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백96℃에서 냉동된 채로 죽음을 거부하는 사람들. 미래는 그들을 되살려낼 것인가?
'돌아온 홈즈'. 이는 최근에 방영된 한 텔리비전 외화의 제명이다.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속에서 맹활약을 하던 명탐정 '셜룩 홈즈'가 과거로부터 현재로,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돌아온 것을 상정하여 그려진 영화였다. 돋보기를 들고 수사하던 때와는 모든 것이 판이하게 달라진 현대에 나타난 홈즈는 처음엔 실수를 연발하지만 차츰 그 천재성을 발휘해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내용이었다.
이 외에도 냉동인간은 SF소설류, 공상만화 등에서 수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두가지 본능적인 소망을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연세대의 한 심리학 연구원은 냉동인간이 사람들 사이에 관심있는 얘기거리로 남아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냉동인간은 타임머신과 더불어 인간의 먼 미래상을 담을 수 있는 흥미로운 그릇이다. 또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재생을 믿으며 정성스레 미이라를 만들었던 것, 중국의 진시황이 영원히 살기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맸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수 있다."
냉동인간 제조회사 생겨
그런데 이제 냉동인간은 공상과는 전혀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게 되었다.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진 인간심리에 착안, 죽음에 이른 인간을 냉동보관하는 '냉동인간제조회사'가 생긴 것이다. 현재 이 수술은 유일하게 미국에서만 행해지고 있으나 냉동된 상태로 보존, '완전사망'을 거부하는 사람의 수는 이미 수백명에 달한다.
인류최초로 냉동보관되었던 냉동인간 제 1호는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베트포드박사였다. 1967년 그는 간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는데 냉동보관술의 선구자였던 '에칭거'박사를 찾아가 자신의 몸을 냉동시켜 줄 것을 자청, 최초의 냉동인간이 된 것이다.
당시 미국의 언론들은 이 수술을 집중적으로 보도, 독자들의 큰 방향을 불러일으켰었다. 시기상조라는 비난이 쏟아지는가 하면, 과학적으로 이렇다 할 근거없는 사술(詐術)이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반면 여기에 희망을 거는 측도 없지않았다. 현대의학기술로도 손을 쓰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암, 백혈병, AIDS 등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새로운 '생명연장법'은 최후의 지푸라기였던 것. 아뭏든 냉동수술후 베트포드박사의 냉동체에서 수염이 자랐다는 사실은 그들의 기대심리를 높여 놓았다. 게다가 만화영화로 유명한 월트 디즈니도 냉동인간 대열에 끼었다고 해서 더욱 관심을 집중시켰으나 디즈니재단측에 의해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뇌의 냉동보존이 가장 까다로워
일단 신청자의 죽음이 확인되어야만 수술이 진행될 수 있다. 뇌사를 인정하는 나라의 경우 뇌사확인증명으로 수술의 개시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뇌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므로 실정법상으로도 냉동인간의 출현은 불가능한 셈이다. 실제로 심장사(死)가 되어 심장이 완전히 멎게 되면 신청자의 피를 뽑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냉동인간을 만들 수 없다.
이와 관련, 부천세종병원 흉부외과 송명근박사는 "뇌사는 소생할 가망이 전혀 없는 상태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난센스"라고 주장했다. 아뭏든 뇌사인정여부는 장기의 보존과 장기이식술의 발전을 좌우할 열쇠를 쥐고 있는 게 분명하다. 뇌사가 인정해야 이식에 사용할 장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뇌사를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유럽 각국과 미국, 대만 등.
사망이 확인되면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는데 신청자의 전신을 냉동하는 법과 머리만 따로 떼어 냉동하는 법 등 2가지 방법이 있다. 머리를 절단하여 냉동하는 경우에는 대개 몸은 화장한다. 이는 먼훗날 새로운 몸에 부착되어 거듭나겠다는 얘기인데 다소 믿기 어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수술이 시작되면 드라이아이스를 냉매로 사용하여 신청자의 몸을 0℃로 냉각시킨다. 이 상태에서 전신의 피를 뽑아 내고 대신 인공피와 글리세롤을 주입한다. 이때 글리세롤은 액체인 피가 얼음피로 바뀌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항(抗)냉동제며 혈액의 대체작업은 12시간 내에 이뤄진다.
