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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DNA나 RNA를 유전체로 가진다. 바이러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런 유전체를 복제해 증식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유전체를 복제하는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국의 생화학자 프랜시스 크릭이 유전정보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1958년 제안한 중심원리(central dogma)를 이해해야 한다. 


중심원리는 DNA가 전사(transcription)를 통해 전령RNA(mRNA)를 만들고, mRNA가 번역(translation)돼 단백질을 합성하는 방향으로 유전정보가 전달된다는 것이다. 중심원리는 오늘날에도 분자생물학의 근본 원리로 여겨진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여기에 몇 가지 내용을 추가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크릭이 제안한 중심원리만으로는 바이러스의 유전체 복제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DNA를 유전체로 가진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에 들어가 숙주세포의 중합효소를 이용해 RNA를 만든다. DNA에서 RNA를 만드는 중합효소는 대부분의 숙주세포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RNA를 기반으로 하는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의 중합효소를 이용하지 못한다. RNA를 기반으로 RNA를 합성하는 중합효소인 ‘RdRP(RNA dependent RNA polymerase)’가 필요하다. 


바이러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RdRP를 숙주세포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RNA를 복제하거나, 양성 가닥 RNA를 가진 바이러스는 자신의 RNA를 mRNA처럼 사용해 최우선으로 RdRP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유발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가 이런 전략을 사용한다. 


복제된 RNA는 번역 과정을 통해 곧바로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다. 중심원리에서 DNA가 mRNA를 만드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에볼라바이러스 등 최근 50년간 인간을 감염시킨 바이러스의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복제하는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다. 


크릭이 제안한 중심원리와 정반대로 RNA에서 역방향으로 DNA를 만들어내는 바이러스도 있다.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가 속한 레트로 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을 유발하는 HIV는 단일가닥의 RNA지만 바로 단백질을 만들어내지 않고 본인이 가진 역전사효소(reverse-transcriptase)를 이용해 먼저 이중가닥의 DNA를 만든다. 


그리고 이런 이중가닥 DNA를 숙주 세포의 DNA에 끼워 넣는다. 


숙주세포가 세포분열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바이러스의 유전체도 복제된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돌보게 하는 뻐꾸기의 전략과 유사하다. 


유전체가 충분히 복제되면 바이러스는 ‘DNA 가위’인 제거효소 (excisionase)로 유전체 부분을 잘라 자신의 유전체를 회수한다.


이때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유전체를 잘라낼 때 앞뒤로 숙주세포의 유전자가 딸려 나오기도 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유전자를 일부 품은 바이러스가 증식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면, 이 유전체가 다시 다른 사람의 세포에 삽입될 수 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수평적 유전자 이동(lateral gene transfer)이 바이러스를 통해 일어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자손에게 수직적으로만 전달할 수 있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은 미생물에서만 관찰되는 특징이다. 하지만 HIV는 자신의 유전자를 숙주 세포에 넣거나 뺄 수 있고 숙주 간 유전자 이동도 가능케 한다. 


실제로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종양유전자(oncogene) 중 MYC, RAS 유전자는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전체 복제 과정에서 바이러스는 수없이 돌연변이를 생산한다. 돌연변이는 바이러스의 가장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보통은 이중가닥으로 이뤄진 DNA 바이러스보다 단일가닥을 가진 RNA 바이러스가 복제 시 오류 가능성이 높아 돌연변이도 더 잘 일으킨다. 


이중가닥 DNA는 복제 중에 다른 염기서열이 붙는 오류가 발생해도, 이에 상보적인 반대쪽 DNA 염기서열을 기반으로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이를 DNA 복구 기작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유전자를 복제할 때 염기서열 100만 개에 1개 꼴로 오류가 발생하지만, DNA 복구 기작으로 교정하면 오류가 10억 개당 1개로 줄어든다.


그런데 RNA 바이러스는 보통 오류를 수정하는 기작이 없다. 코로나19의 원인인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만 특이하게도 잘못 결합한 RNA 염기를 복구할 수 있는 교정(proofreading) 기능이 있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가 일반적인 RNA 바이러스에 비해서는 돌연변이가 적은 편이라는 뜻이다. 
돌연변이가 많은 바이러스를 꼽자면 단연 인플루엔자바이러스다. 이유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유전체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의 긴 유전체를 가진 보통의 바이러스와 달리,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유전체가 8개로 분절돼 있다. 이는 다양한 아형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서로 완전히 다른 A와 B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동시에 하나의 숙주세포에 감염됐다고 가정해 보자. A 바이러스의 유전체 분절(a1~ a8)과 B 바이러스의 유전체 분절(b1~ b8)이 동시에 숙주세포 안에서 복제를 시작하며 서로 섞이게 된다. 


이때 이론적으로는 256(28)가지의 아형 바이러스가 탄생할 수 있다. 


실제로 가장 독성이 강한 인플루엔자바이러스 A종은 198가지의 아형 바이러스가 존재한다.유전체 복제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바이러스마다 다르다. 속도는 ‘tMRCA(time to most recent common ancestor)’라는 계산법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계통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조상이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계산하는 방법이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변이가 가장 빠른 바이러스는 HIV와 C형 간염바이러스로 추정된다. 


바이러스 고유의 돌연변이 발생 속도를 계산하면 바이러스 균주가 언제 분리됐는지 예측할 수 있고, 시간을 거슬러 언제 처음 감염이 시작됐는지도 알 수 있다.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많이 만들어 내도록 진화한 이유는 유전적 다양성이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종이 다양할수록 가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고 결과적으로 종을 보존할 수 있다. 
비교적 간단한 구조를 가진 바이러스는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충 많이’ 만드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중 살아남는 바이러스만이 전파될 것이다. 그야말로 적자생존의 세계다. 대표적인 예로 헤르페스바이러스는 만들어지는 자손의 50%가 복제가 불가능한 결손바이러스다. 복잡하고 정교한 유전체 복제 과정을 거치는 다른 생물과 정반대의 전략을 구사하는 셈이다.

 

202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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