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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지옥구더기의 분류학적 위치에 대하여

편집자주 - 이번 화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지옥문을 열어젖힌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었다. 공중파 뉴스에 나갈 인터뷰를 그렇게까지 호들갑스럽게 해버린 건 그 누구도 아닌 내 의지에 따른 일이었으니까. 물론 남부 지방의 갑작스러운 메뚜기 대량발생은 꽤 큰 이슈였고, 작물 피해로 울상이 된 농민들과는 달리 내게는 들뜰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기도 했다. 지방 국립대의 교수로 임용되어 귀국하기 전까지 내 연구주제가 바로 메뚜기목 곤충의 생태였던 것이다. 평소에는 홀로 돌아다니던 메뚜기들이 갑작스레 번식에 힘을 기울이고, 모습이 바뀌고,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풀이란 풀은 다 갉아먹는 현상은 오래도록 내 학술적 흥미를 사로잡아왔다. 하지만 내 동료들이 술자리에서 몇 번이나 놀려대며 말했듯이, 아무리 흥미로운 주제라 한들 카메라 앞에서 손까지 펄럭여가며 신나게 떠들어댈 필요는 결코 없었다.

 

“그래서 그, 로키산메뚜기라는 종이요, 아, 지금은 멸종했는데, 몇 억도 아니고 몇 조 마리가 이렇게 우르르르 몰려다니면서-”

 

기자의 눈치를 좀 봤어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편집해 달라고 따로 말을 했어야 했다. 열정적으로 메뚜기 흉내를 내는 내 모습이 전국 방방곳곳의 텔레비전으로 송출되기 전에. 차마 화면을 보지 못하고 엎어져 있는 동안 포복절도한 동료들의 메시지가 쉼 없이 도착했고, 부끄러워 죽으려던 차에 부모님의 전화까지 받아야 했다. 비극적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참담한 통화조차도 진짜 재앙의 전조에 불과했다. 내 인터뷰 영상이 웃기다고 생각한 건 가족과 동료 과학자들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온 인터넷에 곤충처럼 팔을 퍼덕이는 대학 교수 영상이 퍼졌고, 오후에는 인터넷 신문 기사로 올랐으며, 하루가 더 지나고 나니 그 주의 SNS 이슈를 갈무리해 보여준다는 실없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TV에 내 얼굴이 뜨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내가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한국 사람들은 양식 있는 성인 여성, 그것도 대학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의 꼴사나운 행동이야말로 가장 재미있는 광경이라는 합의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이 일단 가시고 나니, 나 역시도 이 상황이 꽤 재미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내 추태에 대한 여론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학자의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다는 반응이 많았고, 어느 새 ‘메뚜기 박사’라든가 ‘한국의 파브르’같은 다소 진부한 별명도 붙었으며, 메뚜기가 아닌 나 자신을 주제로 다시 인터뷰를 할 기회도 생겼다. 다른 직업도 아닌 곤충학자로서 경험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인기였다. 물론 그 인기가 연구가 아닌 퍼포먼스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낯을 좀 뜨겁게 했지만. 그 즈음 뉴스에는 혁신적인 현미경 기술을 개발해낸 물리학자라든가 몇 주째 꺼지지 않고 있는 천연가스 화재에 대해 분석을 내놓은 지질학자도 출연했는데, 그들은 단지 열정을 현미경이나 가스 흉내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찬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다소간의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그런 죄책감에 힘입어, 나는 이 예상치 못한 인기를 공익적인 목적에 이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졸지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곤충학자가 되었고, 또 곤충학이 잠깐 동안이나마 주목받는 학문 분야가 되었으니, 이 기회에 한국 곤충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 수 있다면 적어도 분에 넘치는 인기의 값 정도는 치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인터뷰에 응했고, 부쩍 늘어난 학생들의 진로 상담도 열심히 들어 주었으며, TV 강연과 잡지 칼럼에도 한 번씩 참여 했으며, 그 외에도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곤충학자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옥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진정한 지옥의 문은 다른 곳에서 열렸다.

