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 독일텔레콤은 인터넷에 앞서 온라인 서비스 시장을 개척해오던 화상텍스트 시스템인 ‘Btx’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국제통신기기전시회(IFA)에서 ‘복잡한 세계를 투명하게 보여줄 미래의 기술’로 화려하게 등장한지 25년만의 일이었다. 한편 Btx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프랑스의 온라인 시스템 ‘미니텔’은 아직까지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두 기술의 엇갈린 명암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1977년 독일 우정국은 그해 IFA에 출품된 신기술에 주목하고 이를 내부적으로 시험해보기로 했다. 우정국은 샘 페디다라는 영국 엔지니어가 발명한 화상기기에 관심을 가졌다. 화상기기는 컴퓨터 터미널과 TV를 결합한 형태로 화면에는 컴퓨터로 작성된 연금계산표, 편지글 등을 띄울 수 있었다.
우정국은 이 시스템을 그대로 이용하되 독자적인 Btx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IBM을 개발업자로 선정했다. 한편 신기술로 국가 기밀이 누출될 것을 우려한 정부는 화상텍스트 시스템 이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우정국은 이 개발 계획을 비공개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시스템 개발은 지지부진했고,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3년 만에야 TV나 Btx 터미널과 모뎀에 연결하는 특수 디코더를 내놓을 수 있었다.
그 사이 법도 개정됐다. 우정국은 1980년 6월부터 뒤셀도르프와 베를린에서 각각 3000명을 선발해 개발한 시스템을 공개적으로 시험했다. Btx 화면에는 날씨 정보, 철도 시각 정보, 전화번호부 안내 등이 서비스됐다. 또 여행사가 이 시스템에 연결되면서 여행 예약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그 후로도 3년이 더 지나서야 실제로 가동할 수 있게 됐다. 우정국은 Btx 시스템이 완성돼 은행에 갈 일이 없어졌고, 온라인 쇼핑도 가능해졌다고 선전하며 가입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정국은 1984년 말 가입자가 15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가입자는 정작 2만명에 불과했다. 디코더와 Btx 터미널이 너무 비쌌고, 화면이 바뀔 때마다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소비자에게 부담이 됐다. 게다가 기기 사용도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우정국이 예측한 가입자 수는 5년이나 지나서 도달할 수 있었다.
독일과 달리 프랑스는 처음부터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으로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프랑스 정부는 국민 모두가 전자 전화번호부에 접속함으로써 전화번호부 책을 인쇄하는데 들어가는 종이 소비를 줄이고, 통신국인 프랑스텔레콤이 운영하는 새 전화망 시스템 가입을 촉진한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온 국민의 온라인화를 위해 정부는 먼저 각 가정에 무료로 터미널을 제공했는데, 이 터미널 이름이 바로 ‘미니텔’이었다. 미니텔 덕분에 프랑스텔레콤은 해마다 전화번호부 발간과 배포에 들어가던 엄청난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1979년 프랑스텔레콤은 미니텔을 제공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1988년이 되면 전화번호부를 배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더 줄어들 것으로 보고 미니텔 배포를 계속했다. 독일과 달리 프랑스 국민은 추가로 비용을 내지 않고 온라인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프랑스 국민이 이 시스템을 무조건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1980년 미니텔이 도입되자 사람들은 전시 상황에는 작동을 멈추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미니텔 기술을 신뢰하지 않았다. 의회 역시 프랑스텔레콤의 독점 가능성을 우려하며 미니텔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의회는 미니텔이 신문이나 다른 매체와의 협업이 보장됨으로써 전자 업계와 종이 업계가 경쟁하는 것도 우려했다.
초기의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미니텔은 1984년 이미 성공적인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터미널 역시 사용자가 편리하게 발전했고, 미니텔의 이용 분야도 더욱 다양해졌다. 처음에 전화번호를 안내하던 단순한 기능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상품을 주문하고, 연극 티켓도 구입하는 실용적인 도구가 됐다. 나중에는 원격 게임을 즐기거나 익명의 사람과 채팅도 할 수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전화가 없는 주민을 위해 공공장소에 우체국과 비슷한 미니텔 키오스크를 설치해 온라인화를 앞당겼다.
미니텔은 이후 14년 동안 계속 성장해갔다. 1988년 프랑스텔레콤이 집계한 터미널 수는 560만개에 달했고, 1760억대의 통화가 미니텔로 이뤄졌다. 1999년에는 미니텔을 통해 여행 예약, 스포츠 경기 결과 문의, 은행계좌 정보, 주식 시세, 기상 예보, 복권 결과, TV 편성 시각 등 각종 생활정보가 서비스됐다. 같은 해 웹폰이 도입돼 인터넷과 미니텔에 동시 접속할 수도 있었다.
현재 인터넷이 점점 확산되는 중에도 미니텔은 여전히 항공기 예약이나 냉동식품 주문, 회사의 재정 프로파일 같은 서비스 분야에서만큼은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전화번호 검색이나 기차 예약은 아직까지 인터넷보다 미니텔이 훨씬 빠르다. 폐쇄회로라 인터넷보다 안전하다는 이점 때문에 은행거래에서는 특히 미니텔의 장악력이 크다. 프랑스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 빠른 시장 형성으로 인한 기기의 발전이 미니텔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