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오늘도 온 나라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새벽의 여신’에오스가 밤의 장막을 걷어 올리면 에티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는 매일 호숫가에서 몸을 정결히 씻고 신께 이처럼 기도했다. 그러나 어머니인 왕비 카시오페이아가 자신의 미모를 과시하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왕 케페우스는 신탁에 따라 딸 안드로메다를 쇠사슬에 묶어 포세이돈이 보낸 바다괴물에게 재물로 바쳤다.

마침 괴물 메두사를 죽이고 돌아오던 페르세우스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바다괴물과 싸워 안드로메다를 구해냈고 둘은 부부가 됐다. 가을 밤하늘을 보면 페르세우스자리와 나란히 놓여 있는 안드로메다자리를 찾을 수 있다. 별들을 잇다 보면 쇠사슬에 묶여 있는 안드로메다를 구하러 달려가는 페르세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 별자리를 바라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



‘안드로메다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메두사와 사투를 벌인 페르세우스가 또 목숨을
걸었을까.’ 일본의 천문 일러스트레이터인 카가야가 그린, 새벽 호숫가에 나와 있는 안드로메다의 모습은 별자리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판타지를 완벽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날은 맑지만 바람은 꽤 부는지 안드로메다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풀들도 한쪽으로 고개를 젖히고 있다. 오른손으로 귓가의 머리를 쓸며 한곳을 지그시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은 자신에게 닥칠 시련조차 또 다른 행복의 길로 이끄는 계기에 불과함을 예감하는 듯하다.



여신에게 버림받은 사자의 운명

‘왜 저를 내치셨나요?’

그리스의 네메아 골짜기에 살며 사람들을 괴롭힌 괴물 ‘네메아의 사자’는 원래 ‘달의 여신’ 셀레네의 애완동물이었다. 경주용 말보다도 커다란 몸집을 지탱하고 있는 쭉 뻗은 뒷다리가 늠름하지만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고 있다. 매혹적인 셀레네는 떠오른 달을 바라보며 한 손으로 사자의 털을 쓰다듬고 있다. 사자의 눈은 먼 하늘을 응시하는 듯하지만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여신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다가올 운명에 대한 예감에 떨리고 있다.

셀레네한테 버림받은 뒤 네메아에서 행패를 부리던 사자는 영웅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가죽은 벗겨져 헤라클레스의 갑옷으로 만들어졌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아들 헤라클레스의 업적을 기려 사자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에 오버랩돼 있는 별자리 역시 앞다리를 웅크린 사자가 달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카가야가 1999년 발표한 ‘황도12궁(the Zodiac-12)’은 그의 대표작으로 천구에서 태양이 지나가는 길(황도)에 걸쳐 있는 별자리 12개를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사자자리는 봄철 밤하늘에서 관측하기 좋지만 점성술에서는 7월 23일~8월 22일을 사자자리로 정했다. 과거에는 이 무렵 태양이 사자자리를 지나갔기 때문이다.



푸른 달빛을 머금은 용담꽃

집을 나왔다 나를
쫓아서 달의 아이가 달려가는
어디까지라도 어디까지라도
madonna blue
(…)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는 들판에 용담꽃밭이 펼쳐져 있다. 꽃들은 저마다 꽃대를 곧추세워 푸른 달빛을 흠뻑 마시고 있고 그 보답으로 꽃가루를 하늘로 보내고 있다. 이 빛나는 꽃가루가 하늘의 별이 되는 걸까.



“일본에서 별빛이 가장 투명하게 보인다는 조도다이라를 고등학생 때부터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보름달이 뜬 어느 날 천문대를 가다가 달빛을 받아 환상적으로 빛나는 용담꽃 무리를 발견했죠. 제 기억의 캔버스에 흠뻑 칠한 ‘마돈나 블루(madonna blue)’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마돈나 블루란 성모 마리아가 입은 푸른색 의상의 빛깔이다. 카가야가 ‘마돈나 블루(madonna blue)’로 이름지은 이 작품은 밤하늘과 자연의 신성함에 대한 그의 깊은 감동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카가야의 지인인 시인 미호는 이 작품을 보고 같은 제목으로 앞의 시를 쓰기도 했다.