그뒤 계속해서 알콜과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냉각시키다가 열차단 슬리핑백에 냉동체를 조심스럽게 싸서 최종적인 보관소인 냉각캡슐에 넣는다.
흰색의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1톤 무게의 냉각캡슐 안에는 액체질소가 채워져 있는데, 이를 이용해 냉동체를 영하 1백96℃로 보관하게 된다. 이때 냉동캡슐은 신청자의 머리가 아래 쪽을 향하도록 기울여 주는데, 이는 만일 액체질소가 떨어져 캡슐내의 온도가 높아지더라도 뇌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머리만 따로 떼어 냉동보관하는 방법이 있다는 데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냉동인간전문가들은 뇌를 결코 먼저 해빙되어서는 안되는 장기로 꼽는다. 한편 인공장기제조의 관련자들도 뇌를 인공장기 제작의 마지막 과제로 삼고 있다. 만약 뇌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완전한 인조인간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얘기와 다름 아니다.
동물실험에서의 성공
냉동인간제조관련자들은 냉동인간의 원리를 겨울잠을 자는 동물에 빗대어 설명한다. 즉 체온이 저하되면 세포의 활성이 떨어져서, 신체의 산소요구량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 따라서 체온을 차츰 낮추어 가면 산소소비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맞게 될 것이며, 이때는 숨을 쉬지않고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따는 논리를 편다.
이같은 주장은 미국 듀크대학의 '스티븐'교수의 실험을 통해 일부 입증되었다. 심장병에 걸린 어린이를 5℃로 냉각하여 수술했더니 어린이의 산소소비량이 정상치의 5%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외에도 동면하는 동물들이 겨우내 양분을 섭취하지 않고 호흡도 정지한 채 지내는 것, 겨울낚시를 통해 잡은 꽁꽁 얼어 붙었던 고기가 녹으면 다시 팔딱거리는 것 등이 냉동인간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자료들이다.
냉동인간의 제조원리는 단순해 보이지만 인간의 냉동보관에 드는 비용은 12만5천달러(약 1억원)나 된다. 이중 4만5천달러(약 3천6백만원)는 냉동보관을 위한 수술과 수송에 들어가고 나머지 8만달러(약 6천4백만원)는 액체질소값등 영구유지비 명목으로 지불되는 것이다. 액체질소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보충해줘야 지속적인 냉동을 할 수 있으므로 그만한 비용은 받아야 한다는 게 냉동인간전문가들의 주장.
그래서 냉동인간제조를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설령 사람의 냉동체를 실험적으로 녹여 보지는 않더라도 실험동물에 대해서는 해빙실험을 해 볼 수 있지 않은가"하는 게 그들이 의심을 품은 이유다. 이에 대해 냉동인간제조관련자들은 "얼리는 것보다 녹이는 것이 더 어렵다. 우리는 미래의 과학에 두가지를 기대한다. 불치병을 극복하는 의술과 냉동체에 손상을 안주는 급속해빙술의 개발이다"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냉동인간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는 두 집단이 지난 해 미국내 TV의 한 토크쇼를 계기로 첨예하게 맞붙었다. 사실 베트포드 냉풍이래 한동안 잠잠했던 냉동인간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도 TV화면을 통해 3년생 개가 등장한 이후 였다. 당시의 상황은 이렇다.
미국인에게 꽤 인기있는 '필 도나휴'쇼에 버클리대 소속의 '폴 세갈'이라는 냉동보관학자가 나와서는 "냉동보존법은 인간생명연장의 열쇠"라고 자랑했다. 또 그는 데리고 나온 '마일즈'라는 비글(Beagle.실험용으로 많이 쓰이는 개)에게 수행했던 실험결과를 설명하였다.
