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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억년 전 별빛을 잡는다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단

우주는 인간과 비슷하다. 젊었을 때 한창 빛과 열을 뿜어내던 별들도 나이가 들면 잠잠해진다. 그러나 노익장을 발휘하는 별도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수소 연료를 다 태운 별들은 수소가 타고 남은 헬륨을 다시 모아 마지막 불꽃을 터뜨린다.

연세대 이영욱 교수가 이끄는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단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우주망원경 갈렉스(GALEX)를 공동 개발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 영역에서 우주의 신비를 파헤친다.
 

자외선우주망원경 갈렉스. 지름 50cm의 반사경에 무게 280kg이지만 관측 가능 시야는 보름달의 두 배 가까운 1.2˚나 된다.


구상성단 기존 이론 뒤집다

새로 탄생한 태양만한 별은 수소로 헬륨을 만드는 핵융합을 통해 강한 빛과 열, 자외선을 방출한다. 시간이 지나며 수소 연료를 모두 소비한 별은 크게 부풀어 올라 적색 거성, 초거성으로 바뀌며 조금씩 표면온도가 낮아진다.

그러나 1989년 이 교수는 120억살 정도 된 늙은 별이 갑자기 헬륨 핵융합을 일으키며 2만K로 뜨거워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단계에서 별은 다시 자외선을 대량으로 방출한다. 따라서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외선의 양을 측정하면 은하의 나이를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이 ‘자외선 은하연령 측정법’이다.

연구팀이 쓰고 있는 갈렉스는 ‘은하 진화 탐사선’(Galaxy Evolution Explorer)의 약자를 따 이름을 붙였다. 우주 공간에서 별이나 은하가 방출하는 자외선을 관측해 은하의 진화과정을 규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름 50cm의 반사경을 가진 작은 망원경이지만 시야가 허블 망원경보다 100배나 넓다. 2003년 연구팀은 갈렉스를 이용해 안드로메다은하 전체를 자외선으로 관측하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지난해 연구팀은 갈렉스로 구상성단을 관측했다. 구상성단은 같은 시기에 태어나 수소 연료를 소비한 늙은 별들이 모인 천체로 우주에서 가장 나이 많은 천체 중 하나다. 기존 이론에 따르면 구상성단의 헬륨 함량은 총 질량의 23%, 수소가 나머지 77%다.

그런데 갈렉스의 관측 결과 오메가 센타우리 (ω Centauri) 구상성단의 일부가 뜨거운 초고온 헬륨 연소단계에서 자외선을 내고 있다는 데이터가 나왔다. 헬륨 함량이 43%는 돼야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상성단의 헬륨 함량이 23%라는 것은 20세기 내내 한 번도 의심받아 본 적 없는 이론이었다.

연구팀이 관측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으로 항성 진화 모델을 만든 결과 실제로 구상성단의 별들 중 30% 정도가 헬륨 함량이 4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오메가 센타우리 일부에서 별의 탄생과 죽음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별의 진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면 이는 구상성단이 아니라 은하라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 연구 논문을 지난해 3월 1일 ‘천체물리학 저널’(Astrophysical Journal)에 발표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의 구상성단 연구 방향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시뮬레이션 결과를 확증해 줄 망원경 분광관측은 한국엔 없는 지름 8.2m짜리 망원경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

이 교수는 “한국에 큰 지상망원경이 있다면 분광 관측을 통해 논문의 수준을 한층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 교수팀의 논문이 나온 직후 이탈리아 연구팀은 실제 망원경 관측을 통해 헬륨의 함량이 이론치보다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제출했다.
 

01 연구팀이 2005년 관련 논문을 발표한 오메가 센타우리 구상성단을 가시광선으로 관측한사진. 02 미국 페가수스 로켓에 실려 발사를 기다리고 있는 갈렉시의 모습.


은하수에서 건진 다이아몬드

이 교수는 “갈렉스에서 받은 데이터를 사용해 은하의 형성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조만간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갈렉스 데이터로 안드로메다 구상성단의 모델을 만들고 관측해서 얻은 다른 논문도 ‘사이언스’에 제출해 최종 심사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엠바고(보도제한)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번 두 논문은 지난 20년간 학계를 지배한 여러 논란을 잠재울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오는 3월 칠레에서 열리는 구상성단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새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봄에는 ‘천체물리학 저널’ 특별호에도 논문 40여 편을 게재할 예정이다.

연구팀은 갈렉스 연구 실적을 바탕으로 지난 2004년 NASA의 우주과학 프로젝트 심사에서 20여개 우주과학 사업 중 1위에 올랐다. 이 교수는 “한국의 연구 환경에서 이런 성과를 얻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2002년 칠레 세로톨로로 미국국립천문대에서 이룬 쾌거를 예로 들어 한국과 미국의 여건을 비교했다.
 

