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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파충류의 속사정 ➒ 익룡 中 ‘중생대 뷔페’가 만든 기기묘묘한 머리


익룡은 진화하는 과정에서 꼬리가 짧아지고 다리 사이에 있던 피부막이 퇴화했다. 그 결과 자유로운 다리를 얻었고, 효과적으로 땅 위를 걸어 다니며 다양한 먹이를 먹을 수 있었다. 땅으로 내려오게 된 익룡들은 어떤 먹이를 먹게 됐을까. 또 어떤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을까.


프랑스의
남서부에 위치한 크레이삭 지역에는 로 강(Le Lot)이 위아래로 굽이치며 흐른다. 이 강 주변으로는 13세기 때 만들어진 웅장한 샤토드센이비에레세(Château de Cénevières) 성과 라생뜨샤펠 성당(Chapelle Sainte Croix) 등 다양한 건축물이 서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성벽도, 성당도 아니다. 바로 익룡의 흔적이다.

샤토드센이비에레세 성 북쪽에 위치한 ‘익룡 해변’ 화석지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익룡의 화석, 특히 발자국이 많이 발견된다. 1억5000만 년 전, 크레이삭은 따뜻하고 얕은 바다와 해변이 있던 장소다. 이곳에 살던 익룡들은 이 해변을 걸어 다니면서 발자취를 남겼다. 재밌는 것은 이곳의 익룡 발자국 보행렬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어떤 익룡은 보폭이 좁고, 어떤 것은 보폭이 넓다. 이것은 익룡이 때에 따라 다른 속도로 걸어 다녔음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익룡들이 땅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능력은 익룡 진화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땅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는 것은 이들이 거기에서 먹이를 찾아 다닐 수 있었다는 뜻이다. 땅 위에는 다양한 먹이가 있었다. 그리고 어떤 먹이를 주로 먹느냐에 따라, 이들의 주둥이는 천차만별로 진화했다.


백악기 뷔페에 입장~!
땅 위를 잘 걸어 다니는 ‘진화된 익룡’은 약 1억6000만 년 전 후기 쥐라기 때 처음 등장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익룡의 주둥이는 서로 거의 비슷했다. 유사한 환경에서 비슷한 먹잇감을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쥐라기 후기에 육상으로 내려와 새로운 환경에 진출해 서로 다른 다양한 먹이를 맛보게 되면서(이들에게 지상은 온갖 먹이가 차려진 뷔페였을 것이다!), 익룡의 종 다양성은 백악기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어떤 익룡이 어떤 먹이를 먹었는지는 머리뼈를 관찰하면 알 수 있다. 브라질의 전기백악기 산타나층에서 발견된 익룡 ‘안항구에라’의 경우, 주둥이가 길쭉하며 그 끝에는 뾰족한 고깔 모양의 이빨이 모여 있다(위 사진). 마치 미끄러운 면 요리를 건져 올리는 데 사용하는 요리용 집게와도 비슷하다. 주둥이 앞에 모여 있는 고깔 모양의 이빨은 미끄러운 물체를 효과적으로 고정시키는 데 적합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안항구에라가 오늘날의 갈매기처럼 수면 근처로 올라온 물고기를 낚아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전기 백악기 리안무진층에서 발견된 ‘중가립테루스’는 위로 휜 핀셋 같은 주둥이를 가지고 있다(사진2). 안항구에라처럼 얕은 바다 위를 날아다니며 먹이를 낚아채기에는 부적합한 모양이다. 또 입 안쪽에 크고 견고한 이빨이 줄지어 나있는데, 부엌에 있는 호두까기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중가립테루스가 휘어진 주둥이 앞부분을 이용해 모래나 갯벌 속에 숨어있는 게나 조개를 파내고, 안쪽에 있는 강한 이빨을 이용해 단단한 껍질을 깨먹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익룡 중에서 가장 독특한 주둥이를 가진 종류는 아마도 아르헨티나의 전기 백악기 라가르시토층에서 발견된 ‘프테로다우스트로’일 것이다(사진1). 프테로다우스트로의 주둥이는 중가립테루스처럼 위로 휘어져 있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익룡 중 가장 가늘다(주둥이의 길이가 높이의 약 12배). 게다가 이들은 약 1000개나 되는 길고 얇은 털 모양의 이빨을 아래턱에 가지고 있다. 오늘날 살아있는 동물 중에서 이와 유사한 주둥이 구조를 가진 종류는 홍학과 수염고래다. 이들은 털과 비슷한 이빨을 이용해 물속의 작은 생물을 걸러먹는데, 프테로다우스트로도 그랬을 것이다.


