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 세계가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호주는 100년 만에 찾아온 가뭄에 시달리고 있고, 그리스는 7월 초 이미 낮 최고 기온이 41℃까지 올라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소위 ‘마른장마’라고 불리는 맑거나 구름만 많이 낀 날씨가 계속되면서 후텁지근한 날씨가 이어졌다.
지구온난화 만큼이나 올 여름 세계를 진땀 흘리게 하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기름값이다. 지난해 배럴당 100달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기름 값이 7월 18일 현재 130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올해 안에 150달러를 넘고 조만간 200달러라는 믿기 어려운 가격까지 이를 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왔다.
전 세계 석유가스 매장량 1/4 북극에 있어
전 세계가 지구온난화와 고유가로 ‘열받는’ 여름을 보내는 가운데 북극권에 영토를 가진 나라들은 즐거움을 감추기 위해 표정관리를 해야 할 지경이다.
지금까지 두꺼운 얼음에 덮여있던 석유와 가스 같은 에너지 자원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에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 자원이 있을까. 현재 북극권에서 석유가스가 대규모로 묻혀있다고 알려진 지역은 알래스카 북부사면, 그린란드 동쪽 연안, 러시아 시베리아, 바렌츠해 연안, 노르웨이 스발바드르 섬 등이다.
2006년 말 미국지질조사국(USGS)에서는 북극해에 1660억 배럴의 막대한 석유·가스자원이 묻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또 지난해 영국의 에너지 컨설팅회사 ‘우드맥킨지’는 2330억 배럴이라고 추정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전 세계 석유·가스 매장량의 20~25%에 이르는 양이다.
석유, 가스뿐만 아니라 망간, 니켈, 구리, 코발트 같은 21세기 정보기술(IT) 산업의 핵심재료인 금속광물도 북극권의 콜라반도, 북시베리아 등지에 세계 최대 규모로 매장돼 있다고 추정된다.
그동안 이런 ‘보물창고’를 두고도 감히 북극해 개발에 나서려는 나라는 없었다. 만년빙과 영하 40℃를 밑도는 혹한 탓에 생산단가가 높았기 때문이다. 북극해의 석유채굴 단가는 멕시코만에 비해 5배 이상 높다.
하지만 최근 지구온난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보물창고’에 접근이 훨씬 쉬워졌다. 우드맥킨지는 지금 같은 속도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될 경우 금세기 말 북극해의 항해 가능 일수가 현재 20~30일에서 120일로 늘어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그만큼 채굴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져 생산비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천정부지로 오르는 국제유가는 북극해 유전에서 생산된 석유가스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치솟는 국제유가가 북극해에 꼭꼭 감춰져 있던 ‘그림의 떡’을 ‘손 안의 떡’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같은 북극권에 영토를 갖고 있는 나라들은 자원을 선점하기 위해 앞다퉈 북극권 탐사와 개발에 나섰다.
가장 활발한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 북쪽 연안 로모노소프 해령 인근에만도 1000억t에 이르는 석유와 가스가 묻혀 있다고 추정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자원 매장량보다 더 큰 규모다. 러시아는 지난해 잠수정을 이용해 이 해령에 대한 전면적인 탐사를 마쳤다. 또 바렌츠해와 카라해 연안에는 러시아의 국영 석유회사인 ‘가스프롬’ 같은 굴지의 석유회사들이 가스 파이프라인을 속속 설치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미국은 환경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래스카 북극지역에서 석유가스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캐나다도 최근 ‘브리티시 페트롤리엄’과 ‘코노코 필립스’ 그리고 ‘MGM 에너지’ 같은 세계적인 원유개발 업체에 북극의 해상광구 3곳에 대한 개발권을 넘겨 본격적인 석유탐사경쟁에 나섰다.
북극 ‘보물창고’ 바라만 봐야 하나
북극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성 없는 개발 전쟁이 북극권 나라들만의 얘기일까. 아니다. 북극권과 거리가 먼 우리나라도 북극지역에 매장된 막대한 자원을 확보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북극지역을 개발하는 데 막대한 비용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북극권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의 기술력과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서캄차카 해상지역에 탐사광구를 확보해 석유자원을 찾고 있으며, 러시아 북극지역 광구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게다가 어느 나라 영토에도 속하지 않은 북극권 주변 지역을 남극과 마찬가지로 세계 공동관리지역으로 설정하려는 국제적인 움직임은 비북극권 국가들에게 더 큰 기대를 준다. 북극 자원에 대한 권리가 북극 개발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배분될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각국은 생산과 개발 과정이 상업화된 석유·가스보다 아직 활용시스템이 완성되지 않은 미래의 에너지 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북극 자원 활용에 공헌도를 높여 나중에 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려는 계획이다.
그 대표적 지하자원이 바로 *가스하이드레이트다. 가스하이드레이트는 석유를 대체할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실제로 연료로 사용할 메탄을 효율적으로 뽑아내는 방법과 그에 대한 경제성 분석이 아직 제시되지 않아 상용화되는 시점이 이르면 10년 뒤다.
일본은 가스하이드레이트에 대한 가능성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이미 첫걸음을 내딛었다. 캐나다 북극지역에서 2002년과 2007년 두 번에 걸쳐 가스하이드레이트 층에서 메탄을 시험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채굴단가를 낮추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지만 북극의 가스하이드레이트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 중요한 결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동해에서 가스하이드레이트를 발견한 우리나라도 2003년부터 북극권에 분포하는 가스하이드레이트에 관심을 가져왔다. 극지연구소는 첫 단계로 러시아, 일본과 함께 오호츠크해에서 국제공동연구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겨울철 전 해역의 80%가 해빙으로 덮이는 오호츠크해는 수심이 100m만 돼도 연중 평균 수온이 0℃ 이하로 떨어져 가스하이드레이트가 존재하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2003년 독일 게오마르 연구소가 발표한 이곳의 가스하이드레이트 추정매장량은 1000~1200억t으로 현재 발표된 우리나라 동해 매장량의 수백 배에 이른다.
우리 연구팀은 2005년 탐사에서 수심 700m 지점에서 두께 40cm의 가스하이드레이트를 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채취했다. 또 수심 385m 지점에서도 채취했는데,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얕은 수심에서 얻은 결과였다. 현재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지 검토 중이다.
2009년 9월 쇄빙선 ‘아라온’이 취항하면 북극 지하자원 연구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아라온에는 가스하이드레이트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첨단해양탐사장비가 여럿 탑재되기 때문이다.
오래 전 석유가스 생산방법을 먼저 개발하고, 유망지역을 선점했던 국가들이 막대한 이익을 가져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던 역사를 기억해보자. 또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오일샌드 같은 자원이 불과 20년 전에 현재의 가스하이드레이트 같은 취급을 받았던 사실을 떠올려 보자. 북극이라는 ‘보물창고’가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가스하이드레이트*
주성분이 메탄이라 ‘메탄하이드레이트’라고도 부른다. 축구공 모양으로 배열한 물 분자가 메탄이나 프로판, 이산화탄소 같은 탄화수소 기체 분자를 하나씩 담고 있다. 지구상에 있는 가스하이드레이트 속 탄화수소 기체의 양은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석유, 가스, 석탄 같은 기존 화석연료를 모두 합한 양의 두 배로 추정된다.
오일샌드*
기름과 섞여 있는 모래. 모래에서 기름을 분리해 정제하는 기술은 이미 1960년대 개발됐지만 경제성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유가가 오르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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