01 갈렉스의 관측범위를 보름달의 크기와 비교한 그림. 갈렉스는 밤하늘에서 1.2˚ 만큼의 영역을 한번에 관측할 수 있다. 02 칠레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세로톨로로 미국 국립천문대(CTIO)의 모습. 연구팀은 2002년 여기서 우리 은하의 형성 기원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천문대에 부탁해 이곳 0.9m짜리 망원경을 크리스마스 전후로 1주일간 빌려 우리은하의 형성 기원을 규명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훨씬 성능이 뛰어난 8.2m 망원경을 사용해 수시로 관측해 온 미국 연구팀보다 6년 앞선 결과였다. 작은 망원경을 써야 했기에 이 교수팀이 찍은 사진만 750장. 미국 연구팀이 찍은 50장의 15배에 이른다.

“우리 연구를 사금 채취에 비유하자면 미국이 강에서 큰 채로 떠올릴 때 한국은 멀리서 보고만 있는 셈이었죠. 아예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어요. 그래도 3년 동안 계속 부탁해서 1주일 정도 허락을 받고 사금을 채취했는데 그만 금도 아닌 다이아몬드를 건진 겁니다. 그것도 미국에서 금이 아니라고 버린 모래를 다시 건져서 얻은 성과예요.”

1997년 창의연구단에 선정된 연구팀은 미국, 프랑스와 함께 갈렉스를 이용한 연구에 참여하면서 논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2005년 한 해 동안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에 등재된 학술지에만 45편의 논문을 실었다. 이 교수는 “앞으로도 갈렉스로만 1년에 논문 40편은 나올 것”이라며 기염을 토한다.

“정밀한 연구를 위해선 적외선, 가시광선으로도 관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외선 망원경만으로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예요. 앞으로 가시광선 관측 장비와 데이터를 확보하는대로 자외선 데이터와 합쳐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2003년 4월 발사된 갈렉스의 예상 수명은 6~7년 정도. 아직까지는 아무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고, NASA와의 협약에 따라 2008년 9월까지 운용할 예정이다. 운이 좋다면 2010년까지도 정상 작동을 기대할 수 있다. 그때까지 데이터를 계속 얻을 수 있다면 더 많은 우주와 은하의 비밀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갈렉스로 관측한 은하의 영상을 한데 모아 재구성한 그림.


은하 신비 밝히는 천문학계의 별 - 창의단지기 이영욱 교수

이영욱 교수는 논문의 국제적 명성을 가늠하는 척도인 SCI 피인용 횟수 기준으로 세계 13위에 오른 ‘스타급’ 과학자다. 2002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아시아 차세대 리더’로 뽑혔고, 동아사이언스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발표한 2003년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61년 강원도 철원 출생이지만 본인은 정작 “주소도 없는 군부대 대대장 관사에서 태어나 3개월 만에 서울로 왔으니 서울이 고향”이라고 주장한다.

1980년 연세대 천문학과에 입학한 이 교수는 1984년 졸업과 맞춰 미국 예일대 천체물리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석·박사 통합과정을 4년 만에 마친 그는 캐나다 빅토리아대, 허블우주망원경연구소를 거쳐 1993년부터 지금까지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 교수팀은 2주에 한번 미국, 프랑스 연구팀과 3개국 원격회의를 연다. 국제 공동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연구비 분담 문제처럼 외적으로 신경 쓸 일도 많다. 1998년 연구를 시작할 당시 한국에서 비용을 부담하기로 약속한 액수는 전체의 10%. 그런데 때맞춰 터진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해 3%만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국제 사기꾼이 될 뻔 했죠. 일단 실험은 착수했지만 미국 NASA측 관계자가 ‘안 끼워 줄 걸’ 하는 눈치를 보내고….”

그런데 6개월 뒤 미국으로 간 이 교수는 박대할 줄 알았던 NASA에서 모두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바람에 놀랐다. 사정을 알아보니 이 교수팀에서 파견한 연구원 4명 덕분이었다.

이들이 미국에서 우수한 연구 결과를 낸 데다 위성 궤도 운영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10개를 1년 만에 모두 개발하며 눈부신 활약을 펼친 것이었다. 이 교수를 만난 NASA 책임자는 “개발비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고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그 뒤로는 안심하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죠.”

그는 올 가을에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인 이창희 연구원과 함께 거대 타원은하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연구하고 있다. 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를 매번 그래프 상에 점으로 표시하는데, 여기 드는 비용을 계산해 보면 점 하나에 2억 원이나 된다.

점마다 지난 2년간 갈렉스의 데이터가 집약돼 있어 무척 조심스러운 작업이지만 이 점들이 모여 세계 천문학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생각에 이들은 오늘도 위성 영상에서 눈을 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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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엽 기자
  • 사진

    박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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