 

곤충학자는 흔한 직업이 아니다. 다소 과장을 섞자면, 곤충학자를 둘 이상 알고 지내는 사람은 같은 곤충학자밖에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가족, 친구, 고등학교 동창회 같은 여러 사회적 집단 내에서 나는 유일한 곤충학자다. 곤충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고, 집에서 처음 보는 벌레를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나는 유학생활 동안 정기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곤충 감정사 노릇을 해 주어야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었는데, 메뚜기 말고는 잘 모른다고 몇 번이나 설명해야 했는데, 이젠 졸지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곤충학자가 되고 만 것이다. 전국에서 날아온 질문으로 가득 찬 메일함을 보자 그 사실이 다시금, 무자비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물론 무시하자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이미 한국 곤충학 중흥에 대한 의무감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이 벌레가 뭔가요?”, “얘한테 물렸는데 혹시 위험한 겁니까?”, “집에서 나왔어요! 이거 독 있는 곤충 아닌가요?” 같은 질문에 정확하고도 성실하게 대답하는 것이 곧 과학에 대한 대중의 흥미와 신뢰감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단 하나의 메일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의를 하고 시험 문제를 내고 채점을 하고 또 연구를 하는 한편으로, 나는 백 장이 넘는 사진 속 곤충의 정체를 밝히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정말이지 내가 자초한 고행이었다.

 

어떤 사진은 보자마자 답장을 보낼 수 있었다. 사진 속 곤충이 한국에 서식하는 메뚜기 이백여 종 가운데서도 내가 그럭저럭 잘 아는 종류이고, 흐릿하게 찍히지도 않았고, 알이나 새끼가 아닌 성충이며, 이미 납작하게 밟힌 시체도 아닌 경우라면. 나머지 경우에는 도움이 좀 필요했다. 서적, 논문, 인터넷 곤충학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학계의 동료들이 나의 구세주였다.

 

이를테면 내 전문분야가 아닌 딱정벌레의 종을 판별하는 데에는 한국 최고의 딱정벌레 전문가 윤 교수님의 공로가 지대했다. 곤충은커녕 절지동물조차 아닌 육지플라나리아 사진을 받았을 땐 주변 곤충학자들도 고개를 저었지만, 동료의 동료를 거쳐 플라나리아 분류학의 세계적 권위자에게까지 도달하고나니 답이 나왔다. 한국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희귀한 종이었던 것이다.

 

더욱 생소한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종종 있었다. 자기 몸에서 나온 벌레라면서 먼지며 실밥 사진을 보내오는 사람을 상대하느라 지쳐 있었을 때였다. 곤충이 아니라고 말했더니 욕설을 퍼부어대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했는데, 유학시절부터 알고 지낸 기생충학자 정 박사는 그런 행동이 전형적인 기생충 망상증의 증상이라고 말해 주었다.

 

“원래는 환자가 성냥갑에 뭘 담아온다고 해서 성냥갑 징후라고 하는데, 요즘은 뭐 한국에서 성냥 만들지도 않고, 그래도 그냥 부르던 대로 부르거든. 자기가 기생충에 감염됐다고 믿어서, 나름대로 찾아낸 증거를 누나 같은 전문가한테 보여주고 도움을 받고 싶은 거지.”

 

“그럼 어떻게 해? 정신과 가 보라고 말해야 하나?”


“원칙적으론 그런데, 아마 누나 말 안 들을 걸? 망상에 사로잡히니까 망상증이지.”


정 박사의 말대로 내 진심어린 충고는 전혀 먹히지 않았지만, 아무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훨씬 견딜 만했다. 정말이지 동료 학자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내 참을성은 언젠가 바닥나고 말았을 것이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따라 지옥을 순례했듯, 나는 온 과학계의 도움에 힘입어 분류학적 지옥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수수께끼의 메일은 그 지옥 순례 도중에 도착했다.

 

메뚜기 떼의 위협이 잦아들고, 반도체 연구 분야에서 또 무슨 성과가 나오고, 천연가스 화재 현장 주변의 악취로 주민들이 불만을 제기할 무렵이었다. 곤충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줄을 이었고 나는 그것들을 거의 기계적으로 처리해 나갔다. 어지간한 바퀴벌레, 박각시나방, 장님거미, 과자 부스러기, 말벌 따위는 이미 동료들의 도움 없이도 분류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지루한 단순작업의 흐름은 한 시간 십오 분만에, 흐릿하고 기이한 사진 한 장 앞에서 무참히 끊겨버리고 말았다.

 


“이건 도대체 뭐야?”

