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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좋아지는 냄새는 없을까

심리효과에서 임상응용까지

머리가 좋아지는 냄새가 있다면 어떨까. 몇년 전 미국 예일대 학생 72명에게 초콜릿 냄새를 맡게 하고 암기력을 측정했더니 암기력이 상승한 효과가 나타났다. 냄새가 기억력을 높인 것이다.

학생들은 교수가 부르는대로 40개의 형용사와 그 반대말을 받아 썼다. 다음날 교수는 학생들에게 전날 썼던 단어를 생각나는대로 다시 쓰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초콜릿 냄새를 맡은 학생은 단어의 21%를 기억했다. 냄새를 맡지 않은 학생이 기억한 단어는 17%.

냄새는 사람을 기분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냄새 때문에 종종 웃지못할 경우를 당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날, 립스틱을 사려고 가게에 들른 한 미국 여성이 립스틱은 사지도 않고 스카프매장에서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고르며 서 있었던 것. 30여분이 지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엉뚱한'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이 그녀를 망각의 세계로 떨어뜨렸을까.

향수 한방울 위해 6만 송이 희생

'범인'은 매장의 꽃냄새였다. 그 냄새는 그녀가 어릴 때 집에서 늘 맡던 향내였다. 냄새를 통해 그녀는 순간적으로 '꿈많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보석가게와 같은 고급매장에는 좋은 냄새를 이용, 손님을 '편안'하게 해준다. 덕분에 가게 주인의 심기는 불편할 때가 많다. 손님들이 보석 살 생각은 안하고 마냥 넋놓고 앉아만 있기 때문이다.

냄새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면 몸의 질병을 치료할 수는 없을까.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냄새가 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가령 기원전 4세기경,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매일 향기로운 물로 목욕하고 마사지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향내나는 물질을 태워 사람들을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자고 제안했다.

1928년 프랑스 화학자 가트포스(R. Gattefosse)는 '방향치교'(芳香治療, aromatherapy)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냄새의 '의학적' 활용을 본격적으로 주장했다. 그가 방향물질의 치료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가트포스가 실험에 열중하던 중 사고로 팔에 불이 붙었다. 그는 급히 주변의 찬 액체에 팔을 담갔다. 그러자 상처는 붉어지지도 않았고 염증도 물집도 생기지 않았다. 흉터도 남지 않았다.

라벤더(lavender)유로 추정되는 그 액체는 가트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식물에서 추출한 이 물질이 독특한 향기를 낸다는 점에 착안, 방향물질을 이용한 치료가능성을 떠올린 것이다.

이후 향초나 생약에 포함된 필수성분 정유(精油, essential oil)가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많은 사례연구가 진행돼왔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유는 모두 3백여가지. 하나의 정유는 평균 1백여개의 화합물로 구성된다. 대표적으로 테르펜(terpen) 알코올(alcohol) 에스테르(ester) 알데히드(aldehyde) 레톤(letone) 페놀(phenol) 등이 있다.

정유를 얻으려면 많은 '희생'이 따른다. 가령 약30g의 장미유를 만들려면 장미 6만송이가, 그리고 재스민유 1kg 만드는데 8백만 송이의 꽃이 필요하다. 더구나 '효능 있는' 재스민유를 얻으려면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꽃을 따야 한다.

방향치료에서 정유를 흡입하는 통로는 코뿐만이 아니다. 피부에 바르거나 약처럼 복용하기도 한다. 일단 흡입되면 이 물질이 체내 원하는 곳으로 잘 이동할 수 있을까.

방향치료의 효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유의 입자가 작고 지방에 잘 용해되므로 지방질을 통해 체내에 잘 흡수된다고 말한다. 한 예를 들어보자. 땅콩에서 라벤더를 추출, 2% 수용액을 만들어 이 중 1g으로 마사지한 후 혈액 속 라벤더 함량을 조사했다. 마사지 후 몇분 내 수ng(${10}^{-9}$g)의 라벤더 성분이 검출됐고, 20분 후 최대 농도값이 관찰됐다고 한다. 피부에 스며든 라벤더가 혈액을 통해 각종 지방조직으로 흡수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유는 중추신경계와 같은 지방이 풍부한 조직으로 어렵지 않게 도달, 뇌의 특정 영역을 자극해서 치료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분이나 몸이 좋아져도 어떤 물질이 몸에 축적된다면 별로 달갑지 않을 것이다. 방향치료 지지자들은 정유가 일반 화학약품과 달리 몸에 남지 않아 해가 없다고 말한다. 소변이나 대변, 땀 등을 통해 모두 배출된다는 것. 정유가 체내에 머무는 시간은 정상인의 경우 평균 3-6시간, 비만이나 몸이 불편한 경우 14시간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강 상부의 후각상피(왼쪽, 동그라미 부분)를 확대한 모습. 후각신경이 뇌와 연결된다.


베일 벗겨지는 메커니즘

방향치료 중 몸에 바르거나 먹는 방법 외에 '냄새를 맡아' 효과를 본 사례는 다양하다. 각성 진정 집중력강화 스트레스해소 수면촉진 등 심리적 영역에서부터 코감기치료 기관지기능강화 등 의학적 영역에서도 많은 효과가 제시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경험적'으로 입증된 방향 치료의 객관적인 원리를 찾고 있다. 즉 방향물질이 사람의 후각을 자극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후각분야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것이 사실이다. '냄새 못맡는 정도'야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잘못된 편견 탓이다. 하지만 후각은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후각은 음식물의 마을 알게 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후각기능이 퇴화하면 미각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가령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맛을 잘 모르는 것과 같다. 게다가 후각은 천연가스나 상한 음식물, 오염물, 연기 등 유해한 휘발성 물질을 찾는 감시기능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의 후각은 놀라울 정도로 민감하다. 공기 중 1조분의 1정도의 농도를 인지하며 1만-10만가지의 냄새를 구별하는 것. 이 작은 신체 부위에서 어떻게 이런 능력이 나올 수 있을까.

