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61년,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한창이던 시절입니다. 당신은 미국의 비행사입니다. 우주선 안에서 발사를 기다리고 있죠.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이번 임무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임무가 성공하면 당신은 미국의 첫 번째 우주인이 되거든요.
그런데 급한 용무가 생겼습니다. 소변이 너무나 마렵습니다. 이젠 한계입니다. 관제실은 자리에 그대로 있으랍니다. 당연합니다. 화장실에 가려면 우주선에서 나와야 합니다. 발사도 연기되겠죠. 인류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순간, 또 다른 한계를 마주한 당신! 이 중대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건가요?
이야기의 주인공인 미국의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드는 결국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의 희생(?) 덕에 그가 탄 우주선 프리덤 7호는 우주에서 15분 22초를 비행해 임무에 성공할 수 있었죠.
우리는 종종 인류가 동물이라는 점을 까먹곤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시험 도중에 급똥이 마렵다면 어떨까요.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소변이 당장이라도 나올 것 같다면요? 지금 싸야만 한다는 본능이 경고 벨을 울리면 이성은 종잇장처럼 위태로워집니다. 인류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와중에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괄약근의 난제’를 과학동아가 풀어보겠습니다. 과학기술이여, 대소변을 지배하라.
1단 지리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I 존엄성을 위한 화장실 알람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킵니다.”
일본 기업 트리플 더블유 재팬이 2015년 개발한 ‘디프리(DFree)’의 광고 문구입니다. 디프리의 주요 기능은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 때를 예측해 알려주는 겁니다. 26g의 가벼운 기계장치를 배꼽 아래에 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장치가 초음파를 이용해 방광 또는 대장의 잔여 용량을 확인하고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앱)에 알람을 보내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화장실 알람이라니, 광고가 과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나카니시 아츠시 트리플 더블유 재팬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미국 유학을 하던 시절, 길을 걷던 나카니시는 갑자기 대변이 마려워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길 한복판이라 화장실을 찾을 수 없었고, 그만 바지를 더럽히고 말았죠. 이 사건 이후로 나카니시는 한동안 외출하기를 무서워했다고 해요.
하지만 나카니시는 엔지니어였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배변 알람, 디프리를 개발했죠. 그런데 개발하고 보니 디프리가 필요한 사람은 나카니시 외에도 많았습니다. 노인,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배변 시기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초조하게 화장실을 찾을 필요가 없겠죠. 앱을 이용하니 요양원이나 병원 등에서 환자 여러 명의 배변을 한 번에 관리하기도 편하고요. 화장실 알람, 마냥 웃어넘길 수는 없는 기술이네요.
2젠 틀렸다고 생각될 때 I 우주 똥 챌린지에 함께하세요
문제는 도저히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상황일 때 찾아옵니다. 참는 것밖에 답이 없는데, 그마저도 한계에 도달한 일촉즉발의 상황. 이미 싸버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NASA는 2016년 특별한 공모전을 개최했습니다. 이른바 ‘우주 똥 챌린지’입니다. 총상금 3만 달러(약 4197만 원)를 걸고 진행된 공모전의 과제는 우주인의 소변, 대변, 그리고 월경 분비물을 144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처리할 장치를 만들 것. 단, 장치는 우주복 안에 설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셰퍼드의 비극 이후로, NASA는 우주인이 우주복을 입은 채로 대소변을 볼 수 있도록 성인용 기저귀를 입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저귀 한 장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짧습니다. 안정적이고 깨끗하게 대소변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우주 똥 챌린지란 이름이 조금 우습지만, 무척 중요한 공모전이었던 거죠.
1등은 미국 공군 소속 외과의사인 대처 카르돈이 차지했습니다. 대처는 우주복 안에 작은 에어록(airlock·우주선 내의 공기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출입구를 이중으로 설치한 뒤 공기 흐름을 차단하는 공간)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이 에어록을 통해 사용한 기저귀를 빼내겠다는 전략입니다.
2등을 차지한 SPUDs 팀은 공기를 빠르게 흘려 월경 분비물이나 소변을 쓸어버리겠다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SPUDs 팀은 “정신적으로도 편안한 장치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디프리도 그렇고, 우주 똥 챌린지도 그렇고, 존엄성과 정신적 평온함을 강조하는 대목이 웃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