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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로켓] 나로호 발사 D데이, 이륙 900초 전 자동 카운트다운 시작

◇보통난이도 

 

 

나로호 발사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2009년 8월 17일. 그날은 새벽 5시부터 이슬비가 내렸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날씨였지만 그날만큼은 모든 연구원이 날씨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나로호가 조립동에서 나와 드디어 발사대로 이동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D-2 비행시험위원회, 발사대 이송 승인 

 

 

나로호의 이송 승인을 위해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는 이날 꼭두새벽부터 한-러 비행시험위원회(FTC·Flight Test Committee)가 열렸다. 


비행시험위원회는 발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야의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술사항을 공유하고 의문점을 확인하며 발사를 진행해도 될지 최종 논의하는 자리다. 비행시험위원회는 통상 발사 이틀 전과 발사 당일, 두 차례 진행된다. 나로호의 경우 한-러 전문가 30여 명이 모여 두 차례 비행시험위원회를 열었다. 


첫 번째 비행시험위원회(D-2)에서는 그동안 조립동에서 작업한 나로호의 상태와 발사 준비상황에 대한 정보가 공유됐다. 먼저 러시아 연구자들이 나로호 1단 엔진과 1단 제어시스템, 1단 원격측정시스템, 총조립된 1단의 상태 등을 공유했다. 


우리 측은 나로호 상단과 인공위성의 준비상황, 발사대와 추적레이더, 원격측정지상국 등의 준비상황을 발표했다. 뒤이어 나로호 이송과 관련한 작업 스케줄을 러시아 측이 보고했다. 나로호개발책임자로서 위원장을 맡았던 필자는 이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나로호 이송을 최종 승인했다. 


조립동부터 발사대까지의 거리는 약 1.5km. 걸어서도 15분이면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거리지만 나로호를 이송하는 데는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길이 꼬불꼬불하고 가파른데다, 이동 중 나로호에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특수 설계된 무진동 차량 2대에 나로호를 수평으로 실어 시속 약 2km의 느린 속도로 이송하기 때문이다. 


오전 8시 15분 조립동을 출발한 나로호는 9시 30분경 발사대에 도착했다. 한-러 연구팀은 이동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나로호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그리고 오후 3시 이렉터(기립장치)를 이용해 나로호를 천천히 수직으로 세웠다. 수직으로 세운 상태에서 연료를 주입하므로 이 상태에서 각종 공급선의 연결 상태 등을 확인해야 했다. 나로호 기립과 점검 작업은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D-1, 김대중 전(前) 대통령 서거 소식이 전해지다

 

다음날인 8월 18일 오전 9시, 나로호 발사 종합리허설이 시작됐다. 종합리허설은 나로호에 연료만 넣지 않을 뿐 실제 발사와 똑같이 진행된다. 발사 명령을 내렸을 때 나로호에 탑재된 제어시스템이 정상 작동하는지, 발사대 시설에 이상은 없는지, 발사 이후에 나로호를 추적할 레이더 장비 등이 문제없이 움직이는지 점검하는 게 목적이다.


오전 종합리허설은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순서대로 진행됐다. 그런데 오후 3시경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김대중 전(前)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로호를 이미 발사대까지 옮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때 다시 한번 전화벨이 울렸다. 이럴 때일수록 발사 준비에 더욱 만전을 기하라는 정부 측 연락이었다. 침착한 분위기 속에서 종합리허설은 밤 10시까지 진행됐다. 

 

 

D데이, 나로호 발사 승인 

 

8월 19일 오전 9시, 발사 예정 당일 열린 비행시험위원회(D-0)에서 마침내 발사 시작이 선언됐다. 이틀 동안 수행한 발사준비 상황과 발사시각, 날씨, 발사작업 스케줄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발사준비가 완료됐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발사 예정 시각은 오후 5시였지만 발사작업은 오전부터 바쁘게 진행됐다. 발사체에 연료와 산화제를 충전하는 작업에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오후 3시경 1단 연료탱크에 충전을 시작했고, 뒤이어 곧바로 산화제인 액체산소 주입을 개시했다. 