마일즈의 피를 인조혈액으로 대체하고 3℃로 체온을 낮춰 심폐기능유지장치를 일단 정지시킨 후 열을 다시 가했다. 가열 후 15분이 지나자 맥박과 숨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혈액순환도 곧 정상을 되찾았으며 점차 체온이 상승되면서 완전한 건강상태로 회복되었다고 밝혔다.
'세갈'의 실험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냉소적이었다. 그와 같은 실험은 60년대에도 이미 실시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개를 1℃정도에서 4시간 냉장했을 때 생존율이 90%를 상회하는데 '그 정도가 무슨 대수냐'하는 투였다. 특히 '세갈'의 실험은 냉동온도가 아닌 냉장온도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냉동인간제조관련자들에게도 호평을 받지 못했다. 냉동인간제조와 관련있는 캘리포니아주 소재의 '장수'협회 의장 '마이크 다윈'씨도 "세갈의 발표는 명백한 사기이며 그런 실험이 냉동인간 제조발전에 하등의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쥐를 이용해서 냉동시켰다가 다시 소생시키는 실험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의 '안지우스'박사가 실시한 실험도 그중의 하나. 그는 쥐를 마취한 뒤 얼음물에 넣어 체온을 0℃까지 끌어 내렸다. 곧 쥐는 호흡과 심장박동이 멈췄는데 이런 상태로 1시간동안 두었다가 고주파전파를 이용, 해빙시켰다. 그랬더니 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짱하게 일어났다. 미국 버클리대의 생체물리학자 웨이츠박사도 이와 유사한 실험을 했다. 그도 역시 쥐를 마취시킨뒤 0℃까지 체온을 낮췄으며, 이때 쥐의 피를 뽑고 대신 항(抗)냉동제를 주입했다. 이런 상태로 수시간동안 방치한뒤 체온을 높이고 혈액을 재차 공급했더니 쥐가 소생했다고 주장했다.
냉동인간제조자를 도우면 자격박탈
아뭏든 이같은 동물실험의 결과는 냉동인간제조자들의 입장을 수월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미국의 인간냉동보관협회회장 '애비 벤브러햄'씨는 "인간의 냉동 보관술은 신과 자연에 대한 용기있고 혁신적인 도전이며 죽음의 문제에 대한 과감한 투쟁"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냉동인간제조관련자와는 아예 상종을 하지 않겠다고 등을 돌린 학문분야가 있다. 냉동인간제조술과는 달리 학문으로 인정을 받은 냉동생물학이 그것인데 이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냉동인간제조에 크나큰 회의를 품고 있다. 그래서 미국내 냉동생물학자들의 단체규약에는 냉동인간제조자와 공동작업을 금하게 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회원자격을 박탈한다는 강제규정까지 둘 정도다. 이뿐 아니라 그들은 냉동인간제조자들을 일반적인 cryonist라고 부르는 대신 신체 냉동자(body freezer)라는 격하된 표현으로 호칭한다.
그러나 냉동인간제조(cryonics)의 근본 원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냉동생물학(cryobiology 저온생물학이라고도 함)에서 도출된다. 냉동생물학은 저온 또는 냉동온도가 동식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인데 국내에서는 전공학자가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실정이다.
이렇듯 생소한 냉동생물학은 크게 두분야로 나뉘어지는데, 살아있는 세포나 조직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냉동보존과 특정 부위의 조직을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냉동외과수술이 있다. 이젠 정통파인 냉동생물학에 대해 알아보자.
살아있는 조직이 냉각되면 어떻게 될까? 추위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리든지 아니면 스스로 활성을 낮춰 오랫동안 보존되든지 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연계에서도 흔히 그 실례를 찾아볼수 있다. 가령 겨울에 동사한 사람은 둘중 죽음의 길을 택한 셈이고 겨울을 나기 위해 동면하는 냉혈동물들은 삶의 길을 택한 셈이 된다.
