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4일 일본 도요오카시에서는 추수가 끝나 한적한 들판이 때아니게 사람들로 북적였다.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처음 겪는 교통체증에 시골 경찰들은 어쩔 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예 차를 포기하고 멀찍이서 걸어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언젠가 반드시 다시 날려 보내 주마’라며 일본의 마지막 텃새 황새를 인공 증식을 위해 잡아들인 지 40년 만에 그 약속을 지켰다. 처음 포획 때부터 사육사로서, 은퇴 후엔 황새 안내자로서 줄곧 황새와 함께 생활을 해 온 마츠시마씨는 이제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게 됐다. 황새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줄곧 힘써온 연구자나 시청의 황새공생과 직원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은 ‘앞으로가 더 큰일’이라면서도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황태자를 비롯한 내빈들이 닫혀 있던 상자 문을 여는 순간 드디어 황새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랫동안 사육장에 갇혀 있어 혹시 잘 날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황새 5마리는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흑백의 고고한 황새의 모습은 마치 옛날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이 그렸던 그림을 보는 듯한 환상에 빠져들게 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저절로 벌어진 입에서는 ‘와’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름답다’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감동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솟아오르는 순간이었다.
사실 인공 증식된 황새의 야생 시험방사의 의미가 이렇게 감상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에는 파괴된 환경을 되살리고 지켜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방사된 황새를 모니터링하며 자연을 관리하려는 과학이 숨어 있다.
황새가 살아야 모두 산다
50여년 뒤 석유가 고갈될 것에 대비해 세계 정유 업계는 대체에너지 연구에 한창이다. 해, 물, 바람 등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사용한 뒤에도 유해폐기물이 거의 생기지 않는 자원이 대상이다. 이제는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인간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인간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미래 사회의 화두는 ‘지속가능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사실과 황새의 복원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것도 가뜩이나 조류독감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1억5000만명 이상 사망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도 있는 마당에 한사코 새 몇 마리를 날려 보내려는 이유가 뭘까? 복원이 목적이라면 황새 같은 새 말고도 멸종위기에 처한 다른 동물들이 많이 있지 않은가?
이런 의문은 황새가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들로부터 풀린다. 우선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황새는 먹이피라미드에서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는 최종포식자다. 최종포식자는 먹이가 되는 동·식물이 풍부하고 건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쉽게 얘기하자면 황새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모든 생물들이 다 잘 살 수 있다는 뜻이다.
황새는 생태계 유지의 핵심종이자 환경 보전의 깃대종이다. 때문에 황새의 보전은 곧 지속가능한 환경의 보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조류독감의 경고 속에서도 보전돼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황새는 예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부부간 금슬을 좋게 하는 새’ ‘아기를 데려다 주는 새’ ‘행운을 가져다주는 새’ 등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을 어귀에 둥지를 튼 황새를 귀하게 여기고 혹시 자기 마을을 버리고 떠나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정성껏 보살피곤 했다. 황새를 보호하고 보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일찍부터 사람들의 가슴속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심미적인 관점에서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황새의 자태는 여느 새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아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전부터 전해오는 황새의 모습을 칭송하는 많은 그림과 글들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크기도 새 중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여서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관심을 유발하기 쉽다.
개체수 늘리고 습지 만들고
일본도 이런 황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때 벼농사를 방해한다는 오해로 수렵조수로까지 취급됐던 텃새 황새를 보전하기 위해 일본의 마지막 황새 서식지이자 현재 황새고향공원이 있는 효고현 도요오카시에 1955년부터 ‘황새보호협찬회’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미 개발에 의한 서식지 파괴와 농약 등에 의한 환경오염으로 절멸의 길에 접어든 황새를 다시 살려내는 것은 늦은 일이었다. 그래서 1965년 일본에 살고 있는 마지막 황새를 잡아들여 인공사육증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황새는 생태적 특성상 사육 상태에서 번식을 시키기가 무척 힘든 종이다. 우선 암수를 짝 짓는 것부터가 문제다. 수컷 황새는 무척이나 사나워 마음에 들지 않는 암컷과 한방을 쓰게 되면 부리로 공격해 심할 경우 죽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변덕스럽기까지 해 암수가 한참 서로 좋아하다가도 사육 환경이 바뀌면 수컷이 암컷을 공격하는 일도 있다.
어렵게 암수가 짝을 짓더라도 이들이 번식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짝 지은 쌍 중 많은 수가 번식은 하지 않고 그냥 서로 친하게 지내기만 하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일본에서는 사육을 시작한지 24년만인 1989년에야 처음으로 인공 증식에 성공했다. 그 후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내 다른 동물원과 개체를 교환하고 시베리아에서 야생 황새를 도입하는 한편 인공 증식을 위한 사육 기술을 계속 개발했다. 2002년에야 황새 수는 이론적으로 방사에 적합한 100마리를 넘어섰다.
황새는 100마리를 넘었지만 개체수가 확보됐다고 방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왜 텃새 황새가 사라졌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과 그 해결책이 없이는 방사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곧 사라지게 될 것이 뻔하다. 일본의 경우 텃새 황새가 절멸한 원인은 둥지를 틀 수 있는 삼림의 파괴, 농약, 비료 등 과다한 화학물질 사용으로 인한 먹이자원 고갈, 새로운 농법에 의해 논과 자연 수로가 괴리돼 황새의 주된 먹이장소인 논에 먹이가 되는 물고기가 오지 못하는 점 등으로 알려졌다.