 

그런 말이 절로 나오는 사진이었다. 일단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부터 알기가 힘들었다. 사진의 해상도가 낮았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배경을 식별하기가 어려웠으니까. 그때까지 내가 본 사진은 대체로 방바닥, 흙, 나뭇잎 내지는 화장지 위의 곤충을 찍은 것이었다. 반면 문제의 메일에 첨부된 이미지는 무슨 누르스름한 물 속에서, 불그스레한 바위가 굴러다니는 오염된 계곡에 직접 들어가서 찍은 것 같았다. 그것도 아마 야간에.

 

게다가 사진 한복판에는 더 알 수 없는 물체가 찍혀 있었다. 바위틈에서 뻗어나온 길쭉하고 허여멀건하고 이리저리 뒤틀린……, 아무튼 곤충은 아닌 무언가였다. 끝에서 촉수가 뻗어나온 모습을 보아하니 일단 생명체 같기는 했다. 하지만 한국의 물가에서 볼 수 있는 거머리, 실지렁이, 갯지렁이, 여타 내가 아는 그 어떤 무척추동물과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

 

혹시 무슨 장난인가? 인터넷에서 가능한 한 이상한 동물 사진을 가져와서, 아니면 이리저리 합성해서 나를 골탕먹이려고 하는 건가? 그때껏 그런 메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을 짓기에는 또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질문자가 적어보낸 글이었다.

 

『당신에게 이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일 수 있음을 알지만, 첨부 된 이미지 속 생물체의 정확한 분류학적 위치는 오랫동안 우리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었기에, 또한 지상의 무척추동물에 대한 당신의 지식과 통찰력은 이 생명체의 분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겸손하게 우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귀하의 어떠한 정보 또는 추측이라도 우리의 학술토론에 유용할 것입니다.』

 

첫째로, 질문자의 말투는 내가 그때껏 받은 메일 중에서 가장 정중했다. “이거 뭔가요?” 수준의 말만 달랑 적힌 메일을 몇 통이나 본 직후였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둘째로, 문장의 정중함에도 불구하고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어색함이 글 전체에 확연했다. 적어도 한국어를 잘 하는 사람이 보낸 메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자는 우연히 발견한 벌레의 정체가 궁금해서 내게 물어온 것이 아니었다. 더욱 학술적인 의도였다. 분류학적인 논쟁에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쓰여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해외의 어느 학회에서, 곤충도 아닌 생물의 분류학적 위치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누군가가 하필 한국 곤충학자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한 것이다.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기묘한 상황일수록 나 혼자서 용을 써 봐야 소용이 없는 법이다. 학계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고, 그래서 일단은 물 속에 사는 이상한 생명체에 대해 잘 알 것 같은 동료들에게 전부 메일을 돌려 보았다. 그 뒤로는 차분히 기다릴 뿐이었다. 남은 메일에 답변을 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쪽지시험 답안지를 보며 한숨을 쉬고, 연구실의 학생들과 실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딱 사흘이 지났을 때였다.

 

“임 교수, 그 사진 어디서 난 거야?”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 너머에서, 대학 선배이자 동굴 곤충 연구자인 김 박사는 대뜸 그렇게 물어왔다.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서식하는 각종 곤충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여러 번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또 신세를 지게 되려나 싶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번엔 아무래도 경우가 좀 다른 것 같았다.

 

“그게, 나도 도저히 모르겠어서 여기저기 물어봤거든? 근데 물어본 사람 중에 히라바야시 박사라고, 지금은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교수 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빛 안 드는 동굴이나 사막 한가운데나 뜨거운 지하수 나오는 데, 뭐 그런 극한환경에서 사는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이지. 그 히라바야시 박사가 사진 보고서 그러더라니까. 어디서 찍은 건지 꼭 좀 알려달라고.”


“아, 그게 동굴에서 사는 벌레래요?”


“아니, 아니. 무슨 바다 밑바닥에서 사는 놈하고 닮았대. 뭐라더라, 나도 찾아봤는데……관벌레? 뭐 그렇게 부르더만. 아무래도 처음 보는 종 같다고, 장소를 모르겠으면 더 자세히 찍힌 사진이나 샘플이라도 없냐고 그러던데.”