생물이 후각 자극을 인식하는 것은 복합적인 생화학적 전기 생리학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코에 냄새분자(화학신호)가 들어가면 비강점막의 최상부에 있는 후각상피의 신경을 자극(전기신호)한다. 후각신경은 뇌 바로 밑의 후각신경절을 거쳐 뇌 중심부에 있는 내측 및 외측 후각신경세포에 이른다, 이곳이 자극되면 사람은 냄새를 느끼는 것.

최근 존스홉킨스 의대 리드 박사는 쥐의 후각전달과정을 분자생물학적으로 밝혔다. 냄새 물질이 후각상피에 도달하면 후각 신경세포(약 5백만개)의 수용체(receptor)와 결합하고, 이때 수용체 옆의 G단백질이 활성화돼 신호가 10만배로 증폭, 뇌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냄새를 아주 조금만 맡아도 생물이 인식할 수 있는 이유가 설명된다.

G단백질은 작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은 길먼과 로드벨 박사가 발견한 물질이다. 체내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 성장인자 등이 세포막의 수용체와 결합하면 수용체 옆에 위치한 G단백질이 활성화된다. 그 결과 여러 단계의 2차, 3차 메신저를 통해 세포 속으로 신호가 전달되는 것. 리드 박사는 이 원리를 신경세포에 적용시킨 것이다.

특정 냄새를 인지하는 것은 어떤 메커니즘 때문일까. 리드 박사는 두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가지는 각각의 신경세포다. 특정 물질에만 반응하는 수용체 한종류만 갖는다는 것이다. 나머지 한가지 가능성은 신경세포 하나에 여러개의 수용체가 있어 이들이 복합적으로 발현된다는 것.

정확한 내용을 알려면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냄새가 뇌의 어떤 부위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아직 정설이 없다. 다만 감성을 지배하고 있는 뇌 우반구의 특정부위(limbic system)로 신호가 전달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냄새를 의학적으로 이용하려면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이 쌓여 있다. 따라서 충분한 생리적 임상적 실험을 거쳐 그 효과가 검증돼야 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냄새가 임산부의 분만진통을 줄이는지 여부를 실험했다. 쓰쿠바 의대의 한 연구자가 임신 중반기를 넘긴 임산부 7명에게 자연산 레몬유와 라벤더유 냄새를 규칙적으로 맡게 한 뒤, 분만 전후 산모의 혈압 호흡율 심장박동률 체온, 그리고 태아의 심장박동률 등을 비교측정한 것. 사용된 물질의 양은 10% 수용액 1mL. 솜에 묻혀 머리 주변에 놓아두었다.


화장품은 인공향료를 이용한 대표적 상품.


심리효과인가, 생리효과인가

실험 결과 생리적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하지만 임산부 중 6명이 심리적으로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이 중 3명은 물리적효과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정승규씨(삼성의료원 의사·이비인후과)는 이 실험에 대해 "마치 산모가 분만할 때 음악을 들려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직 심리적 효과가 '과학적 치료법'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듯하다.

따라서 양해주씨(태평양향료연구팀장)는 '방향치료'라는 용어보다 심리적 효과를 강조하는 '방향심리학'(aromachology)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이 분야는 향기를 맡을 때 인간의 생리 혹은 심리에서 일어나는 유용한 효과를 포괄적으로 탐구한다.

방향물질의 치료효과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만큼, 방향물질을 적절히 사용하지 않는다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크다. 가령 많은 양의 방향물질이 체내에 투입되면 세포막의 기능이 손상될 수 있다. 특히 이 물질은 세포막의 이온채널(ion channel)에 영향을 미쳐, 칼슘 나트륨 등 이온의 교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 그 결과 세포막 내외의 정상적인 전위차가 변해 세포활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만일 면역세포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인체의 면역기능은 어떻게 될까.

따라서 어떤 학자는 방향물질로 마사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방향물질이 대량으로 피부에 흡수되면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냄새는 역시 마사지보다는 코로 맡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몸에 나쁜 냄새는 물론 피해야 한다. 이 냄새는 어떤 경로를 거쳐 인체에 피해를 주는 것일까. 민양기씨(서울의대 교수·이비인후과)는 "어떤 냄새는 인간의 후각신경을 자극할 뿐 아니라 구강 및 비강점막에 분포돼 있는 3차 신경 말단도 자극한다. 암모니아 냄새를 맡으면 톡 쏘는 느낌이 든다든지 후추나 겨자를 먹으면 화끈거린다든지 하는 것은 바로 이 물질이 후각이나 미각신경 뿐 아니라 3차 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서 방향치료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그러나 사무실이나 백화점 등에서 이미 실용화되고 있다. 일의 능률을 높이거나 고객을 끌기 위해 천연·인공향료를 설치하고 있는 것. 박승국씨(경희대 교수·식품가공학)는 "방향치료가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돼서는 안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냄새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기분 나쁘게 느껴질 수 있고, 심지어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경우라면 오히려 냄새가 '없는'것이 좋은 환경일지 모른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냄새에 대한 심리적 의학적 연구가 활발하다. 국제 규모의 심리학회에서 냄새 관련 주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모넬연구소(Monell Chemical Senses Center)에서는 여러 분야의 공동작업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냄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냄새의 과학' 기초에서 응용까지 탐구할 과제가 산적한 흥미로운 연구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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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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