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0일 우주날씨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전 9시 20분경 태양면 중심에서 서쪽 30°, 북쪽 20° 위치에서 초강력 폭발이 발생했고 이와 동시에 쏟아져 나온 물질이 초속 2000km로 지구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앞으로 몇 시간 동안 이동통신과 단파통신에 큰 잡음이 예상되며 인공위성은 고장이 우려됩니다. 특히 현재 극지방을 지나는 항공기나 우주여행 중인 우주인들은 즉시 안전지역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또 태양폭풍은 약 24시간 후 지구에 자기폭풍을 일으켜 며칠간 위성통제 및 항법시스템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현재 태양 활동이 매우 활발해 24시간 이내에 70%의 확률로 또 다른 폭발이 예측되므로 계속해서 우주날씨 속보에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15년 후 태양활동 극대기에 예상되는 TV의 우주날씨 속보를 가상으로 꾸며본 내용이다. 앞으로는 TV나 라디오에 현재의 기상예보처럼 우주날씨예보가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태양 대기에서 강력한 폭발이 발생한 후 초고속으로 뿜어져 나온 물질이 지구에 도달해 지구 주변 우주환경을 급격히 변화시킨다. 지구 주변 우주공간의 환경변화를 ‘우주날씨’(space weather)라고 한다.
우주의 날씨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지구 주변 우주공간에 상주하고 있는 통신위성, GPS위성, 기상위성 등 각종 위성들이 우주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위성이 순간적으로 궤도를 벗어날 수 있고, 태양 전지나 컴퓨터 메모리가 심각한 고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또 외계에서 활동하는 우주비행사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태양 폭발에서 나온 고에너지 입자는 세포 속을 투과해 염색체를 파괴시켜 암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극궤도를 지나는 비행기 승객이 X선 방사능을 맞고 무선통신에 장애가 일어나 휴대폰이 불통되며, 전력 배전망이 손상을 당해 전기가 끊어질 수도 있다.
일본의 스키점프 생중계 사고
“1989년 3월에 발생한 강력한 태양 폭풍은 캐나다 퀘벡주 전역의 송전시설에 영향을 미쳐 약 2만MW (메가와트)의 전력손실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600만명의 주민이 9시간 동안 전력을 공급받지 못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이 폭풍은 전세계적으로 HF영역의 단파통신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VHF 방송은 비정상적으로 멀리 전파되기도 했고 심한 간섭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1994년 1월 20일에는 일본 통신위성의 회로가 절반이나 파손됐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동계올림픽 대회 중 일본선수의 스키점프 경기가 생중계되는 도중에 일어나 일본에서 우주날씨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97년 1월 태양에서 대규모로 쏟아져 나온 물질 때문에 미국 AT&T사의 통신위성 텔스타 401호는 회로가 단절돼 수명이 9년이나 단축됐다. 이로 인해 2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2003년 10월 극심한 태양활동과 우주환경의 변화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영향을 줬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탐사선 오디세이는 복사(radiation) 측정장비가 고장 났으며, 일본의 화성탐사선 노조미의 위성체가 손상을 입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아리랑위성 1호는 3일 궤도 예측오차가 평상시보다 8배 정도 증가한 16km였다고 한다.
평소에도 총알속도의 400배
태양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폭발현상에는 플레어와 코로나물질방출현상(CME)이 있고, 그 에너지는 1메가톤 수소폭탄 수십억개에 해당한다. 플레어는 서로 반대방향의 자기력선이 만나서 일어나는 폭발현상으로 자외선, X선 같은 강한 에너지의 빛(전자기파)을 방출한다. 이는 양음 전기의 합선에 의해 스파크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비슷하다. CME는 약 100억톤의 물질을 고속으로 우주에 방출하는 현상이다.
대체로 강력한 태양 폭발이 일어나면 플레어와 CME가 동시에 발생한다. 플레어 빛은 지구에 도달하는 데 8분 19초 정도가 걸리고 CME에서 초속 수백~수천km 속도로 쏟아져 나온 입자는 2, 3일 걸린다. 플레어는 단파통신을 두절시키며 CME는 지구 자기장과 충돌해 지자기폭풍을 일으켜 위성통신이나 전력수송에 장애를 가져온다.
