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비리와 관련된 뉴스는 언제나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대체로 고위 지도층의 아들이나 유명 연예인이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거나 진료기록을 조작하는 수법이다. 그때마다 ‘병역 기피자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신질환만은 신체 등급과 무관하게 병역면제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지난해 있었던 ‘김 일병 총기난사 사건’이나 강화도 모 부대에서 주전자에 농약을 탄 사건이 터진 뒤 “왜 입대 전 신체검사에서 정신질환자를 찾지 못했느냐”며 비난이 빗발치기도 했다.
군 생활의 특성이 반영된 인성검사
정신질환은 본인이 숨기려는 경향이 많아 신체검사장에 진료 기록이나 병원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외견만으로 군의관이 알아내기 어렵다. 이 때문에 신체 검사자는 반드시 인성검사를 받는다. 만약 1차 검사에서 이상으로 판정되면 추가로 정밀검사를 실시한 뒤 군생활 여부를 결정한다.
2001년 1월부터 2005년 7월까지 군 면제 판정을 받은 대표적인 정신질환은 ‘경계선 지능과 정신지체’다. 정신지체자와 일반인의 경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해 IQ 70 이하로 초·중·고교 생활기록부와 정신과 군의관과의 면담을 통해 군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정된 경우다. 만약 이들이 군에 입대하면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총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사고를 부를 위험이 있다. 정신질환 면제자(2530명) 중 52.6%(1330명)가 이 질환으로 면제를 받았다.
다음으로 면제를 많이 받은 정신질환은 22.8%(578명)를 차지한 ‘정신분열증’(통합실조증)이다. 환청과 망상, 괴이한 행동을 보이는 정신분열증이 6개월 이상 심각한 증세가 관찰되면 면제로 판정된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동료 병사들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군대의 규율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행동하려는 ‘성격장애’도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이유로 2.3%(57명)가 면제됐다. ‘신경증적 장애’는 1.9%(49명)가 면제 받았는데, 이런 경우 훈련 중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강박, 불안,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는 이유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작전이나 군사 활동을 수행하기 곤란하다.
정신질환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인성검사를 한다. 여기에는 일반 인성검사에 쓰이는 문항과 달리 인간의 행동 가운데 군대 생활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대표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문항들이 포함돼 있다. 예를 들면 타인에 대한 적개심이나 집단에 대한 순응과 동조, 고립성 등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철저한 위계질서가 필요한 군대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에게 속박이 될 수 있다. 또 가족과 친구를 떠나 좋든 싫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부대 내 PC방과 노래방, 당구장 등을 설치해 병사들의 건전한 여가생활을 보장하고 있지만 적의 침투에 대비한 훈련 등 군대의 일상은 24시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일과의 연속이다.
따라서 입대 전에는 멀쩡하던 사람도 어느날 갑자기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나머지 망상이나 혼잣말 같은 증세를 보일 수 있다. 내무반의 동료에게서 따돌림 받으면 자살까지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군대에는 심리 전문가가 배치돼 있지만 그 수는 매우 적다. 대부분 전역 예정자나 초급장교를 대상으로 단기 상담교육을 실시한 뒤 병사의 상담을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상담 중 문제를 어설프게 건드리고 수습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