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부족 문제 해결의 중임을 부여받고 탄생한 수자원의 지속적 확보기술개발사업단. 사업단은 지표수와 지하수, 그리고 대체수자원을 모두 활용하는 신개념 수자원관리 기술을 제시했다. 21세기형 첨단 수자원관리기술을 만나보자.
2001년 봄을 기억하는가. 개인마다 다사다난한 일이 있었겠지만, 이 땅의 농민들은 결코 잊지 못할 일 한가지를 겪었다. 1백년만에 최악의 가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적은 비가 내려 대지는 타들어갔다. 모내기 때문에 물에 잠겨있어야할 논바닥은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쩍쩍 갈라졌다. TV에서는 타는 논밭에서 하늘만 우러러보고 있는 농민의 애타는 모습을 연일 방송했다. 한번쯤 시원한 물을 뿌려줄만도 한데 결코 농민의 시름을 해결해줄 비는 내리지 않았다.
지난 봄에 겪은 가뭄의 악몽을 채 잊기도 전인 올해. 전문가들은 또 가뭄이 찾아올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만약 이번 봄에 가뭄이 찾아오면 그 결과는 지난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지난해에는 댐이나 저수지에 물이 저장돼 있어서 그나마 힘겹게라도 가뭄을 넘겼다. 하지만 올해에는 지난 가을부터 비가 적게 내려 저장된 물마저도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봄가뭄은 우리나라의 급박한 물부족 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1960년대 이후 불어닥친 개발 열풍은 경제발전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발달한 산업과 도시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 실제 지난 35년 동안 필요한 물의 양은 무려 6.5배나 증가했다. 물 수요가 급증하는 현상은 현재 한풀 꺾였지만 앞으로 20년 동안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발등에 떨어진 물 문제
그런데 물이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더 많은 비가 내릴리는 만무하다. 주어진 물을 효율적으로 나누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여름에 비가 집중되고 가뭄이 자주 발생하는 기후 특성 때문에 제한된 물을 관리하는 데도 불리하다. 최근에는 수질오염이 심각해 물관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천의 물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연과 함께 나눠 써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하천은 인간에게 너무 많은 물을 빼앗겨 시름시름 앓고 있다. 자연에서 인간이 물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흔히 물 스트레스 지표를 사용하는데, 우리나라는 35.6%로 조사됐다. 바람직한 물 스트레스 지표는 10%로, 사람과 자연이 1대9로 나눠써야 자연의 자정작용이 정상적으로 일어난다는 의미다. 35.6%는 물이 사회발전의 제한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GNP의 상당부분을 물관리에 투자하여 적극적인 관리를 해야만 하는 단계로 위험 수준(40%)을 바라보고 있는 수치다.
생명의 가장 소중한 자원인 물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다. 정부에서도 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물 관리를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으로 선정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물부족 문제 해결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리라 기대되는 ‘수자원의 지속적 확보기술개발사업단’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2001년 출범한 사업단은 10년 동안 무려 1천여억원이 지원된다. 이 비용은 과학기술부와 건설교통부가 7대 3의 비율로 출연할 예정이다. 과기부의 지원만 받는 다른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과는 구별되는 점이다. 왜 그럴까. 물 관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과학으로 물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과기부)과 여러 기술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일(건교부)이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댐 건설 뛰어넘는 묘수
현재 예상되고 있는 물 걱정을 말끔히 해결하라는 중임을 부여받은 수자원의 지속적 확보기술개발사업단. 사업단은 2011년까지 30억m3의 수자원을 확보해 물부족 문제를 해소할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수자원관리 개념을 뛰어넘는 한차원 높은 묘수가 필요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물 수요를 예측하고 이를 공급하는 양과 비교한 후 모자라면 다목적댐을 건설해 물을 공급했다. 지난 30년 동안 다목적댐은 수자원의 확보뿐 아니라 전력생산, 홍수피해 감소와 같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해 왔다. 하지만 수자원관리가 지나치게 댐 건설위주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더욱이 지난해 전면 백지화된 영월댐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댐이 환경에 피해를 준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더이상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 댐 건설과 같은 한가지 방법으로 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자원의 ‘지속적’ 확보를 위해서는, 즉 미래세대의 희생없이 현세대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좀더 다차원적인 수자원관리기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업단에서는 이를 위해 통합수자원관리 개념을 제시했다.
