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최근 대학별 입시 제도가 다양해지면서 수석합격자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스펙’도 다양해졌다. 과학동아는 대학 입학본부의 지원을 받아 수석합격자에 부합하는 학생을 만나, 중·고등학교 시절 학업 방법을 듣고 이를 통해 대학 합격 비결을 분석했다.
“학원을 모두 끊고 하고 싶은 대로 공부했더니 성적이 올랐어요.”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했던 UNIST 기초과정부 17학번 김윤한 씨가 꼽은 합격 비결이다.
고등 1학년 수학 성적 떨어져 학원 그만둬
원래 김 씨는 수학을 매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수학올림피아드 문제의 매력에 빠졌다고. 어려워서 한 문제를 푸는 데 30분 이상 걸렸지만, 깊이 생각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는 수학 성적이 뚝 떨어졌다. 고등학교에서의 수학은 공식을 대입해 문제를 빨리 빨리 풀어야 하는데, 김 씨는 곰곰이 생각하고 문제를 천천히 푸는 방식으로 공부를 해온 탓이었다. 또 이전에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워서 공부를 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내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부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흥미도 떨어졌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원을 모두 끊어버렸다. 이전에는 학원을 다녀도 스스로의 의지로 공부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등학교 때는 그렇지 않았다. 학원을 끊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일단 부모님이 걱정했다. 스스로도 걱정이 됐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논리로 부모님을 설득했다.
“학원을 끊고 하고 싶은 대로 공부를 하니까 오히려 성적이 올랐어요. 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니까 다시 재미있게 느껴졌거든요. 수학 과목 중에 하나는 전교 1등을 하기도 했답니다. 학원을 안 다니니까 위기감을 느껴서 오히려 더 열심히 하게 된 점도 작용한 것 같아요.”
실제로 UNIST 입시에서 김 씨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해 수학 과목의 성적이 점차 올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수학 성적 올린 생각의 힘
그렇다면 어떻게 스스로 수학 공부를 한 걸까. 김 씨는 “생각하며 하는 공부”라고 답했다.
“보통 수학 문제를 풀고 답안지를 보면서 ‘아, 이렇게 푸는 거구나’ 하고 넘어가잖아요. 그런데 저는 풀이를 보면서 이 문제에 쓰인 공식은 다른 문제에는 어떻게 쓰일까. 풀이는 왜 이렇게 되고, 왜 이렇게 넘어가는 걸까, 생각하면서 공부했어요. 공식도 제가 생각한 방식으로 외웠죠.”
혼자 공부하다가 어려울 때는 학교 선생님이든 친구들에게든 물어보며 도움을 청했다.
“모르겠다고 질문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질문하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해요. 저는 혼자 공부하다 막히면 바로 물어봤어요. 선생님이든 친구든 가리지 않았어요.”
수학 외에 다른 과목도 같은 방식으로 공부했다. 학원을 다닐 때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학원을 다니지 않게 되면서 여유롭게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이렇게 생각하며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화학이나 생물 등 외워야 하는 내용이 많을 때는 단순하게 암기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른 부분은 모두 ‘왜 그런 걸까’를 생각하며 공부했죠. 예를 들어, 어떤 이론에 대해 배우면 어떤 실험이나 과정을 통해 이런 이론이 나오게 됐는지, 이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등 이론 자체를 분석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실컷 노는 것도 필요
학원 대신 얻은 여유 시간에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실컷 노는 일에도 집중했다.
“사실 공부를 하는 시간의 총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하고 싶은 만큼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만들기를 하거나, 그림도 그렸어요. 자습시간의 절반은 노는 데 사용했죠. 그런데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는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지금 열심히 하고 나중에 편하게 놀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한 셈이죠.”
김 씨의 얘기에서 특히 “게임을 마음껏 했다”는 부분은 언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게임을 하다보면 더 하고 싶고, 그러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기 마련이다. 게임을 그만하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자제력이 강했을까.
“게임이 하고 싶은데 책을 붙잡고 앉아 있어봤자 공부는 잘 안 돼요. 오히려 게임을 하고 싶은 만큼 하고 공부를 하는 게 나아요. 아마 다른 친구들도 그럴 거예요. 공부를 할 때는 게임을 하고 싶지만, 막상 게임을 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죠. 이만큼 놀았으니까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게 되고요. 그런 식으로 스스로 게임 시간을 조절했습니다.”
취미를 자소서와 면접의 소스로 활용
취미 활동으로 보낸 시간은 입시에도 도움이 됐다. 김 씨는 노래를 좋아해서 노래 동아리 활동을 했고, 만들기를 좋아해서 발명 동아리도 했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잘 하지는 못해서 학교에 있는 운동 동아리 시험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운동 동아리에 탈락한 친구들을 모아서 ‘탈락자들만의 운동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결국 스스로 하고 싶어서 대회에 참가하고 동아리를 만들었던 활동들이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면접을 볼 때 나를 내세울 수 있는 요소가 됐어요. 여러 활동을 해야 적극적이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릴 수 있거든요. 상을 받거나 하는 식으로 특별한 성과를 내는 것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많은 일을 시도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면접에서는 어떤 질문을 받았을까. UNIST 면접은 제시문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답하고, 면접위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제시문은 ‘공항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에 걸린 사람을 격리하는 것에 대해 본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면접위원들은 읽었던 책에 대해 왜 읽었는지, 책의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었다. 물론 성적이나 동아리 활동 등 학생부에 기재된 내용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김 씨는 면접에서 편안하고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여기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자발적으로 했던 수시 면접대비 스터디가 큰 도움이 됐다. 학생 입장에서 어려웠던 문제, 꼭 나올 것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편하게 서로 질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전 훈련이 됐다.
“여유를 갖고 성장해 나가야”
김 씨는 UNIST에서 가장 좋은 점으로 무학과로 입학해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를 꼽았다. 자신은 물론 대부분의 친구들이 고등학교 때 과학적 흥미와 재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1학년 때 여유롭게 모든 과목을 접하며 자신의 적성을 깊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 큰 선물이었다고 한다. 1학년 때 전교생이 같은 과목을 듣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어서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저는 수학과 물리 과목을 좋아하고, 발명처럼 무언가를 만드는 일도 좋아해서 2학년에 진학해서는 기계공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생각입니다. 이 두 가지를 공부하면 내가 만들고 싶은 제품을 직접 설계해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더 구체적인 계획은 차차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김 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모든 이야기를 아우르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여유’다. 고등학교 때 성적을 향상시켰던 과정이나 UNIST에 진학한 뒤 전공 선택에 있어서도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했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여유를 가지고 취미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 말로 자기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같은 취미도 상관없는 것 같아요. 물론 중독 수준에 이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만요. 가장 중요한 점은 항상 여유를 가지면서도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