그런데 최근 냉동생물학의 흐름은 자연현상의 규명에만 그치지 않고 인공적인 저온환경, 심지어는 냉동환경을 설정, 학문의 범위를 넓혔다. 냉동환경의 조성은 냉동인간의 제조에도 깊게 연관되었던 액체질소가 맡고 있다. 액체질소는 비교적 값이 싸고 풍부하며 구하기 쉬워 널리 쓰이고 있는 것.
냉동생물학의 아킬레스 건
액체질소에 의해 영하 1백96℃의 냉동상태가 조성되면 여기 노출된 생체조직 역시 두갈래 길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수초내로 죽든지 아니면 영구적으로 보존되든지 기로에 서겨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살아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 냉동보존, 부분적으로 죽는 것을 응용한 것이 냉동외과수술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서울대 동물학과 강해묵연구원은 "냉각시킬 때 세포내의 수분에 의해 얼음결정이 생기는데 이것이 세포를 파괴한다. 따라서 이를 막는 것이 냉동생물학의 최우선 과제다"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냉동생물학은 극히 초보단계"라고 덧붙였다.
냉동생물학의 아킬레스건인 수분처리에 대해 좀더 상세히 알아보자.
원래 세포속의 구성물질(물 제외)은 물에 녹이 있거나 떠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세포가 냉각하기 시작하면 세포내의 물은 점차 순수한 결정형으로 바뀐다. 이때 물을 제외한 나머지 세포구성물질은 그 농도가 진해진다. 이는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 때 물이 증발되면 진한 알갱이인 소금만 남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염전과 세포에서의 탈수(脫水)결과는 정반대. 염전에서 물이 증발하면 돈(?)이 생기지만 세포에서 물이 빠져나가면 그 세포를 파괴한다.
그 과정을 다시 세포생물학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냉각이 서서히 진행되면 세포주변의 물이 먼저 얼음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세포내의 물과 세포주변의 물 사이에 형성되었던 상호불가침조약이 깨진다. 그에 따라 세포 안팎에 삼투압의 차가 생기므로 세포내에 있던 물이 세포밖으로 빠져 나간다.
냉각이 더욱 진행되면 세포내의 수분은 결국 완전히 탈수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세포물질은 극도로 농축된다. 예를 들면 냉동의 최종단계에서 세포내 염화나트륨(Nacl)농도는 2백g/ℓ에 달할 정도. 이에 따라 세포내 산염기비율이 바뀌고 세포의 모양도 정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동시에 냉각으로 인해 형성된 얼음결정이 점점 커져 마침내 세포를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급속냉각을 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천천히 냉각시켰을때는 얼음결정이 세포밖에 생겼던데 반해 빨리 냉각시키면 세포안에 형성된다. 따라서 급속냉동시에는 세포의 수분손실과 얼음결정형성이 줄어들어 세포를 파괴하는 정도가 완화된다. 또 급속냉동을 하면 얼음이 만들어질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잇점이 있다. 이를 토대로 냉동인간제조자들도 냉동인체를 만들때 급속냉각을 하는 것이다.
항(抗)냉동제는 자체의 독성 있어
냉각→얼음결정형성→세포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지금 설명한 급속냉각법 말고도 몇가지가 더 활용되고 있다. 항냉동제의 사용도 그중의 하나. 항냉동제는 액체의 냉동온도를 낮추는 기능을 하는 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은 DMSO, 알콜, 폴리알콜(polyalcohol)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냉동인간제조에는 폴리알콜 즉 글리세롤이 주로 쓰인다. 글리세롤은 생체적응성이 커서 세포보존에 널리 이용되는 물질이다. 하지만 독성학자들은 "글리세롤 등 항냉동제는 자체의 독성을 지니고 있어 세포 또는 인간에게 사용할 경우 위험성이 뒤따른다"고 경고한다.
