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전지는 물질이 산화할 때 나오는 전자(e-)와 수소이온(H+)을 외부도선이나 전해질로 이동시켜서 전기를 만든다. 수소와 산소가 반응할 때 나오는 전기를 바로 활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좋고 오염물질이 나오지 않아 ‘미래 에너지원’이라고 불린다. 다만 현재는 수소이온 추출에 필요한 촉매의 값이 비싸고 물질에서 이온을 분리하는 효율이 낮아 실용화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기술적인 보완이 이뤄지고 값도 합리적인 수준으로 내려가면 화석연료와 내연기관을 대체할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과학기술원 환경공학과 이재영 교수가 이끄는 전기화학·촉매 연구실에서는 바로 이 연료전지를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드는 연료전지는 활용하려는 분야와 목적이 뚜렷하다. 바로 인체에 삽입해도 위험하지 않은 생체용 연료전지가 연구대상이다. 사람 몸에 기계를 장착하고 필요한 전기는 연료전지에서 얻겠다는 게 이 연구팀의 목표다. 사람 몸에 기계를 붙인다니‘아이언 맨’이라도 만드는 걸까.
“요즘 체내에 머물면서 환부를 모니터링하거나 치료도 하는 의료 장치가 속속 개발되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전지는 인체에 위험하지 않은 재료를 사용해야합니다. 리튬이나 아연 같은 금속이 들어간 배터리가 혹여 몸속에서 길을 잃거나 내용물이 터지면 큰일이니까요.”
이 교수가 생체용 연료전지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몸속에 전기가 나오는 장치를 심거나 삽입하는 일이 늘고 있다. 전기 자극으로 심장 박동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심장 페이스메이커가 대표적이고, 알약 크기만 한 캡슐에 초소형 카메라가 달려 있는 캡슐형 내시경도 그렇다. 지난 5월 16일에는 박종오 교수가 이끄는 전남대 로봇연구소가 지름 1mm, 길이 5mm의 원통형 마이크로로봇을 만들어 돼지의 혈관에 넣고 원격으로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 이 로봇은 혈관 속을 돌아다니면서 막힌 곳을 뚫거나 혈전을 녹이도록 설계됐다. 이 교수는 “현재는 로봇 내부에 동력이 없어 자석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스스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일반 배터리보다 성능이 뛰어난 연료전지가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몸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배터리의 크기는 커진다. 심장 페이스메이커의 경우 배터리가 차지하는 부피는 전체의 70%에 달한다. 재충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정기간이 지나면 새로운 심장 페이스메이커로 교체해야 한다. 만일 에너지 효율이 높은 연료전지를 사용한다면 배터리의 교체 횟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인체에 해롭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는 연료전지라면 환자가 다시 수술대에 오를 필요도 없다.
개미산과 비타민C처럼 먹는 재료에서 전기 뽑아내
생물을 이용하는 연료전지는 종종 개발되고 있지만 인체에 삽입하는 생체용 연료전지에 대한 연구는 드문 편이다. 국내에서는 경상대 나노구조 생체에너지 융합 연구단의 남태현교수가 전기를 만들어내는 생체연료전지와 생산한 전기를 보관하는 나노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남 교수팀은 효소로 산화시킨 혈액 속 포도당으로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또 부피를 줄이고 고효율의 전기를 만드는 데 목적을 두므로 이 교수팀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이 교수팀은 산화가 잘 일어나는 재료와 전극촉매를 찾는 데 더 집중한다. 연구팀은 몸에 해롭지 않은 연료전지를 만들기 위해 기존에 개발됐거나 연구되고 있는 연료전지부터 조목조목 따져봤다.
현재 가장 널리 연구되는 메탄올과 에탄올 연료전지는 수소이온을 추출할 때 사용하는 촉매인 백금이 문제가 됐다. 백금은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싸다는 점도 대량생산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게다가 메탄올은 간이 해독하지 못해 몸에 들어오면 간 기능이 파괴되고 시력을 잃게 만든다.
이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재직하던 당시 식품첨가물 중 하나인 개미산(HCOOH)을 연료로 사용하는 연료전지를 개발한 경험이 있다. 개미산은 개미와 벌 등의 체내에 있는 지방산의 한 종류로 복숭아나 쐐기풀 같은 식물에도 들어 있다. 신맛을 내는 특성 때문에 식품첨가물로도 사용된다. 광주과학기술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 교수는 백금 사용량을 기존보다 5분의 1로 줄이면서 수명은 3배 늘어난 연료전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결과는 2008년 11월 독일의 화학 학술지 ‘앙게반테 케미’에 실렸다.
최근에는 비타민C와 젖산, 진통제, 셀레늄의 재료로도 같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팀은 비타민C의 산화 효율이 뛰어나다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하고 연료전지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산화율이 높으면 그만큼 전기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젖산은 인체에 비교적 풍부하게 들어 있는 물질이므로 생체용 연료전지의 재료로 이상적이지만 산화율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이들 물질이 소화기관에 흡수되지 않고 직접 연료로 사용되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인체 삽입형 로봇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