텃새 황새가 절멸한 원인을 찾은 것은 연구자들의 몫이었지만 이를 해결하는 것은 연구자, 주민, 언론, 행정가 모두가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농민들은 자기 자신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화학 물질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황새의 먹이가 물고기이기에 혹시 어획량이 줄어들까봐 처음엔 강력히 반대했던 어부들도 황새가 살아나면 생태계가 안정돼 오히려 어종이 풍부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황새가 둥지를 틀만한 나무를 심어주기도 했다.
주민들의 변화에 부응해 무농약 농법으로 가꾼 농산물을 비싼 값에 팔 수 있도록 상표를 만들고 판로를 개척하며, 치어가 살 수 있도록 하천을 정비하고 논과 자연 수로 간 어도를 만들어주는 행정적인 뒷받침도 뒤따랐다.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포함한 언론은 황새 복원 활동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주 내보냈다.
시민들이 중심이 된 비영리단체도 속속 등장했다. 마을의 환경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논학교’를 통해 환경 교육을 하는 ‘황새시민연구소’, 황새 복원 사업의 제반 사항을 지원하는 ‘황새팬클럽’, 무농약 농법 연구회인 ‘오리농법연구회’와 ‘에코파머스’, 황새고향공원의 연구 활동을 돕는 ‘파크볼런티어’ 등이 그것들이다.
일등공신 하치고로
2002년은 일본황새고향공원에 중요한 해였다. 사육 개체수가 처음으로 100마리를 넘었고, 8월 5일 야생 황새 한 마리가 도요오카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처음 날아온 날을 따 ‘하치고로’라는 이름이 붙은 야생 황새는 그 후 도요오카를 떠나지 않고 현재까지 머물고 있다.
하치고로가 정착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지역 환경이 황새가 살 수 있을 만큼 훌륭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치고로에게서 황새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해 많은 정보를 얻은 것이다. 현재 거의 모든 야생 황새는 시베리아에서 번식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환경은 일본의 환경과는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시베리아에서 황새에 대해 연구해 정보를 얻더라도 이를 일본 환경에 적용하는 것은 모험일 수 있다. 이런 걱정을 없애준 것이 바로 하치고로였다.
황새고향공원은 도요오카에서 하치고로의 이동, 먹이 장소, 먹이의 종류와 양, 다른 조류와의 관계, 농업에 미치는 영향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는 황새가 필요로 하는 환경조건은 무엇인지, 위험 요소는 어떤 것인지, 도요오카에 얼마나 많은 황새가 살 수 있는지, 방사된 황새와 인간과의 관계는 어떨지 등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됐다.
하치고로에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도요오카에는 30마리의 황새가 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좀 더 신중을 기하기 위해 사육 황새 9마리를 시험 방사하기로 결정했다.
사육하던 동물을 방사할 때는 환경 조건의 정비와 방사 개체수 못지않게 언제, 어떤 방법으로 방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황새 시험 방사도 야생에서 황새가 번식을 마치고 막 이동을 시작하는 9월 하순에 맞췄다.
방사 방법도 신중을 기하기 위해 3가지를 골고루 사용했다. 환경이 충분히 조성됐다는 가정 아래 동시에 여러 마리를 방사하는 방법을 사용해 황새 5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번식하는 쌍의 날개에서 깃털을 잘라 날지 못하게 한 상태에서 일정 구역에 방사한 뒤 이듬해 이들이 낳은 새끼들을 자연스럽게 방사하는 방법으로 한 쌍의 황새를 방사했다. 이 방법은 방사되는 수가 적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앞의 두 방법을 섞어 날 수 있는 수컷과 깃털을 자른 암컷을 방사하는 방법을 썼다. 이 방법으로 암컷 2마리를 방사했다. 날 수 있는 수컷의 역할은 하치고로가 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황새고향공원은 방사된 황새들이 도요오카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한 연구를 앞으로 5년 동안 진행한다. 방사된 황새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인공위성 추적 장치를 통해 확인하고, 무엇을 하는지는 ‘파크볼런티어’와 일반인의 제보를 통해 자료를 수집한다. 자료를 분석한 결과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고, 황새가 야생에 쉽게 적응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텃새 황새가 절멸됐다. 하지만 30년이나 뒤진 1996년에야 한국교원대 내에 황새복원연구센터가 설립돼 사육을 시작했고, 6년만인 2002년에 처음으로 번식에 성공했다. 현재 33마리의 황새가 사육 중에 있으며 유전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 매년 새로운 개체를 시베리아에서 사오고 있다.
2012년 한국도 야생 방사 계획
황새복원연구센터는 앞으로 7년 뒤인 2012년 시험방사를 목표로 황새가 서식하기 적합한 장소를 선정해 방사 기점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방사하기 충분한 수의 황새를 확보하기 위한 연구 및 황새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연구가 초기단계며 헤쳐 나가야 할 문제들이 첩첩이 쌓여 있다. 무엇보다도 황새의 복원이 단지 황새라는 새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그리고 환경 복원의 문제는 생물학뿐만 아니라 농학, 공학, 교육학, 인문사회학, 정치학 등 제학문적 문제이므로 모두가 힘을 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마을의 뒷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자. 그리고 그 산 속에 살고 있는 생물들도 우리 동네 식구로 받아들이자. 그러면 황새는 자연스럽게 행운을 물고 우리의 곁으로 날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