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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브릭, http://bric.postech.ac.kr)는 지난 12월 5일 새벽이후 숨가쁜 며칠을 달려왔다.정보 교환과 토론장으로 이용해 온 게시판 소리마당을 통해 일부 회원들이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문제를 집중 제기하면서 사그러들던 의혹을 밝혀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황 교수에게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던 네티즌과 일부 언론도 조목조목 오류를 짚어내는 이들 전문가 집단의 날카로운 문제 제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황 교수 논문과 연구 성과의 검증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대측도 이들이 제기한 사진조작과 DNA검사결과 의혹을 중점적으로 검증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 등 일부 외신은 “한국의 젊은 과학도들의 승리”라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담담하다. 브릭은 지난 12월 20일 23시를 기해 모든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는 지난 며칠간 여론과 언론의 쏟아지는 관심에 부담을 느낀 회원과 운영자들의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브릭 본연의 임무가 마비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 외에도 진실 규명 작업 결과를 지켜보고 불필요한 논란을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논문조작 의혹을 함께 제기한 한국과학기술인연합( http://www.scieng.net)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를 이끌어낸 브릭은 어떤 곳일까. 설립 10년째인 브릭은 포항공대가 한국과학재단의 후원을 받아 생물학 연구와 관련된 세계 모든 정보를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하기 위해 지난 1996년 설립됐다. 생물학 정보센터이다 보니 회원들도 석박사급 연구원이나 교수, 연구원,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이 분야에 취업과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도 일부 포함하고 있다. 회원 수는 약 3만명이다. 젊은 20대 연구원에서 30~50대 중견 연구자인 이들 회원은 평소 게시판을 통해 새로운 연구 결과나 연구 여건, 과학계의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여 왔다. 이번 진실찾기의 출발점도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전문 네티즌의 힘.' 논문 조작 논란을 촉발시킨 생물학연구정보센터 '브릭'(위)과 젊은 과학기술자 모임인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사이트.


“우리가 소장파라고?”


지난달 5일 생물학 전공자로 신원을 밝힌 한 회원이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황 교수 논문 사진 조작 의혹을 제기한 글을 사진과 함께 남기면서 논란의 불씨가 되살아 났다. 다음날 한 지방대 박사 과정생이라고 밝힌 또 다른 회원도 논문의 DNA지문분석 데이터의 높이와 모양 등이 놀라울 정도로 흡사해 같은 세포에서 나온 자료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일부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클릭 수는 하루 5만회를 넘었고 접속장애가 발생하기까지 했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사이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2002년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결성한 과학기술인연합은 이공계 석·박사와 젊은 과학기술자, 산업체 종사자 약1만7000명으로 이뤄진 단체. 회원의 80%가 이공계 출신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은 브릭과 거의 비슷했다. 황 교수 사태와 관련한 회원들의 비판이 게시판을 통해 전해지자 황 교수를 지지하는 일부 네티즌에게 홍역을 치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각종 언론과 포털들이 문제의 실체에 접근하지 않은 채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상세한 자료와 사진 등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며 논문 진위 논란을 촉발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특히 사안에 대한 회원간의 건설적인 토론을 통해 심각성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가리켜 ‘소장파 과학자들의 승리’라고 추켜세웠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에 대해 정작 회원들은 크게 고무되지 않은 모습이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분위기다. 회원들은 처음부터 사진 조작의 가능성을 밝히면서도 기존의 연구성과를 살리고 황 교수팀 소속 연구원을 비롯한 생명 연구자들이 이번 사태로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기 바란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어떤 회원들은 대다수 언론에서 쓰고 있는 ‘소장파 과학자’라는 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브릭 소장인 포항공대 생명공학과 김상욱 교수는 “두터운 회원층을 갖고 있는 만큼 소장파 집단이나 젊은 과학자들의 모임이라는 수식어는 얼토당토 않다”고 말한다.


이번처럼 여론이 쏠려있을 때 다른 입장을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논란을 촉발한 소리마당 게시판도 그전까지 한 연구자의 연구나 특정 논문을 주제로 토론한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이공계 인력 정책이나 처우, 연구비 집행정책같은 연구환경이나 현실적인 문제가 토론의 주제였을 뿐이었다. 브릭 회원들의 문제제기는 어떻게 일파만파로 번질 수 있었을까.
 

