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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분뇨에서 바이오가스 만든다

친환경에너지로 다시 태어나는 똥

지지직 팟! 깜깜하던 창고 안이 환해진다. 한국전력에서 공급되는 전력을 끊은 뒤 자체발전기의 스위치를 올리자 천장에 달린 백열등이 환하게 켜졌다. 더러운 것, 쓸모없는 것,버려야 할 것으로만 생각됐던 배설물이 전기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눈으로 목격한 순간이었다. “이 시설을 축산농가에 보급한다면 가축 분뇨를 처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 격이죠.”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축산환경과에서 가축 분뇨로 전기를 생산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 조승희 박사의 말이다. 여기서는 가축 배설물이 더 이상 ‘똥’이 아니다. 친환경에너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사,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대우받고 있다. 축산과학원은 한진중공업과 함께 ‘축산 바이오가스 생산 시스템(Slurry Composting & Biofiltration with Methane, 이하 SCB-M시설)’을 공동 개발해 지난 9월 23일부터 시범 운영을 하고 있다. SCB-M시설은 한우, 젖소, 닭 등이 배설한 분뇨 10t에서 300kW의 전기를 생산한다. 이는 30~40가구가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기량이다.



가축 분뇨가 좋은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은 예전부터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먼 옛날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말린 소 배설물을 아궁이에 넣어 불을 지핀 다음, 방을 데우거나 요리를 했다. 물론 현재에도 아프리카와 인도에서는 소나 염소 배설물을, 사막지대에서는 낙타 배설물을 땔감으로 이용한다.

최근에는 배설물이 열을 방출하는 연료뿐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는 친환경 에너지원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친환경 도시로 알려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는 태양열이나 지열처럼 가축 분뇨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가축 분뇨에서 얻은 바이오가스(메탄가스)를 이용해 추운 겨울에 난방을 하거나 자동차를 운행한다. 예테보리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원 가운데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1% 정도이며, 1년 중 석유를 사용하는 날은 겨울에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1~2일밖에 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가축 분뇨로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12년부터는 가축 분뇨를 바다에 투척하는 일이 법으로 금지되기 때문에 농가에서는 분뇨를 처리할 시설이 하루빨리 필요하다. 환경과학자들은 분뇨를 처리함과 동시에 재생에너지로 탈바꿈시키는 기술을 연구해왔다. 대표적으로 농촌진흥청은 1998년부터 가축 분뇨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해 액체비료를 생산하는 기술을 연구했다. 그 뒤 바이오가스 시설을 합쳐 SCB-M시설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배설물 속 미생물이 메탄가스 생산

가축 분뇨에서 어떻게 전기 에너지를 뽑아낸다는 말일까. 분뇨를 치우지 않고 내버려둔다고 가정해보자. 점점 악취가 심해지고 모양이 망가지면서 썩어갈 것이다. 바로 미생물의 소행이다. 그중에서도 산소를 싫어하는 미생물(혐기성 미생물)이 분뇨에서 메탄가스를 만든다. 클로스트리듐(Clostridium ), 신트로픽박테리아(Syntrophic Bacteria), 메타노사르시아 바르케리(Methanosarcia barkeri ) 같은 혐기성 미생물은 유기물을 섭취해 탄화수소나 유기산, 질소화합물 등을 분해시키고 탄산가스나 메탄가스를 방출해 폐수를 처리할 때 이용된다. SCB-M시설은 분뇨 속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혐기성 미생물에다 술이나 빵을 발효시킬 때 사용하는 혐기성 미생물을 추가로 넣어 분뇨를 25일 동안 삭힌다.

메탄가스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려면 예민한 혐기성 미생물의 기분을 맞춰야 한다. 싫어하는 산소가 접근하지 않게 해야 하는 일은 물론, 저장고에 들어 있는 가축 분뇨의 농도를 일정하게 조절한다. 농도가 일정하지 않으면 미생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분뇨를 분해하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농도가 일정해진 분뇨가 메탄 소화조(삭힘통)로 옮겨진 다음에는 미생물들이 좋아하는 최적 조건, 즉 산성도 pH 7 정도(중성), 온도 35℃ 정도(중온) 또는 55℃ 정도(고온)로 유지시킨다.



