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미각교육이 인기다. 편식과 과식, 패스트푸드 과다섭취 등 잘못된 식습관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오감은 물론 인성과 사회성까지 키워준다고 한다. 미각교육의 원조는 역시 요리의 나라 프랑스. 지난해 10월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펼쳐진 생생한 미각교육 현장을 다녀왔다.
좀비 한 명이 발목이 꺾인 채 뚜벅뚜벅 걸어옵니다. 온 몸을 뒤틀며 눈앞까지 온 좀비가, 웬열?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잘게 썰어놓은 오이며 호박을 맛있게 먹고 있어요. 채소 먹는 좀비라니, 너 좀비 맞니?
평소엔 안 먹던 채소를 남김없이
이곳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앙드레지드 초등학교입니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시간쯤 차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아를플레르 마을에 있죠. 이곳에 좀비가 출몰했냐고요? 좀비는 좀비인데 학생들이 연극을 하고 있는 거랍니다.
채소의 맛을 음미하는 미각교육 수업이 시작됐어요. 먼저 10여 명의 아이들이 오이, 호박, 당근, 브로콜리, 붉은 서양무 등 갖가지 채소를 한입에 먹을 수 있게 자릅니다. 그리고 동그란 사발에 종류별로 넣은 뒤 5m쯤 뒤로 물러났어요. 선생님이 “즐겁게 먹어보세요”라고 하자 아이들이 웃고 떠들면서 사발까지 걸어와 채소를 한움큼씩 먹었죠. “슬픈 마음으로 다른 채소를 먹어보세요”라고 하자 코를 훌쩍이며 사발에 손을 넣더군요. 이번에는 “공포 속에서 먹어보세요”라고 하자 장난기 많은 아이가 좀비 흉내를 하며 채소를 먹지 뭐예요.
한 시간가량의 수업이 끝나자 오이나 호박은 이미 바닥났습니다. 남은 채소 역시 아이들이 달라붙어 먹고 있었어요. 마떼오 꼬르띠노(10) 군은 “집에선 바나나만 먹었는데 오늘 채소를 참 많이 먹었어요”라며 “피곤한 표정으로 먹을 때가 가장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수업을 진행한 제니퍼 망기 선생님과 오렐리 비뇨롱 선생님은 “아이들이 채소를 손으로 만져보고 자연스럽게 먹어보면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오늘 수업의 목표”라며 “채소의 맛을 다양한 단어로 표현하면서 표현력과 언어도 함께 배우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전통요리는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유명합니다. 채소나 전통음식을 멀리 하는 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래서 1970년대 중반부터 미각교육이 시작됐는데, 2010년부터는 학교 수업으로도 들어왔답니다. 학교와 전국미각연합이라는 곳에서 함께 진행하는데 10주 동안 매주 한번씩 한 시간가량 수업을 받아요. 오늘처럼 연극을 하면서 평소에 싫어하던 채소를 먹어보거나, 인형극을 하면서 음식을 먹기도 하죠. 이 마을 학생들의 급식을 담당하는 크리스토프 에베르 씨는 “좋은 음식을 골고루 먹게 하는 데 미각교육이 효과가 좋은 것을 보고 시작하게 됐다”면서 “우리 마을에서 매년 250명의 어린이들이 미각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요리는 사랑이다
파리에서 가장 권위있는 요리학교인 페랑디요리학교의 대표 장인인 브누아 니콜라 씨를 만나 ‘요리란 무엇인가’라고 물어봤습니다. 니콜라 장인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재료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답해줬죠. 이런 말도 했어요. “요리는 프랑스 사람에게 최고의 즐거움입니다. 다같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바로 프랑스 문화지요.”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행복을 묻는 질문에 현인은 ‘친구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라’고 말한답니다. 미각교육은 바로 함께 먹는 즐거움과 행복을 제대로 누리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