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륜산과 칼데라로 유명한 아소산을 보면서 규슈가 「화산왕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고,
정창희 다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먼저 한국지질과 일본지질의 다른 점을 지적해 보지요. 우리의 지질구조는 주로 고생대나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되었지요. 대개 27억~29억년 전 암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암석중 4억년 이상 된 것은 거의 없습니다. 대체로 보아 제3기말에서 제4기에 형성된 지질이 많아요. 이번 규슈탐사는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탐사입니다. 화산지형을 살피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종전에는 규슈가 하나의 화산대로 이뤄져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탐사활동을 벌이면서 암석 등을 유심히 살펴보니 두개의 화산대로 나누어져 있었어요. 하나는 운젠과 벳푸를 잇는 오야마화산대고, 다른 하나는 아소산 사쿠라시마화산 유황도로 연결되는 기리시마화산대입니다. 그중 전자는 각섬석과 안산암이 후자는 휘석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어요.
정환기 유익한 탐사이긴 했으나 일정이 너무 짧아 아쉬움이 큽니다. 지질구조를 밝히고, 암석성분을 분석하고, 지질 경계지역의 차이를 알아내려면 시간이 상당히 필요한데···.
윤용웅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질탐사의 기본인 샘플링(sampling)할 시간이 대체로 부족했어요. 제대로 하려면 절벽 해변 계곡 등을 따라 다니며서 노두를 발견하고 표본을 채취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제주도와 비슷한 느낌 받아
박유식 얼른 보기에도 목포지역의 안산암과 규슈의 안산암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일본의 안산암에는 반점이 나타나 있기도 하더라구요.
정환기 안산암은 광주 무등산지역에도 분포돼 있어요. 따라서 무등산 주변에서도 과거에 화산활동이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자연히 일본의 안산암을 주의깊게 보게 되더군요. 또 국내에서는 그렇게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을 이번 탐사기간동안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박유식 그렇지만 저는 나가사키에서 분명히 화강암을 보았습니다.
정창희 규슈에도 고생대지질이 있으므로 박선생님이 바로 보셨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이대운 저는 아소산에서 채집한 안산암과 영남지방의 주사산 운문산에 있는 안산암을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윤용웅 나가사키나 운젠을 탐사하면서 저는 마치 제주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어요. 현무암이 풍화돼 생긴 규슈의 흙이 제주도 용암대지의 토양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재보 저 역시 규슈의 지형이나 기후조건 등이 제주도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타국에 왔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아소산에서는 확실히 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의 백록담에는 수백종의 식물상이 발달돼 있는데 반해 아소산의 화구에서는 식물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어요.
정창희 그 이유는 백록담은 오래전에 분출을 멈추었지만 아소산은 지금도 용암이 분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강종식 아무튼 실제로 분출이 계속되고 있는 활화산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는 것 자체가 큰 소득이라고 볼 수 있어요. 특히 아소산은 스트롬볼리식 화산의 대표격이잖아요.
정창국 화산은 그 분화양식에 따라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열거하면 하와이식 분화, 스트롬볼리식 분화, 벌컨식 분화, 펠레식 분화 등이지요.
그중 하와이식 분화의 전형으로는 킬라우에아화산을 꼽습니다. 이 분화는 용암만을 조용히 유출시키는 가장 순한 성질을 보여주지요. 지중해의 불카노화산으로 대표되는 벌컨식 분화는 스트롬볼리식과 비슷하나 용암의 점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이 다르지요. 또 가장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펠레식 분화도 있는데 서인도제도에 있는 펠레화산이 이 유형에 속하지요. 우리가 보고 온 아소산은 잘 알다시피 전형적인 스트롬볼리식 화산이지요. 다시 말해 용암의 분출과 약한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윤용웅 학교에 돌아가면 제주도의 용암동굴과 이나즈미석회동굴의 성안(成因)의 차이도 탐사결과를 토대로 다시 조사해 보고 싶어요.
강재보 사실 이나즈미 동굴은 인공을 가미했다는 것이 금세 드러나더라구요. 제 개인 생각으로는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보이던 데요.
정환기 벳푸지옥코스를 방문하면서 몇가지 의문이 생겼어요. 왜 온천수의 색깔이 청색 적색 황색으로 나타나느냐, 이 점이 궁금해졌습니다.
이영만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드리지요. 저는 화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온천지역을 더 유심히 살폈습니다. 처음에 우리 일행이 운젠온천지대에 갔을 때 지표를 뚫고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모두 대단한 호기심을 나타냈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풍기는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를 잘모르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 황냄새 아황산가스냄새 황화수소냄새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아요.
또 벳푸온천지대의 물색이 녹색 적색 등으로 나타난 것은 온천수 속에 특정한 화학물질이 함유돼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물속에 황산구리가 녹아 있으면 녹색, 규사가 용해돼 있으면 적색, 황산철을 함유하고 있으면 연한 녹색의 온천수가 됩니다.
