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자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는 아마도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평가일 것이다.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마치 본래의 모습인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광물계에서는 중정석(BaSO4)이 꼭 그렇다. 비교적 흔한 광물이지만, 200가지 이상의 다양한 결정형을 가지고 있어서 종종 아름다운 색과 결정을 가진 표본이 산출된다. 게다가 중정석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선사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광물이다.
맨손으로 이루는 대박의 꿈
사진의 표본은 모로코의 북부, 지중해에 인접한 나도르 지역 인근의 시디 라센 채석장에서 2013년 채집된 중정석이다. 황갈색의 갈철석(limonite) 모암을 점점이 덮은 하얀 방해석 위로, 맑은 하늘 빛 장미를 연상케 하는 결정이 멋지게 조화된 아름다운 표본이다. 이곳 중정석은 일찍이 1970년대에 수집가 시장에 소개됐지만, 그 이후 잊혀졌다가 2012년경부터 재조명을 받고 있다.
상업적인 광석이 광산에서 광맥을 통해 대량 채굴되는 것과는 달리, 수집용 광물 표본은 광산이나 채석장 등의 포켓(공동)이나 바위틈에서 드물게 발견된다. 우연히 발견된 아름다운 표본이 수집가나 딜러에
게 비싼 가격에 팔렸다는 소문이 나면, 많은 개인 광부들이 모여들게 된다. 경제 사정이 넉넉치 않는 지역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1970년 대 이후 별다른 발견 소식이 없던 이곳은 2012년 멋진 표본이 발견돼
비싼 값에 팔렸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초 몇몇 개인 광부들밖에 없던 이곳은 지금은 100여 명이 넘는 광부들이 꿈을 안고 밤낮으로 땀을 흘리는 ‘핫한’ 곳으로 변했다.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연 중정석
무겁다는 뜻의 그리스어 ‘barys’에서 이름이 유래한 중정석은 비중이 4.5로, 흔히 접하는 화강암(석영, 장석, 운모가 주성분)에 비해 1.5배 이상 무거운 광물이다. 같은 부피여도 1.5배 이상 무겁다는 뜻이다. 대다수의 광물은 금속을 추출하기 위한 원재료로 사용되지만, 중정석은 무겁다는 특징 때문에 그 자체로도 산업 분야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석유 산업이 대표적이다. 석유 시추를 할 때는 ‘시추이수’라는 일종의 진흙 덩어리를 넣는데, 여기에 중정석을 갈아 넣는다. 지하 깊은 곳에 있는 석유와 가스는 압력이 높아 분출될 염려가 있는데, 중정석을 넣어 무거워진 시추이수가 잘 눌러서 분출을 막아준다.
의료용 조영제에도 중정석이 쓰인다. 위장 엑스선 검사를 할 때 마시는 조영제는 뼈처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부드러운 조직인 위장의 형태를 뚜렷하게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조영제에 들어간 중정석이 뼈보다 엑스선을 더 잘 흡수하는 특징 덕분이다. 중정석을 구성하는 원소인 바륨(Ba)은 원자번호가 56번으로, 인체 구성 물질보다 원자번호가 커서 엑스선을 흡수하는 전자를 많이 가지고 있다. 또 중정석은 물은 물론 위산 같은 산에도 잘 녹지 않아 안전하게 몸밖으로 배출된다.
일자리 창출이 화두인 요즘, 중정석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에도 새로운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정석을 시추이수와 조영제로 쓸 생각을 한 사람들은 큰 돈을 벌었을 것이다. 광물이라는
자연물의 물리, 화학적 특성을 깊이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