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어느 날, 몽골 고비사막에서 공룡 뼈에 붙은 마른 흙을 톡톡 털어내던 쭈 싱 박사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중국과학원 척추고동물인류학연구소(IVPP) 쭈 박사는 일본의 한 방송사에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고 있었다. 시청자에게 용각류 공룡의 뼈를 소개하려던 차였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뼈의 생장선이 범상치 않음을 발견했다. ‘이건 용각류 뼈가 아니다. 수각류 공룡의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이렇게 크다니… 이상하다.’ 그는 곧바로 촬영을 중단했다. 연구실로 돌아간 쭈 박사는 공룡 뼈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는 놀라운 결론으로 이어져 2007년 6월 ‘네이처’에 게재됐다.
기간토랩터 등장
쭈 박사는 공룡의 종아리뼈에서 표본을 떼어냈다. 표본의 생장선(뼈의 표면 무늬로 뼈가 자란 흔적)을 연구한 결과 7000만~8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후기 몽고 에를리안(Erlian) 분지에서 살던 공룡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나이는 11살, 무게는 1400kg, 전체 몸길이는 8m, 높이는 3.5m였다. 성인 남자 키보다 2배가 크고 몸무게는 20배 정도 무겁다. 쭈 박사는 “공룡은 보통 7살 때부터 성장이 빨라지며 성체로 자라므로 이 공룡이 완전히 자랐다면 몸집이 더 컸을 것”이라며 “처음 발견했을 때 뒷다리 골격이 거대해 티라노사우루스류 공룡의 뼈가 아닌지 의심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쭈 박사는 이 뼈를 ‘알도둑’이라는 별명을 가진 오비랩터류 공룡의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는 “비록 전체 골격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부리, 척추, 다리, 골반을 관찰한 결과 이 공룡은 이빨이 없는 부리를 가졌고, 다리뼈가 길며 꼬리가 짧아 오비랩터류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이는 오비랩터과에 속하는 공룡만이 갖는 특징이다. 쭈 박사는 ‘거대한 약탈자’라는 의미인 ‘Gigantoraptor’를 속명으로, 에를리안 분지의 이름을 따 ‘erlianensis’를 종소명으로 정했다. ‘기간토랩터 에를리아넨시스’(Gigantoraptor erlianensis)라는 이름의 탄생 배경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이제까지 알려진 오비랩터류 공룡은 큰 것이 몸길이가 2.5m이고 몸무게는 40kg 정도로 작은 종류라는 의견이 정설이었다. 기간토랩터를 발견하기 전까지 가장 몸집이 큰 오비랩터로 통했던 시티파티(Citipati)도 몸길이가 3m일 정도로 작은 편이었다. 그런데 새로 발견한 기간토랩터는 카우딥테릭스(Caudipteryx)나 프로트아카에오테릭스(Protarchaeopteryx)와 같은 오비랩터류 공룡들보다 몸길이는 3배 이상 길고, 몸무게는 300배 이상, 시티파티보다는 30배가 무겁다.
몸집이 작은 편인 오비랩터류는 공룡들 가운데에서도 새와 가장 가까운 종류로 알려져 있다. 영국 대표 공룡학자 마이클 벤튼 박사는 자신의 저서 ‘척추고동물학’에서 “새와 가장 가까운 공룡은 오비랩터류”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비랩터류 공룡을 조류강(Class Aves)으로 분류했다.
오비랩터류 공룡의 전형적인 특징은 이빨이 없는 부리, 짧은 꼬리, 긴 목, 구멍이 많아 가벼운 두개골 등이다. 오비랩터 공룡은 날지 못하는 새인 타조나 에뮤와 관계가 깊다는 주장도 있다. 타조나 에뮤는 늘씬한 다리가 특징이다. 기간토랩터도 몸집이 같은 다른 공룡에 비해 다리가 날씬하고 긴 편이다. 오비랩터류 공룡 가운데 머리 위로 볏(crest)을 가진 종류도 있는데, 이는 날개가 퇴화하고 목 부분이 붉은 현생조류인 화식조류(cassowary)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기간토랩터가 이제까지 발견된 화석 가운데 가장 거대한 깃털 달린 공룡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쭈 박사는 기간토랩터의 깃털이나 깃털구멍 화석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간토랩터가 오비랩터에 속한다는 사실이 맞다면, 카우딥테릭스(Caudipteryx)나 프로트아카에오테릭스(Protarchaeopteryx) 같은 오비랩터류 공룡들이 깃털을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기간토랩터도 당연히 깃털을 가졌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했다. 기간토랩터는 현재까지 깃털 흔적을 가진 공룡 가운데 가장 거대한 베이피아오사우루스(Beipiaosaurus)보다 16배나 무겁다.
다른 오비랩터류 공룡들과 달리 기간토랩터는 몸통에 비해 뒷다리가 길어 빨리 움직일 수 있다.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더 민첩했을 것이다. 형태학적으로 움직임이 빠르고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어 포식활동이 가능하다. 발톱도 커서 주로 사냥을 해서 먹이를 잡는 육식성일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쭈 박사는 “몸집이 비슷한 다른 수각류 공룡들과 비교하면, 기간토랩터는 더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먹는 잡식성일 가능성이 우세하다는 말이다. 오비랩터 또한 육류와 식물류를 골고루 먹는 잡식성이었다.
부리를 가진 점을 비롯해 기간토랩터의 생김새와 형태학적 특징은 타조류와 비슷하다. 타조류(flightless bird)는 땅 위를 걸으면서 닥치는 대로 먹는 잡식성이다. 그러므로 기간토랩터도 타조와 비슷한 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오비랩터류인 카우딥테릭스의 위에서 위석이 발견된 적이 있다. 침엽수처럼 거친 먹이를 소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위석은 공룡이 식물을 먹었다는 증거다. 따라서 기간토랩터도 잡식성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혼돈 속에 빠진 공룡학자
새와 비슷한 부리와 깃털을 가진 ‘초대형’ 공룡이 중생대 백악기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깃털달린 공룡들은 체구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기간토랩터의 발견은 공룡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혼돈을 안겨줬다. 몸집이 거대한 깃털 달린 공룡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 발견한 기간토랩터는 공룡이 새로 진화하면서 몸집이 작아졌다는 기존 이론을 위협하고 있다. 아직 공룡이 새로 진화한 과정의 비밀이 풀리지 않았지만, 공룡의 몸집이 작아지면서 새로 진화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전망이다.
*용각류
체격이 크고 네 다리로 걷는 초식 또는 잡식성 공룡.
*수각류
두 발로 걷는 육식성 공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