충전 작업은 순조로웠다. 상단 자세제어시스템에 필요한 질소가스 충전이 연습 때보다 조금 더디게 진행됐으나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안전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마쳤다. 발사대 남쪽으로 나로호의 비행 방향에 있는 광도와 평도 주민들은 사전에 대피시켰다. 나로호의 움직임을 원격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수신장치를 탑재한 해양경찰청 함정은 제주도에서 남쪽으로 약 1700km 떨어진 필리핀 동부 해상으로 나가 대기했다. 
발사 50분 전, 나로호를 꼿꼿이 세워놓았던 이렉터가 철수되면서 현장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발사 15분 전, 발사까지 900초가 남은 시점에서 마침내 발사관제시스템에 의한 자동초읽기(countdown)가 시작됐다. 


자동초읽기는 미리 입력된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100% 자동으로 진행된다. 사람의 실수를 최소화해 발사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이륙 시간이 다가올수록 발사 운용 요원들의 긴장은 극도로 심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나로호가 발사할 때 숨이 멎을 것 같았다는 연구원이 있는가 하면, 우황청심원(긴장감을 완화하는 데 사용하는 한방약)을 먹은 연구원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수동으로 카운트다운을 할 경우 치명적인 실수를 할 수 있다. 


900초 전, 899초 전, 898초 전…. 자동초읽기는 침착하고 무심하게 숫자를 세어 내려갔다. 479초 전, 478초 전, 477초 전…. 연구원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자동초읽기의 숫자만 바라봤다. 발사통제동 내에는 숨막히는 정적만 흘렀다. 476초 전, 그런데 갑자기 내부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자동초읽기 시계가 멈춘 것이다. 나로호 이륙 7분 56초 전이었다.

 

 

나로호 철수, 곧바로 하지 못한 이유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눈을 껌뻑거리고 다시 시계를 바라봤다. 그동안 수많은 연습 과정에서 너무 오랜 시간 집중해서 시계를 응시하다 보면 멀쩡하게 잘 가는 시계도 멈춘 것처럼 보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몇 번을 다시 봐도 시계가 멈춰 있었다. 이륙 준비과정에 이상이 감지돼 초읽기가 자동으로 멈춘 것이었다. 


발사 중지를 선언하고 그동안 연습했던 것처럼 나로호에 채웠던 추진제를 다시 배출했다. 동시에 자동초읽기가 중단된 원인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1차 원인은 1단 엔진제어용 고압탱크 내부의 압력이 저하된 것으로 보였다. 비행 중인 나로호의 1단 엔진을 제어하기 위해 1단의 고압탱크에 헬륨가스를 220기압으로 충전해 이륙시키는데, 고압탱크 내부 압력이 그보다 낮게 감지된 것이다. 


이는 고압탱크 내부의 압력을 계측하는 시간을 잘못 설정해 생긴 실수였다. 발사 준비과정에서 헬륨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한 헬륨만큼 다시 보충해서 나로호를 이륙시키는데, 자동발사시스템은 헬륨이 보충되기 전에 고압탱크 내부 압력을 계측하도록 프로그램돼 있었다. 


사전연습에서 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실제상황과 연습상황의 차이였다. 지상검증용기체(GTV)로 진행하는 발사 연습에서는 모형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헬륨가스 사용량이 실제보다 적다. 아무리 연습을 실전처럼 하려고 해도 구조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발사가 중단되고 추진제를 배출해도 나로호를 곧바로 조립동으로 철수할 수는 없다. 나로호 기체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산화제 탱크에는 영하 183도의 액체산소가 95t(톤)이나 충전돼 있었기 때문에 액체산소를 배출한 뒤에도 산화제 탱크의 온도는 아주 낮다. 다음날 오전까지 10시간 이상 그대로 두고 온도를 높인 뒤에야 나로호를 상온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상온 상태의 나로호는 다시 조립동으로 옮겨 각종 점검을 수행해야 했다. 나로호가 비록 극저온에 견디도록 제작됐지만, 극저온과 상온을 오가면서 기체가 줄어들고 늘어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나로호의 기밀 상태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야 했다. 나로호를 철수한다는 말은 비행시험위원회 개최를 포함해 앞서 수행한 모든 발사준비 과정을 다시 한번 반복한다는 뜻이었다. 


발사 중단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발사준비 운용프로그램을 수정하고, 수정된 프로그램을 다시 검증하며 새로운 발사 날짜를 잡는 데는 꼬박 일주일이 소요됐다. 필자를 비롯한 연구팀은 ‘발사 7분 56초 전까지는 그래도 문제없이 진행됐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이후 순서의 작업을 완벽하게 해내는 데 집중했다. 다음 발사 시도에서는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6일 뒤인 8월 25일 다시 발사 날짜가 다가왔다. 

 

 

202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조광래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나로호개발책임자)
  • 에디터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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