이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를 탈피, 장기차원으로 넘어가 보자. 예를 들어 간을 무작정 냉동시킨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우선 하나 하나의 간세포가 냉동의 여파로 깨질 것이고 종국에는 간전체도 못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개발된 방법이 유리화법(Vitrification)이다.
유리화법은 한마디로 장기내의 수분을 항냉동제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런 처치를 해 놓으면 장기가 냉동온도에 노출되었을 때 얼음결정이 생기지 않고 유리처럼 딱딱해져 별 탈없이 보존된다는 것이다. 미국 적십자사 소속의 '그레고리 페이'라는 냉동생물학자는 인간의 신장에 유리화법을 적용해 보았다.
실험직후 그는 "신장의 피를 항냉동제로 대체한 후 냉각시켰더니 얼음결정은 형성되지 않았고 고스란히 신장을 보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해빙시킨 후 다른 사람에게 장기이식을 하였을 때 정상적인 기능을 되찾을 지는 미지수"라고 조심스레 밝혔다.
세포의 냉동보존문제는 이미 어느 수준에 올라 있지만 장기의 냉동보존은 이제 걸음마 단계. 장기는 우선 그 부피가 크기 때문에 항냉동제를 사용할 때도 어려움이 따른다. 짧은 시간에 식속히 그리고 균일하게 항냉동제가 장기의 구석구석에 미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렇듯 장기하나를 제대로 냉동보존하는 것도 요원한데 "현 시점에서 인간의 전신을 냉동한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국내의 생물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또 미국 위스콘신대학 소속의 냉동생물학자 '제임스 서더스'씨도 "냉동인간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으며 설령 2백년 후 암이 정복되어 냉동체를 해빙시킬지라도 이미 냉동단계에서 암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은 셈이므로 소생불가능"이라고 단정했다.
역시 냉동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소의 냉동전자 연구원 정일석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정자는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지만 이를 냉동보관한 뒤 해빙시키면 별별 정자가 다 생긴다. 예를 들면 꼬리가 없는 등 소위 기형정자라는 것들이 발견된다. 그래서 이들의 출현을 막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실정인데 냉동인간이라니 터무니없다"고 잘라 말한다.
정자 하나도 제대로 냉동하기 어려운데…
정씨가 연구한 테마인 냉동정자보존은 냉동보존이 실제로 상업적으로 쓰였던 최초의 케이스. 특히 2차세계대전 직후 가축의 인공수정을 위한 냉동정자가 크게 유행 한 것은 1950년대 중반 냉동보존의 최대 무기인 액체질소냉동법의 발견과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 이에 따라 질이 우수한 가축의 냉동정자가 전세계적으로 파급,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가져왔던 것이다. 냉동정자가 성공을 거두자 이번에는 냉동수정란도 등장했다. 이는 아예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킨 것으로 혈통좋은 숫소와 암소의 유전물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셈이다.
가축의 정자나 난자 등 단세포의 냉동보존은 이미 보편화되었으며 몇년 전부터는 인간의 정자은행까지 생기게 되었다. 유명 과학자나 스포츠선수의 정액을 냉동시켜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겠다는 취지다.
이뿐 아니라 미생물의 보존에도 냉동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치즈나 요쿠르트를 발효시키는 유산균이나 실험실용 미생물을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 냉동보존이 이용되는 것. 이밖에 냉동꽃가루도 등장, 전세계 여러 곳을 누비고 있다.
냉동보존이 당뇨병치료를 도와
혈액보존은 냉동보존술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분야다. 보통의 저장법 하에서 피는 뽑은 지 21일이 지나면 쓸모없게 되는데 냉동보존시키면 반 영구적인 보존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 혈액의 수명을 연정시키는 것이다.
최근 야생동물보존학자들은 멸종동물의 보존에 냉동보존술을 이용하려고 시도했다. 얼마 전 마지막으로 남았던 해변참새(dusky seaside sparrow)가 죽었을때 그 정자와 골수를 냉동보관해 두었던 것. 이 계획에는 먼 훗날 이 단세포로부터 새를 원래대로 다시 복제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담고 있다.