김상욱 교수는 “회원 대다수가 생명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네티즌”이라며 “사태의 과학적인 해결책을 바라는 회원들의 바람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과학적인 태도는 결국 과학의 칼날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는 내용과 비방, 억측을 담은 글을 배제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진실찾기에 나선 회원들과 브릭의 운영의 묘도 크게 작용했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인 최승호 박사는 ‘익명성 보장’이란 또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근거없는 맹신과 비방 도구로 전락해버린 포털 게시판에 비해 이들 게시판은 같은 익명 게시판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차분한 가운데 토론과 논의가 이뤄졌다. 모두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이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접근 방식과 입장차는 컸다.


최 박사는 “건전한 토론 문화와 함께 게시판에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황 교수 논문의 오류에 대한 지적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익명성이 이들 연구자들의 보호막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들 사이트에서는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이어 2004년 논문도 사진중복 논란이 일고 있다.


과학의 칼날로 무게 중심 잡아


두 단체의 게시판에서 제기된 의혹이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전면적으로 제기되자 황 교수 파문은 백지상태에서 연구성과를 재검증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이들 단체의 회원들은 섣부른 입장 표명과 결론을 내리는 것을 경계한다. 근거 없는 여론몰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게시판 내용을 무조건 퍼담기 바쁜 언론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있지 않는다.


최 박사도 “이번 파문은 전문가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반인에게 알려진 부분이 지나치게 부풀려진데서 시작했다”면서 “실제 연구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비과학적인 태도와 맹신을 과학적으로 검증하자는 게 문제를 제기한 회원들의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일부 카페에선 여전히 인신공격성 댓글과 과학적이지 않은 여론 부추기기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네티즌들이 많이 모이는 한 카페엔 황 교수 연구팀 소속 연구원들의 사진은 물론 특정 여성 연구원을 겨냥한 비하적인 내용의 글들이 버젓이 게재돼 있다.


한편 논문 조작을 비판하는 패러디가 늘어나면서 과학을 내세운 잘못된 분석방법이 유포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래픽 툴을 이용한 일반인들의 문제제기는 또 다른 의혹과 억측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분석은 전문지식과 면밀한 분석력을 갖춘 연구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논란을 촉발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IT)이 순기능을 할 지 역기능을 할 지는 결국 이용자들의 몫인 셈이다.


김상욱 교수는 “미국국립보건원(NIH)나 미국연방식약청(FDA) 등 해외의 연구비집행기관의 웹사이트에는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자유롭게 논문에 대해 교류하고 비판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마련돼 있다”며 “결국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하는 문화가 제대로 선다면 앞으로 이번 같은 사태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위적인 실수’에 갇힌 ‘그들만의 진실’


‘황우석 사단’의 연구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쉽게 ‘말바꾸기’ 일쑤였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과학도들의 날카로운 의혹 제기가 이들에게 말을 ‘바꿔야만 할’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
 

“순수 기증받은 난자만 사용했다.” (11.24 기자회견 전)
→“난자 제공한 연구원이 사생활 보호 요청해 감췄다.” (11.24 기자회견)
“단순 실수다.” (인터넷에서 줄기세포 사진 중복 의혹이 제기된 뒤)
→“돌이킬 수 없는 인위적 실수가 있어 논문 철회를 통보했다.” (12.16 기자회견)
“2004년에는 난자 242개, 2005년에는 185개가 연구에 쓰였다.” (논문에)
→“미즈메디병원과 한나산부인과 것까지 1200개 난자를 줬다.”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김선종 연구원
 

“줄기세포 9개 DNA검사 위해 체세포를 줬다.” (노성일에게)
→“8개 만들어 매일 검증했고, 3개는 만들어지고 있었다.” (KBS에)
→“8개는 확인했는데, 3개는 본 적 없다.”(동아일보에)
“2, 3번 줄기세포 테라토마 사진을 많이 만들어 보냈고, 4번은 서울대가 작업했다.” (YTN에)
→“황 교수가 2, 3번 사진을 11개로 부풀리라고 시켰다.” (PD수첩에)
→“줄기세포 4개가 죽어 2개 사진을 여러 장으로 만들라는 지시 받았다.” (KBS에)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
 

“줄기세포 내 눈으로 확인했다.” (12.4 동아일보에)
→“줄기세포 현재는 없다. 11개 중 9개는 분명 가짜다.” (12.15 언론에)


한양대 윤현수 교수
 

“내가 직접 테라토마 실험을 했다.” (PD수첩에)
→“테라토마 준비작업만 했지 직접 실험하진 않았다.” (매일경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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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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