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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와 근삿값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많은 수치를 접한다. 아침 8시 30분까지 등교한다든가, 키 160cm, 몸무게 52kg, 신발 크기 265cm 등과 같이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그런데 이런 수치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이것은 측정값이라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는 측정이 필요한 수많은 대상이 있고, 인류는 이 양을 나타내기 위해 수를 생각해 냈다. 둘째, 측정값은 정확하지 않은 대강의 값인 근삿값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고사성어에도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라는 근삿값
이 있다. 오십보백보는 ‘맹자(孟子)’ 양혜왕편(梁惠王篇)에 나오는 말로, 오십 보 도망친 사람이 백 보 도망친 사람을 비웃는다는 뜻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론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전국 시대인 기원전 4세기 중엽. 위(魏)나라 혜왕(惠王)은 진(秦)나라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도읍을 대량(大梁)으로 옮겼다. 그러나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도 늘 패하는 바람에 국력은 더욱 쇠약해졌다. 그래서 혜왕은 국력회복을 자문하기 위해 당시 제후들에게 왕도정치론을 유세 중인 맹자를 초청했다.

“선생이 천릿길도 멀다 않고 이렇게 와준 것은 과인에게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비책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 아니겠소?”

“전하. 저는 귀국의 부국강병과 상관없이 인의(仁義)에 대해 아뢰고자 왔습니다.”

“백성을 생각한다는 인의의 정치라면 과인은 평소부터 힘써 베풀어 왔소. 예컨대 하내(河內) 지방에 흉년이 들면 젊은이들을 하동(河東) 지방으로 옮기고 늙은이와 아이들에게는 하동에서 곡식을 가져다가 나눠 주도록 하고 있소. 반대로 하동에 기근이 들면 하내의 곡식으로 구하도록 힘쓰고 있지만, 백성들은 과인을 사모해 모여드는 것 같지 않고, 또 이웃 나라의 백성 수가 줄어들었다는 말도 못 들었소. 대체 어찌된 일이오?”

“전하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서 아뢰겠나이다. 전쟁터에서 백병전(白兵戰)이 벌어지기 직전, 겁이 난 두 병사가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사옵니다. 그런데 오십 보를 도망친 병사가 백 보를 도망친 병사 보고 비겁한 놈이라고 비웃었다면 전하께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바보 같은 놈이 어디 있소? 오십 보든 백 보든 도망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오?”

“그걸 아셨다면 전하, 백성을 구호하시는 전하의 목적은 인의의 정치와 상관없이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이웃 나라와 무엇이 다르옵니까?”

혜왕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부국강병의 목적을 갖고 백성을 구호한 것을 진정으로 백성을 생각해서 구호한 양 자랑한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십보백보는 거의 비슷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실제로 오십보와 백 보는 두 배 차이가 난다. 하지만 정확하게 그 거리가 두 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십 보나 백 보를 걷는 동안 모든 걸음의 폭이 정확하게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길이나 무게 등 여러 가지 양을 측정해 얻은 값을 측정값이라고 하며, 이것의 실제 값을 참값이라 한다.

원주율 3.14는 근삿값

자로 물건을 재거나 저울로 무게를 달아 보는 경우 물건의 끝이나 저울의 바늘에 가장 가까운 쪽의 눈금을 읽어 측정값을 정한다. 이를테면 키를 쟀는데, 그 값이 160cm와 161cm 사이이며 160cm에 더 가깝다면 측정값은 160cm이다. 측정값처럼 참값은 아니지만 참값에 가까운 값을 그 참값에 대한 근삿값이라 한다.



이와 같이 근삿값이 참값보다 크면 오차는 양수가 되지만 참값이 크면 오차는 음수가 된다. 물론 오차의 절댓값이 작을수록 근삿값은 참값에 가깝다. 그런데 실제 물건의 길이나 무게에 대한 참값을 알 수는 없다. 따라서 오차도 구할 수 없다. 하지만 참값의 범위는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책의 가로 길이를 1mm 단위의 자로 측정해 18.7cm의 값을 얻었다면 이 값은 소수 둘째 자리에서 반올림해 얻은 값이므로 이 책의 가로 길이에 대한 참값의 범위는 18.65≤(참값)<;18.75임을 알 수 있다. 이 참값의 범위로부터 근삿값 18.7cm와 참값의 차는 아무리 커도 0.05cm 이하다. 이와 같이 오차의 절댓값이 어떤 값 이하일 때, 그 값을 오차의 한계라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반올림해 얻은 근삿값의 오차 한계는 근삿값의 맨 끝자리 단위 값의 1/2이다. 또 측정값은 반올림해 얻은 근삿값이므로 측정값의 오차 한계는 측정 계기의 최소 눈금의 1/2이다



근삿값에서 50과 100은 십의 자리에서 반올림하면 100으로 같다. 즉 작게 보면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수학 공부에서 오십 보와 백 보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잘 알아야 한다.

이광연 교수는 성균관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뒤 미국 와이오밍주립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아이오와대에서 방문교수를 지냈다. 현재한서대 수학과교수로 재직 중이며,‘웃기는 수학이지 뭐야’‘신화 속 수학이야기’‘수학 블로그’ 같은 책을 펴냈다.

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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