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관 : 지난 15일 14시 27분에 발생했던‘화장실 사건’의 용의자 심문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이봐 자네, 지난 15일 14시 27분에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용의자 : 화장실에 있 었죠.
수사관 : 화장실에서 뭘 했지?
용의자 : 아, 당연히 볼일을 봤죠.
수사관 : 볼일을 본 다음 뭘 했지?
용의자 : 아, 당연히 화장실에서 나왔죠.
수사관 : 딱 걸렸어. 화장실에서 나왔지? 그래서 넌 ‘화장실 사건’의 범인이야.
용의자 : 도대체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세요? 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것 뿐이라구요.
수사관 :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나? 조사하면 다 나와. 그럼, 최면 수사의 달인 박 형사가 그걸 밝혀 줄 거야. 박 형사, 심문을 시작하지.
박 형사 : 이봐 자네, 지금 어디 있나?
용의자 : 부엌에 있어요.
박 형사 : 뭘 하고 있지?
용의자 : 나는 요리사에요. 돼지고기를 썰고 있어요. 앗! 그런데 내 손이…
박 형사 : 손이 어떻지?
용의자 : 손에 검댕이 묻었어요. 으, 더러워. 손도 안 씻고 요리를 하다니.
수사관 : 딱 걸렸어. 자넨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왔어. 그 다음엔 어떻게 했지?
용의자 : 손을 안 씻었어요.
수사관 : 딱 걸렸어. 너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 손을 씻지 않았다. 너의 손에 묻은 세균이 원인이 돼 집단 식중독이 일어났지. 구속시켜!
-KBS‘개그콘서트’의‘ 범죄의 재구성 ’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 손을 씻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속하지는 않겠지만, 최근 국내의 집단 식중독 사태를 보며 손 씻기의 중요함을 곱씹어보게 된다.
여러 물건을 만지다보면 손에는 항상 병원균이 묻기 마련이다. 감염을 일으키는 것은 대개 일시적인 균총(菌叢)으로 손을 씻을 때 대부분 떨어져 나간다. 비누를 사용해 15초 이상 제대로 씻으면 세균의 80%가 사라진다. 손을 제대로 씻기만 해도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화장실에서는 손 씻는 센스를
지난해 10월 질병관리본부에서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시민 2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가량은 아예 손을 씻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화장실에 사람들이 있을 때 손을 씻는 비율은 90%지만 혼자만 있을 때는 16%에 불과하다고도 한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대변과 함께 나온 뒤 휴지를 통해 손에 묻은 다음 물건을 만지거나 악수할 때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다. 때문에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세균성 이질균은 최근 10~100개 정도만 음식물에 섞여 있어도 급성 설사병을 일으킬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도 명심하자.
식중독이 집단 발병하면 ‘미생물 수사관’이 바빠진다. 범죄가 발생하면 수사관이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다양한 조사를 벌이는 것처럼 ‘미생물 수사관’은 언제 첫 환자가 발생했는지, 잠복기는 어느 정도인지, 수상한 음식 재료는 무엇인지 과학적인 방법으로 조사해 병원체를 추적한다. 이를 ‘역학조사’라고 한다.
최초로 역학조사를 한 사람은 영국의 의사 존 스노였다. 콜레라균이 알려져 있지 않던 1845년 런던에서 집단 콜레라가 발병하자 스노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환자를 조사해 원인을 찾았다.
그 결과 우물에서 물을 길어 식수로 사용한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오염된 물에 있던 세균이 전염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한 수사관이었던 셈이다.
원인균을 밝히기 위해서는 환자의 대변을 채취해 병원체를 검출하는 방법을 많이 쓴다. 세균은 오염된 식품에서 자랄 수 있지만 바이러스는 전혀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대개 음식에서는 병원체를 검출하기 어렵다. 반면 세균과 바이러스 모두 음식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면 잘 자라기 때문에 대변에서 병원체를 검출하기는 쉽다.
병원체가 몸속에 들어오면 주로 복통, 설사, 구토, 어지럼증 등이 나타난다. 이렇게 오염된 음식을 먹고 배앓이를 하는 질병을 통틀어 식중독이라고 부른다. 여름철에 잘 걸리는 장염 역시 설사 증세를 한자로 나타낸 것으로 식중독이다.
