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하늘엔 커다란 정삼각형이 있다. 겨울별자리의 기준이 되는 세 별을 이은 겨울 대삼각형은 큰게자리의 시리우스,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 오리온자리의 베텔규스로 이어진다. 정월에 주목할 별은 프로키온. 이 별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국 천문학자 스트루베와 뉴컴이다.
1844년 천재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베셀은 밤하늘의 좌표를 정밀히 구하고 기준성으로 삼았던 38개 별의 정확한 위치를 발표했다. 그는 과거 자료들과 비교해 별들의 운동을 정밀히 연구했다.
베셀은 먼저 시리우스가 보이는 이상한 거동에 관심을 가졌다. 시리우스는 일정한 방향으로 운동하지 않고 마치 흔들리는 듯 운동 방향이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베셀은 이 현상이 밝은 별(주성) 주위에 어두운 별(동반성)이 있어 밝은 별을 흔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미국의 망원경 제조업자인 클라크에 의해 증명됐다(과학동아 12월호 참조).
그런데 이 같은 별은 시리우스만이 아니었다. 베셀은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에서도 시리우스와 유사한 흔들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의 이런 견해에는 다른 천문학자들도 동의했다. 1851년 독일 천문학자 페터스, 1861년 미국 천문학자 셰퍼, 독일 천문학자 올베로스도 베셀과 같은 주장을 폈다.
1862년 클라크가 시리우스의 동반성을 증명하자 천문학계는 흥분에 빠졌다. 보이지 않는 별을 베셀이 과학적 추론으로 예언했고, 당시에는 망원경 성능이 약해 발견할 수 없었으나 망원경 성능이 좋아지면서 그가 예언한 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시리우스의 동반성을 발견한 후 세계 각국의 망원경은 베셀이 예언한 또 하나의 별 프로키온으로 향했다. 그러나 시리우스와 달리 프로키온은 요지부동이었다. 프로키온의 동반성은 시리우스의 동반성에 비해 주성에 더 가까이 붙어있고 더 어두울 것으로 예상됐다.
시리우스 동반성을 발견한 클라크 망원경의 구경은 47cm. 적어도 이보다는 더 크고 정밀한 망원경이 필요했다. 1870년 미국 해군성은 세계 최대의 천문대를 계획한다. 당시 세계 최대의 망원경은 영국왕립학회 회원이면서 아마추어 천문가였던 뉴올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구경 64cm 짜리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정밀한 망원경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클라크가 1873년 마침내 66cm 망원경을 만들면서 미국 해군천문대가 완성된다. 당시 천문대장이었던 시몬 뉴컴은 프로키온의 동반성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이중성의 최고 권위자였던 러시아 천문대 대장 오토 스트루베에게 자신의 계획을 편지로 알렸다.
이중성 관측으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스트루베(오토의 아버지)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트루베는 어려서부터 고전을 무척 좋아했다.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으며, 불과 18세였던 1811년에 문학박사가 됐다. 그 직후 천문학으로 연구 방향을 전환한 스트루베는 불과 2년 뒤 천문학박사가 된다.
스트루베는 에스토니아의 도르파트대 천문대에서 23cm 굴절망원경으로 관측을 했다. 그는 남달리 정밀한 관측에 재능이 있어 별의 위치 측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1827년까지 약 12만개의 별들을 관측했다. 또 32초각 이내의 거리에 있는 이중성을 3112개나 관측하고 기록했다. 이 가운데 2343개는 새로 발견한 이중성이었다.
이 같은 그의 관측 기록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이중성 분야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스트루베 본인도 당시의 가장 뛰어난 관측 천문학자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또 1839년 무렵 그는 베가의 시차에 관한 발표를 해 베셀과 경쟁하기도 했다.
이후 스트루베는 러시아의 풀코보 천문대로 옮겨가 이중성 연구를 계속하며 말년을 보냈다. 풀코보 천문대에서도 그는 새로운 이중성을 1842년까지 514개나 더 발견했다. 스트루베는 건강 악화로 1864년에 목숨을 거뒀는데 슬하에 자식이 무려 18명이나 있었다.