 

관벌레라는 생물에 대해서 내가 가진 지식이라고는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내용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태평양 심해에 붙어 살아가는 파이프 모양 벌레로, 박테리아와 공생해 해저 열수분출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질로부터 에너지를 얻으며, 내 전문분야인 메뚜기와는 거의 서울에서 멕시코시티 정도의 거리가 있다는 것 정도. 아무튼 가정집이나 텃밭에서 우연히 마주칠 만한 생명체가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수수께끼는 더욱 깊어졌고, 실마리를 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김 박사가 말해 준 내용을 정리해 미지의 질문자에게 답장을 보냈다.

 

두 번째 메일은 답장한 지 몇 시간 뒤에 도착했다. 이상한 사진은 첨부되어 있지 않았다. 어김없이 정중하고도 어색한 글뿐이었다.

 

『우리의 관측 장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더 높은 해상도의 사진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생물에 대한 실제 샘플을 조사해 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할 것입니다만, 우리가 당신의 배송 시스템에 액세스 할 수 없기 때문에 샘플을 보내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대로 귀하께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후로 한동안은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히라바야시 박사는 문제의 관벌레에 대해 더 알아낸 것이 있는지 몇 번이나 김 박사를 통해 물어왔지만, 그마저도 한 달 후에는 포기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그쯤 흘렀을 무렵에는 내 비정상적인 인기도 어느정도 안정되어 있었다. 인터뷰나 칼럼 의뢰도 그렇게까지 몰려오지 않았고, 질문 메일의 수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아쉽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지옥의 출구가 보인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전공도 아닌 기묘한 생명체에 대해서는 잊은 지 오래였다.

 

연구실에 샘플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생전 처음 듣는 퀵서비스 업체를 통해 배달된 ‘샘플’은 일단 포장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새까맣고 가죽처럼 두꺼운 비닐 위에 ‘보내드리기로 한 샘플입니다’라는 문장이 삐뚤빼뚤 적혀 있었고, 그 비닐을 몇 겹이나 뜯어내니 이번에는 불투명한 갈색 유리병이 나왔다. 조심스레 마개를 뽑자 달걀 썩는 냄새가 온 연구실에 퍼졌다.

 

학생들이 급히 환기를 시키는 동안 나는 그 내용물을 페트리 접시 위로 꺼내 보았다. 내장 조직처럼 보이는 창백하게 흐느적거리는 덩어리 몇 개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진 속 관벌레의 몸통 부분일까? 메뚜기 전문가의 눈으로는 그 이상 알 수 있는것이 없었기에, 나는 다시금 모든 학계 연락망을 가동하기로 했다. 먼저 김 박사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샘플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서는 다시금 침착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믿음을 갖고서.

 

내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동안 샘플은 온 학계를 헤엄쳐 다녔다. 한 조각은 동굴곤충학자 김 박사에게로 보내졌고, 다시 현미경 사진의 형태로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의 히라바야시 교수에게 갔다가, 극한 환경의 생명체를 연구하는 다른 과학자들에게로 퍼져 나갔다. 다른 한 조각은 바로 옆 건물의 생화학 연구실을 거치며 분자 단위로 쪼개졌고, 또 어떤 조각은 아주 정밀한 DNA 분석 작업을 위해 다른 대학에 맡겨졌다. 이윽고 내 메일함에는 질문 대신 답이 쌓이기 시작했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과학자들이 보내온 연구 결과들이었다.

 

이를테면 유기화학자인 조 교수는 샘플의 단백질 구조에 주목했다. 병에 담겨 있던 축축한 조직이 열에 이상하리만치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원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내 전공과 다소 동떨어진 영역이었지만, 아무튼 샘플이 아주 고온에서 서식하는 생물에게서 떼어낸 것이라는 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미생물학자 조 박사의 결론도 이와 비슷했다. 샘플에서 발견된 여러 박테리아 종을 분석하여 내린 결론이었다. 산소 대신 황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다는 점에선 심해 관벌레의 몸속에서 공생하는 박테리아와 유사했지만, 그보다 더욱 극단적인 환경에 적응한 녀석들처럼 보인다고 조 박사는 말했다.

 

“유황온천 같은 데서 발견된 박테리아는 굉장히 저항력이 강합니다. 온도는 물론이고, 강산성 환경이나 자외선 같은 요인에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강한 건 지금껏 없었어요.”

 

더욱 놀라운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으로부터 나왔다. 미 항공우주국 우주생물학연구소 소속 진화생물학자인 레오네 에반스 박사였다. NASA에서 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어쩔 수 없이 판에 박힌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수수께끼의 샘플이 외계인의 촉수 조직이라는 얘기는 물론 아니었다. 꽤 비슷한 이야기이긴 했다.