저는 이번 탐사를 하면서 지학 교사들이 화학을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자연과학의 모든 분야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있으므로 화학 물리 생물 등 타분야에도 더 큰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싶어요. 또 앞으로는 지질탐사를 할 때 지학선생님 뿐 아니라 물리나 화학선생님도 함께 참여하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해요.
탐사후 여러 전공분야 교사들이 함께 토론을 벌이면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심규상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러가지 지질현상을 본 것은 학교에 돌아가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특히 말로만 듣던 간헐천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과거에 교실에서 간헐천을 설명할 때는 으레 비등점이나 수증기압만을 들먹였는데, 강의하는 저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나 모두 막연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제 눈으로 직접 보고 그 원리도 알았으니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규슈대학 화산관측소의 견학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들은 지진의 진원 진앙과 지질을 나타내는데 입체적인 교육자료를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료를 보니 한 눈에 해당지역의 제반 지질구조와 상태를 알 수 있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그런 교육자료도 만들어 학생들에게 보여줄 생각입니다.
장엄한 칼데라
박유식 역시 이번 탐사의 꽃은 아소산등정이 아닐가요. 저는 여기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선 가스를 채집하는 요령을 익혔고, 화산도 경사가 가파를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익혀 두었습니다. 또 지금껏 화산재 하면 돌가루를 연상했는데,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어요. 아소산에서 본 화산재는 뻘처럼 끈끈했습니다.
운용웅 아소산의 중앙화구와 외륜산의 모습을 실제로 본 것은 큰 수확이었어요. 또 아소시(市) 전체가 화산의 칼데라에 형성돼 있다는 사실은 무척 놀라웠습니다.
정창희 보통 화구는 지름이 1㎞를 넘지 못하나 칼데라는 규모가 훨씬큽니다. 직경이 2~20㎞에 이르지요.
예컨대 울릉도의 나리분지는 지름이 약 6㎞인 칼데라이지만 아소산의 칼데라는 20㎞ 정도입니다. 이 칼데라는 대개 지형의 함몰에 의해 생기는데, 아소산 주변의 칼데라도 함몰칼데라에 속하지요.
정환기 저도 그 정도로 큰 칼데라가 존재하리라고는 직접 보기 전에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이대운 무엇보다 아소산의 분화하는 모습이 생동감있게 느껴졌어요. 다량의 화산재가 쌓여있는 광경도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창문을 열어 보니 칼데라의 내벽들이 똑같은 높이로 스카이 라인(sky line)을 이루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장엄한 칼데라군(群)이구나 하는 감탄을 연발했지요.
강종식 학문적인 측면을 많이 언급해 주셨으니 저는 학문외적인 면을 거론해 보겠습니다. 다들 느끼셨겠지만 일본의 교통질서는 놀라운 수준이었어요. 도로는 무척 좁은 편이었지만 불법주차 교통사고를 한건도 목격하지 못했어요. 심지어는 교통경찰도 볼 수 없었어요. 운전기사들도 절대 과속하지 않았구요.
일본사람들의 생활자체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고, 겉치레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그들의 자세가 제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부성찬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일본인에 대해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점도 깨닫게 되었구요. 과거의 감정차원에만 얽매이지 말고 일본인의 근검 절약정신 등 좋은점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호텔에 비치된 화장지 하나만 봐도 그들의 절약정신을 엿볼 수 있었어요
반면 그들이 너무 정신적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고, 인간미를 상실해가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지요.
강신혜 아소산의 외륜산을 보면서 느낀 건대요. 일본인은 자연조건을 잘 살리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늘 불안정한 화산지역은 인간이 살기에 부적합한 곳이잖아요. 그런데도 잘 가꿔나가고, 오히려 그 불리함을 이용하고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자연으로부터 받는 도전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최명윤 이번 탐사를 앞두고 저는 어마어마한 준비과정을 거쳤어요. 본격적인 지질탐사를 떠올리고 아이젠까지 준비할 정도였으니까요.
또 표본을 많이 채취해 학생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작정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표본을 구할 수 없는 암석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그동안 비디오테이프나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 고작이었어요. 그때마다 교육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데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했지요.
비록 몇가지 아쉬움은 남지만 대체적으로 잘 계획되고 추진된 탐사라고 생각합니다.
정창희 규슈의 지형을 짧은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잘 관찰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일본에 활화산이 많은 까닭은 판(板)구조론에서 말하는 두 판의 경계부위가 두군데나 있기 때문이죠. 그 하나는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이 부딪치는 일본해구이고, 다른 하나는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판이 부딪치는 류큐(琉球)해구이지요. 류큐해구는 난카이(南海)해구라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