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나로호 1차 발사가 실패로 돌아간 뒤, 다음 발사를 준비하는 약 10개월은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었다. 연구원들은 주말도 자진 반납하고 발사 실패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실험과 분석에 매달렸다. 나로호 발사는 오랫동안 준비한 국가사업으로서도 중요했지만, 연구원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발사 성공 이후로 미루는 연구원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생인 딸도 이제 페어링(위성을 보호하는 덮개)이 뭔지 알 정도”라고 말하는 연구원도 있었다.
천안함 참변… 변수 많은 발사 준비
1차 발사는 발사체 최상단에 위치한 두 개의 페어링 중 하나가 제때 분리되지 않아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실패했다. 우리는 페어링이 분리되지 않은 원인을 밝히기 위해 페어링 분리실험을 7차례나 진행했다.
나로호가 실제로 이륙하는 환경보다 진동을 6배 강하게 만들어 실험해보기도 하고, 우주 공간과 비슷한 환경인 대형 진공 챔버에 넣어 실험하기도 했다. 부품이나 시스템 점검 시험까지 치면 약 400회의 시험이 진행됐다. 막판에는 페어링에 금이 가 급히 다시 주문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1차 발사 때와 같은 페어링 비정상 분리 문제는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극한환경에서 동작하는 발사체를 개발하는 것이 그만큼 섬세하고 어려우며 경험이 필요한 일이라는 방증이었다.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나로호발사조사위원회도 2010년 2월 최종 조사결과 발표에서 페어링에 기계적 혹은 전기적 결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데 그쳤다.
이후 우리는 2차 발사에 더욱 집중했다. 2차 발사는 1차 발사와 모든 과정이 똑같았다. 러시아에서 제작한 발사체 1단을 인도받아 우리가 제작한 2단을 조립하고 맨 마지막으로 2단에 위성을 싣는 순서였다. 이를 위해 2010년 3월부터 본격적인 ‘발사 모드’에 돌입했다. 1차 발사 이후 고국으로 돌아간 러시아 연구진들과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일하던 연구자들이 다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 모였다.
러시아에서 제작한 나로호 1단은 3월 31일 러시아를 출발해 4월 4일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김해공항부터 나로우주센터까지는 해군 호위 하에 바지선으로 이송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3월 26일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해군 소속 천안함이 폭침되는 국가적 참변이 일어나 해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불안정한 정세에 보안이 특히 더 신경 쓰이는 상황에 다행히 해경의 지원을 받아 1단을 무사히 이송할 수 있었다.
1차 발사 준비 경험으로 어느 정도 자신이 있던 나로호 점검 작업 중에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나로호에 고압 공기와 질소가스를 공급하는 조절장치의 엔진 4개 중 1개가 출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비록 지상장비라고 하더라도 해결하지 못하면 더 이상 발사를 진행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다. 엔진 제작사의 엔지니어들과 정비작업을 하면서 어렵게 문제를 해결했다.
인공위성과 나로호 2단을 조립하는 공간은 단위부피(ft³)당 먼지 수가 500개 이하로 청정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청정도 유지시설은 나로호 이전에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익숙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로우주센터 위성조립동의 먼지 수가 6000개를 넘었다. 지하 기계실에 있는 공조기가 고장이 나면서 화재경보기가 작동해 오염에 노출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인공위성과 나로호 2단에 대한 청정화 작업을 한 뒤 작동시험을 다시 거쳤다. 세상일은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가슴 철렁한 소화액 분출 사건
2차 발사는 그해 6월 9일로 잡혔다. 빨리 발사하는 것보다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실패 원인 분석과 보완작업 상황을 봐가면서 신중하게 결정한 날짜였다. 대망의 2차 발사 이틀 전(D-2), 다시 한번 나로호를 발사대에 세우는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찼다. 지난해 1차 발사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확인시험과 점검을 했던가!
