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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엔 메시도 이긴다

인공지능 로봇들의 축구대전 브라질 로보컵



로봇축구대전 ‘로보컵(RoboCup)’이 열린 7월 23일 오후 브라질 주앙페소아. 키즈 리그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인 국민대 로봇축구 팀 ‘쿠도스(KUDOS)’는 이미 최후까지 몰려 있었다. 22일 오전 열린 첫 시합의 상대는 인도네시아. 대수롭지 않게 판단했지만 의외로 실력이 좋았다. 0대 1로 패배. 절치부심해 전략을 다시 짰다. 다음 상대는 막강한 기술을 자랑하는 독일팀. 최선을 다한 결과 0대 0으로 비기는 데 성공했다. 이제 패자부활전만 남았다.

오늘의 상대는 호주의 누봇(Nubot) 팀. 고전을 예상했지만 상대팀은 생각보다 기술이 떨어졌다. 로봇의 발걸음도 불안했다. 하지만 아쉽게 무승부. 결국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리기로 했다. 여기서 이기면 16강 진출. 휘슬이 울리고, 한국 로봇이 달려나가 강슛을 했다. 하지만 공은 아슬아슬하게 골대 옆으로 비켜 나갔다. 이어서 몇 번이나 이어진 헛발질. 결국 승부는 2대 0 한국팀의 패배로 아쉽게 끝났다.

➊ 로봇축구 ‘키즈 사이즈 리그’의 시합장면. 키 90cm 이하 작은 로봇들이 시합을 벌인다.

로보컵은 바퀴를 이용해 공을 밀고 가는, 전통적인(?) 리그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어덜트 사이즈 리그의 시합모습. 1대 1로 시합을 벌인다. 한 대가 골키퍼를 보면, 다른 한 대가 가상의 수비수(기둥) 사이로 공을 몰고 와 슛을 한다. 넘어질 것에 대비해 사람이 뒤에 서 있을 수 있다.
2014 브라질 로보컵 개막식 장면.


“2050년엔 인간과 시합해 이기겠다”

흔히 ‘로봇축구’라고 하면 1999년 방영된 드라마 ‘카이스트’를 떠올린다. 이 드라마에선 전기모터가 들어있는 네모난 상자에 바퀴가 붙어 있는 단순한 로봇이 등장한다. 상자로봇들은 공을 머리로 밀고 다니며 골대로 우겨 넣는 방식으로 축구 시합을 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로봇 축구는 사람처럼 두 다리로 드리볼과 패스, 슈팅을 하는 진짜 ‘로봇 축구’로 발전했다. 이런 로봇들의 축구 대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권위 있는 대회가 ‘로보컵’이다.

로보컵은 1997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세계 각국에서 열리고 있다. 비슷한 대회로 ‘피라컵(FiraCup)’이 있지만 인지도는 로보컵이 더 높다. 레고, 오라클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이 후원하고 있고 세계 로봇공학자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하면서 로봇 기술의 각축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올해 로보컵은 ‘월드컵 개최국에서 연이어 로봇시합도 진행해 보자’는 취지로 브라질에서 7월 21일부터 일주일간 열렸다.

로보컵이 명성을 얻기 시작한 건 2002년 인간처럼 두 발로 공을 차는 휴머노이드 리그가 생긴 다음부터다. 휴머노이드 리그는 로봇 크기에 따라 세부 리그가 결정된다. 키 130~180cm로 성인 크기의 로봇은 ‘어덜트 사이즈 리그’, 80~140cm 로봇은 ‘틴에이지 사이즈 리그’, 그리고 40~90cm의 소형 로봇은 ‘키즈 사이즈 리그’에 출전한다. ‘스탠더드 리그’도 있는데, 대회 본부에서 지정한 키 60cm의 표준 로봇 ‘나오(NAO)’를 써야 하며 참가팀은 제어 프로그램만 자유롭게 짤 수 있다. 이 밖에 바퀴로봇을 쓰는 리그도 있다. 로보컵 조직위원회는 2050년 이전에는 로봇으로 구성된 축구팀으로 진짜 월드컵 우승팀과 시합해 승리하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로보컵 휴머노이드 리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팀은 세계적 명품브랜드 ‘루이비통’에서 제작한 트로피를 준다. 로봇과학자들에겐 대단한 영광이다.


키 90cm 이하 ‘키즈 리그’ 인기

여러 리그 중에는 어덜트 리그의 난이도가 가장 높다. 가장 무거운 만큼 출력이 훨씬 높은 구동장치가 필요하다. 키가 클수록 잘 넘어지기 때문에 제어하기도 까다롭다. 조그만 로봇은 넘어져도 그대로 일어나면 되지만 무겁고 큰 로봇은 파손 위험성도 높다. 로봇 제작비가 한 대에 수억 원에 달할 만큼 비싼 것도 걸림돌이다.

그래서 어덜트 리그는 1대 1 승부차기에 가까운 시합을 벌인다. 한 대가 골키퍼를 맡으면, 상대팀 로봇이 혼자 공을 몰고 가 슛을 하는 식이다. 수비수 대신 기둥 2개를 세워 놓는 게 전부다. 틴에이지 리그는 2대 2로 시합을 벌인다. 어덜트 리그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로봇이 잘 넘어져 게임진행도 더디다.