통합수자원관리는 하천과 같은 지표수에만 의존하던 방법에서 벗어나 지하수, 하수, 우수(빗물)를 포함한 모든 수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통합 관리하는 21세기형 선진 기술이다. 수자원 전체를 통합해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표수나 지하수와 같은 개별 수자원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어떤 수자원을 어떻게 조합해 사용할지, 가장 효과적인 수자원 확보방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통합수자원관리에 필요한 다양한 개별 기술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지표수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진행됐지만, 지하수나 하수, 우수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부족했다. 더욱이 지표수에 대한 연구도 개발에 초점을 맞춰 왔지, 개발된 수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다뤄 왔다. 수자원 기술은 기후나 지역과 같은 특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외국의 기술을 무작정 들여올 수도 없다. 또한 자연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고 그만큼 오랜 기간 동안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업단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란 얘기다.
최고의 전문가 대거 참여
척박한 토양에도 불구하고 통합수자원관리라는 거대한 성을 쌓는 일이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사업단은 사업이 완료되는 2011년까지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 1단계(2001-2004년)에는 우리나라가 보유하지 못한 다양한 수자원 기술을 개발하고, 2단계(2004-2007년)에는 이 기술을 실제 적용할 수 있도록 실용화시키며, 3단계(2007-2011년)에는 확보한 기술을 바탕으로 통합수자원관리를 이룩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사업단은 산업체와 학교, 연구소가 참여하는 연구진용을 갖췄다. 현재 수자원공사와 SK 등 28개 기업과 서울대 등 36개 대학, 그리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46개 연구원이 참여하고 있다. 통합수자원관리에 필요한 기술 중 가장 자신있는 것을 산·학·연에서 나눠 연구하는 것이다.
통합수자원관리를 위해 필요한 연구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전통적인 수자원인 지표수의 경우 좀더 합리적으로 이용되기 위해서는 현재 지표수가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를 좀더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강수량, 기온 등 기상정보를 사용해 지표수 양을 10% 이내의 오차로 정확하게 예측하는 모니터링·해석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또 우리나라 하천의 컴퓨터 모형을 만들어 하천의 흐름을 해석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컴퓨터 모형을 활용하면 하천을 개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리 알 수 있어 유용하다. 환경친화적 댐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댐을 건설할 때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로 하고, 수몰되는 지역의 생태계 자체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방법이 검토되고 있다. 한편 한정된 지표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물 수요를 예측하고 배분하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 지표수 개발의 영향을 수자원, 환경, 경제의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물 수출할 날 기대
지금까지 지표수를 보조하는 수자원정도로 인식됐던 지하수도 물부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요하다. 사실 지하수는 지표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소중한 수자원이다. 지하수를 이용하기 위해서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진단·평가하는 모니터링·해석기술과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기술, 그리고 안전하게 이용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지하수 양을 측정하는 방법의 경우 지금까지 시추공을 사용했는데, 시추공 주변으로 오염물질이 유입될 수 있어 문제가 됐다. 이런 단점을 보완해 전자파나 동위원소를 이용해 지하수의 수질에 영향을 주지 않고 지하수의 양을 분석하는 기술을 연구중이다.
지표수와는 달리 자연적으로 보충이 쉽게 되지 않는 지하수를 전혀 관리하지 않고 사용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따라서 지하수 관리의 개념을 도입해 지하에도 지표처럼 댐을 건설하는 등의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지 고려되고 있다.
이 외에도 대체수자원으로는 사용한 용수를 다시 이용하거나, 우수를 활용하거나, 해수로부터 담수를 만드는 연구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 중 해수를 담수로 만드는 기술로 주목받는 것이 고효율 담수화기술이다. 해수를 담수로 바꾸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 에너지를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열이나 심야의 남는 전기를 사용하는 기술이다. 고효율 담수화기술의 개발이 끝나면, 물이 부족한 여러 지역에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표수와 지하수, 대체수자원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은 무엇보다도 통합수자원관리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다. 통합수자원관리는 생태적, 환경적 조화를 유지하면서 물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지표수와 지하수, 대체수자원의 여러 기술을 융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개별 연구기관끼리 연구결과를 서로 교류하는 네트워크가 갖춰져 있다. 연구들이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효율의 극대화가 기대되는 이유다.
21세기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물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이후 가뭄이나 홍수가 그 전보다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늘어나리라 전망되고 있다. 정말 비는 내려도 걱정, 안내려도 걱정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물을 관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서도 증명됐듯 물을 제대로 관리하는 나라만이 부국을 이룩할 수 있다. 수자원의 지속적 확보기술개발 사업단의 행보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물 스트레스 지표
물 스트레스 지표는 실제 사용하는 물의 양과 사용가능한 물의 최대량의 비율이다. 사용가능한 최대량은 자연에 순수하게 유입되는 물의 양으로 빗물의 총량에서 증발한 양을 빼면 된다. 우리나라의 사용가능한 최대량은 1년에 7백31억m3 정도로, 이 중 2백60억m3을 취수해 사용하고 있으므로 물 스트레스 지표는 35.6%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