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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돌아온 뒤 그들은 무얼 할까

한국 최초 우주인, 달탐사 계획에 참여할 예정

“아, 여기가 우주구나! 우주에서 지구를 처음 내려다봤을 때 몸이 얼어붙는 듯 소름이 돋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우주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지난 4월 10일~19일까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실험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지구로 귀환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소연 박사가 4월 28일 한국에 돌아왔다. 우주에서 머무는 동안 우주멀미로 고생했고 착륙 과정에서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는 우주를 ‘사람을 끄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라고 전했다.

평생 견뎌왔던 중력의 굴레를 벗어나 붕붕 날아다니며 지구를 내려다봤던 경험은 여태까지 지구상에서 살았던 그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 우주를 경험한 사람의 수는 세계에 이 박사를 포함해 단 475명. 이 가운데는 우주를 경험한 뒤 우주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또는 자연의 경이로움 때문에 전혀 다른 삶을 산 경우가 많다.

우주를 경험한 한국 최초 우주인은 삶의 방향이 어떻게 바뀔까.
 

이소연 박사(맨 왼쪽)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구로 귀환하기 전 동료들과 찍은 사진.


부통령 후보에 오르거나 농부가 되거나

우주인들은 단 한 차례 우주비행을 한 업적으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다. 그들의 경험 자체가 우주개발의 귀한 자료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우주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우주인 가운데는 이런 인지도를 이용해 정치적 야망을 이룬 사람들이 많다. 1962년 미국 우주인으로서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돌았던 존 글렌은 정치적으로 가장 성공한 우주인이다.

그는 1974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25년 동안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을 4번이나 지냈다. 1976년에는 지미 카터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에 올랐고, 1984년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 경륜을 앞세워 후배 우주인들의 자리를 뺏는 다는 원성에도 불구하고 1998년 77세 나이에 두 번째 우주여행에 나서기도 했다.

체코의 첫 우주인 블라디미르 레메크는 1978년 체코 공산당을 대표해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몽골의 첫 우주인 주그데르데미딘 구락차와 프랑스의 첫 우주인 클로디 에뉴레는 우주에 다녀온 뒤 각각 자국 국방장관과 과학기술부장관 자리까지 올랐다. 이들은 우주에서 ‘권력으로 향하는 표’를 선물 받고 돌아왔지만, 이 표를 반납한 우주인들도 있다. 지구로 돌아온 다음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지쳐 숨거나, 우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내면세계가 완전히 달라져 우주인의 삶을 포기한 경우다.

1969년 달에 최초로 발자국을 남겼던 닐 암스트롱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구에 돌아오자마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우주영웅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2년간 이런 활동을 끝내고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작은 지방대학의 교수가 돼 모든 언론과의 접촉을 피한 채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우주에서 지구의 아름다움에 반해 환경주의자가 된 경우도 있다. 1990년 일본 동경방송(TBS)의 기자 아키야마 도요히로는 구소련의 소유스 TM11호를 타고 미르 우주정거장에 다녀온 뒤 시골로 들어가 농부가 됐다.

1969년 아폴로 12호를 타고 달에 다녀온 앨런 빈은 아름다운 우주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가 됐고, 1971년 아폴로 15호를 타고 달에 갔다 온 제임스 어윈은 “우주에서 신의 섭리를 느꼈다”며 전도사로 변신했다.
 

1962년 미국인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돌았던 존 글렌은 1998년 77세 나이로 두 번째 우주여행에 나섰다.


갑부들의 끝없는 우주여행 도전기

우주를 경험하는 일의 값어치를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그 특별한 경험을 돈을 주고 사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2001년부터 시작된 우주관광 얘기다.

미국의 투자금융사 월셔 어소시에이트의 창업주인 데니스 티토를 시작으로 아누셰 안사리 까지 개인이 여행비를 직접 내고 우주여행을 즐기고 돌아온 민간 우주여행객은 지금까지 5명이다. 이들은 약 200억 원을 러시아에 지불하고 국제우주정거장에서 10일을 보냈다.

티토는 우주여행을 준비하는 데 비용을 해결하는 게 가장 쉬웠다고 밝혔다. 자신이 돈을 버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기도 했지만, 우주여행을 하는 데 돈 말고도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국의 유명 가수 존 덴버는 이미 1980년대에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로 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미국 존슨우주센터에서 건강진단도 받고 구체적인 탑승 계획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가 폭발하는 사고가 나면서 모든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미국의 댄스 그룹 엔싱크의 멤버 랜스 배스는 2002년 23세 나이로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갈 계획을 세우고 가가린우주센터에서 훈련도 받았다. 비용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지불한 뒤 7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해 갚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발사 2개월을 앞두고 후원자들의 모금이 신통치 않아 여행을 포기했다.

갑부들의 우주여행에 대한 도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도 우주여행 경험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우주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6번째 우주관광객이 되는 행운을 거머쥘 사람은 누굴까. 주인공은 1990년대 세계 게이머들을 흥분시켰던 울티마 시리즈 개발자이자 현 엔씨소프트의 북미지역 CEO인 리처드 게리엇이다. 그는 현재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우주적응 훈련을 받고 있다.

NASA 소속 우주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우주를 동경했던 게리엇은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에 갈 계획을 세웠지만 챌린저 폭발 사고로 여의치 않았다. 그는 러시아로 눈을 돌렸고, 올해 10월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소연 박사와 고산 씨는 앞으로 항우연 달탐사 전담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할 예정이다


“노벨상 수상자 나올 환경 만들겠다”

한국 최초 우주인은 우주에 다녀온 뒤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우주인으로 선발되기 전 KAIST 연구원이었던 이소연 박사는 삼성종합기술연구원의 연구원 출신인 예비우주인 고산 씨와 함께 연구자의 삶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 박사와 고 씨는 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 연구원이다. 이들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2년 동안 의무적으로 연구원으로 근무해야 한다. 물론 2년 뒤에는 직업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두 사람은 모두 우주인 사업이 끝난 뒤에도 우리나라 우주개발 계획에 연구자로서 계속 참여할 뜻을 비쳐왔다.

이 박사는 지난 5월 14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연구자뿐만 아니라 ‘우주과학전도사’로서의 임무를 강조했다. 그는 “나의 목표는 노벨상을 타는 게 아니라 노벨상을 탈 만한 친구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며 “우주에 대한 경험을 전하는 일이 그 목표를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씨는 같은 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기자와 만나 “우주를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러시아의 우주기술을 많이 배워왔다”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달 탐사 계획에 그동안 배운 지식과 경험을 최대한 쏟아 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6월 중순 ‘한국 최초 우주인 실험성과발표회’를 열어 이 박사가 우주에서 수행한 실험 결과를 공개하고, 조직을 개편해 달탐사 전담팀을 꾸릴 예정이다. 이 박사와 고 씨는 이 팀에 투신해 연구 활동에 전념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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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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