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형우는 작년에 산 휴대전화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DMB폰이나 MP3폰에 비해 자신의 휴대전화는 초라해 보인다. 그렇다고 고장도 나지 않은 멀쩡한 휴대전화를 1년 만에 바꿔달라기에는 왠지 부모님의 눈치가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형우는 번호이동고객에게 최신 DMB폰을 무료로 준다는 가입자 모집광고를 봤다. 번호이동이란 현재 번호를 그대로 유지하며 사업자만 바꾸는 경우를 말한다.
이제 대학을 막 졸업하고 이동통신회사에 입사한 회사원 A씨. A씨가 일하게 된 마케팅팀은 지금 중요한 보고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고객이 어떤 이유로 번호이동을 했는지, 회사의 마케팅이 효과적이었는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번호이동자 수는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해야 한다.
번호이동자는 무엇에 끌릴까
일단 A씨는 통계 방법을 이용해 수리모형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분기별 번호이동가입자 수와 여러 변수 간의 관계를 규명할 모형을 수립하는 데 목표를 뒀다. A씨는 우선 마케팅팀 선배들의 경험담을 듣고서 예비모형을 세웠다.
번호이동성이 도입된 초기부터 마케팅팀에 있던 한 선배는 그간의 경험으로 봐서 고객이 저렴한 요금보다는 최신 휴대전화를 공짜 또는 싼 가격에 구입하려고 번호이동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동통신사 사이에 요금제도나 광고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선배도 6개월 전에 실시한 고객 설문조사자료를 가져다주며 휴대전화 보조금이야 말로 매력적인 가입자 유치 수단이라고 말했다. 또 어떤 선배는 이전에 번호이동으로 이탈한 가입자가 많으면 경각심을 갖고 분발해 번호이동고객을 더 많이 유치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A씨는 마케팅이론을 참고해 광고와 이동전화 요금지수도 예비모형에 추가했다.
이동전화 시장은 파이 나눠먹기
여러 사람의 이야기로 수리모형에 들어가야 할 변수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갖게 된 A씨. 번호이동성제도가 도입된 2004년 1분기부터 최근 2006년 2분기까지 SK텔레콤, KTF, LG텔레콤 3사로 각각 번호이동한 가입자 수, 이동통신 3사의 가입자확보비용과 광고비용, 분기별 요금, 분기별 번호이동으로 이탈한 인원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자료를 수집했으니 이제 여러 가지 변수에 따른 번호이동자 수의 그래프를 유심히 관찰할 단계다. A씨는 2004년 2분기에 KTF로 이동한 가입자가 40만명을 넘어섰다가 2004년 3분기와 4분기에는 주춤했고 LG텔레콤에 번호이동성이 적용된 2005년 1분기에는 KTF와 SK텔레콤으로 번호이동한 가입자가 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A씨는 번호이동성제도가 적용된 시점을 전후해 이동통신사 별 번호이동자 수가 어떻게 변했는지 나타내는 변수를 모형에 추가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이동전화 시장은 일정한 크기의 파이를 3개의 이동통신사가 나눠먹는 구조다.
전체 인구의 85%가 휴대전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휴대전화 시장은 거의 포화 상태다. 게다가 이 시장에서 경쟁을 하는 업체가 SK텔레콤, KTF, LG텔레콤 3사로 압축되니 과점 시장인 셈이다.
즉 SK텔레콤으로 이동해온 고객은 KTF나 LG텔레콤에서 이탈한 고객 수이기 때문에 각 이동통신사의 번호이동자 수가 상호작용을 하며 움직인다.
이제는 휴대전화 보조금이나 광고비용, 요금 등의 변수와 번호이동 가입자 수의 관계를 나타내는 ‘번호이동을 통한 가입자 수 = 상수1 + 상수2×가입자확보비용 + 상수3×광고비용 +…’와 같은 모형을 만들었다. 이런 식을 특별히 ‘선형회귀모형’이라고 하는데, 이 식을 이용하면 미래에 대한 예측과 함께 각 변수가 번호이동 가입자 수에 미치는 영향까지 구체적으로 파악해 이를 경쟁사와 비교할 수도 있다.
결론은 휴대전화 보조금
이제 모형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분석하면 선형회귀모형의 상수1, 상수2와 같은 값을 구할 수 있다. 이 상수는 여러 가지 변수가 번호이동 가입자 수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상수가 양의 값이면 긍정적인 영향을, 음의 값이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각 통신사가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같은 비용을 지출해 얻은 성과는 과연 동일한가. 예를 들어 SK텔레콤과 KTF, LG텔레콤이 가입자를 모으기 위해 모두 1억 원을 쓴다면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분석에 따르면 ‘가입자확보비용’이라는 변수에 붙은 상수2는 사업자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즉 어느 사업자든 1억원의 가입자 유치 비용에 대한 결과는 비슷하게 나타났다.
광고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마케팅 이론에 따르면 광고는 일반적으로 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번호이동자의 경우 광고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기업의 광고가 번호이동을 주내용으로 하지 않은 탓이다.
고객이 번호이동을 하는 주된 이유는 선배 말대로 공짜로 주는 최신 휴대전화 때문이었다. 이동통신사마다 비슷한 요금제도는 차별화 요인이 될 수 없었던 반면, 신제품을 좋아하는 소비자에게 최신 휴대전화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번호이동을 유인할 좋은 전략인 셈이다.
이와 같은 분석으로 A씨는 마케팅팀의 보고서를 완성했다. 나아가 번호이동성제도를 활용한 가입자 유치 전략도 제시할 수 있었다. 번호이동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광고나 새로운 요금제보다 휴대전화 보조금에 더 치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번호이동자 수는 어떻게 변할까. 왼쪽 첫번째 그래프를 보면 마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기별 번호이동자 수가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는 무리다. 왜냐하면 이 그래프에서는 번호이동성제도가 도입된 시점만이 변수로 작용하므로 단말기 보조금이나 광고비용 등 다른 변수에 의한 영향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변수를 고려해 봤을 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매 분기 번호이동자 수는 증가하나 그 증가 속도는 점차 둔화된다. 이대로라면 번호이동자 수가 폭발적이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게 아니라 미래 어느 시점에서는 안정 단계에 접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