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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20년 만에 다시 태어난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한국은 석탑의 나라


불탑은 고대 인도의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스투파(stupa)에서 기원했다.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에서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불탑 건립이 활발히 이뤄졌다.


탑은 건축 재료에 따라 크게 목탑, 전탑, 석탑 등으로 구분된다. 흔히 중국은 벽돌로 만든 ‘전탑의 나라’, 일본은 나무로 만든 ‘목탑의 나라’, 한국은 돌로 만든 ‘석탑의 나라’라고 불린다. 이는 탑의 재료와 구조, 양식의 차이에 따른 구분으로, 각국에 많이 남아있는 탑의 영향이 크다.


한국의 탑은 목탑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거의 멸실돼 지금은 터만 남아 있고, 돌로 만들어진 석탑이 현존하는 탑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한국에서 유독 석탑의 건립이 활발했던 이유는 부식, 화재 등에 취약한 목탑의 단점을 극복하고 화강암 등 품질이 좋은 돌이 풍부해 일찍부터 석공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7세기 백제 무왕 때 건립된 익산 미륵사는 신라의 경주 황룡사와 비견되는 거대한 규모의 사찰이었다. 3개의 탑(서 석탑, 중앙 목탑, 동 석탑)과 금당이 나란히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이 중 서쪽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탑이 국보 제11호인 ‘익산미륵사지 석탑’이며,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 연대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 중 가장 오래됐다.


이 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양식이 변해가는 과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1층 내부에는 십자(十)형 통로가 형성돼 있는 등 고대건축의 실존 사례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크다. 하지만 창건 당시 석탑의 층수 등 원형에 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6층 일부까지 반파된 상태로 남아있던 것을 1915년 일본이 콘크리트를 덧씌운 상태로 그간 전해져 왔다.


1998년 미륵사지 석탑의 구조 안전진단 결과 콘크리트 노후화와 구조적 불안정이 우려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1년부터 본격적인 해체 수리를 시작했다. 2009년 석탑 해체조사 중 1층 내부 중앙의 심주석(心柱石·탑의 중심 기둥 돌) 내부에 있던 ‘사리장엄구’가 발견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이때 발견된 유물 중 ‘사리봉영기’라는 금판에서 639년이라는 명문이 확인돼 석탑의 건립연대가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 외에도 99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3D스캐닝 활용하고, 무기질 재료 새로 개발


현존하는 석탑들은 건립 연대가 수백 년이 지난 오래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외부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있기 때문에 풍화 등 훼손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훼손된 석탑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에 대한 정밀한 조사와 진단이 중요하며, 이에 따른 적절한 구조보강과 보존처리가 필요하다.


문화재의 원형 보존은 원래의 재료를 얼마나 잘 보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인데, 전통적인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대적인 과학기술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 석재들이 풍화되고 기울어지거나 파손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현황조사와 보존처리에 다양한 과학기술이 적용됐다.


미륵사지 석탑은 기울어짐, 붕괴 등 복잡한 형상 때문에 2차원 자료만으로는 정확한 조사가 어려웠다.

 

 

그래서 연구소에서는 2002~2010년 3차원 형상정보 구축을 위한 3D스캐닝을 진행했다. 또 2014~2017년 석탑을 조립하는 과정에도 3D스캐닝을 활용했다. 3D스캐닝은 대상물에 레이저를 쏜 뒤 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석탑의 형태에 대한 3차원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한다.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 수 십m 원거리에서 실시하는 광대역 스캔과 50cm 내외의 근거리에서 실시하는 정밀스캔 모두를 적용했다.


석재 표면을 살펴보니 가공 정도의 차이에 따라 위아래 석재 사이에 틈이 있었다. 이 공극을 메우기 위해 선조들은 흙을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13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빗물에 흙이 씻겨 나갔고, 그 결과 구조적으로 불균형한 상태가 되면서 석재가 파손됐다.