최고 인기를 얻고 있는 건 키즈 리그다. 로봇이 작고 안정적이라서 패스, 슛, 드리블 같은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월드컵처럼 조별로 경기를 펼친 뒤 8강부터 토너먼트로 진행한다. 시합시간은 전·후반 15분씩인데 한 시합에서 5골 이상이 나오기도 한다.

올해 로보컵 키즈 리그에 참가한 우리나라 팀은 조백규 국민대 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가 이끄는 쿠도스가 유일했다. 쿠도스는 지난해에도 출전해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며, 올해는 로봇을 한층 업그레이드 해 새롭게 도전했으나 16강 진출에 아쉽게 실패했다.

최근엔 어덜트 리그도 주목받고 있다. 인간형 크기라는 점에서 기술적 상징성이 있는 데다 최근 한국계 기술진의 활약도 두드러져 주목할 만 하다. 올해 어덜트 리그는 미국의 ‘팀 토르윈(THORWIn)’이 우승했는데, 이 팀이 시합에서 쓴 로봇은 지난해 미국 마이애미 홈스테드에서 열린 ‘세계 재난구조로봇 경진대회(DRC)’에 출전한 적 있는, 한국 로봇기업 ‘로보티즈’가 개발한 ‘똘망’이다. 한국 기업이 개발한 로봇이 세계적인 축구시합에서 우승한 것이라서 큰 의미가 있다.

이밖에 틴에이지 리그는 이란팀 바셋 틴-사이즈(Baset Teen-Size)가 우승했다. 키즈 리그 우승은 씨아이티브레인(CIT Brain)이라는 일본 팀이 개발한 ‘하지메’ 로봇이 우승했다. 스탠더드 리그 우승은 호주의 런스위프트(rUNSWift) 팀이 차지했다. 루이비통컵은 올해 키즈 리그 우승팀인 씨아이티브레인 팀으로 넘어갔다.

조백규 교수는 “지난해 16강을 했고, 올해는 8강 진출 목표로 출국했지만 우승 후보팀과 예선에서 붙는 등 불운이 겹쳤다”며 “내년 대회에는 더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말했다.



국민대 로봇동아리 ‘쿠도스’ 팀원이 노트북으로 축구로봇 ‘쿠봇’을 조작하고 있다.
브라질 현지에서 촬영한 쿠도스 팀의 기념사진.
어덜트 사이즈 리그에서 우승한 팀 토르윈(THORWin) 멤버들의 시상식 모습.



로봇 ‘똘망’이 붉은 색 공을 몰고 골대로 전진하고 있다.
로보티즈가 시합장에 전시했던 로봇 ‘똘망’의 모습. 재난구조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축구시합용과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있다.
 

“인간시합 따라 잡아야” 해마다 규정 까다로워져

올해부터 키즈 리그 규정이 조금 바뀌었다. 작년까지는 한 팀이 로봇 3대, 즉 골키퍼 1대와 선수 2대가 한 팀을 이뤄 시합을 벌였지만, 올해부터는 4대가 한 팀으로 참가했다. 참가팀은 보통 후보를 포함해 5대 이상의 로봇을 준비한다. 축구장 크기도 가로 6m 세로 4m에서 각각 9m, 6m로 늘렸다. 조백규 교수는 “원래는 로봇이 인식하기 쉽도록 양 팀의 골대 색깔도 다르게 칠했는데 이제는 같은 노란 색으로 칠하고 있어서 자살골 비율도 높아졌다”며 “기술을 더 빨리 진보시키기 위해 해마다 규정이 까다롭게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보컵이 단순히 과학자들만의 축제는 아니다. 세계 여러 팀이 모여 들어 적잖은 비용을 쓰고, 첨단기술을 총동원하는 만큼 고급 전자부품 시장도 활성화시킬 수 있다. 키즈 리그용 소형 로봇 가격은 완성품 한 대가 소형 승용차 한 대 값을 훌쩍 뛰어 넘는다. 부품을 구입해 직접 만든다 해도 최소 수백만 원이 필요한 알짜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건 국내 기업 ‘로보티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다이나믹셀’은 전기모터와 감속기를 하나로 결합한 것으로 손쉽게 로봇 제작이 가능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키즈 리그에서 대다수 팀이 활용하고 있는 로봇 ‘다윈op’를 판매하고 있는 것도 로보티즈다. 우리나라 팀 쿠도스의 로봇 쿠봇도 다윈op의 설계도를 기본으로 일부 구조를 변경한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로보티즈는 3명의 전문기술팀을 브라질 현지로 파견하기도 했다.

한재권 로보티즈 수석연구원은 “브라질 로보컵은 열정적인 국가 분위기를 반영한 듯 개막식부터 들뜨고 즐거운 분위기였다”며 “대부분의 참가팀이 로보티즈 부품을 사용하는 만큼 대회에 차질이 없도록 기술지원 차원에서 매년 행사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형 로봇은 최고의 과학, 공학기술의 결정체다. 로봇축구 시합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이용해 인간형 로봇의 기본적인 운동성능인 걷기, 뛰기, 공차기, 인공지능 등을 실험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다. 한국 과학자가 만든 로봇축구 군단이 남미·유럽의 월드컵 우승팀과 최종 승부를 벌일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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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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