세포의 냉동보존은 인간의 질병치료에까지 활용된다. 최근 알버타대학의 연구팀은 냉동보존을 이용한 당뇨병치료에 개가를 올렸다. 인슐린을 분비하는 랑겔한스섬이라고 알려진 췌장세포를 냉동보존한 것이다. 나중에 냉동된 췌장세포를 녹여 당뇨병에 걸린 실험용 쥐에 이식했더니, 쥐의 몸안에서 인슐린생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당뇨병이란 인슐린이 부족해서 생긴 병이므로 실험용 쥐가 치료된 것은 당연한일. 따라서 당뇨병환자에게 인슐린주사를 하는 대신 환자의 체내에서 인슐린을 자체생산 하게 하는보다 바람직한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번에는 냉동생물학의 또 하나의 과제인 냉동외과수술에 대해 알아보자.
"신경외과분야에 저체온 수술법이 자주 이용되고 있다. 이는 환자의 체온을 끌어 내려 대사를 적게 함으로써 혈액순환량을 줄이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수술할 때 수술부위에 피가 많이 흐르지않아서 고장난 곳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양대 의대 신경외과 김남규교수의 얘기다.
이외에 저체온수술법은 파킨슨씨병 환자의 수술과 백내장의 제거에도 이용된다. 이는 냉동하면 조직이 파괴됨을 응용한 것이다. 예컨대 파킨스씨병 환자는 근육이 강직되고 떨게 되는데,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부위를 파괴해버리면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물론 독물등을 이용해 파괴할 수도 있지만 냉동파괴가 보다 안전해서 각광을 받고 있다.
냉동생물학자의 실험대상이 된 한국해녀
저체온수술법을 실제로 사용하려면 인간이 냉각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인체실험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정상 체온에서 1~2℃떨어진 35℃가 되면 심하게 떨기 시작하고, 32.2℃엔 근육수축을 일으키고, 26.6~29.4℃에 이르면 의식불명에 빠진다고 한다. 이보다 더 떨어지면 심장에 큰 손상을 주어 더 이상 생명을 부지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특별하게 체온저하에 잘 견디는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해녀가 이부류에 해당하는데 가히 챔피언급이어서 실험대상이 된 적도 있다. 1961년 한미합동연구진이 해녀들에 대해 조사한 결과, 그들의 여러 생리지표가 보통의 한국인들과 다름을 밝혀냈다. 해녀들은 기초대사율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높았으며, 효과적인 열차단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떨기 시작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이같은 결과를 놓고 연구진들은 해녀의 이상체질이 유전된 것인지 또는 획득된 것인지를 궁금해 왔다. 환경탓으로 결론지으려해도 대부분의 해녀가 대물림을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것. 그래서 이 논란은 결론없이 끝나고 말았는데 뜻밖에도 한국의 산업발달에 따른 공해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해안의 공해가 심해지자 해녀들은 자신의 몸을 공해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특수한 옷을 입게 되었다. 바닷물의 추위보다 공해물질을 더 두렵게 느꼈던 것이다. 어떻든 간에 새로 구입한 옷은 공해는 물론 추위로부터 해녀들을 보호해 주었다. 1982년 한미연구진은 다시 모여 재차 '그때 그 해녀'들을 만났다. 그러나 해녀들은 더 이상 놀라운 체질의 소유자가 아니었고 추위에 대한 반응도 보통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21년전 해녀들이 가졌던 추위에 대한 인내력이 순전히 환경에 의해 획득된 것임이 밝혀진것이다.
냉동인간. 이는 현대의 과학을 이용한 상술일른지도 모른다. 아직 한번도 해빙된 인간이 없으며, 급속냉각보다 한수더 어려운 급속해빙은 그 기술이 아직 거론단계다. 그래서 한 생물학자는 "최초로 해빙을 시도하는 날이 곧 냉동인간보존술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