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떻게 지금 우리가 됐는가.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지금의 사회적 성향을 지니게 됐는가. 이런 물음은 더 이상 철학에만 국한된 질문이 아니다. 다윈 이후 150년 지난 지금에 이르러 사회적 현상이나 인간의 행동을 진화론에 의거해 설명한다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큰 소동을 일으키지 않는 것 같다.
이제 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얼마만큼이나’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라는 좀 더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두 저자는 1985년 ‘문화와 진화과정’이라는 책으로 사회적 학습의 중요성, 문화의 진화, 이들이 생물학적 진화와 상호작용하는 현상을 이론화함으로써 진화론의 새로운 방향을 닦은 장본인들이다. ‘문화와 진화과정’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진화를 다루는 거의 모든 논문에서 빼놓지 않고 인용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책이다.
‘유전자만이 아니다’는 보이드와 리처슨이 바로 거기서 담았던 내용을 이제 일반 독자들에게도 좀 더 쉽게 전달하려는 시도의 산물이다.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됐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저자들은 이 질문의 답을 100만 년 또는 더 오래 공진화한 유전자와 문화에서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도 밝히고 있듯이 우리 인간은 자신의 진화에 대단히 많이 관여하고 있으며, 어떤 문화적 변형을 채택하고 어떤 것을 무시할 것인지를 ‘우리가 선택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전체 진화 계통도의 맨 끝자락에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인간이 그나마 조금 더 도드라져 보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 인간의 행동과 인간 사회의 분석이 좀 더 흥미롭고 다이내믹해지는 이유가 된다.
이 책의 출간은 진화론의 성과들이 이상할 정도로 사회생물학에 치중돼 소개되고 있는 한국의 실정에 비춰 매우 시기적절하다. 그뿐 아니라 진화론을 이해하고자 하고, 진화론을 진지한 고민거리로 삼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균형추로서의 역할을 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유전자만이 아니라는 것이지, 유전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유전자와 문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디에 강조점을 두는가에 따라 우리의 현재 모습과 그 기원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를 알고 싶다면, 그리고 유전자와 문화의 흥미진진한 상호작용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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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와 문지문화원 ‘사이’(www.saii.or.kr)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책 가운데 매달 한 권을 선정해 서평을 싣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올해 12월에 시상할 ‘올해의 과학책’ 후보가 됩니다.
과학동아에 실릴 책은 6명의 선정위원들이 오랜 시간 난상토론을 벌인 뒤 선정하며
선정일 기준으로 2달 전까지 출간된 신간 중에서 1권을 고릅니다. 선정 기준은 다음 3가지입니다.
첫째, 현재 과학적인 진보를 잘 반영하면서 정확한 정보가 실린 책
둘째, 담긴 내용이 미래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
셋째,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술된 책
선정위원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오동훈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조사분석실장
전용훈 일본 교토산교대 객원연구원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최정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눈길이 머무는 이달의 책
|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
프레드 싱거, 데니스 에이버리 지음 | 김민정 옮김 |
동아시아 | 392쪽 | 1만 5000원
인간 사회의 어느 분야든 한 시대를 이끄는 주류(主流)가 있게 마련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지구온난화가 바로 현대 과학을 이끄는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어느 분야든 주류가 있으면 그에 반기를 드는 비(非)주류도 생긴다. 과학에서도 다르지 않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기상 변화를 모두 지구온난화 탓으로 돌리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지구의 기후는 과거에도 지금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기상이변도 그 변화의 일부일 뿐이라는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들도 지구온난화론에 회의적이다. 이들은 과학계의 양대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실린 여러 과학자의 연구결과와 견해를 총망라해 지구의 최근 기후변화는 자연적 주기에 따른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주류가 옳은지, 비주류가 옳은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 역사가 증명해줄 수 있을 뿐이다. 어느 쪽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서라기보다 지구온난화의 실체를 놓고 벌이는 양쪽 과학계의 논쟁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권할 만한 책이다.
글 임소형 기자 sohyung@donga.com
새책BOOKS
핑거북, 나를 말하는 손가락
존 매닝 지음 | 이은숙 옮김 | 고즈윈 | 292쪽 | 1만 2800원
검지가 길면 언어를 잘하고 섬세하다. 약지가 길면 운동과 음악에 재능이 있다. 언뜻 보면 그저 그런 ‘손가락 점’ 정도 같지만 이렇게 말하는 저자는 영국의 저명한 심리학자다. 5개 손가락으로 심리학부터 진화생물학, 사회학, 지리학까지 광범위하게 설명해낸다. 책장을 덮은 뒤 가만히 손가락을 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나사, 그리고 거짓의 역사
리처드 호글랜드, 마이클 바라 지음 | 이재황 옮김 | AK | 644쪽 | 2만 8000원
우주는 신비하다. 언제든 쉽게 가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주과학을 둘러싼 각종 설도 난무한다. 특히 미국 우주과학의 메카인 항공우주국(NASA)은 유독 의심의 눈길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각각 NASA 컨설턴트와 항공우주공학자로 일한 저자들이 이 책에 담은 내용은 그저 의심만으로 치부하기엔 꽤 과학적이다.
탱글렉
재닛 윈터슨 지음 | 임지현 옮김 | 문학사상 | 360쪽 | 1만 2000원
영국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여류작가가 청소년을 위해 쓴 첫 판타지 소설이다. 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어렵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저 소설을 전개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물리학적 개념을 섞어 넣었을 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래 세계의 모습은 이해하기 힘든 제목처럼 조금은 혼란스럽다.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
크리스 프리스 지음 | 장호연 옮김 | 동녘사이언스 | 352쪽 | 1만 4800원
현대 과학을 이끄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많은 이들이‘뇌’를 들것이다. 그만큼 뇌를 다루는 과학책도 많다. 이 책은 인문학자의 질문에 인지신경과학자인 저자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또 뇌가 만들어내는 세상이 실재가 아니라 환상에 가깝다고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다.
컴퓨터와 마음
윤보석 지음 | 대우학술총서 | 280쪽 | 1만 7000원
저자는 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다. 인문학을 전공했기에 과학의 발전을 오히려 담담하고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또 철학은 과학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때론 새로운 개념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과학의 진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최신 학문인 인지과학을 국내 철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 책이 자라나는 과학도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갈릴레오의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
오철우 지음 | 사계절출판사 | 238쪽 | 1만 1000원
천동설을 무너뜨리고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의 책‘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는 천동설과 지동설의 대변자가 4일간 끝장토론을 벌이는 가상의 시나리오다. 이 책은 17세기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른바 ‘대박’이 났다. 현직 과학언론인인 저자는 갈릴레오의 책에 담긴 핵심 대목을 친절하게 해설해준다. 낡은 과학과 새로운 과학의 대립 속에서 과학혁명의 생생한 현장감과 문학적 재미를 함께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