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 탐사 로봇 피닉스가 이룬 성과를 묻는 질문에 데이빗 비티 박사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화성 연구를 총괄하는 그는 “물은 생명체는 물론 날씨와 지질 현상에도 깊숙이 관여한다”며 “화성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물의 존재가 드디어 확인된 것”이라며 이번 발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스 폴라 랜더의 뼈저린 실패
지난 5월 화성에 착륙한 피닉스는 임무를 수행한 지 20솔(솔은 화성의 하루로, 지구의 24시간 39분에 해당) 만에 지하에서 얼음을 발견했고, 얼마 뒤에는 흙을 가열해 물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NASA 탄생 50주년을 축하하는 피닉스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피닉스의 역사적 발견을 얘기하는 비티 박사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그는 1999년 화성 착륙에 실패한 마스 폴라 랜더를 언급하며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오래 전에 화성에서 물을 발견하는 성과를 얻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970년대 바이킹 착륙 이후 지지부진하던 화성 탐사는 1996년 남극에 떨어진 화성의 운석에서 생명체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발표와 함께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화성 관련 예산도 200만 달러(약 24억 원)에서 600만 달러(약 72억 원)로 세 배 정도 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스 폴라 랜더의 착륙 실패가 화성 탐사 계획에 찬물을 끼얹었다. 몇 달 뒤 2001년 착륙 예정으로 진행되던 마스 서베이어 2001 랜더 계획도 취소되고 말았다.
창고에 처박혀 있던 마스 서베이어 2001 랜더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건 몇 년이 지난 뒤였다. 비티 박사는 “마스 서베이어 2001 랜더의 설계를 개량하고 마스 폴라 랜더의 부품 몇 개를 덧붙여 만든 것이 피닉스”라며 “착륙 시스템이 마스 폴라 랜더와 비슷하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무척 조심했다”고 말했다. 피닉스를 담당한 기술자들은 마스 폴라 랜더 사고 보고서에 명시된 문제점을 모두 해결하고, 더 나아가 만에 하나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수십 개나 더 찾아 개선했다.
임무 완수하고 긴 잠에 빠져들 피닉스

피닉스의 착륙지점으로 선정된 곳은 북위 68˚, 동경 233˚ 지점. 2002년 마스 오디세이가 감마선 분광계로 지하 1m 이내에 물을 이루는 원소인 수소가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곳이다. 비티 박사는 “극지에 가까이 착륙할수록 물을 발견할 확률이 높지만 착륙하기에 좋은 지형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전기를 만들 햇빛도 충분하지 않다”며 “피닉스의 착륙 지점은 물을 발견할 가능성과 피닉스가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작동할 가능성 사이에서 타협한 결과”라고 밝혔다.

스피릿이나 오퍼튜니티와 달리 피닉스는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태양빛을 따라 위도가 낮은 지역으로 갈 수 없다. 곧 화성 북반구에 겨울이 찾아오면 피닉스는 꼼짝없이 예정된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태양전지로 만들 수 있는 전력이 피닉스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량 아래로 떨어지면 피닉스는 작동을 멈춘다. 게다가 11월 18일경 지구와 화성이 태양을 사이에 두고 일직선을 이루기 때문에 최소한 1~2주는 통신이 두절된다. 만약 그 사이에 피닉스가 작동을 멈춘다면 피닉스는 그대로 잠들어 버릴 가능성이 높다.
만일 다시 봄이 와 태양빛을 충분히 받으면 피닉스가 불사조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비티 박사는 “봄이 오면 분명히 교신을 시도하겠지만 그 동안 메모리가 지워져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며 “아마도 그때가 되면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은 채 우리들끼리 조용히 시도해 보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800kg ‘거인’ 화성 탐사 로봇 MSL

