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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바람에 전진하는 요트의 비밀

돛으로 바람 다스리고 선원들은 무게중심 잡는다

“투 미니츠(2 minutes)!”

출발선에 있는 심판 보트에 파란색으로 ‘2’가 적힌 깃발이 오르자 요트 선수(船首)에 서있던 ‘바우맨’이 소리를 질렀다. ‘스키퍼’(skipper, 선장) 피터 길모어는 출발 시각을 맞추기 위해 방향키를 오른쪽으로 휘리릭 돌렸다.

요트 경주는 정지 상태에서 출발하지 않고 속도를 충분히 받아 출발선을 통과하며 시작하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 계산이 중요하다. 길모어 스키퍼의 요트는 이미 출발선 주위를 3차례나 선회하며 각 지점에서 출발선까지 걸리는 시간을 충분히 계산했다.

잠시 뒤 ‘1’이 적힌 깃발이 올랐고, 바우맨은 “30초, 20초, 15초….”를 외쳤다. 바우맨(bowman)은 요트 앞에서 거둔 돛을 수습하는 등 궂은일을 하는 ‘크루’(crew, 승무원)를 뜻한다.

길모어 스키퍼는 출발선을 향해 요트의 방향을 조정했고 요트는 역풍을 유유히 가르며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돛에 ‘RADICH’라고 적힌 덴마크 프로요트 팀의 배도 바로 옆에서 점점 속도를 냈다. ‘뿌웅~!’ 하는 심판선의 신호와 함께 두 요트는 출발선을 힘차게 통과했다.
 

순풍이 불 때^배 뒤쪽에서 순풍이 불면 커다란 돛인 제내커를 올린다. 제내커를 때리는 바람의 힘으로 요트는 빠른 속도로 전진한다.


바람아 멈추지만 말아다오

지난 6월 10일 기자는 ‘2008 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 개막 전날 경기 화성 전곡항에서 벌어진 연습 레이스에 피터 길모어 팀의 요트를 함께 타고 대회 공식 경기정 ‘G-마린호’의 성능을 직접 체험했다. 요트는 파도에 한두 차례 흔들린 것 외에는 거의 요동 없이 파도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하지만 요트 안에서는 길모어 팀의 크루들이 좀 더 속도를 내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균형을 잡기 바빴다.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선장을 포함해 모두 5명.

G-마린호에는 1개의 돛대에 메인세일(main sail), 지브세일(jib sail), 제내커(gennaker) 3개의 돛을 달 수 있다. 항해 중에 메인세일은 늘 펼쳐놓지만 지브세일이나 제내커는 바람에 따라 둘 중 1개만 사용한다. 따라서 요트에는 돛이 항상 2개 펼쳐져 있다. 배 가운데 돛대를 따라 펼쳐진 메인세일은 역풍의 흐름을 원활히 하거나 순풍을 제내커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정작 배가 바람의 힘으로 앞으로 나가는데 주된 역할을 하는 돛은 지브세일이나 제내커다.

이 중 메인세일보다 작고 팽팽한 삼각형의 지브세일은 역풍이 불 때 요트가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한다. 맞바람을 맞으며 출발한 G-마린호도 제내커 대신 지브세일을 활짝 펴고 있었다.

“지브세일 뒤에 있지 마세요!”

함께 탑승한 프로요트선수 김동영 씨가 반대쪽으로 가라고 말했다. 지브세일은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뒤로 흘려보낸다. 그래서 지브세일 뒤에 있으면 바람의 흐름이 막혀 요트의 속도가 줄어든다.

지브세일은 바람이 뒷면 옆에서 들어오게 방향을 맞춘다. 돛의 뒷면 옆으로 들어온 바람은 돛을 앞쪽으로 부풀게 한다. 완만하게 돛이 휘면 돛의 앞뒤를 지나는 공기의 압력이 달라진다. 볼록한 앞쪽은 바람이 지나는 속도가 빨라 기압이 감소하고 반대로 뒤쪽은 높아진다. 따라서 기압이 낮은 앞쪽으로 움직이려는 힘 즉 양력이 생긴다.