혐기성 미생물은 분뇨를 이루는 복잡한 화합물을 분해해 단순한 분자로 만든 뒤, 아세트산 같은 유기산을 만든다. 유기산에서는 메탄가스가 방출되는데, 분뇨에서 나오는 기체의 약 60%를 차지한다. 나머지(이산화탄소, 황화수소)는 처리되고 메탄가스만 남아 가스 저장조에 모여 있다가 발전기로 이동해 전기를 만든다.

메탄 소화조에서 메탄가스를 내보내면 마지막으로 찌꺼기(소화폐액)만 남는다. 미생물이 분해하기 어려운 유기물이다 . 이 소화폐액이 골칫덩어리다. 분뇨 찌꺼기를 땅에 묻거나 바다에 흘려보낸다면 가축 분뇨 역시 친환경 에너지원이라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의 가축 분뇨 바이오가스 발전시설에서는 소화폐액을 정화시키거나 소화폐액 자체를 액체비료로 사용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더럽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분뇨의 찌꺼기를 깨끗이 만드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처럼 분뇨로 전기를 생산해 벌어들이는 비용보다 소화폐액을 정화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정화를 거친 액체비료가 일반 화학비료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점도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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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비료에서 악취 없앤 비결

국립축산과학원에서는 일찌감치 가축 분뇨를 왕겨와 톱밥에 걸러내 고품질의 액체비료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바이오가스 생산시설에 접목시켜 소화폐액을 처리하는 문제를 가볍게 해결했다. SCB-M시설의 마지막 부분인 퇴비단은 왕겨가 120cm 정도 쌓인 층과 톱밥이 30cm 정도 쌓인 층으로 이뤄져 높이가 총 150cm 정도다.

그 위에 소화폐액을 부으면 30일 동안 자연적으로 걸러진다. 왕겨와 톱밥에서 살고 있는, 산소를 좋아하는(호기성) 미생물이 소화폐액을 자연적으로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악취도 모두 사라진다. 정화처리 없이 악취를 없애는 셈이다.

기자가 소화폐액과 액체비료를 궁금해 하자, 조 박사는 큰 비커 3개를 들고 왔다. 하나는 가축 분뇨 원액과 다름없는 슬러리 원수, 또 하나는 소화폐액,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액체비료다. 겉보기에는 세 비커에 담긴 액체 모두 시커먼 색깔이어서 가까이 다가가기는커녕 눈과 코를 뜨고 있기조차 역하다.

“일단 액체비료의 냄새를 한번 맡아보시죠. 깜짝 놀라실 겁니다.”

조 박사는 액체비료가 담긴 비커에 코를 대고 말했다. 이미 주변에 소똥 냄새가 옅게 진동하는데, 더 진한 냄새를 맡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코를 대봤다.

놀랍게도 악취가 전혀 나질 않았다. 겉보기엔 색깔이 분뇨 원액이나 소화폐액과 같아서 냄새가 날 것 같았는데, 액체비료에서는 마치 검정 물감을 탄 물처럼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친환경 비료라도 악취가 난다면 농가에서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며 “농민들이 친근하게 여길 수 있도록 액체비료의 악취를 없앴다”고 설명했다. 분뇨에 대한 농민들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지만 연구자 입장에서도 분뇨를 꺼리지 않게끔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는 “앞으로 농가마다 자체 SCB-M시설을 갖춘다면 농가에서 자체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면서 가축을 키우고 분뇨를 얻어 다시 전기를 생산하고 액체비료를 만드는 ‘자원 순환 시스템’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미 농림수산식품부에서도 내년쯤 농촌 지역 3군데를 선발해 SCB-M시설을 시범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에너지로 다시 태어나 깜깜한 밤을 밝히고 추운 집을 데우며 공장의 기계를 돌릴 배설물의 변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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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의 황홀한 변신
가축 분뇨에서 바이오가스 만든다

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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