태양은 끊임없이 입자의 흐름인 태양풍을 내뿜으며, 지구는 물론 멀리 명왕성 너머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태양풍이 지구 주변에 도달했을 때의 속도는 초속 400km에 이른다. 총알 속도의 400배에 해당한다. 우주복을 입지 않는다면 태양에서 날아오는 입자들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레이저로 위성 감시한다
우주날씨가 좋지 않으면 지구 주변을 도는 인공위성도 궤도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에서는 전세계 위성을 감시하고 있는데 강한 태양폭발이 발생할 때는 많은 위성의 궤도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최근 위성의 정밀 감시용 레이저 시스템(SLR)이 주목받고 있다. SLR은 위성 궤도 결정시스템 가운데 가장 정밀하다. 레이저를 쏘아 되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함으로써 위성의 거리를 측정하는 원리다. 현재 고도 200~3만6000km에 로켓 부품, 수명이 다한 위성체 등 우주 쓰레기가 가득하다. 아무리 작은 잔해라도 초속 7, 8km로 날아다녀 매우 위험하다. 이들을 추적하는 데 SLR이 유용할 전망이다.
몇 년 전까지는 레이저 반사경이 달린 위성만 레이저로 추적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레이저 및 센서 기술이 발달해 반사경이 없는 저궤도 위성도 SLR로 정밀 추적이 가능하다.
SLR 시스템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천문연구원의 주도로 여러 연구소와 함께 기본 개념 설계를 마치고 SLR 시스템을 제작·운영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라크 전쟁 일시를 정한 변수
최근 미국 벨연구소와 뉴저지공대의 연구에 따르면 태양 마이크로파 폭발은 차세대 대용량 이동통신의 가장 큰 잡음원이다. 태양활동 극대기의 경우 이런 폭발은 열흘에 하루꼴 정도로 차세대 이동통신에 직접 영향을 준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태양우주환경그룹은 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아 미국 뉴저지공대와 함께 ‘한국형 태양전파폭발위치감지기’(K-SRBL)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 빅베어 태양관측소에 설치될 구경 1.6m짜리 ‘신형 태양망원경’(NST)의 개발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NST는 세계 최대 태양망원경이 될 전망이다.
K-SRBL을 이용하면 태양 마이크로파 폭발을 감시해 이동통신 장애에 대한 경보와 예보에 활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태양폭발의 주파수 특성을 연구해 향후 이동통신의 주파수 선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03년에는 과기부의 핵심우주기술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우주환경 모니터링 시스템’(sos.kasi. re.kr)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태양활동에 의한 우주환경 영향을 빛, 고에너지 입자, CME의 3가지로 구분해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활동 정도에 따른 구체적인 영향도 실시간으로 진단할 수 있도록 했다. 우주환경 모니터링 시스템은 현재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공군 기상전대에도 전용선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우주날씨는 현대전쟁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기상뿐 아니라 우주날씨를 고려해 개전 일시를 결정했다는 얘기가 있다. 첨단 무기가 발사될 때 무선통신이나 GPS 자료를 바탕으로 하므로 강력한 태양 폭발이 있다면 오작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밀 유도탄을 쏘는 경우 태양 폭발로 잡음이 강해지면 궤도 예측이 힘들어 목표물을 벗어날 수 있다.
기상청 없이 태풍 맞는다?
2004년 이후 태양우주환경그룹은 우주날씨의 주요 원인인 태양폭발과 지자기 폭풍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특히 1996년부터 2003년까지의 모든 태양폭발을 연구해 태양폭발이 지구에 큰 피해를 가져오는 지자기 폭풍을 일으킬 확률을 계산해냈다. 기상청에서 비올 확률을 예보하듯 머지않아 지자기 폭풍이 발생할 확률을 예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태양활동에 의해 우주날씨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발생하는 위성체 피해나 수명단축, 무선통신장애 등은 21세기형 재난이다. 이미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우주날씨 예보센터를 갖추고 이런 재난에 체계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은 태양활동과 우주날씨를 모니터하고 초보적인 우주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우주날씨를 정확히 예보하기 위해서는 우주날씨 예보센터가 절실하다.
머지않아 우주탐사나 우주여행이 빈번해질 텐데, 우주날씨 예보센터가 없는 것은 여름철 태풍이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을 때 기상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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