. 잭키 님은 이를 이용해 집을 위아래로 이동시킬 겁니다.
단, 윈치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변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시 공간을 고려해서 집을 정해놓은 높이까지만 올려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끈이 감겨있는 원통이 얼마나 회전했는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잭키 님은 판매하고 있는 윈치를 개조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보다 긱블러들이 힘을 합쳐 아예 새로 만드는 편이 더 수월할 것 같아 직접 개발에 나섰습니다.
윈치의 구조는 보통 원통에 끈이 감겨있고, 그 원통을 돌릴 모터가 한쪽 옆면에 연결돼 있습니다. 잭키 님은 모터 반대편 옆면에 각도 검출 센서를 달아서 총 몇 번 회전했는지 알아내고 제어하고자 합니다. 단 검출 센서를 원통에 바로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원통은 상당히 회전을 많이 하는 반면 검출 센서가 알아낼 수 있는 회전수는 제한돼 있기 때문이죠. 긱블러들은 기어 두 개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기어 두 개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간단한 계산을 해볼까요(삐릭삐릭). 일단 집이 움직일 높이를 정했습니다. 지상 1m 부터 11m까지, 총 10m를 이동시킬 생각입니다. 긱블에서 개발한 윈치는 원통이 한 바퀴 회전할 때 끈이 0.2m 풀리거나 감깁니다. 그러므로 10m를 이동시키려면 원통이 50바퀴 회전하면 되겠네요. 그런데 긱블의 검출 센서는 총 11바퀴까지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기어 두 개가 필요합니다. 원통에 면을 맞대 작은 기어를 연결하고, 작은 기어에 큰 기어를 맞물리는 겁니다. 예를 들어 두 기어의 기어비가 1:10이라고 하면 원통과 작은 기어가 열 바퀴 돌 때 큰 기어는 한 바퀴만 돌게 됩니다. 두 기어가 함께 맞물려 움직였지만 큰 기어의 회전수는 작은 기어보다 현저히 적어지게 되죠. 검출 센서는 큰 기어의 한 바퀴 회전을 감지하는 것으로 원통이 열 바퀴 돌았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다시 잭키 님이 개발한 윈치로 돌아와서, 원통의 50바퀴 회전을 검출 센서가 감지할 수 있는 범위인 11바퀴 이내로 줄이려면 50÷11=4.545…, 즉 기어비는 1:4.545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기어비를 검출 센서 한계에 너무 딱 맞추면 오류가 날 수 있으니 1:6 정도로 조금 넉넉하게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1:6 기어비를 갖는 두 개의 기어를 연결하고 큰 기어에 검출 센서를 달아 윈치의 회전수를 제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관객의 하모니로 완성되는 작품
육각기둥 모양의 목재함을 만들고 그 안에 윈치를 넣었습니다. 이 목재함에 더 많은 부품을 넣으려 합니다. 일단 스피커 덕트입니다. 세 개의 목재함에 관객이 동시에 올라서면 집이 올라가는데, 이때 ‘업’의 주제곡도 재생되도록 할 겁니다. 단 목재함은 각각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중 하나의 악기만 흘러나오기 때문에 세 명이 동시에 올라가야 하모니를 이루며 음악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관객이 모두 함께해야만 완성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긱블의 뜻이 들어갔다고 하네요(감동의 눙물ㅠ).
목재함에는 또 중요한 것이 들어갑니다. 금속 원판입니다. 앞서 말했듯 풍선 다발은 30kg이나 들어 올릴 수 있는 부력을 갖고 있습니다. 집 모형은 물론 윈치까지 함께 들고 올라가 버릴 만한 힘입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고정하기 위해 무거운 금속 원판을 목재함에 넣었습니다. 15kg의 금속 원판을 각 목재함에 넣어서, 윈치와 각종 전자 부품까지 합쳐 총 70kg의 무게로 맞췄습니다. 이 정도면 작품이 영영 하늘로 사라지는 아찔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겠네요. 각 장치의 무게가 상당하니 원활한 이동을 위해 100kg 이상의 무게도 버틸 수 있다는 고중량 캐스터 바퀴도 목재함 아래에 달아줬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집을 만들어줄 차례입니다. 외관하면 역시 찬스 님입니다. ‘업’에 나온 집의 건축양식은 빅토리아 스타일이라 불립니다. 돌출된 3면의 창문, 뾰족한 지붕과 거대한 굴뚝, 절제미 속에서도 장식이 많은 화려한 스타일이 대표적 특징입니다. 이런 특징을 그대로 살리는 동시에 집의 원활한 승강을 위해 가벼운 소재인 바스우드, 발사 판재를 주요 소재로 택했습니다. 집의 바닥면은 중밀도 섬유판(MDF)을 사용해 측면을 이루는 바스우드를 잘 고정하도록 했습니다. 유리창 내부에는 노란색 천 커튼도 달고, OHP 필름으로 유리창도 구현해 디테일도 한껏 살렸습니다.
이번 작품에는 평소 장난기 많은 긱블러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작품의 의미만큼이나 긱블러들의 진지함이 한껏 묻어났습니다. 관객과 함께 하는 긱블러들의 진중한 작품을 체험해보고 싶으신 독자 분들은 서울 강남의 코엑스에 한번 방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