구토는 위 속의 독소를, 설사는 장 속의 독소를 몸 밖으로 내보내려는 방어기제기 때문에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대부분의 식중독은 수분을 충분히 보충해주면 하루 이틀 만에 회복된다.
수사 파일 1_ 살모넬라균
살모넬라균은 아주 오래전부터 식중독의 원인균으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병원체다. 종류만 해도 2300가지가 넘는다. 주로 덜 익힌 음식에서 생기기 쉽다.
살모넬라균은 몸속에 들어가면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자손을 대량 생산해 질병을 일으키는 ‘감염형’ 병원체에 해당한다. 콜레라균과 세균성 이질균, 장출혈성 대장균인 O157균 등도 감염형 병원체로 전염성이 강하다.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O157균은 아주 소량으로도 감염이 될 만큼 전염성이 강하고 항생제로 쉽게 치료되지 않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병원균이 몸에 들어와서 증식해 아픈 증상이 나타나기까지를 잠복기라고 부른다. 살모넬라균과 같은 감염형 병원체의 가장 큰 특징은 잠복기가 길다는 것이다. O157균의 경우 길게는 3~9일인 경우도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는 세균이 몸속에 들어와서 일정한 수가 될 때까지 증식한 다음 서로 연락해 소장이나 대장에 서식하는 몸에 이로운 미생물이나 세포를 일제히 공격하는 습성 때문이라고 한다.
수사 파일 2_ 황색포도상구균
엄밀히 말해서 식중독이란 부패된 음식뿐 아니라 세균의 독소로 오염된 음식, 독이 든 음식, 중금속이 든 음식, 자체 독성(독버섯, 복어 등)을 지닌 음식 등을 먹어서 일어나는 모든 신체적인 이상 증상을 일컫는 포괄적인 말이다.
하지만 흔히 식중독이라고 하면 사람 사이에 전염되지 않으면서 설사 같은 증세를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병원체로는 황색포도상구균이 대표적이다. 포도상구균이라는 이름은 세균 모양이 포도 알 같다고 해서 붙었다. 만든 지 오래된 김밥 등 부패된 음식에서 잘 자란다.
황색포도상구균의 잠복기는 불과 2~4시간에 불과하다. 부패된 음식을 먹는 즉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황색포도상구균이 오염된 음식에서 자라면서 장독소(腸毒素)를 음식에 배설해놓아 음식을 먹을 때 균과 함께 장독소가 몸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몸에 들어온 장독소는 장의 상피세포에 있는 나트륨 같은 무기 이온을 장 속으로 빠져나오게 하고 이로 인해 장 속의 삼투압이 변하면서 물이 함께 빠져나온다. 이것이 설사를 일으킨다. 장독소는 때에 따라 세포벽을 직접 뚫고 들어가기도 하기 때문에 피가 섞인 설사가 나오기도 한다. 황색포도상구균을 ‘독소형’ 세균으로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바실러스 세레우스균, 보툴리늄균도 독소형 세균에 속한다.
수사 파일 3_ 노로바이러스
살모넬라균과 황색포도상구균처럼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이 있다면 식중독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있다. 이번 학교급식 식중독 사고의 원인균으로 지목된 노로바이러스도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바이러스는 세균에 비해 크기가 작고 구조와 기능에도 차이가 있다. 세균은 생물뿐만 아니라 삶은 돼지고기, 김밥, 닭고기 등 무생물에서도 자란다. 세균을 배지(단백질, 탄수화물, 무기물, 물 등을 섞은 미생물 영양분)에서 대량으로 배양할 수 있는 것도 이런 특징 때문이다.
