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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카시니와 뢰머

청출어람 시기한 천문학자

지금 밖으로 나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머리 바로 위에서 빛나는 가장 밝은 별을 찾아보자. 약간 노란빛을 띠고 있는 별이 보일 것이다. 이것이 토성이다. 1년에 한번씩 충을 맞이할 때마다 하늘 높이 빛나는 토성! 바로 지금이 토성 시즌이다.

지난 2005년 1월 14일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 우주탐사선 카시니호에서 분리된 탐사선 호이겐스호가 착륙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이 연합해 쏘아 올린 우주선이 7년 동안 날아가 토성의 위성에 착륙한 이 프로젝트는 우주 탐사의 진보를 알리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타이탄의 표면엔 액체 메탄으로 된 비가 쏟아져 내리고 바다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킨 뉴스였다.

이 역사적인 탐사를 수행한 우주탐사선에 ‘카시니’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카시니는 토성 관측에 큰 공을 세운 천문학자의 이름이다. 그는 유명한 천문학자로 남았지만 훌륭한 스승이 되진 못했다.

목성과 토성은 카시니 손에 있다

지오반니 도메니코 카시니는 1625년 이탈리아 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수학과 천문학을 좋아했고, 불과 25세의 나이에 이탈리아 볼로냐대의 교수가 됐을 정도로 천재였다. 그는 천문학 중에서도 특히 행성 관측을 즐겼다.

당시는 갈릴레이가 천체망원경으로 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한지 약 반세기가 흐른 시점으로 자연과학의 발전에 눈을 뜨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천체망원경으로 행성을 본 왕들은 자연의 신비에 감탄을 발하곤 했다. 그런 이유로 천문대와 과학아카데미 설립이 붐을 이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국의 찰스 2세가 설립한 왕립협회와 프랑스 루이 14세가 세운 과학아카데미였다.

루이 14세는 유럽 전역의 유명 과학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카시니였다. 왕의 지원을 받아 카시니는 목성의 대적반을 발견하고 목성 4대 위성의 운행시간표를 작성해 행성의 최고 권위자로 떠올랐다.

1669년 파리 초대 천문대장에 취임한 카시니는 토성 관측에 전념해 1671년 이아페투스, 1672년 레아, 1684년 다이오네와 테티스 등 토성의 4개 위성을 차례로 발견했다. 이런 성과로 당시 목성과 토성은 카시니의 손아귀에 있다고 할 정도였다.
 

올해 토성은 게자리의 산개성단 프레세페 바로 아래에서 빛난다.


지구와 태양간 거리 측정

파리 천문대장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카시니는 고심했던 관측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 계획은 바로 지구에서 태양간의 거리를 재는 것이었다. 당시 다른 행성과 비교해 태양과 지구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는 알려져 있었으나 그 기본이 되는 절대거리는 알 방법이 없었다.

1671년 카시니는 자신의 조수이자 제자인 리셰이를 남아메리카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 기아나로 보냈다. 처음 계획은 열대지방에서 빛의 현상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무렵 마침 화성이 지구에 가까이 접근했고, 화성을 관측하던 카시니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지구와 화성간의 거리를 쟀다. 사실 카시니는 폴란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이론인 지동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화성과 지구와의 거리를 잼으로써 지동설에 흠집을 내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카시니 이전, 덴마크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는 서로 떨어진 두 지점에서 혜성의 공동 관측을 통해 그 시차를 구한 다음 혜성의 위치가 지구 대기권 밖에 있음을 증명했다. 즉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보면 가까이 있는 물체는 먼 곳의 물체에 대해 위치가 다르게 보이는 사실을 활용해 거리를 쟀던 것이다. 카시니는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화성까지의 거리를 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시니와 뢰머


괴팍했던 스승

마침 그의 제자는 9700km나 떨어진 먼 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파리와 남아메리카를 잇는 관측을 계획했고 두 사람은 열심히 화성을 관측했다. 그 결과 화성은 지구에서 6400만km 떨어져 있다고 계산됐다. 화성의 궤도가 지구처럼 거의 완전한 원이 아니어서 오차가 많았지만, 이를 기초로 계산한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는 1억4000만km였다. 이것은 실제 값의 불과 7%인 약 1000만km 적은 수치로 대단히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화성을 관측하는 동안 리셰이는 정밀한 시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진자시계를 사용했다. 이 진자시계는 바로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발견한 호이겐스가 발명한 것이었다. 그런데 진자시계를 사용하면서 리셰이는 진자가 파리보다 기아나에서 더 느리게 흔들린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 사실이 보고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을 고민했었는데, 뉴턴이 명쾌하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즉 진자가 느리게 흔들리는 이유는 기아나의 위치가 파리보다 지구 중심에서 약 21km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지구의 자전 때문에 지구 적도 부근이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증거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의외의 발견을 한 리셰이는 곧 과학자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해졌다.

