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필자는 우리나라 중생대 화석산지에 대한 기초학술조사를 하기 위해 경북 군위지역에서 곤충과 어류 화석이 발견된 지층을 탐색하고 있었다. 곤충이나 어류 화석이 많다는 사실은 이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척추동물의 흔적도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물론 아무리 유명한 학자나 전문가라 할지라도, 수십여 일 동안 새로운 화석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게 고생물학계의 일반적인 생리이다. 그러나 그날은 필자에게 행운이 가득했다. 탐색을 나간 첫날 정말 우연히 등산화 끈이 풀려 끈을 매려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일어나는 순간‘그 무언가’깊숙이 패여 있는 흔적이 눈에 확 들어왔다.
공룡 발자국은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크게 실망했으나, 불과 2~3초 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새로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생김새가 바로 익룡의 앞발자국과 똑같았다! 그러나 크기가 너무나 커서 눈앞에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1시간 가까이 정밀히 관찰했다. 그리고‘익룡의 앞발자국’이 맞다고 확신했다. 비둘기 크기에서 날개폭 12m 넘는 종류까지 이번에 발견된 익룡 발자국은 길이 354mm, 폭 173mm에 이른다. 지금까지 가장 큰 익룡 앞발자국은 전남 해남에서 발견된‘해남이크누스(Haenamichnus)’의 화석으로 길이가 330mm, 폭이 110mm였다. 익룡의 앞발자국은 일반적으로 세 발가락이 비대칭형으로 찍혀 있다.
익룡은 하늘을 날았던 최초의 척추동물이다. 익룡은 하늘을 나는 공룡이 아니라 익룡목(目)에 속하는 중생대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공룡의 친구라고 할 수 있으나, 공룡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익룡(翼龍, pterosaur)의 영어 이름은 ‘날개를 가진 도마뱀’이란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의 하늘을 지배했던 파충류인 익룡은 트라이아스기 후기인 약 2억 2000만 년 전 지구상에 처음으로 등장했고, 백악기 후기인 약 6500만 년 전 공룡과 함께 모두 멸종됐다.
날개를 활짝 편 익룡을 보면 마치 거대한 박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익룡과 박쥐는 피부막으로 된 날개를 지녔다는 점이 비슷하다. 그러나 날개를 이루는 방식은 차이가 크다. 박쥐의 경우 우산처럼 발가락 5개가 모두 길어지면서 그 사이에 막이 있는 날개인 반면, 익룡은 앞발의 네 번째 발가락이 매우 길게 돼서 날개를 이룬다.
익룡의 날개를 이루는 피부막은 몸통과 뒷발까지 연결돼 있다. 따라서 화석으로 남은 익룡의 세 발가락은 날개 앞부분에 돌출해 있는 작은 발가락들이다. 익룡은 땅에서 걸어 다닐 때 앞발의 네 번째 발가락을 위쪽으로 향한 채 날개를 접어 날개가 땅에 끌리지 않게 한다.
익룡의 뼈는 새처럼 속이 비어 있는 구조다. 그 결과 몸무게를 최소화해 하늘을 나는 데 매우 적합했다. 날개폭이 6~7m가 넘는 큰 몸을 가졌더라도 몸을 이루는 뼈의 속이 거의 비어 있으므로, 몸무게는 매우 가볍다. 익룡은 날개의 막을 활짝 펼쳐 바람의 흐름이나 공기의 온도 차이를 이용해 활강하듯이 먼 거리를 이동했다.
2억 2000만 년 전 익룡이 처음 등장했던 무렵에는 크기가 작고 이빨이 있고 꼬리가 긴 형태였다. 그 뒤 점차 몸이 커지고 부리가 발달하고 꼬리가 짧아지면서 영화‘쥐라기 공원’에 나오는 익룡의 모습을 띠게 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익룡의 화석을 토대로 분류해보면 지구상에는 60여 속(屬) 이상의 다양한 익룡이 번성했다. 크기도 비둘기만 한 작은 종류에서 날개를 편 길이가 12m에 이르는 종류까지 다양하다.
