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레이저(LASER)라고 하면 ‘살인광선’을 연상한다.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레이저의 강한 빛을 이용한 광선총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저를 이용한 군사무기는 생각처럼 그리 발전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총포보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파괴력은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레이저는 20세기의 10대 기술을 꼽을 때면 늘 텔레비전, 컴퓨터와 더불어 선택된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레이저기술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대형 슈퍼마켓에 가면 모든 물건에 바코드를 붙여 놓았다. 이를 읽는 장치를 가만히 살펴보면 레이저를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음악을 담는 CD, 컴퓨터 저장장치인 CD롬, 영화 등 비디오를 기록하는 LD(레이저디스크) 등은 모두 레이저를 이용해 정보를 읽어들인다.
시야를 좀더 넓혀보면 그 쓰임새가 더욱 넓어진다. 측량을 할 때는 레이저의 직진성을 이용해 정확한 직선을 긋거나 거리를 잰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갔을 때 레이저 반사장치를 설치하고 왔는데, 이를 이용해 수cm 오차 내에서 달까지의 거리(약 38만 4천km)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레이저의 또다른 특징은 많은 양의 에너지를 좁은 면적에 집중시킬 수 있다는 것. 이러한 특징을 이용해 금속을 자르거나 구멍을 뚫거나 용접할 수 있다. 또 안과병원에서는 조직을 상하지 않으면서 망막수술을 하기도 한다. 레이저로 암을 치료하는 것도 같은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최근에는 광통신에도 그 기술이 이용되고 있다.
레이저를 처음 생각한 사람은 미국의 물리학자 찰스 타운스(1915-). 1951년 컬럼비아대학 교수로 있던 시절 그는 진공관으로 만들 수 없는 매우 높은 주파수의 전자파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만약 이를 얻기만 한다면 정확한 측정은 물론 물리학과 화학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연구의 실마리가 제공했던 것은 1917년 아인슈타인이 제기했던 ‘전자파의 유도 방사’이다. 원자는 전자파에 의해 자극을 받으면 그와 똑같은 진동수와 방향을 가진 파장을 내놓는다는 이론으로 1924년에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만약 들뜬 에너지 상태의 원자가 낮은 에너지 상태의 원자보다 많을 때 특정 파장의 전자파를 충돌시키면, 전자파는 엄청나게 강화된다. 이것이 레이저의 원리다.
두번째 실마리는 암모니아 분자였다. 암모니아는 높은 에너지준위에서 낮은 에너지준위로 내려올 때 약 1.25cm의 마이크로파를 내놓는다. 만약 암모니아가 1.25cm의 파장을 갖는 마이크로파를 흡수하면 높은 에너지준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처음 충돌시켰던 것과 같은 방향으로 마이크로파를 내놓는다. 보통의 경우 마이크로파를 충돌시키면 높은 에너지준위로 올라가는 것이 낮은 에너지준위로 내려오는 것보다 많겠지만, 모든 암모니아분자가 높은 에너지준위에 있을 때라면 미세한 마이크로파를 충돌시켰더라도 비슷한 마이크로파를 엄청나게 쏟아낼 것이다.
타운스는 암모니아의 특성을 이용해 1954년 진공관에서 만들어낼 수 없었던 ‘메이저’ (MASER, ‘마이크로파에 의해 유도 방출된 증폭’이란 뜻)를 개발했다. 만약 빛을 이용해 증폭했다면 ‘레이저’(LASER)가 됐을 것이다. 메이저는 말하자면 레이저의 전신인 셈이다. 타운스가 개발한 메이저는 증폭기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장거리통신과 우주에서 오는 마이크로파를 포착하는데 이용됐다. 같은 시기에 러시아 레베데프물리학연구소에 근무하던 니콜라이 바소프(1922-)와 알렉산드르 프로호로프(1916-)도 암모니아 메이저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타운스는 바소프와 프로호로프와 공동으로 196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메이저를 개발한 타운스는 1957년 마이크로파보다 더 파장이 짧은 가시광선을 증폭할 수 있는 레이저에 도전했다. 그는 이 일이 혼자 힘으로 힘들다고 보고 컬럼비아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아서 숄로(1921-)에게 도움을 청했다. 당시 벨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숄로는 타운스의 여동생과 결혼한 그의 매제였다.
숄로는 레이저를 만들기 위해선 가늘고 긴 공명상자 양쪽에 거울을 달고 그 사이에서 원자와 분자들을 들뜨게 해야(여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숄로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타운스는 1960년 레이저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휴즈항공사에 근무하던 마이만(1927-)이 그보다 먼저 최초의 레이저 발진장치를 만들어냈다. 두번째 레이저 발진장치는 벨연구소의 알리 제이반 등이 완성했다. 마침내 현대 문명을 일굴 레이저가 세상에 얼굴을 내민 것이다.
타운스 이후 레이저는 여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런던대학의 데니스 가보 (1900-1979)는 레이저광을 이용한 홀로그래피를 발명해 197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벨연구소의 아노 펜지아스(1933-)와 로버트 윌슨(1936-)은 1964년 메이저 증폭기를 사용해 빅뱅이 일어났을 때 생긴 마이크로파를 발견함으로써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타운스와 함께 레이저를 발명했던 아서 숄로는 레이저 스펙트로스코피를 발명함으로써 비선형광학분야에 여러 업적을 남긴 니콜라스 블룸버겐(1920-)과 함께 198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