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내 몸에 흐르는 디지털 파일

악수로 명함 교환, 키스로 하루 지출내역 전송

07:00 나의 분신, 인체통신 ID시스템

“여보! 또 잊고 갈 뻔했잖아요.”

2015년 2월 9일 월요일 아침, 현관을 나서는데 아내가 시계형 ID시스템을 건넨다. ID시스템은 나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ID시스템을 차면 손을 대는 것만으로 나를 확인하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열쇠 대신 손잡이에 손을 대는 것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운전석에 앉으면 자동으로 운전하기 가장 편한 자세를 만들어준다. 회사에 도착하면 보안이 철저한 사무실 문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신분이 확인된다.

자신의 신상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은 시계를 차고 있으면 몸이 열쇠가 되고 보안카드가 된다. 시계에 저장된 정보가 손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다. 구리나 알루미늄처럼 전기가 잘 통하는 금속선을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도 아니고 안테나를 이용해 전파에 신호를 담아 전송하는 방식도 아닌데 어떻게 몸을 통해 전기신호를 주고받을까.

인체통신기술의 원리를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미국 MIT 미디어랩의 토마스 짐머맨 박사다. 그는 1995년 인간의 몸을 통해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원리와 방법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몸을 하나의 도선으로 여겨 몸에 미약한 전기신호를 흘려보낸 뒤 이를 수신하는 센서를 만들었다. 또 몸에 두 개의 전극을 붙이고 전압을 달리하며 이때 변하는 전위차를 측정해 신호를 주고받는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짐머맨 박사는 이 원리를 이용해 인간의 몸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최초의 송수신기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장치는 크기가 매우 컸을 뿐만 아니라 데이터 전송 속도도 60kbps(비트전송률, kilo-bits per second)에 불과했다. 이는 10초에 1번 짧은 음성 정보만을 보낼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그는 손목시계 같은 소형 통신기를 이용해 손가락을 접촉하는 순간 데이터 통신이 이뤄지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인체통신기술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인체통신기술의 원리를 처음 생각해낸 미국 MIT 미디어랩의 토마스 짐머맨 박사.


12:00 악수와 터치로 이뤄지는 계약

“처음 뵙겠습니다. 김철수입니다.”

바이어와 함께 하기로 한 점심 약속. 악수를 하자 그의 전자명함이 내 PDA로 전송됐다. 맛있게 점심식사를 한 뒤 본격적으로 사업 얘기를 시작했다. 프린터에 손을 대자 PDA에 담아온 우리 회사 제품의 홍보자료가 전송돼 바로 출력됐다. PDA에 계약서를 띄우고 서명모드로 바꾼 뒤 서로의 PDA에 손을 대는 것으로 서명을 대신했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며 서로의 계약서를 전송받았다.

언제 어디서나 악수를 하는 동시에 서로의 명함을 PDA로 주고받고 ‘몸을 통해’ 많은 분량의 서류파일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송수신장치의 크기가 작고 전송속도도 빨라야 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체통신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2000년 일본 동경대의 노조무 하치스카 교수가 개발한 인체통신 송수신장치는 크기가 가로세로 각각 5cm에 불과했다. 하지만 데이터 전송률은 여전히 100kbps 정도로 낮았으며 통신 거리도 몸 전체를 포함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3년 일본의 통신회사인 NTT는 *전광(electro-optic)현상을 이용해 크기와 속도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인체통신 모듈을 개발했다. 당시까지 인체통신 장치들이 순수하게 전기 신호의 전달을 통해 데이터 통신을 했다면, 이들은 몸을 통과한 미세한 전기 신호에 의해 굴절률이 크게 변하는 전광크리스털을 이용했다.

인체를 통해 전달된 전기신호를 전광크리스털로 받은 다음, 여기에 레이저를 쏘면 전기신호의 크기에 따라 전광크리스털을 투과하는 빛의 양이 변한다. 이를 광센서로 감지해 송신기에서 보낸 데이터를 식별한다.

NTT는 감도가 뛰어난 크리스털 덕분에 기존 인체통신 장치보다 10배 이상 빠른 10Mbps의 데이터 전송속도를 얻었다. 하지만 이 장치를 바로 상용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값비싼 크리스털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레이저를 쏘는데 전력을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값싸면서도 데이터 전송속도가 빠른 인체통신장치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접근방법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KAIST 유회준 교수팀이 개발한‘인체통신 오디오 헤드셋’. 전선이나 블루투스 장치 없이 MP3플레이어에서 음악을 전송받아 들을 수 있다.


