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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려라 주가"

주식 시장 두드리는 물리학의 주문

친구 사이인 경제학과 '상순이'와 물리학과 '숭돌이'가 증권사 객장에 갔다. 이들은 객장 곳곳에서 논쟁을 주고받더니 공동으로 투자 통장을 만들었다. 그들은 통장 앞면에 '이코노피직스(Econo-Physics)펀드'라고 썼다. 도대체 객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 객장 문을 열다 - 멱급수 법칙과 경제물리학의 탄생

주식 시장의 핵심 아이디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무얼슨이 제창한 ‘효율적 시장가정’이다. 시장은 매우 효율적이고 가격 변동은 마구잡이여서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가역시 술 취한 사람처럼 마구잡이로 움직인다고 가정한다(그러나 술 취한 사람이 집을 찾아가는 것처럼 방향성은 있다).

상순이 _ 고전 경제학자들은 주가 변화의 분포는 종 모양의 정규분포를 띤다고 말해. 주가의 큰 등락은 가장자리에 해당돼 빈도가 매우 낮다는 것이지.

승돌이 _ 내 생각은 달라. 1995년 미국 보스턴대 물리학자들은 증시에 상장된 1000개 기업을 분석하기 위해 ‘통계물리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었어. 그 결과 기업의 수익률 분포는 종 모양이 아니라 ‘멱급수 법칙’(Power law)을 따른다는 사실이 발견됐지.

멱급수 법칙은 ‘파레토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데 물리뿐 아니라 생물, 지질학, 사회학, 경제학 등 다양한 곳에서 나타난다. 멱급수 법칙은 시스템을 이루는 요소들의 상호의존이 높아 전체 시스템이 평형에서 먼 역동적인 상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뜻한다(멱급수 법칙은 y=a/xk다).
멱급수 법칙을 응용한 파레토 분포는 부의 분배에서 ‘80 : 20 법칙’으로 나타난다. 전체 인구의 상위 20%가 80%의 부를 소유한다는 것이다. 소수가 다수를 갖는 불균등한 분포는 주식 수익 등 다양한 금융 지표에서 나타난다. 멱급수 분포는 종 모양보다 가장자리가 더 두터우며, 주가의 급격한 등락 등 희귀한 사건이 예상보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난다.

승돌이 _ 멱급수는 뉴욕 증시뿐 아니라 나스닥, 환율 등에서도 나타났고 이를 통해 물리학의 시각으로 경제를 보는 경제물리학이 탄생했어.


물리학자들은 주가의 급등락은 고전 경제학의 예측보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난다고 본다. 주식시장을 물리학으로 해석하는 이론이 경제물리학이다.


2. 시세표를 보다 - 주가 등락 속에 프랙탈이 있다

승돌이 _ 객장에 가면 주가 변화를 보여주는 시세표가 있고, 그걸 그래프로 만들지. 그 그래프 속에 ‘프랙탈’이라는 것이 있어.

상순이 _ 프랙탈이란 게 단순한 그림이 반복돼 복잡한 그림을 만든다는 거 아닌가?

주식시장을 분석하는 방법 중에 기술적 분석이 있다. 기술적 분석은 기업 내용보다는 주가의 움직임에서 변화의 법칙을 찾는 것이다.

초기 기술분석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 찰스 다우다. 다우이론의 핵심은 주가에 오르고 내리는 추세가 있다는 것이다. 1948년 엘리어트는 파동이론을 내놓으며 “주식시장이 5개의 상승파동과 뒤이은 3개의 하락파동이 반복적인 리듬을 가지고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현재 물리학자들은 주가 변화 속에 숨어 있는 프랙탈을 찾으려 하고 있다. 프랙탈은 자연의 복잡한 공간적 모습 속에 숨어 있는 기하학적 규칙이며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유사성을 갖고 있다. 이 이론은 주식시장의 복잡성 속에 숨어 있는 예측 가능한 패턴을 찾는데 활용되고 있다. 특히 승돌이가 주목하는 것은 다중프랙탈이다.