 

“요즘 ‘관벌레’ 샘플 이야기가 뜨겁다는 얘길 듣고, DNA 분석 결과를 받아 검토해 보았습니다. 상당히 놀랍더군요. 지금까지 알려진 생물 중에서는 관벌레와 가장 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만, 상당히 먼 과거에 고립되어 진화한 종 같습니다.”

 

에반스 박사의 목소리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외계행성과 같이 낯선 환경에서 생물이 적응하고 진화할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샘플에는 깊은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말도 몇 번이나 덧붙였다. 이런 게 어디서 났는지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은근히 보채는 말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화학자부터 우주생물학자에 이르기까지, 샘플을 연구해 본 모든 과학자는 똑같은 궁금증을 갖게 된 셈이다. 도대체 이건 어디서 온 생명체인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기에 이토록 이질적인 특징을 둘둘 두르게 된 것인가? 하지만 정체불명의 질문자가 직접 이야기해주지 않는 한, 죽은 생물의 조직을 아무리 해체한들 정답은 나올 리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측만 무성해질 따름이었다. 언젠가 에반스 교수는 “혹시 금성에서 온 거 아닐까요?”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펄펄 끓는데다가 황산 비가 내리는 금성의 환경을 고려할 때,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는 농담이었다.

 

내 머릿속에도 물론 나름대로의 추측이 하나 있지만, 에반스 교수와는 달리 나는 이 추측을 남에게 말해준 적이 없다. 금성 가설보다도 훨씬, 훨씬 농담 같은 이야기니까.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꺼려지는 이 가설이 불현듯 떠올랐을 때, 나는 기생충학자 정 박사의 연구 결과를 전해 듣고 있었다.

 

“그 샘플 말인데요, 표면에 뭐가 살고 있더라고요. 박테리아말고요. 더 큰 녀석.”


“아, 네 전공? 어떤 놈들이었어?”

 

“선충이었어요. 할리세팔로부스 속 비슷하던데, 말에 기생할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숙주 없이도 잘 사는 애들이죠. 몸에 무슨 끈적이는 걸 둘러서 극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진화한 모양이더라고요.”

 

 

기생충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그렇듯이, 정 박사는 자기 전공 이야기를 멈출 줄 몰랐다. 이 녀석도 인터뷰를 한 번 나가봐야 한다는 나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마 나보다 더 인기를 얻을지도 몰라, 아주 열정으로 끓어 넘치는 사람이니까, 따위의 속삭임이 귓가에서 연신 윙윙거렸다.

 

“듣고 있어요, 누나? 아무튼 지금까지 알려진 다세포생물 중에 가장 깊은 지하에서 사는 애도 이 종류예요. 할리세팔로부스 메피스토. 남아공 금광의 지하 3.6 킬로미터 아래서 발견됐죠.”


“아, 그래, 메피스토. 악마 이름이네. 잘 지었다, 야.”


“그쵸? 발견한 사람들이 원래는 『네이처』지에 ‘지옥구더기’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내려고 했대요. 거절당했지만요. 하여튼 유머감각이 좀 없다니까요.”

 

“지옥구더기?”


“성경에 나와요. 마가복음이었나? 지옥에는 불도 안 꺼지고 구더기도 안 죽는다고…….”


지옥에 생명체가 산다고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니, 약간 놀랍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죽음의 공간 아닌가? 유황불이 타오르고 있으면 됐지, 거기에 구더기까지 있어야 하나? 무엇보다 구더기가 사는 곳이라면, 다른 생물이 살지 말라는 법도.

 

터무니없는 추측은 바로 그 순간에 떠올랐다.

 

지상의 생태계와는 완전히 분리된, 영원한 불길이 타오르고 유황이 풍부한 공간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가정하여 보자. 얼핏 생각하기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불길은 태양을 대신해 에너지를 공급하고, 황은 산소를 대체할 수 있다. 일단 적응하기만 한다면 박테리아가 살지 못할 환경이 아닌 것이다.

 

태양빛이 없는 환경에서, 어떤 박테리아는 황화수소와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유기물질을 만든다. 이러한 유기물질은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황화수소가 뿜어져 나오는 열수분출공 근처의 관벌레가 박테리아와 공생하는 것이다. 유황불이 곳곳에서 타오르는 환경에서는 특수한 단백질 구조를 발달시켜야 하겠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있다.

