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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의 황홀한 변신

꽃향기와 똥냄새는 인돌 농도 차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똥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인다, 제 얼굴엔 분 바르고 남의 얼굴엔 똥 바른다…. 여러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똥은 예나 지금이나 더러운 것을 나타내는 대명사다. 똥이 방 안에 가득 차 있다든가 똥 벼락을 맞는 꿈을 꾸면 큰돈이 생긴다는 꿈 풀이도 있지만 똥만큼 불쾌한 것도 없다. 남의 것은 물론 내 것도 더러워서, 만든 즉시 물에 흘려 보낸다.

그런데 똥을 신성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존재 가운데 왜 하필이면 똥일까.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세상을 만든 태양신 ‘라’를 섬겼다. 라는 가장 먼저 빛을 만들고 아침마다 크고 둥근 태양을 하늘에 둥실 띄웠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쇠똥구리가 다른 동물들의 배설물을 동글동글하게 뭉쳐 굴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라가 태양을 움직이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은 쇠똥구리가 라의 분신(케프리)이며 똥 안에 낳은 알에서 새끼가 태어나는 광경을보고 쇠똥구리가 부활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시신의 심장 부근에 돌로 만든 쇠똥구리 장신구를 넣어 부활을 기원했다. 이외에도 그리스 신화나 로마 신화, 멕시코의 아스텍 신화에서도 똥을 신성시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달리 말하면 고대 사회에서는 똥을 더러운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고마운 대상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똥이 썩으면서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농사를 돕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똥이 농경사회에서만 유익한 것은 아니다. 더럽고 쓸모없는 똥의 황홀한 재탄생을 만나보자. 똥으로 만든 종이 쇠똥구리가 세상을 창조한 태양신이라는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믿었던 종교 속 상상일 뿐이지만 쇠똥구리가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지난 7월 라이브사이언스 닷컴에서는 쇠똥구리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지구는 쇠똥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배설물로 뒤덮여 있었을 것이며, 그 높이가 무릎까지 차올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쇠똥구리는 자기 몸무게의 50배나 되는 커다란 똥 경단을 굴리는데, 해마다 1ha(헥타르, 1ha=1만m2)당 1t의 배설물을 처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땅을 판 구덩이에 똥 경단을 넣고 가운데에 알을 낳으면 애벌레가 태어나 다 갉아 먹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연과학박물관의 조르주 제니스 박사팀은 약 3000만 년 전에 쇠똥구리가 만든 똥 경단 화석을 분석해 지난 7월 ‘고생물학’ 저널에 발표했다. 그들은 똥 경단 화석에서 그 당시 살았던 쇠똥구리와 다른 곤충들, 그리고 똥의 주인인 여러 초식동물에 대한 생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화석에서 발견된 구멍을 보면 쇠똥구리의 양식인 똥 경단을 다른 쇠똥구리, 파리, 지렁이가 축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 2월 디스커버리 뉴스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위트와테르스란트대 루신다 백월 연구팀이 요하네스버그 근처에 있는 글래디스베일 동굴을 발굴하다가 하이에나의 배설물 화석에서 사람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 40가닥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전자현미경으로 현생인류와 가까운 영장류의 머리카락임을 알아내‘고고학 저널’에 발표했다. 이는 25만 7000년 전~ 19만 5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발견된 머리카락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가장 처음 발견된 배설물 화석은 약 6500만 년 된 티라노사우루스의 똥으로 1955년 캐나다 앨버타에서 발견됐다. 똥 화석 안에는 부서진 초식공룡의 뼈가 들어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육식공룡은 먹이를 뼈째 씹어 먹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외에도 배설물 화석 안에 든 식물의 씨앗으로 당시 식물 생태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디선가에는 동물이 만든 배설물이 바짝 마른 채 보존돼 현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과 동식물에 대한 정보를 미래에 전해줄 것이다.

‘똥’에 직접 현재의 얘기를 기록하는 방법도 있다. 케냐와 파키스탄, 호주, 태국 등지에서는 코끼리의 똥을 이용해 종이를 만든다. 코끼리는 하루에 200~250kg의 풀을 먹고 50kg 정도의 똥을 싸는데, 섬유질인 셀룰로오스는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배설한다. 그래서 코끼리 똥에는 셀룰로오스가 많다.

태국 북부 람팡지역 코끼리 보존 센터에서는 코끼리 똥을 모아 깨끗이 씻은 뒤, 5시간 동안 펄펄 끓여 셀룰로오스를 분리한다. 이것을 물레에 3시간 동안 돌리면서 잘게 자르고 색을 입힌다. 그 뒤 균일한 무게의 공 모양으로 뭉쳐 그늘에 뒀다가 체로 걸러내 종이제조틀에 넣는다.

햇볕에 말리고 표면을 편평하게 밀면 종이가 완성된다. 코끼리 똥 종이는 여러 번 씻기 때문에 악취는 나지 않지만, 일반 종이에 비해 두껍고 질긴 단점이 있다. 하지만 분뇨를 쉽게 처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친환경적인 종이 생산에서 얻은 수익은 모두 코끼리를 사육하는 데 쓰이는 이점이 있다.