승돌이 _ 다중 프랙탈은 여러 성질의 프랙탈이 섞여 있는 거야. 다양한 소(小)파동이 전체 주식 파동 속에 섞여 움직인다는 전제 하에 주가를 분석하는데 많이 활용되고 있어.

프랙탈의 효용성에 대한 배심원 결정을 내리기에는 현재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 기술적 분석은 과거의 지표에 의존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그러나 기술적 분석은 투자자에게 주식시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주기의 변화는 다양한 작은 파동이 전체 파동 속에 섞여 있는 다중프렉탈로 보인다. 사진은 심장을 소재로 프렉탈모형을 표현한 모습.


3. 다른 투자자와 만나다 - 양자역학과 게임이론의 장

승돌이 _ 너는 물리학자 중에서 하이젠베르그를 제일 좋아한다며?

상순이 _ 그럼. 입자의 정확한 양자역학적 상태를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는 내 인생관을 바꿨지.

승돌이 _ 그거 알아? 주식시장에 양자역학이 적용된다는 걸?

왜 주식시장은 예측대로, 법칙대로 움직이지 않을까. 주식시장에 참가한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라는 점도 한 원인이다. 바둑, 카드, 장기, 축구 등 많은 게임은 그 결과가 자신의 행동뿐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으로도 결정된다. 주식시장도 상품 개발과 가격 경쟁 등 경쟁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경제 주체들이 강한 상호의존성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양자역학과 비슷한 맥락이 있다. 즉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이 관찰 수단에 의해서 변화된다. 전자를 관찰하려해도 전자가 너무 가벼워서 현미경과 같은 측정도구가 활용하는 빛이 전자의 위치와 속도에 영향을 준다. 주식 시장에서도 아무리 우수한 방법을 사용해도 많은 사람이 쓰면 그 유용성이 떨어진다.

이는 경쟁과 견제, 타협을 다루는 게임이론으로도 비유된다. 가장 유명한 게임이론의 예로 ‘죄수의 딜레마’가 있다. 세계적인 투자가 조지 소로스도 자신의 헤지펀드(국제증권이나 외환에 투자하는 펀드)에 양자역학적 의미를 살리고자 ‘퀀텀펀드’라고 이름지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한 장면. 이 영화는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존 내시의 일대기를 다뤘다. 게임이론은 주식시장을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다.


4. 파생상품에 투자하기 - 열역학의 대박 혁명

상순이 _ 금융상품 중 가장 복잡한 것이 미래 가치를 사고파는 파생상품이야. 파생상품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절로 두통이 온다니까.

승돌이 _ 내가 두통을 고쳐줄께. 열역학을 잘 알면 파생상품의 가격을 결정할 수 있어.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이 최첨단 금융상품으로 발전한 배경에는 로켓과학자의 공로가 컸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구조조정기에 많은 과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서 월가로 대거 진출했다. 당시 가장 복잡한 문제는 파생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었다(지금도 그렇다).
1973년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는 몇 가지 가정 하에 주식 옵션의 이론적 가격을 결정하는 공식을 만들었다. 블랙-숄즈 모형을 이용하면 옵션 판매에 따르는 위험을 95%까지 없앨 수 있어 옵션 거래에 혁명을 일으켰다. 숄즈는 이 업적으로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블랙-숄즈 모형은 주식가격이 기하학적 브라운운동을 나타낸다는 관찰에서 시작한다. 브라운운동은 물 위에 떨어진 꽃가루가 다양하게 움직이는 액체 분자에 부딪혀 복잡하게 움직이는 현상이다. 수리물리 이론은 이 현상을 숫자와 수식으로 바꿔 잘 설명해준다. 그 중 하나가 아인슈타인이 1905년 세운 열전도방정식인데 공기에서 입자의 확산을 잘 설명한다(이 업적은 아인슈타인의 3대 업적으로 꼽힌다).

블랙과 숄즈는 옵션의 가격 모형의 변수가 열전도방정식의 변수와 비슷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옵션 모형에 열전도방정식을 도입했고 수리물리학을 이용해 옵션 가격을 푸는데 성공했다. 최근 더 정밀한 가격 이론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계산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수리물리에서 많이 연구된 열전도방정식의 수치해법인 크랭크-니콜슨 방법을 이용하면 효율적으로 풀 수 있다.

