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지구온난화 주범 이산화탄소 붙잡아 가두려면

 

지난 10월 10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세계적 투자가 조지 소로스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재산 중 10억 달러(약 1조 1500억 원) 이상을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청정에너지를 개발하는 기술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로스가 기자회견 장소로 코펜하겐을 선택한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오는 12월 7일 코펜하겐에서 2012년 종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기후변화 협약을 정하는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각 국가들이 앞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일지를 결정한다. 전 세계의 이목이 코펜하겐에 쏠리는 이유다.

하지만 정치적 결정으로 이산화탄소 저감 문제가 해결될까. 현재 산업에 쓰이는 에너지의 85% 이상은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로부터 얻고 있다. 아직까지 석유나 석탄보다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없다.

그렇다면 달리 뾰족한 수가 없을까. 소로스가 거금을 투자하겠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자회견 때 그는 “과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면서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돈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로스는 자신의 돈으로 기후변화를 극복할 과학기술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그가 기자회견 전부터 이미 투자를 해오던 기술이 있다. 탄소포획저장(Carbon Capture & Storage, CCS)이라는 기술이다. 세계적 갑부가 선택한 CCS 기술은 과연 어떤 것일까.



화력발전소에 주목하는 이유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으로 날아가 온실효과를 일으켜 지구의 기온을 높인다. 만약 이 골칫덩이 이산화탄소만 대기 중으로 날아가지 못하게 붙잡아 수천 년 동안 땅속에 가둘 수 있다면 어떨까. 지구온난화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바로 CCS 기술이다.

CCS 기술에 기대를 거는 건 소로스뿐이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이면 CCS기술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에딘버그대 지구과학부 스코틀랜드 탄소저장 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43개의 CCS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지난 9월 25일자 과학저널 ‘사이언스’도 CCS를 특집으로 다뤘다.



 

연구자들은 이산화탄소가 막대하게 배출되는 곳에 주목했다. 바로 화력발전소다. 전 세계 5000여 곳의 화력발전소는 가장 싸고 풍부한 에너지원인 석탄을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데, 인류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총량에서 4분의 1을 차지한다. 발전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만 붙잡아도 대성공인 셈이다. 최근 CCS 기술을 도입한 화력발전소가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세계 최초로 CCS 기술을 도입한 화력발전소가 가동에 들어갔다. 얼마 뒤 프랑스에서도 CCS 기술을 도입한 발전소가 등장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동 중이거나 계획 중인 CCS 발전소는 무려 30개가 넘는다.

하지만 당장 CCS 기술을 도입한 발전소가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일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아직까지 소규모에 실험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과학저널‘사이언스’는 CCS 기술을 도입한 발전소가 상업화되려면 최소 2020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CCS 기술 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지난 10월 우리 정부는 올해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CCS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데 약 1000억 원을 지원하고 2015년부터 이를 바탕으로 CCS 기술을 도입한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CS 기술을 도입한 발전소는 어떻게 이산화탄소를 포획할까.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석탄을 태운 뒤 나온 연기에서 아민이라는 유기 화학물질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붙잡는 것이다. 1930년대에 개발된 이 방법은 가장 간단할 뿐 아니라 기존의 석탄 화력발전소에 적용하기에 적합하다.


 

 

 


가장 복잡한 방법이지만, 석탄을 태우지 않고 이산화탄소를 포획하는 방법도 있다. 여기에서는 애초에 석탄을 여러 가지 가스 형태로 바꾼다. 그런 다음 이 가스에서 이산화탄소는 따로 포획하고 수소만을 뽑아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 기술은 미국과 중국의 발전소에 적용될 예정이다.

석탄을 태우는 중에도 이산화탄소를 붙잡을 수 있다. 그러려면 공기 대신 순수한 산소로만 연소시켜야 한다. 문제는 순수한 산소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이 방법은 연구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석유 매장지로 되돌아간다

발전소에서 포획한 이산화탄소는 어디에 가둘 수 있을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저장소는 석유나 천연가스 매장지다. 연구자들은 석유나 천연가스 매장지가 오랜 세월 동안 석유나 천연가스를 가둬둔 만큼 이산화탄소를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북해의 한 유전이 천연 이산화탄소를 1억 년 동안이나 안전하게 저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방법은 이산화탄소를 집어넣을 때 부가적으로 석유나 가스를 쉽게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한 예로 미국 텍사스 주 유전에는 매년 이산화탄소 3000만t이 매장되고 있다. 염수층은 석유 매장지와 달리 지층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발생한 이산화탄소 전체를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그러니 CCS 기술을 도입한 발전소에서 포획한 이산화탄소를 멀리 이동시킬 필요 없이 가까운 염수층에 저장할 수 있다.



 

또 퇴적분지는 빈 공간(공극)이 많은 사암층에 점토가 굳어진 셰일층이 덮고 있는 지형인데, 이산화탄소를 사암층에 주입해 셰일층이 가둬두는 게 가능하다. 다만 유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하고 시추시설이 없어 매장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마지막 후보지는 채굴성이 떨어지는 석탄층이다. 이산화탄소는 석탄의 표면에 흡수돼 장기간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다. 지난 10월 말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김준모 교수가 ‘지질과학연합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경상분지를 비롯한 우리나라 육상 퇴적분지에도 약 11억t 규모의 이산화탄소를 매장할 수 있다.

혹시라도 매장된 이산화탄소가 유출되면 어떻게 될까. CCS 기술을 반대하는 이들은 1986년 아프리카 카메룬의 니오스 호수에서 일어난 끔찍한 재앙을 떠올린다. 이 호수는 화산 분출로 생겨났는데, 당시 매장돼 있던 120만t 가량의 이산화탄소가 폭발하며 밖으로 뿜어져 나와 평온하던 인근 마을을 덮쳤다. 이 일로 무려 1700여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만약 이산화탄소 매장지에 지진이라도 일어나면 비슷한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CCS의 이산화탄소 매장이 지진과 화산폭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 지질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잡는 인공나무 만일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를 불러올 정도로 늘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획하면 되지 않을까.

미국 컬럼비아대 지구물리학자 클라우스 랙커 교수는 이산화탄소를 포획하는 인공나무인 ‘에어 스크러버’를 연구하고 있다. 에어 스크러버는 이산화탄소와반응하는 화학물질을 넣은 인공구조물로 나무처럼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를 탄산염(CO32-) 형태로 붙잡는 수산화기(OH-)를 포함한 화학물질을 이용한다. 재밌는 사실은 랙커교수가 딸에게서 에어 스크러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점이다. 1999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딸이 학교 과학 경시대회 프로젝트에 제출하기 위해 에어 스크러버를 고안했고 이에 대해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한 것. 랙커 교수는 그 뒤부터 에어 스크러버를 연구하고 있다.

에어 스크러버는 CCS 기술을 도입한 발전소와 달리 아무 데서나 이산화탄소를 포획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산화탄소는 배출량이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기 중 농도는 어디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산화탄소 매장지에 위에 에어 스크러버를 설치하면 포획한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시킬 필요가 없다.

하지만 드넓은 대기에 퍼져 있는 이산화탄소를 붙잡는 건 만만찮은 일이다. 2005년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는 에어 스크러버는 소모하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에어 스크러버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 소모량을 줄인다면 그 파장은 대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객원기자

🎓️ 진로 추천

  • 환경학·환경공학
  • 지구과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