비행기가 떠오르거나 회전하는 축구공이 휘는 원리와 같은 셈이다. 다만 바람이 너무 정면에서 오면 돛이 뒤쪽으로 불룩해지기 때문에 이때는 요트의 방향을 좌우로 바꾸며 지그재그로 항해해야 한다. G-마린호는 정면에서 좌우 40˚ 각도의 바람에 전진할 수 있으며 국제 요트기술의 경쟁장인 아메리칸스컵 대회에서는 좌우 30˚ 바람에도 나아가는 요트가 선보이기도 했다. 시속 약 10km 속도로 지그재그로 움직여 반환점에 접근한 뒤 진행방향을 180˚ 바꾸자 앞에서 불던 바람이 뒤에서 부는 순풍으로 변했다.

“호이스트(hoist)!”

돛을 바꾸라는 길모어 스키퍼의 외침에 커다란 제내커가 요트 앞 구멍에서 튀어나와 순식간에 바람을 받아 펄럭였다. 요트 가장 앞에 다는 제내커는 바람의 힘을 그대로 받아 추진력으로 바꾼다. 궂은일을 도맡는 바우맨은 요트 앞에 쪼그려 앉아 걷혀진 지브세일을 바닷물에 젖지 않게 정리했다. 돛이 요트 위에 어지럽게 펼쳐지거나 물이 닿으면 공기저항이 커져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순풍을 받은 요트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 시속 20km 정도에 이르다 어느 순간 느려졌다. 갑자기 요트 안의 크루들이 뒤를 보며 소리를 질렀고 길모어 스키퍼는 방향타를 오른쪽으로 힘차게 돌렸다. 뒤따라오던 덴마크 팀의 요트 때문이었다.

순풍을 받아 항해하는 요트 뒤에 다른 요트가 있으면 그 요트의 제내커 때문에 바람의 흐름이 막힌다. 요트 경기에서는 일부러 다른 요트의 바람을 막는 ‘윈드 블랭킷’(wind blanket)이라는 작전을 사용하기도 한다.

방향을 틀어 무풍지대를 빠져나오자 갑작스런 바람에 요트가 왼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2, 1, 업(up)!”이라고 외쳤다. 신호에 맞춰 기자를 제외한 모든 크루가 불쑥 치솟은 요트의 오른편으로 뛰어갔다. 기울어진 요트의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물에 빠지는 일을 대비해 크루들은 습관적으로 기울어진 반대편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요트 자체가 전복되는 일은 거의 없다. 요트 아래에 수직으로 달린 ‘킬’(keel)이라는 장치 때문이다.
 

역풍이 불 때^배 앞쪽 측면에서 바람이 불면 작은 돛인 지브세일을 올린다. 바람이 비행기 날개를 가르듯 지브세일을 통과하면 양력이 발생한다. 배 옆으로 가는 방향의 힘은 킬의 저항력과 상쇄돼 배가 전진한다.


요트와 오뚝이는 같은 원리

사람의 키보다 긴 킬은 요트가 좌우로 기울 때마다 중심을 유지하며 요트가 쓰러지지 않게 돕는다. 특히 G-마린호는 킬 아래쪽에 납 재질로 된 1.8t의 무거운 추가 달린 ‘벌브킬’(bulb keel)을 사용한다. 비중이 물의 11배가 넘는 납을 쓴 이유는 배가 움직일 때 저항을 최소화하려면 추의 부피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킬이 무거우면 요트 전체의 무게중심이 수면 아래로 낮아진다. 요트가 기울어져도 무게중심이 물속에 잠기기 때문에 낚시찌나 오뚝이처럼 다시 꼿꼿이 선다. 심지어 G-마린호는 120˚가 기울어져 돛이 물에 빠져도 다시 일어선다. 만약 120˚가 넘어간다면? 그때는 요트가 회전하는 관성에 의해 한 바퀴를 회전한 뒤 서게 된다. 다만 이때는 대개 요트에 탄 크루들이 중심을 잃고 바다에 빠지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경기중에 요트가 120˚나 기울려면 태풍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고, 스키퍼가 속도에 대한 욕심을 줄이지 않아 돛을 활짝 폈을 때나 일어납니다. 훌륭한 스키퍼라면 돛을 50~70% 정도만 펴 좌우 요동을 조절할 수 있어요.”