5. 주식 계좌를 열다 - 복잡계 이론이 예측하는 주가

주식의 복잡한 불규칙적 등락을 주류 경제학만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최근 주류 경제학도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기존 이론을 수정하는 등 상당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 실물 경제지표는 역동성과 비예측성 등 복잡계의 대표적 특성을 보인다. 복잡계의 대표적인 현상이 날씨와 신경계다. 복잡계는 많은 수의 구성 요소들이 상호작용과 자기조직화를 통해 새로운 집단적 성질을 창발적으로 만들어낸다. 이 원리는 실물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복잡계 경제학은 수확체증과 비평형성, 불안정성의 생성, 스스로 만들어지는 질서, 부분보다는 전체의 원리에 초점을 두고 있다. 복잡계 경제학에서는 시장, 조직, 기관, 투자자들이 ‘나비 효과’(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일으킨다는 이론)를 일으키듯 복잡하게 상호 작용한다. 이들이 경쟁하고 적응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다양한 경제적 선택에 의해 큰 요동과 동역학적 진화가 만들어진다.

상순이 _ 주식시장에 참가한 수많은 주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식시장의 나비 효과라고 할 수 있는 주가 대폭락과 대폭등도 일어나는 거구나.

승돌이 _ 맞아. 그래서 요즘 물리학자와 경제학자의 공동 연구가 부쩍 늘고 있어.

아직 과학은 시장경제에서 자연과학만큼 놀라운 결과를 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지식은 과학과 시장경제의 경계에서 새롭고 흥미 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날씨는 바람, 기온, 습도 등 수많은 요소들이 참가한 대표적인 복잡계다. 작은 변화가 일어나면 다른 지역에서는 태풍이 올 수도 있다.


주식시장에 숨어 있는 물리학 이론

프랙탈

단순한 구조가 반복돼 복잡한 구조를 만드는 것을 프랙탈이라고 한다. 주가는 여러 개의 프랙탈이 반복되는 다중 프랙탈로 보인다.

피보나치 수열

주가는 5번의 상승과 3번의 하락 국면이 반복된다는 이론이 ‘엘리어트의 파동이론’이다. 여기에는 1, 1, 2, 3, 5, 8, 13, 21…로 이어지는 피보나치 수열이 숨어 있다.

게임이론

주가는 경쟁과 협력, 견제가 이뤄지는 게임이론의 장이다. 가장 유명한 게임이론의 예가 바로 ‘죄수의 딜레마’다. 협력해서 큰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큰 이득을 얻을 것인가. 배반해서 위험을 낮출 것인가.

양자역학

주식시장에서 내 행동은 다른 투자자의 행동에 영향을 줘서 전체 결과를 바꾼다. 어떤 입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처럼 주식시장에서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투자기술은 없는 것일까.

멱급수법칙

고전 경제학은 주가 변화를 종 모양의 정규 분포로 해석한다. 그러나 경제물리학은 멱급수 법칙으로 해석한다. 가장자리가 좀더 두터워 폭락이나 폭등이 더 잘 일어난다.

복잡계물리학

주식시장은 금리, 외국, 산업, 투자자, 정부 등 수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작용하는 복잡계다. 신경을 비롯한 인체 시스템도 대표적인 복잡계다. 복잡계의 나비효과에 따라 작은 일이 엄청난 주가 폭등과 폭락을 불러올 수 있다.

브라운운동과 열전도방정식

꽃가루가 물위에서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브라운운동은 주가의 흐름과 비슷하다. 브라운운동에서 파생한 열전도방정식이 금융상품 중 가장 복잡한 파생상품의 가격을 결정할 때 이용된다.

파생상품 | 상품의 미래 가격을 기준으로 현재에 사고파는 것을 파생상품이라고 하며 가격 변동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많이 거래한다. 선물, 옵션 등이 있다. 선물은 미래의 주가를 현 시점에서 거래하는 것이고, 옵션은 미래의 주가를 사고 팔 수 있는 권리만 현재에 거래하는 것이다. 옵션은 보증금만 내고 미래에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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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 김승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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