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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생로병사 마스터키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은 물론 당뇨, 비만에도 관여

“미토콘드리아는 인간으로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수억 년 전부터 존재하면서 언젠가 자신이 세상을 지배하기를 간절히 고대해왔다. (중략)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일본의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일하는 한 박사의 아내인 기요미의 몸을 숙주로 삼아 온 세상에 자신을 퍼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일본 도호쿠대 약학연구과 출신 SF작가 세나 히데아키의 소설 ‘파라사이트 이브’의 한 부분이다. 독자적인 DNA를 가진 미토콘드리아가 자기의지를 가지며 숙주(인간)를 지배한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SF소설 같아 보인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는 실제로 독자적인 생물체로 존재했다. 그러던 중 핵을 가진 세포 안으로 들어와 공생을 시작해 현재 세포 소기관이 된 인간의 동반자다. 최근 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가 세력을 키워 인간의 세포, 더 나아가 생로병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게임‘파라사이트 이브’의 주인공. 미토콘드리아는 주인공의 몸 속에 서식하며 숙주를 조종한다.


핵에 뒤지지 않는 세포 세계 1인자

생물체의 핵심은 DNA다. 세포에서 DNA를 가진 소기관은 핵과 미토콘드리아 두 곳뿐이다. DNA가 생명의 비밀을 품은 유전물질이라는 점에서 두 소기관이 세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그런데 지금까지 핵 속 DNA에 비해 미토콘드리아 DNA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미토콘드리아 DNA가 핵 DNA의 1%밖에 되지 않는 극히 적은 양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핵 DNA 30억 개의 염기쌍 가운데 오직 10%만이 정보를 담고 있는 반면 미토콘드리아 DNA는 90% 이상이 정보를 담고 있다. 물론 핵 속 DNA의 정보가 훨씬 많지만 미토콘드리아 DNA를 무시할 정도는 아니란 말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든다. 이 때문에 미토콘드리아가 고장 나면 세포는 에너지가 부족해 죽음에 이른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의 생사(生死)를 결정짓는 셈이다. 미토콘드리아를 핵에 뒤지지 않는 ‘세포 세계 1인자’로 부르는 이유다.
 

생로병사 마스터키
 

질병 블랙박스

 

전설적인 헤비급 권투 챔피언인 미국의 무하마드 알리(왼쪽).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고 불릴 만큼 건강한 그였지만 미토콘드리아에 활성산소가 많이 생겨 뇌신경세포가 파괴되는 파킨슨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얼마 전 미토콘드리아 희귀병을 앓고 있는 10개월 된 갓난아기 ‘유정’이에게 온정을 베푸는 손길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유정이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고장 나 몸속에서 에너지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 음식을 삼키는데 필요한 근육이 약해지는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을 앓고 있다. 게다가 소화기관에서 우유나 분유를 흡수할 수 없어 유정이는 평생 모유만 먹어야 한다. 유정이의 엄마인 최미애 씨는 평생 유정이에게 먹일 모유를 찾아다녀야 할 처지다. 핵 속 DNA가 정상이던 유정이를 두고 병의 원인을 못 찾던 의료진은 유정이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했고, 결국 그곳에 돌연변이가 생겼음을 발견했다.

최근 의사들은 질병의 원인을 핵에서만 찾는 것에서 벗어나 미토콘드리아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미토콘드리아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이 129개 정도 알려져 있다.

헌팅턴병과 파킨슨병이 미토콘드리아와 관련된 대표적인 질환이다. 대뇌가 쭈그러드는 헌팅턴병은 이제까지 핵 속 4번 염색체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정신과 러셀 마골리스 박사팀은 2002년 헌팅턴병 발병자 가운데 10만명당 10~15명은 핵 속 DNA가 정상이어도 미토콘드리아 DNA의 이상으로 병이 생길 수 있음을 밝혔다.

존스홉킨스의대 세포공학과 테드 도손 박사팀은 헤비급 권투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영화배우 캐서린 헵번을 통해 널리 알려진 파킨슨병이 미토콘드리아에 활성산소가 많이 생겨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 ‘사이언스’ 2003년 10월호에 발표했다. 당시 파킨슨병은 뇌신경세포가 파괴돼 발생할 것이라는 추측은 있었지만 질병 메커니즘이 구체적으로 증명된 사례는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연구결과는 주목받았다.

세포에 치명적인 활성산소는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를 만들면서 생기는 부산물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서 에너지를 만들어 생명을 유지시키는 기관이지만, 반대로 에너지를 만들 때 생기는 부산물로 세포에 악영향을 주는 셈이다. 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불완전하거나 영양분을 과다하게 섭취했을 땐 에너지 생산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져 몸에 해로운 활성산소가 생긴다.