우리는 빗물에 취약한 흙의 단점을 개선한 무기질 재료(Mineral Binder)를 새로 개발했다. 이 재료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광물에 모래와 구운 황토를 일정 비율로 배합한 것이다. 빗물에 유실될 가능성이 적고 내구성이 우수해 석재 사이의 공극을 메우고 방수 처리나 약해진 토층을 보강하는데 사용했다. 이를 통해 석탑의 상부 하중을 고르게 분산시켜 지진 피해를 줄이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륵사지 석탑의 수리 과정에서 원래의 석재를 최대한 재사용하는 것은 중요한 목표였다. 석재들은 풍화로 약해진 상태였고, 균열과 절단 등 상당수가 훼손된 상태였던 만큼 정밀한 분석과 과학적인 보존처리가 필수였다. 일단 오염물을 씻어냈고, 균열 부위를 충전했다. 유실된 부위는 새로운 석재로 성형해 원래 형태로 복원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절단되거나 일부가 유실된 석재를 재사용하기 위해서 구조 보강과 접합 기술을 새로 개발해야 했다. 수차례 실험 끝에 석재별 강도나 파손 유형에 따라 금속보강재(티타늄)의 양이나 삽입 깊이 등을 다르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우리는 석재의 재사용 비율을 당초 47%에서 81%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원래의 석재 자체가 없어져버리거나 으스러질 정도로 파손이 심해 보강 효과가 없는 부분은 새로운 석재로 보강했다. 분석 결과 익산 황등 지역 화강암이 원래의 석재와 가장 유사한 암질로 확인됐다. 산지에서 채석한 화강암 원석은 1차 현장조사(색상, 질감, 결 방향, 이물질), 2차 품질검사(강도, 비중, 함수율)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합격한 것만 사용했다. 이들은 원래의 가공도와 풍화 정도를 고려해 혹두기(쇠메로 불필요한 부분이나 모서리 부분을 떼어내는 작업), 정다듬(거친정, 고운정), 도드락다듬 등 전통적인 가공 기법을 이용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17년 말, 남아있던 6층까지 조립을 완료했다. 조립 기준은 석탑 내부의 정중앙에 위치한 심초석(心礎石)과 심주석이다. 심초석은 석탑 중심부에 처음으로 설치되는 석재로, 이를 기준으로 석탑의 조립 중심축(十자)을 확보했다.


이후 광파측량기와 레이저 수준기 등을 활용해 심초석 위로 올라가는 심주석에 중심선을 표시하고 이를 수직으로 연장해 각 층의 조립기준으로 설정했다. 이런 방식으로 조립 공정의 일관성과 정밀도를 유지하면서 시공 오차를 최소로 줄일 수 있었다.

 

20년 걸려 수리 완료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수리를 결정할 당시 기본 방침은 해체조사 및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 결과에 따라 세부적인 수리 방법을 정하고, 가능한 원래의 석재를 최대한 재사용하는 것이었다. 결국 오랜 논의 과정 끝에 남아있던 6층까지 보존해 수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층수 등 원형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과도한 추정 복원은 문화재의 진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었다.

 

또 원석재가 가진 물리적 한계로 상부 하중이 커질수록 약해진 원석재를 재사용하기가 더욱 어렵고, 멸실된 상륜부의 고증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남아있던 부분까지만 보강, 수리하기로 결정했고, 보존처리와 구조보강 등 원래의 재료와 기법만으로 충분한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최소한의 범위에서 현대기술을 도입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한국의 문화재 수리사(史)에서 단일 건축물로는 최장 기간 체계적인 조사 연구와 수리가 진행된 사례다. 그 결과 국제적 수준의 기술과 수리 품질을 확보하고 고도화된 석조문화재 수리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는 30여편의 논문으로 발표됐고, 5건의 기술특허도 확보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대부분 쉽고 빠른 해결방법을 찾게 된다. 그러나 문화재 보존의 경우 때로는 어렵고 느린 방법이 좋은 해답이 될 수 있다. 문화재는 각각 고유한 특성과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존을 위한 행위는 항상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땀과 열정은 석탑에 고스란히 남아 온기를 전하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이 새로운 역사를 맞이한 지금 탑은 제자리에 남아 앞으로도 수백 년 이상 그 고귀한 생명을 이어가고, 우리들은 사라져 갈 것이다.


미륵사지 석탑과 18년을 함께한 필자는 이제 조그마한 미련도 남지 않았다. 독자들이 다시 우뚝 선 미륵사지 석탑을 마주할 기회가 있다면 ‘속도’보다는 ‘정성’에, ‘추정’보다는 ‘사실’에 무게를 둔 이 시대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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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현용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 에디터

    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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