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것을 밝혀내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이어가는 과학자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걷는 가시밭길 위에서 분투한다. 면역학의 지평을 넓히는 연구로 201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브루스 보이틀러 미국 텍사스대 교수(왼쪽, 사우스웨스턴의학센터 숙주방어유전학센터장) 역시 그런 과학자다. 2017년 6월 2일, 삼성 호암재단에서 주최하는 ‘호암상 초청 강연회’에 강연자로 한국을 방문하는 보이틀러 교수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환경을 통해 수많은 미세 생명체들이 우리 몸에 들어왔다 다시 배출되기를 반복한다. 특히 병원성이 있는 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우리 몸에선 즉각 방어막이 작동한다. 이 방어체계를 ‘면역’이라 부르며,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성 면역과 살면서 획득한 후천성 면역으로 구분한다.
생명체는 외부에서 온 미생물이 가지고 있는 병원성 단백질을 감지하는 수용체를 저마다 가지고 있다. 초파리의 ‘톨유사수용체(TLR)’가 대표적이다. 브루스 보이틀러 미국 텍사스대 교수(사우스웨스턴의학센터 숙주방어유전학센터장)는 인류와 가까운 포유류의 수용체를 찾았다. 쥐 실험을 통해 포유류에서 병원균을 인식하는 ‘지질다당류(LPS)수용체’를 발견했고, 그 작용 메커니즘을 밝힌 공로로 201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대쪽같은 뚝심가와 한결같은 조력자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많은 과학분야 중에서 생명체를 이루는 분자가 어떻게 살아남는지 항상 궁금했어요. 특별히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를 연구하려고 찾아 보다가 면역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보이틀러 교수는 1980년대 뉴욕 록펠러대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때를 회상했다. 쥐 연구를 통해 종양괴사인자(TNF)가 면역에 영향을 준다는 단서를 잡았지만, 연구는 순탄치 않았다.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한 날들이 이어졌고, 동료나 선배로부터 ‘다른 연구를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심심한 조언도 이어졌다.
보이틀러 교수는 “아이디어가 잘못돼 길이 어긋날 때가 있었고, 그런 순간마다 좌절감도 크게 느꼈다”며 “하지만 연구주제에 대한 열정이 컸고, 믿고 함께해 주는 동료가 있었기에 (내가) 하고자 했던 연구 방향대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86년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의학센터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뒤, 1998년에는 LPS의 유전자 분석까지 마쳤다. 보이틀러 교수는 “수행비서까지 연구를 도울 정도로 모두가 목표를 향해 똘똘 뭉쳤다”며 “오랜 연구에서 성과를 얻었을 때 느낀 만족감은 그 어떤 순간보다도 크다”고 강조했다. 그의 수행비서 베시 레이턴씨는 31년째 보이틀러 교수의 업무지원과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밤낮없이 일하는 보이틀러와 함께 그 역시 박테리아 배양기를 조절하거나 DNA 서열을 읽는 등 연구를 도왔다. 보이틀러 교수는 “이제 전 세계의 과학자들과 관계를 맺고 질병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폭넓은 연구를 펼쳐갈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도전, 질병 정복을 꿈꾸다
의학의 발전에 끝이 있을까.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의학센터에서는 LPS수용체에 저항성이 있는 돌연변이, 자가면역 등 면역 전반을 연구한다.
보이틀러 교수는 “현재는 인간의 면역뿐만 아니라 체내 대사나 행동 발달 등 중요한 생물학적 과정에서 LPS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표현형을 만드는 유전자 분석 기술을 개발해 1000개의 돌연변이 표현형에 대한 원인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생물학적 과정의 각 단계를 더 명확히 규명할 것”이라며 “질병을 완화시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찾고, 이 유전자가 만드는 미지의 단백질로 다양한 신약까지 개발해 의료의 질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젊은 학도들에게 그는 “머릿속의 떠오른 질문과 해결하려는 마음이 확실하다면,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길을 걷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