스트루베의 업적을 이어받은 사람은 아들 오토 스트루베였다. 오토 스트루베는 18세 때부터 아버지의 조수로 천문대에서 일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이중성을 연구했으며, 아버지의 필생 숙원이었던 이중성 관측을 더욱 확장시켰다. 스트루베 부자의 이런 노력은 스트루베 이중성 목록(Σ, OΣ로 표시)으로 남아 지금도 이중성을 관측하는 아마추어 관측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흥미롭게도 스트루베의 아들인 오토와 그 손자인 칼, 구스타프, 칼의 아들인 존, 구스타프의 아들인 오토에 이르기까지 모두 세계적인 천문학자가 됐다. 그래서 단순히 천문학자 스트루베라 하면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를 정도로 계보가 어지럽다. 참 대단한 집안이다.
프로키온이 화제의 중심에 있던 무렵 오토 스트루베에게도 프로키온은 대단한 관심거리였다. 1873년 오토 스트루베는 프로키온을 관측하다 밝은 별의 동쪽에서 희미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 빛은 시리우스 동반성에 비해 약 2등급 가량 더 낮은 것으로 느껴질 만큼 희미했다. 그는 다른 이중성과 마찬가지로 이 동반성의 밝기와 주성에서의 각거리를 측정했다. 또한 오토 스트루베는 프로키온의 동반성임을 확신하기 위해 조수와 함께 여섯 번에 걸쳐 추가 관측을 했다.
대(大) 실수로 밝혀지다
오토 스트루베가 사용한 망원경은 구경 38cm의 비교적 작은 것이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베셀이 예측한 프로키온의 동반성을 발견하고자 몇 차례 시도를 한 상태였다. 그런 노력 중에 마침내 프로키온의 동반성을 발견하자 그는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으며 이 사실을 전세계에 알렸다.
물론 미국 해군천문대의 뉴컴에게 이는 대단히 실망스런 소식이었다. 세계 최대 망원경을 가진 자신들이 먼저 발견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엉뚱한 곳에 영광을 빼앗긴 꼴이었다.
하지만 낙심에 잠겼던 뉴컴은 곧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시리우스의 동반성은 47cm 망원경으로 발견됐다. 그런데 프로키온의 동반성을 스트루베는 그보다 더 작은 38cm 망원경으로 발견했다. 이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결과였다.
뉴컴은 해군천문대의 66cm 망원경으로 프로키온 동반성의 확인 관측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여전히 동반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3년 뒤, 희망이 통했음인지 뉴컴은 프로키온의 옆에서 동반성으로 보이는 어두운 별들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별은 스트루베가 발표한 것과 위치가 달랐을 뿐만 아니라 하나가 아니었다.
이 소식은 오토 스트루베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그는 확인을 위해 천체망원경을 프로키온으로 향했다. 그 순간 그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망원경 속에서 밝은 별이 시야에 들어오면 모든 별에 대해 수평방향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희미한 점 하나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바로 밝은 별의 허상(ghost)이었다. 즉 그가 본 것은 실제 별이 아니라 밝은 별빛이 망원경 렌즈 면에 부딪쳐 만들어낸 ‘존재하지 않는’ 별이었던 셈이다.
20 년 지나서야 찾은 별
스트루베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 자신의 발견이 잘못됐음을 발표했다.
시간이 지나 뉴컴도 결국 동반성을 찾는데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발견도 실수였던 것이다.
프로키온의 동반성은 그로부터 약 20년 뒤인 1896년 미국 릭 천문대의 91cm 망원경으로 처음 발견됐다. 즉 러시아 풀코보 천문대의 38cm 망원경과 미국 해군천문대의 66cm 망원경은 프로키온의 동반성을 발견하기에 너무 작았던 것.
또 프로키온의 동반성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개였다. 이밖에도 프로키온의 동반성에 얽힌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 보듯이 과학의 발전은 경쟁을 통해 이뤄지며, 그 내면에는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있다. 잘못된 발견도 과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하며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