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놀라게한 세인트헬렌즈, 세계의 기후를 변화시킨 엘지촌, 그리고 엄청난 비극을 낳은 네바도 델 루이스, 이런 화산에 무엇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세계에는 위험한 활화산이 약 8백개나 있다. 지구상에서는 과거 1만년 동안에 약1천3백개의 화산이 활동하여 6천회나 분화를 일으켰다. 현재도 세계에는 위험한 활화산이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불고리’(火環·ring of fire)에는 많은 화산이 몰려있어 4백 개 가까운 화산이 역사시대에 분화했다.
포효하는 불의 고리
태평양 연안의 아메리카대륙에서는 1980년대의 막이 열림과 동시에 3개의 화산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역사에 남을 대분화를 일으켰다.
그 중에서 미국 워싱턴주의 세인트헬렌즈가 먼저 불을 내뿜었다. 이 대분화로 산체의 상부가 말굽형으로 무너졌다.
이어서 1982년 4월 멕시코 동부의 ‘엘치촌’이 분화했다. ‘대지의 혹’이라는 약간 모멸적인 이름을 가진 작은 화산이지만 분연은 2천만t이나 되는 유황성가스를 성층권으로 뿜어 올렸다. 그 결과로 생긴 짙은 황산에어졸의 화산운은 북반구의 기온을 장기간에 걸쳐 저하시켜 여러가지 이상기상의 원인이 되었다.
그로부터 3년뒤 남미 콜롬비아의 ‘네바도 델 루이스’가 분화하여 약2만5천명의 주민이 진흙더미에 묻혔다.
이 일련의 분화는 1902년의 비극을 생각케한다. 카리브해에 있는 3개의 화산이 거의 사이를 두지 않고 계속하여 울부짖듯 불을 내뿜은 것이다.
5월8일 아침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섬의 ‘몽펠레’화산이 무서운 열운(熱雲·뜨거운 사태·화산에서 분출하여 산복을 흘러내리는 고온의 가스와 암석의 집합류. 집도 태우고 생물도 살륙한다)을 발생시켜 불과 몇분동안에 햇살이 요란하게 내려쪼이는 풍광명미한 ‘상피르’항을 지상에서 사라지게 해버렸다.
이 열운은 섭씨7백~1천도, 초속 1백50m나 되었다. 2만8천명 이상이 질식사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마침 지하감옥에 있었던 ‘오구스토 시파리’라는 사나이 뿐이었다.
바로 그 전날 가까운 세인트빈센트섬의 스프리에르화산이 격렬한 분화를 시작했다. 죽은 사람이 1천6백명을 넘는 대규모 재해였으나 마르티니크섬의 비극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몽펠레의 분화로부터 9시간 뒤, 과테말라의 산타마리아 화산이 대분화를 일으킨 것이다.
1980년대에는 세인트 헬렌즈, 엘치촌, 그리고 네바도 델 루이스로 분화활동이 남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일대 지하 깊은곳의 상태가 어떻게 되어있기에 이런 상황이 일어난것인지는 아직 알수가 없다.
맹위를 떨치며 흘러내리는 흙탕사태
하와이제도나 아이슬란드등 대양속의 화산 마그마는 유리성분(규산) 함유량이 적고 비교적 보슬보슬하다. 이 유동성이 높은 거무스름한 현무암질 용암은 잘 흘러 편평하고 큰 산 모양을 이룬다. 때로는 바다물에서 급냉하여 검은 모래가 만들어지고 또 때로는 수증기 폭발로 암재(岩滓·Scoria 철분을 비교적 많이 함유한 거무스럼한 경석)를 흩날린다.
아이슬란드의 헤크라화산이나 그 남쪽 먼바다에서 1973년에 분화한 헤이마에이가 그런것이다. 하와이의 마우나로아 분화에서는 고온이고 유동성이 높은 용암이 쌓여 해저에서 1만m나되는 높이의 섬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폭발하는 모양은 조용하여 관광객들에게 불꽃춤쇼를 보여주는 여유조차 있었다.