기립 작업은 당초 계획보다 5시간이나 늦어졌다. 나로호를 조립동에서 발사대로 이송해 오후 4시경 기립할 계획이었는데, 발사대로 이송된 나로호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나로호와 지상장비 간 통신이 되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국내 언론들이 나로호 발사 과정을 생중계하듯 일거수일투족 보도하는 상황이었다. 1차 발사가 실패했기 때문인지 러시아측 협력회사 사장단도 대거 입국해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몇 시간 뒤 작업자의 단순 실수로 밝혀져 캄캄해진 오후 9시 10분경 나로호를 기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발사 당일인 6월 9일, 연구원들은 오전 9시부터 발사 운용을 시작했다. 각자가 맡은 시스템의 운용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차근차근 발사 프로세스를 밟았다. 추진제를 주입하기 위한 모든 점검을 마치고, 액체산소를 주입하기 위해 탱크의 냉각 작업도 끝냈다.
그때 갑자기 ‘쏴아~’ 소리가 들렸다. 발사 2시간 57분 전, 발사대 소방 설비가 갑자기 소화약품을 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발사가 시작되고 엔진이 2000도짜리 불꽃을 내뿜으면 작동해야 할 설비가 준비 단계에서 대체 왜 작동한단 말인가!
설상가상으로 발사통제동에서 원격으로 소화약품 분사 중지 명령을 내보냈으나 먹히지 않았다. 담당자들이 급히 발사대로 뛰어가 발사대 지하 2층에 있는 소방 설비 제어기를 수동으로 조작했다. 분출은 겨우 잦아들었지만 발사대는 이미 소화약품 범벅이 된 상태였다. 나로호가 발사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시 또 여러 단계의 점검을 거쳐야만 했다. 발사 연기가 불가피했다.
“한국은 운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나로호에 액체산소가 충전된 상태에서 소화약품이 분출됐다면 나로호가 폭발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날 밤, 러시아측 나로호 발사 책임자인 유리 바흐발로프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온도가 영하 183도인 액체산소가 충전된 나로호에 상온의 소화약품이 닿았더라면 나로호는 그 자리에서 폭발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면서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 현실에서는 천운이 따랐다. 액체산소를 충전하기 전에 소화약품이 분출됐고 분출된 약품도 나로호에 직접 닿지 않았다. 사건 후 나로호 점검 결과에서도 특이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만일을 대비해 몇 가지 부품을 교체하는 선에서 이번 일을 수습할 수 있었다.
나로호가 날아갈 필리핀 동쪽 해상에 원격측정수신장치를 싣고 미리 나가 있는 해경도 보유한 연료나 음식으로 하루 정도 더 버틸 수 있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렇다면 나로호 발사를 길게 미룰 필요가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음 날 곧바로 다시 발사 준비에 돌입했다.
천신만고 끝 두 번째 도전
2010년 6월 10일 오후 5시 1분, 나로호는 두 번째 힘찬 비행을 시작했다. 발사 후 54초경 나로호는 음속을 돌파하고 이후 최대추력으로 수직상승했다. 당시 공군이 지원차 구름 속에서 번개를 만들어낼지 모르는 전기 입자들을 모니터링 중이었는데, 그들이 공중에서 촬영한 영상에는 빛나는 작은 점이 수직상승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그러나, 이 발사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맺었다. 나로호 발사 후 137초경 갑자기 나로호와의 통신이 두절됐다. 발사통제동의 대형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그려지던 나로호의 비행궤적이 갑자기 멈췄다. 발사대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약 68km 고도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당시 나로호는 초속 1.7km로 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폭발이 있었지만 관성력에 의해 발사대에서 남쪽으로 411km나 떨어진 공해상에 낙하한 것으로 분석됐다. 마침 부근에 있던 우리 해군함정이 나로호의 파편을 수거했다. 처참한 두 번째 실패였다. 실패 원인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다음 화에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