또 다양한 모양과 색깔로 생산되고 친환경 디자인 제품으로도 인기가 높아졌다. 최근 국내에서도 스리랑카산 코끼리 똥 종이가 출시됐다. 사향고양이 똥에서 뽑은 커피, 소똥에서 얻은 바닐라 향똥은 다양하게 변신하다 못해 식도락에까지 손을 뻗었다. 사향고양이 똥에서 추출한 커피는 일반 커피와 달리 흔하지 않아 가격이 매우 비싸고 맛과 향도 대단히 특별하다. 가장 쓸모없고 더러운 똥이 최고급 커피를 생산하다니 똥으로서는 홈런을 친 셈이다.

흔히 루왁 커피로 알려진 이 커피는 1년에 약 500kg 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사향고양이가 밤새 뛰어난 시각과 까다로운 미각으로 맛있게 잘 익은 커피 열매만 골라 먹고 배설을 하면, 사람들이 해가 뜨기 전에 똥을 모아 그 안에 박혀 있는 커피 씨를 추출하기 때문이다.

루왁 커피의 원두는 일반 커피 원두보다 단단하고 색깔이 짙다. 특유의 맛과 향에 대한 비밀이 바로 이 원두에 숨어 있다. 캐나다 겔프과학대 식품과학과 막시모 말콘 교수는 2003년에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를 돌며 루왁 커피가 특유의 맛과 향을 가지게 된 이유를 연구해 ‘푸드 리서치 인터내셔널’ 2004년 7월호에 실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사향고양이 뱃속에 들어간 커피 열매는 과육은 소화되고 씨만 바깥으로 배설되는데, 씨가 온전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내장을 거치면서 발효된다. 발효를 일으키는 주인공은 소장에 있는 젖산균이다. 이때 커피의 쓴맛을 내는 단백질이소화효소에 의해 펩티드와 아미노산으로 잘리고 사향고양이만 갖고 있는 특별한 효소 덕분에 특유의 맛과 향이 덧입혀진다.

그래서 다른 동물이 소화하고 배설한 커피에서는 루왁 커피와 같은 맛과 향을 낼 수 없다. 말콘 교수는 루왁 커피의 맛과 향을 “젖은 흙에서 나는 향기, 곰팡이 냄새, 초콜릿 향이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그는 사향고양이가 가진 특별한 효소는 6개 정도가 있다고 밝혔다.



똥에서 바닐라 향의 원료인 바닐린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 과학자도 있다. 바닐린은 바닐라콩에서 뽑아낸 자연산 향료로 커피, 아이스크림, 사탕 등에서 바닐라 향기를 낼 때 쓴다. 일본 국제의료센터의 야마모토 마유 박사는 소와 염소, 말, 판다 같은 초식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해 바닐린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고, 2007년 이그노벨상(화학 분야)을 수상했다. 그는 합성 바닐린을 샴푸나 방향제, 양초를 만들 때 첨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업이 기피하면서 제품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사자가 코끼리 똥 좋아하는 이유

똥에서 향기로운 바닐라 향의 원료를 뽑아낸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런데 똥 자체의 냄새에서 황홀함을 느끼는 동물이 있다. 사자는 냄새가 자기들의 성호르몬과 비슷한 코끼리 똥을 아주 좋아한다. 서울대공원에서는 속이 빈 나무통에 코끼리 똥을 채워 사자가 장난감처럼 갖고 놀 수 있게 우리 안으로 넣어준다.

그렇다면 똥 냄새가 사람에게도 향기롭게 느껴질 수 있을까. 똥에서 구린 악취를 만드는 주요 분자는 장 속에 사는 세균이 음식물을 소화시키면서 만들어내는 스카톨과 인돌이다. 또 황화수소와 메탄, 암모니아 기체도 냄새를 만든다.

사실 스카톨은 우유 단백질(카세인)에 많이 들어 있다. 몸속에서 합성할 수 없지만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트립토판이 분해될 때 스카톨이 생긴다. 구조가 스카톨과 비슷한 인돌은 트립토판 같은 아미노산이나 인돌아세트산 같은 식물호르몬을 이루는 중요한 분자다.

단백질을 많이 먹을수록 스카톨과 인돌이 더 많이 생성되면서 똥 냄새도 더 역겨워진다. 하지만 인돌은 스카톨과 달리 농도가 옅으면 좋은 향기가 된다. 사람의 코가 인돌의 농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향기와 똥 냄새는 농도의 차이인 셈이다. 인돌 성분을 이용해 합성할 수 있는 인조 향에는 재스민을 비롯해 라일락, 오렌지플라워 등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쓸모없는 똥이 화석으로 변해 오래 전 생태를 추정하는 자료가 되거나 친환경 종이로 태어나기도 하고, 또 입에 댈 수조차 없는 똥에서 최고의 커피를 추출하거나 지독한 똥 냄새를 내는 분자가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는 사실은 ‘정말 똥이 지저분한 물질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아이러니하다. 똥이 변신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은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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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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