편식 안 한 익룡이 백악기를 접수하다
백악기는 익룡의 황금기였다. 작은 벌레를 먹는 종류부터 물고기를 건져먹는 종류까지, 익룡은 각각의 먹잇감을 잡는 데 최적화된 이빨 모양과 주둥이 형태로 진화했다. 하지만 익룡 중 가장 번성했던 것은 뾰족하거나 단단한 이빨을 가진 종류가 아니었다. 이빨이 전혀 없는 익룡, ‘프테라노돈’이었다.

프테라노돈은 미국의 후기 백악기 니오브라라층에서만 발견되는데, 지금까지 과학계에 보고된 프테라노돈 화석 수만 해도 1100마리가 넘는다. 지금까지 발견된 익룡 중 가장 많은 수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프테라노돈이 가장 번성했던 익룡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프테라노돈이 당시에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프테라노돈의 긴 주둥이에는 이빨이 없다. 한때 과학자들은 프테라노돈에게 이빨이 없는 이유가 비행과 관련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테라노돈은 길고 강한 날개를 가지는데, 이를 이용해 힘차게 날아올라 해변으로부터 수백km 떨어진 바다로 날아가 먹이를 사냥할 수 있었다. 그런데 힘들이지 않고 오래 먼 거리를 날기 위해서는 몸무게를 줄여야 한다. 과학자들은 프테라노돈이 무거운 이빨을 퇴화시켜 몸을 가볍게 했고, 바다 멀리까지 날아가 먹이를 먹어 번성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상하다. 이빨이 퇴화된다고 몸무게가 정말 많이 줄어들까. 익룡의 이빨이 아무리 크고 단단하다 해도 몸 전체의 무게와 비교하면 그리 무겁지 않다. 게다가 이빨의 퇴화가 비행에 이롭다면 다른 익룡도 이빨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보고된 대부분의 익룡은 이빨을 가지고 있다.
 

요즘 과학자들의 생각은 이렇다. 이빨이 없는 프테라노돈은 편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번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특정 먹이를 먹는 데 적합하게 진화한 이빨과 주둥이로는 다양한 식사를 시도해볼 수가 없다. 주식으로 삼던 먹잇감의 수가 줄어들기라도 하면, 그 익룡은 굶거나 심각한 경우 멸종하게 된다. 하지만 프테라노돈은 특정한 먹이를 잡는 데 필요한 이빨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주둥이로 무엇이든지 집어 먹을 수 있었다. 물고기가 많을 때는 물고기를 잡아먹고 연체동물이 많을 때는 연체동물을 잡아먹었을 것이며, 죽은 해양파충류가 해변으로 떠밀려오면 그것 또한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테라노돈은 이것저것 다 잘 먹었기 때문에 번성했다.


유례없는 판타스틱 헤어스타일
프테라노돈의 또 다른 특징은 뒤통수에 발달한 기다란 벼슬이다(90쪽 그림 왼쪽 맨위). 이 벼슬은 얇은 뼈 판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렇게 재미난 벼슬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프테라노돈을 다른 익룡들로부터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프테라노돈만 이렇게 큰 벼슬을 가진 것은 아니다. 브라질에서 발견된 ‘탈라소드로메우스’는 삼각자와 비슷한 거대한 벼슬을 가졌으며(90쪽 그림 가운데), 프테라노돈의 가까운 친척인 미국의 ‘닉토사우루스’는 사슴뿔을 연상시키는 Y자형의 가늘고 긴 벼슬을 가졌다(90쪽 그림 오른쪽 맨 아래). 이외에도 크고 괴상한 모양의 벼슬을 가진 익룡은 많았다.

익룡은 왜 이렇게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벼슬을 머리에 가지게 됐을까. 과거에는 익룡이 거대한 벼슬을 마치 비행기의 방향키처럼 사용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축소모형을 이용해 실험해 본 결과 익룡의 벼슬로는 방향키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에는 성선택 이론이 등장했다. 머리에 거대한 벼슬을 가지고 있는 익룡은 대부분 후기 쥐라기 이후에 등장해 진화한 종류다. 땅에 내려와 다양한 먹이를 먹었고, 따라서 제한된 먹이만 먹던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이 말은 번식에도 더 많은 에너지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공작의 꼬리 깃털과 코끼리의 상아처럼, 익룡의 큰 벼슬 역시 이성을 유혹하는 데 쓰였을 것이다. 니오브라라층에서 발견되는 프테라노돈의 종류는 작은 벼슬을 가진 것과 큰 벼슬을 가진 것 두 가지인데, 과학자들은 이중 큰 벼슬을 가진 종류를 수컷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진화한 익룡의 식단 변화는 자신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공룡시대를 대표하는 날짐승인 익룡이 비행능력이 아닌 걷는 능력과 식욕 때문에 진화했다니,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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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대중을 위한 고생물학자문단 독립연구원
  • 에디터

    윤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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