지금까지 기록된 가장 큰 익룡 화석은 2002년 루마니아 백악기 후기지층에서 발견된 ‘하체고프테릭스(Hatzegopteryx)’로 양 날개를 편 길이가 12m에 이르고 두개골의 길이만도 2.5m가 넘는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발견된 두개골 길이 2m의‘퀘찰코아툴루스(Quetzalcoatlus)’가 그 다음으로 큰 익룡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는 익룡 발자국 화석의 보고
익룡의 경우 뼛속이 거의 비어 있어 단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석으로 보존될 확률이 매우 낮다. 따라서 잘 보존된 익룡의 골격화석은 매우 드물다. 국내 최초의 익룡 뼈화석은 길이가 약 30cm인 완전한 형태의 익룡 날개뼈 화석으로 2001년 경남 하동군 진교면 양포리 앞바다의 방아섬에서 필자가 발견했다.
이 화석에 대한 연구결과는 2002년 SCI(과학인용색인) 국제학술지 ‘커런트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이 화석은 익룡 앞발의 네 번째 발가락 중 첫 번째 마디가 분명하고, 뼈의 형태와 크기로 볼 때 백악기 초기에 중국에서 번성했던 쭝가리테립스(Dsungaripterus)일 가능성이 높다. 이 익룡은 양 날개를 편 길이가 3~4m에 이르며, 주로 어패류나 물고기를 먹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경북 고령군에서는 익룡의 이빨 화석이 발견됐는데, 길이가 7cm정도이며 송곳처럼 가늘고 뾰족했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익룡 발자국 화석은 익룡의 걸음걸이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96년 전남 해남군 우항리 고생물화석산지(천연기념물 제394호)에서 국내 최초로 발견된 익룡 발자국 화석은 백악기 후기에 살았던 익룡이 남긴 흔적이다. 앞발과 뒷발이 모두 선명하게 잘 보존돼 있어, 익룡이 4족 보행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7.3m에 이르는 가장 긴 단일 보행열이 남아 있는데, 이 발자국을 남긴 익룡은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Haenamichnus uhangriensis)’라고 2002년 공식적으로 명명됐다. 그 뒤 경남 사천시 서포면, 하동군 금성면,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에서도 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발자국 화석은 한반도 백악기에 거대한 몸집을 가진 익룡이 서식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다. 또 기존에 발견됐던 여러 익룡과 더불어 다양한 익룡이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 발견은 백악기 익룡의 보행방식과 습성을 추가로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도 쓰일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중생대 백악기 전기 지층에서도 거대한 익룡의 뼈화석이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전 세계에서 발견된 거대 익룡 화석들은 대부분 백악기 후기, 즉 공룡이 멸종하기 바로 직전(약 8000만~6500만 년 전)에 남겨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전까지 가장 큰 익룡 발자국 화석이었던 해남이크누스의 발자국도 백악기 후기 지층에서 발견됐다. 이번에 경북 군위군에서 발견된 익룡이 살았던 시대는 약 1억 년 전 지층으로 백악기 전기에 해당한다.
이는 백악기 전기에도 거대한 익룡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거대 익룡의 존재시기가 기존에 학계에 알려진 백악기 후기보다 상당히 앞당겨질 수 있다. 이 거대한 익룡의 발자국화석이 비교적 크기가 작은 공룡 발자국 화석들과 함께 발견됐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몸집이 거대한 익룡의 먹잇감에는 물고기, 어패류, 죽은 공룡의 시체나 작은 공룡새끼도 포함되므로, 이 화석산지가 익룡들의‘사냥터’혹은‘레스토랑’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좀 더 정밀한 학술조사와 연구가 진행되면 이에 대한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필자는 9월 23일부터 영국 브리스톨에서 개최되는 제69차 세계척추고생물학회에 이번 익룡발자국의 연구성과를 발표한다. 이 자리에서 세계 최대 크기의 익룡발자국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뒤 추가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익룡으로 밝혀지면 신종으로 등재할 계획이다.
임종덕 학예연구관은 미국 캔자스대에서 척추고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BK21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에 재직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공룡화석산지와 중생대 및 신생대 척추동물화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자연사박물관의 이해’‘공룡이 남긴 타임캡슐’‘돌로 만든 타임머신, 화석’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