카가야는 마돈나 블루를 비롯해 일본의 사계(四季)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밤하늘을 그린 작품집 ‘고요한 별밤(Tranquil Night of Stars)’을 2002년 발표했다. 이 작품집에는 간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소녀들의 정경이 애틋한 향수를 자아내는 작품도 돋보인다.

1968년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난 카가야는 어릴 적부터 밤하늘의 별을 좋아해 그림을 그리고 혼자 천문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세월은 흘러 중년의 초엽에 들어섰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별을 사랑하는 소년’의 감수성이 흐르고 있다. ‘카가야 천문 일러스트 전시회’는 8월 16일까지 국립과천과학관 특별전시관에서 열리며 과학관 관람객에 한해 무료입장할 수 있다.
 

일본 최고의 천문 일러스트레이터
카가야 유타카 독점 인터뷰

“그리스 신화에 현대인의 감수성 더해 리메이크한다”

7월 18일부터 국립과천과학관 특별전시관에서 열리는‘카가야 천문 일러스트 전시회’에 맞춰 하루 전 방한한 카가야 유타카를 만났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작품을 만든 작가답게 과학동아에 실을 이미지 파일을 담은 CD를 건네주면서 색을 조정할 때 참고하라며
컬러 프린트를 챙겨주는 세심함이 인상적이었다.

언제부터 천문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나?

어릴 때는 로켓을 타는 우주비행사를 꿈꿨는데 시력이 나빠 포기했다(웃음). 밤하늘의 별들을 보는 걸 정말 좋아해 고등학생 때는 별 관측지로 유명한 후쿠시마현 조도다이라를 찾아가 22일간 캠핑을 한 적도 있었다. 그림도 좋아해서 별을 연구하는 사람이 될지 별을 그리는 사람이 될지 오랫동안 망설였다.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밤하늘의 신비를 전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를 택했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천문관측은?

2003년 남극에서 체험한 개기일식이다. 인류가 최초로 남극에서 관측한 개기일식인데,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개기일식을 3번 봤지만 그때의 경험은 잊을 수 없다. 그 자리에 같이 있던 미국인이 태양을 가린 달을 배경으로 나를 찍은 사진은 미국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에도 올라가 있다. 알래스카 하늘에 펼쳐진 오로라도 인상적이었다. 내 작품은이런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별자리에 담긴 그리스 신화를 테마로 한 작품이 많다. 그럼에도 전형적인 신화 그림과는 느낌이 다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본 하늘과 오늘날 우리가 보는 하늘은 별 차이가 없다. 밤하늘에 펼쳐 놓은 당시 이야기들이 여전히 생명력을 갖는 이유다. 나는 여기에 현대인의 감수성을 덧붙여 리메이크를 한다고 할까. 신화를 생각하면서 별을 바라보면 주인공들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대표작 ‘황도12궁’은 조각퍼즐로도 나와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다.

뿌듯하게 생각한다. 처음 일본에서 발매된 이래 한국, 중국을 거쳐 지금은 유럽, 미국까지 진출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걸로 봐서 내 작품들이 동양인의 감수성에 더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판타지를 담은 작품뿐 아니라 과학서적이나 잡지에 실리는 사실적인 일러스트 작품도 많다. 어느 쪽 작업을 더 좋아하나?

내 작품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눌 수 있으나 나에게는 차이가 없다. 밤하늘과 우주 자체가 내겐 환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완성까지 2개월이나 걸린 작품이 있는데, 달을 묘사한 일러스트다. 달 표면의 작은 크레이터(운석 충돌 구덩이)도 놓치지 않았다. 지금 달의 뒷면을 작업하고 있다(웃음).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작품은?

최근에는 플라네타륨에서 상영하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인기만화‘은하철도 999’의 원작인 소설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그린 동명의 애니메이션은 2006년부터 일본 전역에서 상영되고 있다. 두 번째 작품 ‘우주일직선’도 1주일 전에 완성했다. 이 작품들이 한국의 플라네타륨에서도 상영되길 바란다.

지금은 도시의 밤이 워낙 밝아 별을 제대로 보기도 어렵다. 결국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지 않을까.

물론 내가 어렸을 때와 비교해보면 맨눈으로 관측하는 환경이 나빠졌다. 그러나 지금은 천문대가 많기 때문에 훨씬 근사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난 NASA홈페이지 같은 웹사이트에 공개된 천체 사진을 보며 늘 ‘우주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존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 작품이 사람들에게 우주의 신비를 전달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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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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