 

박테리아, 그리고 박테리아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벌레. 극한 환경에서 이미 두 가지 생명체가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그렇다면 세 번째는 어떨까? 포식자로 진화한 생명체는 없을까? 포식자가 존재한다면 먹잇감들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또 필사적으로 적응하게 마련이다. 자연선택이 일어난다. 진화가 가속된다. 또 하나의 새로운 종이, 더욱 다양한 종이, 지극히 경이로운 무한한 형태가 불길 속에서 피어난다. 곤충학자들은 이 세계에 수백만 종의 곤충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정 박사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통화하다 말고 왜 가만히 있냐면서 뭐라고 하기에, 요즘 좀 피곤해서 그렇다고 적당히 답해 주었다. 계시처럼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마음속에 묻어둔 채.

 

정말로 좀 피곤했던 게 분명하다.
지옥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지옥을 빠져나왔다. 인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곤충학자였다. 다만 약간의 자기합리화 방법을 배웠을 뿐. 생각해보니 곤충학자가 대중의 모든 질문에 꼭 대답해줄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과학자도 자기 전공 말고는 잘 모른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주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의무를 저버리고 타락한 것일까? 그럴지도 몰랐다. 훨씬 마음이 편해졌으니 아무래도 좋았지만.

 

그래도 모든 의무를 내던진 것은 아니었다. 미지의 샘플에 대한 전 세계 연구자들의 실험 결과와 추측을 전부 정리한 뒤, 질문자에게 친절히 전송해 주었으니까. 도대체 샘플을 어디서 얻었는지 여러 번 물어보았지만 질문자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느 학회에서 관벌레 종의 분류학적 위치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는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수상쩍은 퀵서비스 업체에서는 고객의 정보를 알려주길 거부했다. 그렇게 샘플의 정체도, 그리고 질문자의 정체도 끝까지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언젠가 에반스 교수는 또 이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술을 마시고 내게 전화를 했을 때였다. 취한 목소리로 늘어놓는 열변을 나는 가만히 들어 주었다. 눈은 TV 화면에 고정한채로, 딱히 집중하지는 않고서.

 

“지하는 아직 탐험되지 않은 공간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생태계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죠. 46억 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아주 단순한 세포에서 시작해 고도의 지적활동이 가능한 유인원으로 진화했어요. 만일 다른 생태계에서도, 지하의 유황 동굴 같은 곳에서도 동일한 과정이 일어났다면요? 역시 부정할 수 없어요. 모르는 일이라고요.”

 

TV에서는 익숙한 지질학자의 얼굴이 보였다. 이번에는 천연가스 화재 현장 주변에 매설된 광케이블이 무슨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하의 지적생명체들이 광케이블에까지 손을 뻗칠 수 있을까? 그 중에도 생물학자가, 주변의 사소한 생명체들에 대해 알기 위해 인생을 바치는 안타까운 개체가 있을까? 관벌레 분류학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생태계의 가장 유명해 보이는 학자에게 도움을 구할 정도로 안타까운 개체가? 취한 과학자의 머릿속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였지만, 에반스 교수의 말마따나, 모르는 일이었다.

 

정말로 질문자의 정체가 다른 생태계의 생물학자라면, 그의 연구는 아마도 순조롭게 풀려나갔을 것이다. 그로부터 온 마지막 메일 내용이 인사치레가 아닌 진실을 담고 있다면. 어디에 사는 사람이든, 어떤 종이든, 동료 학자의 연구가 잘 되었다는 이러한 소식은 축하해줄 가치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우리 사이의 토론에 대한 귀하의 도움에 최선의 감사를 표합니다. 생물체의 분류학적 위치에 대한 오랜 논쟁은 당신이 제공한 지식과 통찰 덕분에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 보답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만일 어떠한 상황에서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연락해보려는 유혹이 몇 번이나 나를 덮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나는 잘 참아내고 있다. 이런 고마운 호의는 꼭 도움이 필요한 순간을 위해 아껴두고 싶으니까. 그 때가 되면 유황불 속의 생물학자가 과연 어떠한 도움을 내게 제공해줄지, 그 의문이 마침내 풀릴 순간을 나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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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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