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온 나라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새벽의 여신’에오스가 밤의 장막을 걷어 올리면 에티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는 매일 호숫가에서 몸을 정결히 씻고 신께 이처럼 기도했다. 그러나 어머니인 왕비 카시오페이아가 자신의 미모를 과시하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왕 케페우스는 신탁에 따라 딸 안드로메다를 쇠사슬에 묶어 포세이돈이 보낸 바다괴물에게 재물로 바쳤다.
마침 괴물 메두사를 죽이고 돌아오던 페르세우스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바다괴물과 싸워 안드로메다를 구해냈고 둘은 부부가 됐다. 가을 밤하늘을 보면 페르세우스자리와 나란히 놓여 있는 안드로메다자리를 찾을 수 있다. 별들을 잇다 보면 쇠사슬에 묶여 있는 안드로메다를 구하러 달려가는 페르세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 별자리를 바라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
‘안드로메다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메두사와 사투를 벌인 페르세우스가 또 목숨을
걸었을까.’ 일본의 천문 일러스트레이터인 카가야가 그린, 새벽 호숫가에 나와 있는 안드로메다의 모습은 별자리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판타지를 완벽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날은 맑지만 바람은 꽤 부는지 안드로메다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풀들도 한쪽으로 고개를 젖히고 있다. 오른손으로 귓가의 머리를 쓸며 한곳을 지그시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은 자신에게 닥칠 시련조차 또 다른 행복의 길로 이끄는 계기에 불과함을 예감하는 듯하다.
여신에게 버림받은 사자의 운명
‘왜 저를 내치셨나요?’
셀레네한테 버림받은 뒤 네메아에서 행패를 부리던 사자는 영웅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가죽은 벗겨져 헤라클레스의 갑옷으로 만들어졌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아들 헤라클레스의 업적을 기려 사자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에 오버랩돼 있는 별자리 역시 앞다리를 웅크린 사자가 달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카가야가 1999년 발표한 ‘황도12궁(the Zodiac-12)’은 그의 대표작으로 천구에서 태양이 지나가는 길(황도)에 걸쳐 있는 별자리 12개를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사자자리는 봄철 밤하늘에서 관측하기 좋지만 점성술에서는 7월 23일~8월 22일을 사자자리로 정했다. 과거에는 이 무렵 태양이 사자자리를 지나갔기 때문이다.
푸른 달빛을 머금은 용담꽃
집을 나왔다 나를
쫓아서 달의 아이가 달려가는
어디까지라도 어디까지라도
madonna blue
(…)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는 들판에 용담꽃밭이 펼쳐져 있다. 꽃들은 저마다 꽃대를 곧추세워 푸른 달빛을 흠뻑 마시고 있고 그 보답으로 꽃가루를 하늘로 보내고 있다. 이 빛나는 꽃가루가 하늘의 별이 되는 걸까.
“일본에서 별빛이 가장 투명하게 보인다는 조도다이라를 고등학생 때부터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보름달이 뜬 어느 날 천문대를 가다가 달빛을 받아 환상적으로 빛나는 용담꽃 무리를 발견했죠. 제 기억의 캔버스에 흠뻑 칠한 ‘마돈나 블루(madonna blue)’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마돈나 블루란 성모 마리아가 입은 푸른색 의상의 빛깔이다. 카가야가 ‘마돈나 블루(madonna blue)’로 이름지은 이 작품은 밤하늘과 자연의 신성함에 대한 그의 깊은 감동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카가야의 지인인 시인 미호는 이 작품을 보고 같은 제목으로 앞의 시를 쓰기도 했다.
카가야는 마돈나 블루를 비롯해 일본의 사계(四季)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밤하늘을 그린 작품집 ‘고요한 별밤(Tranquil Night of Stars)’을 2002년 발표했다. 이 작품집에는 간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소녀들의 정경이 애틋한 향수를 자아내는 작품도 돋보인다.
1968년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난 카가야는 어릴 적부터 밤하늘의 별을 좋아해 그림을 그리고 혼자 천문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세월은 흘러 중년의 초엽에 들어섰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별을 사랑하는 소년’의 감수성이 흐르고 있다. ‘카가야 천문 일러스트 전시회’는 8월 16일까지 국립과천과학관 특별전시관에서 열리며 과학관 관람객에 한해 무료입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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