반면 바이러스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증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물에 침입해 그 생물이 갖고 있는 여러 기관을 빌어서 생활해야 한다. 숟가락과 입만 있는 사람이 남이 차려둔 밥상을 먹고 남의 집에서 생활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노로바이러스가 식중독 병원체로 알려진 것은 최근이다. 주로 오염된 물이나 오염된 해산물을 통해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아스트로바이러스, 로타바이러스 등도 바이러스성 설사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예를 들어 로타바이러스는 장 운동과 액체의 흡수와 분비를 조절하는 장신경계를 자극한다. 자극을 받은 신경계는 장의 상피세포를 자극해 물을 방출하게 해서 설사를 일으킨다. 세균이 설사를 유발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노로바이러스의 가장 큰 특징은 ‘2차 감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차 감염은 식중독 환자가 사고 장소에 없었던 다른 사람에게 식중독균을 옮기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학교급식을 먹은 학생이 집에 돌아가 가족에게 노로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이 때 노로바이러스는 주로 입을 통해 전염된다. 그래서 노로바이러스는 식중독균이 아니라 전염병균으로 분류된다.
세균, 지문 조사하면 다 나와~
이번 학교급식 식중독 사태는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그 중에서도 ‘미생물 수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식중독의 원인균은 노로바이러스로 밝혀졌는데, 원인식품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큰 문제다.
실제로 식중독 사고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요즘처럼 물류 시스템이 발달해 한 지역의 식재료가 전국으로 쉽게 퍼지는 상황에서는 원인식품을 확인하기가 더욱 어렵다. 대규모의 식중독 환자가 며칠 간격으로 전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있는 셈이다. 원인식품을 밝혀낼 방법은 없을까.
최근 국내에서는 ‘펄스넷’(PulseNet)을 통해 원인식품을 추적하고 원인균을 밝혀내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펄스넷은 세균의 DNA 지문분석 결과를 실시간으로 중앙 컴퓨터에 올려 원인균과 원인식품을 추적하는 전산망이다.
세균의 DNA는 저마다 고유한 지문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세균에는 DNA로 구성된 염색체가 1개 있다(콜레라균은 2개다). DNA를 특수한 효소로 자르면 같은 이름의 균이라도 자손이 다를 때는 다른 지문을 나타낸다. 이를 이용하면 세균의 계보를 추적하고 오염 식품이나 오염원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지문법을 PFGE(Pulsed-Field Gel Electrophoresis)라고 부른다.
실제로 1993년 미국에서는 장출혈성 대장균인 O157균에 오염된 햄버거를 먹고 7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4명이 사망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다. 당시 미국 질병관리예방센터는 원인식품을 찾기 위해 DNA 지문분석법을 사용했다. 햄버거에서 분리한 O157균과 환자의 대변에서 분리한 O157균의 지문을 비교했던 것이다. 그 결과 두 지문이 일치했고, 이로부터 질병관리예방센터는 원인식품이 오염된 쇠고기라는 것을 밝혀냈다.
미국에서는 1996년 이런 지문법을 전산망과 결합해 ‘펄스넷’을 만들었다. 각 주에서 병원체의 지문을 전산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질병관리예방센터의 중앙 컴퓨터로 보내면 이들을 서로 비교해 일치하는 지문을 찾아 해당 지역에서 역학조사를 집중적으로 벌이는 것이다.
DNA 지문분석법을 사용하면 무엇보다도 원인균과 원인식품을 신속하게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문법이 개발되기 전인 1993년 캐나다 웨스턴 주에서는 O157균의 전염 사실을 39일이 지난 다음에야 감지했고, 오염원이 쇠고기라는 것을 알아낸 것은 그로부터 약 10일이 더 지난 뒤였다. 결국 71일이 지난 다음에야 더 이상 질병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반면 2002년 콜로라도 주에서 O157균으로 인한 환자가 발생했을 때는 펄스넷을 이용해 불과 18일 만에 사건을 파악해 미국 전역에서 오염된 쇠고기 약 1800만 파운드(약 820만kg)를 폐기시켰다. 당시 11개 주에서 38명의 환자가 발생해 17명이 입원하고 1명이 사망해 피해를 최소로 줄였다.
국내에는 질병관리본부가 2005년부터 펄스넷 병원체 지문법 전산망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 보건환경연구원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식품의약품안전청과 함께 전산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앞으로 2~4년 내에 완성할 계획이다. 펄스넷이 구축되면 질병의 감염원과 감염경로를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어 전염병 확산을 조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