길모어 스키퍼는 “지금 탄 배가 그만큼 기울 일은 없다”면서도 “태풍이 부는 날은 위험하기 때문에 바다에 나가는 사람이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날 항해하는 일이 가장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킬에도 첨단기술이 사용된다. 2003년도 아메리칸스컵 대회에서는 킬에 날개를 달아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저항을 줄이기도 했고, 좌우로 기울어지는 정도에 따라 킬이 움직이며 중심을 잡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유재훈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운송신기술연구사업단장은 “아메리칸스컵 대회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요트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 3~4년 뒤에는 모든 요트가 그 기술을 도입해 성능향상을 꾀한다”며 “2007년 대회에 선보인 기술은 2009년쯤 그 원리가 밝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두를 뺏긴 요트는 쉽사리 덴마크 팀을 따라잡지 못했다. 한 번의 방심이 승패를 결정지은 셈이다. 길모어 스키퍼와 그의 크루들이 추격의지를 불태울 작전을 전개할 때마다 어중간한 위치에 서서 이들의 움직임에 방해가 된 기자의 존재도 패배에 한몫했을 것이다.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였을까. 길모어팀은 6월 11~15일 동안 열린 이번 대회에서 12개 팀 가운데 9위의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몸둘 바를 모르겠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 승무원들은 반대쪽으로 이동해 균형을 잡는다.
 

G-마린호 어떻게 만들어졌나

G-마린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경기용 요트다. 호주의 요트 디자이너 브렛 화이트가 설계하고 국내 업체 암텍이 제작했다. 요트를 제작한 경기도 화성의 암텍 공장을 찾았다. G-마린호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기계가 성형한 부품을 사람이 수작업으로 조립해 만든다. 조립하기 전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작업도 사람의 몫이다.

G-마린호의 선체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무게를 가볍게 하는 샌드위치 공법이 사용됐다. 샌드위치 공법은 가볍고 강도가 높은 탄소섬유나 유리섬유 사이에 가볍고 충격에 강한 발포제나 벌집모양의 구조를 끼워 넣는 방법이다. 요트의 선체는 가벼울수록 물에 잠기는 면적이 작아져 파도의 영향을 덜 받고 수면 위를 날듯이 항해할 수 있다.

돛대와 제내커의 한 쪽 끝을 지탱하는 바우스피릿(bow spirit)은 바람의 힘을 직접 받기 때문에 인장강도가 높으면서도 가벼운 금속을 사용했다. 돛대에는 알루미늄 합금인 두랄루민을, 바우스피릿에는 탄소섬유를 사용했다. 이상홍 암텍 대표는 “최근 고성능 요트는 돛대도 탄소섬유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며 “요트의 성능을 겨루는 아메리칸스컵 대회에서는 가격을 불문하고 고가의 재질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암텍 공장에서 완성된 G-마린호의 선체는 대회가 열리는 전곡항에서 최종 조립이 이뤄졌다. 미리 돛대나 킬을 달면 운반도 힘들고 도중에 파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G-마린호는 해외 유명 요트선수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2008년 현재 세계요트대회 챔피언인 이안 윌리엄스 스키퍼는 G-마린호가 “바다와 바람과 하나가 된 듯 아름답다”고 평가했고, 2004년부터 3년 동안 세계챔피언 자리를 지킨 피터 길모어 스키퍼는 “우리 팀의 조작에 빠르게 반응해 움직이기 쉬웠다”고 말했다.
 

오른쪽 요트의 제내커는 바람을 맞아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반면, 바람이 막힌 왼쪽 요트의 제내커는 힘없이 너풀거린다. 이처럼 바람을 막아 상대방의 속도를 떨어뜨리는‘윈드 블랭킷’은 요트 경기에서 즐겨 쓰는 전술이다.
 

2008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전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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