이런 화산은 대양 바닥의 맨틀 물질이 용솟음쳐 나와 생기는 것이다. 이런것과 대조적인것이 네바도 델 루이스 등 규산분이 많은, 그래서 점성(粘性)이 많은 안산암질(安山岩質) 용암으로 이루어진 대륙이나 섬의 화산분화다. 이것은 해양플레이트가 육지 밑으로 파고드는 곳에 생긴다.
안산암질화산의 분화는 보통 폭발초기에 화산회나 화산사력을 흩날린다. 이어 일어나는 본격적 분화에서는 화산의 아래쪽 깊은 곳에서 발포(発疱)한 경석이 콜라병마개를 땄을때와 같이 넘쳐 나온다. 이것이 무서운 ‘화쇄류’(火碎流)인데 바로 이어 마그마가 솟아 오르는 때도 있다.
네바도델 루이스의 비극은 화쇄류 또는 옆쪽을 때리는 분연 뒤에 2차적으로 발생한 흙탕사태가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화산회나 토층을 녹인 농밀한 흐름으로 계곡바닥을 도려내고 거대한 나무를 쓰러뜨리며 커다란 바위도 움직이는 분류였다.
이런 흙탕사태는 옛날부터 화산기슭의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특히 자바섬에서는 이를 ‘라하르’라고하여 두려워하면서 특별히 관심을 가져왔다. 그것은 화산기슭의 화산성 토양이 양분이 풍부하여 위험한줄 알면서도 그곳에 논을 일구어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화산기슭이라하면 흔히 누적된 화산자갈과 황량한 용암벌을 생각하게 되고 자바섬의 아름다운 계단식논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런곳에 한번 분화가 일어나면 그 한가롭던 전원이 라하르가 날뛰는 지옥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분연을 높이 뿜어 올리는 대분화에서는 엄청난 수증기가 상공에서 급냉하여 흙모래가 섞인 큰 비가 내리는것이 보통이다. 그것이 흙탕사태를 일으키는 것으로 대분화에서는 반드시 흙탕사태가 뒤따른다고 보아야한다.
그러나 재해라는 관점에서 보다 주목되는것은 대량의 물을 단번에 쏟아 내놓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경우 일것이다. 이런경우는 화산의 정상이 눈이나 얼음으로 덮여있거나 또는 꼭대기에 화산호가 있는 활화산에서 생긴다.
해발고도가 높은 화산은 가령 적도에 가까이 있다해도 산꼭대기에 빙설이 쌓여있다. 기온은 고도 1백m마다 섭씨 약 0.6도씩 낮아지므로 5천m되는 산꼭대기는 산기슭보다 섭씨30도가 낮다. 눈은 여름이 되어도 녹지않아 만년설이 되며 두께가 더하여가 밀도가 높아져 빙하라 부를 정도가 된다.
네바도 델 루이스화산은 해발 5천3백89m다. 산꼭대기는 빙설에 덮여있었다. 이것이 분화로 한꺼번에 녹아 쏟아져 내리면서 2차적인 흙탕사태까지 일으킨 것이다.
또 하나의 흙탕사태 발생 타이프는 산꼭대기에 마치 화약고와 같은 화구호(火口湖)가 있는 경우로 가장 유명한 예가 자바섬 동부의 케루드화산이다.
여기에서는 화산호의 바로 밑에서 자주 분화가 일어났다. 때로는 호수물이 뜨거운 흙탕물로 변해 산허리와 기슭의 마을을 급습했다. 1586년에는 주민 1만여명이 숨졌고 1919년에는 1백4개 마을이 괴멸되어 5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흙탕사태 재해는 25회나 거듭되었다. 이렇게 흙탕사태는 용암류나 열운과 함께 화산분출에 따르는 무서운 재해인 것이다.