2010년 화성에 도착할 MSL은 래보러토리(실험실)라는 이름에 걸맞게 커다란 덩치를 지녔다. 무게가 800kg으로 역대 화성 탐사 로봇 중 가장 큰 MSL은 기존 탐사 로봇보다 10배나 더 무거운 장비를 싣고 다니며 화성의 지질과 대기를 더욱 심도 있게 분석할 수 있다.
MSL에 실릴 연구 장비는 총 10가지. 비티 박사는 “이 중에서 광물의 성분과 구성비를 알아내는 CHEMIN(Chemistry and Mineralogy)와 흙 속에서 유기물을 찾는 SAM(Sample Analysis at Mars)이라는 장비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 두 개의 장비를 합친 무게가 나머지 모든 장비의 무게를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라고 밝혔다.
MSL은 피닉스와 달리 화성 표면을 돌아다니면서 작업을 수행한다. MSL의 동력원으로는 핵에너지를 사용할 예정이다. 플루토늄의 방사성 붕괴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화성의 1년(지구의 687일) 동안 MSL에 동력을 공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동시에 태양빛에 의존하지 않아 기존의 탐사 로봇보다 더 넓은 지역을 돌아다닐 수 있다.
역대 최대 덩치를 자랑하는 MSL은 착륙 시스템도 이전과 다르다.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낙하산과 에어백을 이용했고, 피닉스는 에어백을 사용하기에는 너무 무거워 낙하산과 역분사 로켓을 이용했다. 피닉스보다 2배 이상 무거운 MSL은 ‘스카이 크레인’을 사용한다. 비티 박사는 “스카이 크레인은 최초로 시도하는 방법”이라며 “한 치의 실수도 없도록 세심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MSL이 대기권에 진입해 낙하산을 펼치고 속도를 줄이는 과정은 이전과 같다. 하지만 낙하산과 분리된 뒤에는 MSL을 내장한 착륙선이 역분사로켓을 이용해 천천히 하강하고, 그 동안 MSL은 케이블에 매달려 지면에 접근한다. 마침내 MSL이 지면에 닿으면 착륙선은 MSL이 제대로 착륙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2초간 기다린 뒤 케이블을 끊고 역분사 로켓을 이용해 다른 곳으로 날아가 추락한다. 그 모습이 마치 크레인으로 물건을 내리는 모습과 같아 스카이 크레인이라고 부른다.
화성 유인 탐사는 시기상조
그렇다면 MSL 이후 화성 탐사는 어떻게 전개될까. 최근 유인 달 탐사 계획이 발표됐지만, 화성 유인 탐사는 아직 시기상조다. 달과 화성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과 산소를 전혀 공급받을 수 없는 상태로 왕복 1년이 넘는 화성 여행을 하려면 물과 공기는 물론 오물까지 완벽하게 재순환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비티 박사는 “우선 JPL에서는 화성에서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가져오는 ‘화성 샘플 리턴’(MSR, Mars Sample Return) 계획을 NASA에 꾸준히 제안하고 있다”며 “현재 400만 달러(약 48억 원)까지 줄어든 화성 관련 예산이 MSR과 맞물려 다시 늘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JPL은 MSR의 실행 시기를 대략 2020년 이후로 보고 있다. 비티 박사는 “MSR은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가급적 국제 협력으로 실행할 계획”이라며 “반도체나 연료전지 등 좋은 기술을 보유한 한국도 기회가 되면 참여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화성 탐사처럼 규모가 큰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제 협력이 중요하다. 현재 진행 중인 MSL에 탑재될 연구 장비 개발에도 스페인, 핀란드, 러시아 등 여러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발사체를 개발하며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아직 화성탐사에 참여할 계획은 없다. 독자적인 기술 개발과 더불어 화성 탐사 같은 국제 계획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어떨까. 대한민국 기술이 제2의 지구, 화성의 정체를 밝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화성 탐사 주관하는 JPL은 어떤 곳인가?

JPL에서 지구과학 기술 개발 총괄자로 근무하고 있는 제이슨 현 씨는 “1958년 JPL이 미국 최초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를 쏘아 올리면서 NASA가 시작됐다”며 “JPL은 NASA 50년 역사의 산증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로켓에 대해 연구했기 때문에 제트추진연구소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지금은 로켓 제작을 민간회사에 맡기고 행성 탐사에 쓰이는 위성이나 탐사 로봇, 착륙선, 내비게이션 등을 주로 개발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지구 외 행성 탐사 계획은 거의 JPL에서 주관한다고 보면 된다. 천체물리학이나 지구과학 연구에 쓰이는 인공위성이나 감지기를 개발하는 일 또한 JPL의 몫이다.
JPL 1년 예산은 16억 달러(약 2조원)로 현재 5000명의 정직원과 2000명의 계약직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 중 한국인 직원은 약 80명 정도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NASA에서 온 편지
NASA 50주년 하이라이트 10
유인 우주탐사의 산실, 존슨우주센터를 가다
화성 탐사의 최전선 JPL을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