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주요기사] [SF소설] 망애금

이 콘텐츠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운영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저소득소외계층의 복지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주최한 ‘2024년 제1회 SF숏포머블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중독의 과학적 가능성을 자유롭게 상상한 작품을 즐겨주세요.

  

 

 

 

수영복을 고르다가 네 생각이 났다. 매해 그렇듯이 역대 최고 더위가 찾아온다는 뉴스를 본 후였다. 뉴스와 여름과 더위는 너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릴 적 아버지께 수영을 배웠던 기억이 난 것도, 너와 비슷한 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생뚱맞게, 수영복을 고르다가 ‘남자치곤 손발이 작으니 수영은 잘 못하겠구나’ 하는 식으로 떠오른 너는,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나서야 사라졌다. 방금 떠오른 형상 또한, 수영을 시작하려고 막 결심한 사람의 생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문자가 날아왔다.

 

[망애금 납부 고지서 안내]

 

엄지손가락을 사용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문자를 넘겨 없앴다. 이렇게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될 텐데, 참 부지런하기도 하지. 겸사겸사, 별 이유는 없지만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해? 응. 별일 없지. 아냐, 아냐, 뭐 하나 싶어서. 별일 없으면 나와. 저녁 먹자.”

 

너는 평소처럼, “그래 고기 먹자.”라고 답하면서 추가로 말을 덧붙인다. 그 말에 나는 숨을 ‘흡’ 들이킬 수밖에 없다. 그 숨은, 잠깐의 정적을 거쳐 실소로 터져 나온다.

 

“뭐? 망애금? 너도 낸다고? 언제, 부턴데.”

 

망애금, 짝사랑이라는 감정에 부여하는 돈. ‘사용자의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부당 해고 방지’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도입한 ‘업무능력 평가 데이터 분석 장치’ 때문에 생겼다.

 

무슨 소리냐 하면, 동료 평가가 사라지고 ‘업무능력 평가 데이터 분석 장치’가 내놓은 업무 점수에 따라 실적을 평가해 승진과 보너스를 결정하게 됐는데, 평소 회사 내 엘리트로 불리던 사원 A씨가 업무 점수 미달로 해고 위기에 처하는 이상한 일이 발생해 이슈가 됐다. 그리고, 이 일이 이슈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치 개발자 측에서 내놓은 입장문이,

 

“엘리트 A씨가 해당 측정이 있던 시기에 심각한 짝사랑에 빠진 상태였답니다.”  였다.

 

엘리트 A씨의 처분을 주제로 온갖 말이 돌았다. 성과가 좋은 사원을 ‘짝사랑’ 명목으로 내쫓을 순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편의를 봐주기엔 업무 점수가 너무 낮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 뒤로,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을 제외한 정규직 직장인이 짝사랑을 하면, 일종의 벌금 같은 걸 내게 됐다. 벌금, 벌금치곤 공모전 상금에 부과되는 소득세와 세율이 같은 게 좀 웃기긴 하지만, 이것의 명목이 ‘짝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업무 효율 감소’에 있기 때문에 벌금이라 봐야 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버리는 국가가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 있을까 싶지만, 시스템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벌금을 내는 방법도 다양했다. 하나, 짝사랑을 신고한다. 둘, 벌금을 내거나 주 1회 감정 조절 상담을 받거나 짝사랑 상대에게 마음을 고백하거나.

 

너는 이런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던 나에게 말했었다.

 

“뭐, 이상한 논리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지. 그렇잖아. 물을 돈 주고 사 먹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공기도 사서 쉴 판인데, 감정도 그럴 수 있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으쓱해 보이고 넘어가는 너에게, “아니지, 아니야. 물이나 공기는 소비하는 거잖아. 마치 밥처럼. 감정은 아니지. 그건 내가 생산하는 거라고.”라며 따졌다. 너는 킥킥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나는 찌푸린 얼굴을 펴지 못했다. 너는 들고 있던 커피를 마저 한 모금 마시면서, “소비하고 있는 거지. 시간을. 쓰잘데기 없는 수많은 시간을. 그 감정 하나 느끼기 위해서 많은 걸 희생하잖아.”

 

망애금을 납부하고 있는 나를 놀렸던 너는, 이제 망애금을 납부한다고 말한다.

 

너를 만났다. 너는 코가 막혔는지 어눌한 발음으로 인사하며 날 반겼다. 나는 그게, 네가 울음을 집어삼킨 흔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내 의자를 잡아 빼주며 앞치마를 건네는 너를 향해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욕을 꾹꾹 눌렀다. 나지막하게, “개자식.”, “천하의 나쁜 놈.”, “눈치는 아침 반찬으로 집어먹은 놈.”

 

넌 정말 모른다. 차라리 헷갈리게라도 굴어줬으면 할 때가 있었다.

 

너는 살짝 올라온 술기운에, 내가 앉자마자 킥킥 웃으며 망애금을 화두에 올린다.

 

“짝사랑을 대하는 게, 뭔가 중독자들 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지 않아? 그렇잖아, 신고를 하고, 치료를 시키고, 끊어내려는 시스템이.”

 

너는 두서없이 온갖 중독과 치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불똥은 이상한 곳으로 튀어 조세 제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했던 말을 반복하고, 덧붙이고. 한참을 반복하다가 결국 내뱉는 한 마디.

 

“판단력이 흐려지고, 자제력을 잃고. 뭐 이런 게 지속적으로 유지돼서 일상생활에 지장까지 주는 걸 중독이라 하거든. 사랑을, 짝사랑그래, 맞아. 정말 그렇지.”

 

나는 네게 어떻게 할 거냐 물었다. 그러니까, 상담을 받거나 망애금을 내거나 고백을 하거나의 선택지. 아니나 다를까 너는 이 감정을 그만두려 한다.

 

“고백을 하고 차일래. 차인 후에 깔끔하게 접어 잊어버릴래.”

 

그렇게 놀라운 답변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 감정에 불편을 느끼게 됐다. 너는 홀가분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흘러가듯 내 망애금의 안부를 물었다. 여전하다는 내 한 마디에, 너는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쉽게 설명을 하자면 마시멜로를 집어먹지 않는 사람이야.”

 

너는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핀잔을 줬고, 나는 둘이서 소주만 3병을 넘게 마셨는데 정상적인 대화만 오가는 것도 웃기지 않겠냐며 빈 병을 흔들어 보였다. 우리는 키득거리며 남은 고기를 구웠다.

 

그렇게 헛소리는 아니었다. 마시멜로 실험. 기대가 찬 눈으로 마시멜로를 내 앞에 내려두고는, 사랑스러운 갈색 눈동자로 “자! 뭐라도 해봐!” 하고 말했던 어머니. 어머니의 초승달 모양처럼 휘어진 눈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쌀 마시멜로보다 더 좋았다. 그래서 마시멜로를 집어먹지 않았다. 고인 침을 누르며 해맑게 웃었다. 같은 원리로, 오늘 너와 웃으며 망애금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렵지 않다. 

 

 

 

 

심윤정
2023년 SF 스토리 공모전 청소년 부문 대상과, 제19회 문장 청소년 문학상에서 시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지금은 인스타그램 @o_1713_에서 북스타그램을 올리고 만화를 그린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4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심윤정

🎓️ 진로 추천

  • 기상학·대기과학
  • 천문학
  • 지구과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