화산분화재해에 대비하는 노력
네바도 델 루이스는 안데스산맥을 밑바탕으로 그위에 우뚝 솟은 성층화산이다. 토대가되는 안데스산맥에서는 약1천6백m 높이밖에 되지않으나 해발고도는 5천m를 훨씬 넘는다. 약 4백년전인 1595년에 최초의 분화 기록이 있으며 그 뒤에 5회의 분화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초와 1845년의 분화에서는 이번 분화보다 심한 흙탕사태가 발생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러나 이번 흙탕사태로 묻혀버린 아르메로 마을은 이 화산에서 동남쪽으로 50km나 떨어져 있는 이루어진지 70년쯤된 마을이었다.
이런 재해를 피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지구에 살지 않아야 할것이다. 예를 들면 11세기 이래 이미 1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자바섬 중부의 메라피 화산에서는 근년에 6개소의 관측소에서 감시 조사를 하여 ‘화산위험도 구분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에는 ①상시출입금지구역(소분화에서도 분출물 피해가 있는 곳) ②제1위험구(대분화때 직접분출물로 피해가 있는곳) ③제2위험구(화산흙탕사태에 휩쓸리기 쉬운곳)가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세가지 위험지구에는 실제로 2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있다. 특히 정착거주를 금하고있는 제1위험구의 3만명은 이주를 하여야하는데도 당국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정부당국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피난경보전달 기능이 확립되지 못했던것이다. 이런속에서 1963년 발리섬의 아군화산 분화때는 분화구에서 10km권까지 흙탕사태가 뒤덮일것이 예상되어 당국이 즉각 대피명령을 내렸으나 지방자치단체가 기동성 있는 조치를 하지않아 2천명이나 목숨을 잃는 사태를 빚었다. 이때 주민들은 성령과 악마가 사는 곳이라고 믿고있는 아군화산 산허리에서 종교의식을 지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희생자가 더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예는 네바도 델 루이스에서도 있었다. 여기서는 이미 1개월전에 재해예측도를 주민에게 배포했는데 실제로 그 예측대로 흙탕사태가 아르메로 마을을 휩쓸었다. 이때 당국은 예측지도만 배포했을뿐 이에 따른 구체적인 계몽활동이나 피난훈련을 전혀하지 않았다. 또 흙탕사태가 급습하기 직전까지 분화로 인한 재해를 두려워한 주민들이 마을 교회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무 걱정할것이 없다. 집에가서 편히 잠이나 자자”며 헤어졌는데 그대로 모두 흙탕사태에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비극적이었던 과거의 예를 알고 있었고 화산분화로 인해 재해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했고 또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했으면 비극은 피할수 있었을 것이다.
분화는 일방적이고 불가항력적인 면이 강하다. 그럴수록 화산의 전력을 잘 조사하여 당하지 않아도 될 피해를 피할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화산재해예방전략에 성공한 예가 없는것은 아니다. 1942년 하와이섬 마우나로아의 용암유출 때는 ‘히로’시를 구하기 위해 폭탄을 투하하여 용암류가 흐르는 코스를 변경시켰다. 이방법으로 시가지가 용암에 덮이는 것을 막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또 가깝게는 1980년 시칠리아섬의 에토나화산분화 때도 폭약으로 용암류가 흐르는 진로를 변경시키는데 성공했다.
아이슬란드 남쪽의 헤이마에이섬에서 일어난 1973년의 분화 때는 용암류에 대량의 물을 뿌려 냉각시켜 흘러내리는것을 막는 작전에 성공했다. 이방법은 1984년의 일본 미야케섬 분화때도 적용하였다. 그리고 자바섬의 케루드화산에서는 터널을 파서 화산호의 물이 쏟아지게하여 수위를 낮춰 그만큼 위험을 줄였다.
인간의 지혜와 노력은 이렇게 불가항력인것같은 화산분화재해도 얼마만큼은 막을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