산소는 호흡에 사용된 뒤 체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보통 2~3분이지만 활성산소는 수천만 분의 1초로 아주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성이 강한 활성산소는 세포막과 단백질을 공격해 세포 고유의 기능을 없앤다. 최악의 경우 세포기관을 파괴하기도 하고 세포의 유전자를 공격해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과정도 막는다.

미토콘드리아 질환은 당뇨나 비만 같은 대사질환과 노화 같이 인간이라면 반드시 겪는 자연적인 과정과도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미토콘드리아 DNA의 유형에 따라 당뇨나 비만에 걸릴 확률이 다르다. 서울대 의대 이홍규 교수팀은 DNA가 N9a형인 미토콘드리아를 가진 사람은 세포 내 불필요한 영양소까지 모두 태워버리기 때문에 대사질환에 걸릴 비율이 낮다는 사실을 밝혀 미국인간유전학회지 2007년 3월호에 발표했다. 선천적으로 영양소를 잘 소비하느냐가 미토콘드리아에 의해 좌우된다는 뜻이다. 이로써 미토콘드리아 DNA만 해독하면 당뇨와 비만에 노출될 위험도 알아낼 수 있게 됐다.
 

0102미토콘드리아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사진. 늙어 기능이 떨어지고 끝부분이 터진 듯 보이는 미토콘드리아(01)와 달리 동그란 미토콘드리아(빨간 원)는 활발히 작용하고 있다(02).


당뇨나 비만에 걸릴 가능성도 결정?
 

01일본 나고야현에 사는 100세 쌍둥이. 이들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수명을 연장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가 들수록 복부 비만이 심해지는 것도 미토콘드리아의 대사율이 떨어지면서 림프관이 풍부하게 분포한 상체부위에 지방이 많이 쌓이기 때문이다. 고막 주변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수가 줄면 새로운 세포는 생기지 않고 오래된 세포만 쌓인다. 그 결과 고막이 두꺼워져 고음이나 고주파를 못 듣는 노인성 난청이 된다. 미토콘드리아가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도 미토콘드리아의 기능감퇴로 인한 노화를 피할 수 없다. 노화는 곧 장수와 연결되는데, 장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들과 다른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일본 기푸 생명공학연구소 유전자치료과 타나카 마사시 교수팀은 장수촌에 사는 100세 이상의 일본인은 공통적으로 미토콘드리아 DNA만이 만들 수 있는 아미노산을 몇 가지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2004년 신경학 저널에 발표했다.

 

특히 일반인과 장수인은 미토콘드리아 내부에서 산화환원작용이 일어나는데 관여하는 단백질인 시토크롬b에 차이가 있었다. 미토콘드리아에 장수와 관련된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질병 유발의 핵심 키지만 동시에 질병 해결의 핵심 키이기도 하다. 미토콘드리아를 최대한 오랫동안 건강하게 유지시키면 무병장수의 꿈이 허구는 아니라는 말이다.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를 잘 만들어 에너지 대사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돕고, 활성산소를 최대한 적게 만들어 세포 독성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면 무병장수에 한 발짝 다가설 것이다.
 

02미토콘드리아 DNA가 N9a형인 사람은 세포가 01 에너지를 소비하는 능력이 탁월해 비만일 확률이 낮다.


미토콘드리아가 건강해야 세포가 산다?

지난 2월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성 시스템을 보조하는 물질이 발견됐다. 프랑스 유전학 분자세포연구소의 노한 오웨릭스 박사팀은 포도주의 성분 가운데 하나인 레스베라트롤이 쥐의 에너지 생성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보조하며, 이 성분을 섭취한 쥐가 건강하게 살고 있음을 밝혀 생명과학 학술지인 ‘셀’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또 체중 1kg당 400mg의 레스베라트롤을 투여한 쥐의 지구력을 측정한 결과 정상 식사를 한 쥐에 비해 2배 가까이 오래 쳇바퀴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레스베라트롤이 뜀뛰기에 필요한 근육의 피로를 절반 가까이 줄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미토콘드리아가 건강한 신체를 만들 수 있는 근거인 셈이다.

한편 활성산소를 줄여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향상시켜준다는 식품인 ‘코큐텐’이 개발돼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미토콘드리아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연구를 시작한지 채 2년도 안 돼 거둔 성과다. 앞으로는 비타민 같은 ‘알약’ 하나로 미토콘드리아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SF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1999년)의 제다이 스승 콰이곤 진은 어린 영웅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제다이 기사들이 가진 초자연적인 힘의 원천은 바로 모든 살아있는 세포 속에 들어있는 ‘Midi-chlorians’(미토콘드리아)다.”

흑검사 다스 시디어스와 다스 몰과 같은 악의 존재로부터 은하계를 구해낼 강력한 힘과 지혜의 원천이 바로 미토콘드리아라는 뜻이다. 은하계 속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영화‘스타워즈’에는 제다이 기사들이 용감하게 싸우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미토콘드리아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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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한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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