16:00 ‘MP3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다

나른한 오후. 회사의 휴게실에 들렀다. 자판기에는 돈을 넣을 필요가 없다. 음료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자동으로 계산이 된다.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헤드폰을 귀에 꽂고 ‘MP3소파’에 앉았다. 이 소파에 앉으면 몸을 통해 MP3파일이 헤드폰으로 전송돼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음악 파일을 압축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전송해 감상하기 위해서는 1초에 2MB이상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어야 한다. 2007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인체전송시스템은 1초에 2메가비트(Mb)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올해 전송속도를 1초에 10Mb 수준으로 높여 4메가바이트(MB)짜리 MP3 파일을 3.2초에 전송하는 것이 목표다.

손으로 직접 닿지 않고 수 cm 떨어져 있거나 헝겊 같은 절연체를 사이에 두고서도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됐다. 2007년 일본의 통신기기 회사 알프스는 인체통신모듈을 탑재한 휴대전화를 개발했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어 둔 상태에서 휴대전화 안에 저장해둔 MP3파일을 코드가 없는 헤드폰으로 재생해 감상할 수 있다. 알프스는 2009년까지 이 휴대전화의 제품화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18: 00 내 몸을 잘 아는 인체통신 주치의

‘퇴근길에 병원에 들르세요.’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떴다. 회사 정기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나 보다. 어제 삼킨 캡슐형 내시경은 몸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 몸을 통해 휴대전화에 정보를 전달했고, 휴대전화는 이를 자동으로 병원에 전송했다. 심장박동이나 심전도도 같은 방식으로 병원에 전달됐다.

인체통신기술은 하나의 송신기와 수신기 사이에만 정보를 주고받던 수준을 넘어 인간의 몸에서 수십~수백 개 장치가 동시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다중접속네트워크로 진화하고 있다.

이 기술이 정착될 미래에는 인간의 몸에 부착된 작은 센서들이 혈압, 체온, 혈당을 수시로 체크하며 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진단한다. 또 팔이나 다리가 없는 장애인의 경우 뇌파를 측정해 그의 의지를 미리 감지하고 이에 따라 의수나 의족이 적절히 움직일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KAIST 유회준 교수팀은 2007년 베이스 스테이션과 여러 센서들 간의 일대다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인체통신용 송수신 칩을 개발했다. 각 센서는 보내고자 하는 정보를 여러 개의 꾸러미(패킷)로 나눠 정해진 시간 동안 중앙처리장치(베이스 스테이션)로 전송한다.

혈압과 심장 박동, 그리고 뇌파와 혈당을 측정하는 센서가 측정한 데이터를 몸을 통해 베이스 스테이션으로 전송하고 베이스 스테이션은 이 정보를 종합해 사용자의 건강 상태를 진단한다. 그리고 이 결과를 무선 인터넷을 통해 의료기관으로 보내면 의사가 세밀한 검진이 필요한지 판단한다.
 

과학기술부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사업단이 2003년 개발한 캡슐형 내시경‘미로’. 인체통신을 이용해 환자의 허리에 찬 8GB의 메모리에 몸 속을 찍은 영상을 전송한다.


22:00 키스로 전해지는 금전출납부

병원에 들러 상담을 받고 집에 오는 길에 선배를 만나 술을 한잔 했다.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술값을 내가 냈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면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거다.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하는 가벼운 입맞춤은 인사인 동시에 내 하루에 대한 고백이다. 입을 맞춘 동시에 오늘 하루 내가 썼던 돈의 내역이 자동으로 아내가 들고 있는 PDA 가계부 프로그램에 고스란히 전송되기 때문이다.

인체통신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2007년 12월 특허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체통신과 관련된 특허 출원은 2004년까지 한해 1건에서 2005년에는 9건, 2006년에는 25건, 그리고 2007년에는 30건이 넘었을 정도로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 만큼이나 인체통신기술을 응용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를 찾는 일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15년.우리 몸에 더욱 가까워진 통신 기술이 그리는 세상을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즐거워진다.

내 몸에 파일이 흐르면 위험하지 않을까?

최근 개발되고 있는 인체통신장치들은 몸에 직류전류를 직접 흘리는 방식 대신 몸을 사이에 둔 송신기와 수신기 양쪽 끝의 전위차를 측정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이때 몸에 실제로 흐르는 전류는 인체에 위험한 전류 크기(최대 1mA)의 10만 분의 1에 불과한 수준. 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의료연구단체에 의뢰해 인체통신의 안전성을 시험하고 있다.

전광현상*
매질에 전기장을 걸었을 때 매질의 굴절률 같은 광학적 성질이 변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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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도움

    강성원 팀장
  • 도움

    유회준 교수
  • 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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