문제는 그의 스승 카시니였다. 카시니는 시기심이 매우 많고 성격이 고약한 인물이어서 자신의 제자가 유명해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더구나 지구 자전의 증거를 발견한 것이 화성까지의 거리를 알아낸 것보다 더 중시되는 분위기가 되자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카시니는 리셰이를 프랑스의 한 변방으로 쫓아내고 군 요새에서 수학 계산을 하는 업무를 맡게 했다. 그 바람에 막 피어나던 젊은 천문학자는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갔다.
 

목성의 합과 충^화살표는 목성에서 반사된 빛이 지구까지 이동하는 거리. 목성이 합의 위치에 있을 때는 빛이 지나는 거리가 충의 위치에 있을 때보다 지구궤도의 지름만큼 멀어진다. 그래서 보이는 데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 뢰머는 이를 이용해 빛의 속도를 계산했다.


눈엣가시 제자

리셰이의 후임으로 카시니의 제자가 된 사람은 덴마크 천문학자 뢰머였다. 카시니는 뢰머에게 목성의 위성을 관측하는 임무를 맡겼다. 카시니가 목성 위성의 위치환산력 표를 개발했으므로 이를 보정하는 작업을 맡겼던 것이다.

꼼꼼히 위성을 관측하던 뢰머는 곧 목성의 위성이 이상하게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성과 지구의 거리에 따라 위성이 나타나는 시간이 달랐던 것이다. 1674년 목성의 제1위성인 이오를 관측하던 뢰머는 이오가 예상보다 22분이나 늦게 나타나는 것을 측정했다.

이오가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운동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때 번개처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으니. 이 현상은 이오에서 나오는 빛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즉 지구에서 목성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그 거리만큼 빛이 더 이동해야 하므로 늦게 보일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카시니가 몇 년 전 계산했던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는 1억4000만km였다. 지구와 목성이 먼 지점(합의 위치)에 있을 때는 충의 위치의 두 배인 2억8000만km 만큼 더 멀어지므로 이오의 빛은 이 2억8000만km를 이동하기 위해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뢰머는 이 생각을 기초로 빛의 속도를 계산하기에 이른다. 그가 밝혀낸 빛의 속도는 21만4300km. 참값 대비 약 28%의 오차가 있긴 하지만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빛의 속도를 알아낸 뢰머는 하루아침에 스타로 발돋움하게 됐다.

시기심 많은 카시니는 이번에도 분을 참지 못했다. 자신이 먼저 발견하지 못한 것을 억울해했다. 카시니는 시간 오차가 위성 궤도 자체의 불규칙성 때문이라고 뢰머를 깎아내렸다. 그러나 빛의 입자설을 주장한 뉴턴과 파동설을 주장한 호이겐스가 뢰머를 지지하고 나섰다.

1681년 카시니의 박해를 참다못한 뢰머는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천문학자로서 일생을 마감했다.

한편 카시니는 열정적으로 토성의 고리를 관측해 1675년 A고리와 B고리 사이에 틈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 틈이 바로 토성에 대한 업적의 정점으로 오늘날까지 그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카시니 간극’이다. 이 간극은 소형망원경에서도 쉽게 보여 지금도 아마추어들 관측가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현재 카시니라는 이름은 달의 크레이터와 화성의 지형 등에도 남아 그 업적을 기리고 있다.

카시니는 1712년에 생을 마쳤다. 그로부터 13년 뒤 영국 천문학자 브래들리는 광행차를 이용해 빛의 속도를 측정해서 그의 제자 뢰머의 계산이 맞았음을 증명했다.
 

토성의 고리. A고리와 B고리 사이에 보이는 넓은 틈이 바로 카시니 간극이다. 또 A고리에는 엥케의 간극이 있다.


합,충 : 합은 지구에서 볼 때 어떤 행성이 태양과 같은 방향에 있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충은 지구에서 볼 때 행성이 태양의 정반대 위치에 오는 것이다. 목성 같은 외행성은 충의 위치일 때 지구와 가장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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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조상호 천체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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