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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평점 ★★★☆☆ ‘로미오와 줄리엣’의 뱀파이어 버전
영화 ‘트와일라잇’은 2005년 미국에서 출판된 베스트셀러 소설 ‘트와일라잇’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말 미국 전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영화 ‘트와일라잇’은 목숨을 걸고 금지된 사랑을 시도했던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러브스토리다. 다만 주인공이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인 죽음을 맞진 않을 거라는 기대감을 남긴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려는 듯 기묘한 장치를 해둔다. 바로 벨라가 특별한 피를 갖고 있으며, 이는 에드워드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라는 점이다. 에드워드가 벨라와 데이트하기 위해선 먼저 그녀의 피를 먹고 싶은 충동부터 이겨내야 한다. 고양이에게 쥐를 맡긴 것과 같은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서 과연 벨라와 에드워드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뱀파이어는 빈혈환자?
영화 초반, 에드워드는 창백한 얼굴과 붉은 입술, 짙은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미소년으로 벨라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눈에 띄게 창백한 피부는 에드워드가 뱀파이어임을 한눈에 짐작케 한다.
사실 창백한 피부는 1931년 토드 브라우닝 감독이 만든 영화 ‘드라큘라’ 이후 형성된 뱀파이어의 아이콘 중 하나다. 창백한 얼굴, 뾰족한 송곳니, 검은 옷과 망토, 포마드를 발라 넘긴 머리카락 같은 뱀파이어의 대표적 아이콘은 모두 ‘드라큘라’에서 만들어졌다.
영화 ‘트와일라잇’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 역시 하나같이 창백한 얼굴과 붉은 입술을 갖고 있다. 마치 빈혈 환자처럼 말이다. 빈혈이 피가 부족한 병으로 알려져 있어 피를 먹는 뱀파이어는 창백한 피부를 가져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뱀파이어는 빈혈환자일까?
뱀파이어가 피를 먹는다는 전설은 예부터 선조들이 피가 인간의 생명이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뜻한다. 뱀파이어라는 존재도 사실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선조들의 두려움이 형상화된 미신일 뿐이다.
의학적으로 빈혈은 적혈구 수가 줄어드는 질환으로 무리한 다이어트를 고집하는 젊은 여성에게 흔히 나타난다. 진짜 빈혈환자라면 매일 철분제를 한 알씩 먹거나 철분이 많은 육류를 꾸준히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선짓국처럼 동물 피를 익혀 만든 음식도 철분과 단백질이 풍부해 빈혈환자에게 좋다.
하지만 몸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처럼 동물의 피를 날로 먹는 경우에는 인간에게는 없는 기생충이나 미생물에 감염될 확률이 높아 매우 위험하다.
영화 중반, 벨라는 에드워드가 속한 컬렌 가문 가족을 만난다. 컬렌 가문 뱀파이어는 인간을 사냥하는 다른 뱀파이어들과 달리 인간과 어울리며 평화를 지킬 줄 아는 종족이다. 그들은 피를 원할 때면 인간의 피가 아닌 동물의 피로 배고픔을 달랜다.
그런데 인간보다 월등히 아름답고, 상상을 초월하는 스피드와 힘을 지녔으며, 예측 불허의 초능력과 뛰어난 동물적 감각을 가진 그들에게도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햇빛을 두려워 한다는 것. 하지만 다른 영화의 뱀파이어처럼 햇빛에 노출될 경우 타버리기 때문이 아니다.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들은 피부에 햇빛이 닿으면 다이아몬드처럼 광채가 뿜어져 나온다. 피부가 너무 아름다워 혹시라도 정체가 드러날까 봐 일부러 햇빛을 피해온 셈이다.
그런데 그들의 신기한 피부를 그대로 닮은 병이 인간에게도 존재한다. 바로 ‘건선’이란 피부질환이다. 건선은 은백색의 비늘로 덮인, 붉고 약간 솟아오른 편평한 플라크나 구진(丘疹)이 피부에 생기는 병이다.
대개 팔꿈치나 무릎, 머리, 가슴, 엉덩이에 좌우대칭으로 생기는데, 작은 것들이 따로 떨어져 있거나 여러 개가 한데 뭉쳐 커다란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증상이 호전되거나 없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햇빛의 자외선이 치료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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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의 혈액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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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에게 피는 생명처럼 소중한 존재다. 피 속 적혈구는 몸 구석구석에 있는 세포에 산소와 에너지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며, 백혈구는 박테리아로부터 우리 몸을 지킨다. 응고작용을 하는 혈소판이 없다면 피부 밑에는 항상 시퍼런 멍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벨라의 피가 독특한 향기를 갖는다는 점은 영화의 설정일 뿐 실제로 사람의 피는 적혈구 표면에 붙은 항원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혈액형이다. 같은 피라도 Rh 항원의 유무에 따라 각각 Rh+형, Rh-형으로 나뉘고, AB항원의 유무에 따라 A형, B형, O형, AB형으로 나뉜다. 그리고 수혈할 때는 반드시 혈액 공여자와 수여자의 Rh와 ABO 두 가지 항원의 혈액형에 맞춰야 한다. 그렇다면 혹시 뱀파이어가 벨라의 피를 먹었을 때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수혈은 피가 부족한 사람의 혈관에 피를 공급하는 일이다. 엄밀하게 말해 뱀파이어가 인간의 피를 빨아먹듯 먹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수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혈액형을 맞추는 일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항원에 항체가 붙어 적혈구가 용해될 수 있다. 대개 같은 혈액형끼리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A형은 A형과 O형, B형은 B형과 O형, AB형은 A형, B형, AB형 모두에게서, O형은 O형에게서만 혈액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인공혈액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어 에이즈나 매독, 간염 같은 바이러스 감염을 피할 수 있는 길도 생겼다. 인공혈액을 Rh-와 O형으로 생산하면 누구에게나 수혈할 수 있다. 또 A형과 B형 혈액에서 각각 A항원과 B항원을 제거해 O형으로 만들어 수혈하는 방법도 개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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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가 당한 대퇴골 골절은 매우 치명적인 큰 부상이다. 만약 엄지손가락보다 더 굵은 대퇴동맥이 절단된다면 순식간에 몸에 있는 피의 상당량을 출혈로 잃는다. 무조건 지혈부터 해야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컬렌 박사가 자신의 팔을 부목 겸 지혈대로 사용해 응급조치를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뼈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뼈 자체가 부목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굳이 부목을 댈 필요가 없다. 하지만 뼈가 부러졌다면 출혈점이 자꾸 움직이기 때문에 부목을 대지 않고는 제대로 지혈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한편 우리 몸에는 같은 골절이라도 절대 부목을 대지 않는 부위가 있다. 바로 갈비뼈다. 갈비뼈는 주위 뼈들과 인대, 근육으로 촘촘히 붙어 있어 부러져도 원래 모양이 잘 유지될 뿐 아니라 허파의 호흡작용에 따라 항상 조금씩 움직이기 때문에 고정하기 어렵다. 갈비뼈를 고정한다면 오히려 숨쉬기 힘들어질 수 있다.
창백한 얼굴, 붉은 입술, 짙은 황금빛 눈동자.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물론 빛보다 빠른 스피드와 강한 파워, 날아다닐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신세대’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를 먹는 대신 인간과 공존하며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강석훈 전문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2006년부터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방송된 SBS 의학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의 보조작가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의학회에서 건강정보심의의원회 실무의원을 맡아 잘못된 건강정보를 바로잡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