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난이도 | 표절 찾는 알고리즘
너, 고소각! 카피추가 표절했다?
2019년 10월 28일. 방송인 유병재 씨의 유튜브 채널에 ‘창조의 밤 “표절제로”(with 카피추)’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속세와 단절된(것처럼 보이는), 산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사는(것처럼 보이는) 욕심이라곤 1도 없는(것처럼 보이는) 한 남자, ‘카피추’가 기타를 들고 등장했다.
카피추(개그맨 추대엽)는 본인이 만든 자작곡을 여럿 선보였다. 그런데 ‘아기상어라지만’이라는 제목의 곡은 첫 소절부터, 아니 제목부터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이 곡은 핑크퐁의 ‘상어가족’이 아닌가. 자작곡이라고 소개하고 유명한 곡들을 대놓고 따라 하며 표절이 아닌 척 부르는 콘셉트의 개그다.
이 영상은 1월 13일 기준 조회수 500만을 넘길 만큼 화제가 됐다. ‘표절제로’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카피추는 본인의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동요 ‘상어가족’의 원곡자인 핑크퐁은 카피추의 표절에 대해 장난스러운 고소 협박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카피추가 표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표절은 두 저작물 간의 실질적으로 표현이 유사한 경우는 물론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한 경우까지를 의미한다. 그 안에는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이 창작한 것처럼 속였다는 도덕적 비난도 강하게 내포돼 있다.
카피추의 개그는 패러디에 가깝다. 패러디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원작을 흉내 내거나 과장해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남주한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해당 유튜버는 원곡을 미리 인지하고 의도적으로 패러디하는 방식으로 노래를 만든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 인기곡을 패러디해 최근 화제가 된 카피추. 사진은 2019년 12월 21일 JTBC '아는형님'에 출연해 본인의 자작곡을 선보이는 장면.
작곡하며 유사 멜로디 확인
카피추의 ‘아기상어라지만’이 ‘상어가족’을 표절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표절 여부를 가리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최근 남 교수팀은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해 지난해 11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음악 기술 분야 국제학회인 ‘ISMIR 2019’에서 그 결과를 발표했다. 두 곡의 멜로디 간 유사도를 계산해 표절 판결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림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남 교수팀은 1950년대 이후 표절 사례를 조사해 데이터를 구축했다. 이후 시계열 분석에 쓰이는 수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두 곡에서 멜로디 길이나 구간에 상관없이 모든 부분에 대해 유사성을 찾아 이를 값으로 산출했다.
연구팀은 이 값을 토대로 두 곡의 어느 부분이 얼마만큼 비슷한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그림으로 시각화했다. 남 교수는 “그림으로 나타내면 두 곡의 전반적인 유사도뿐만 아니라 유사한 구간과 길이 등 더욱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곡의 표절 여부는 음악적 유사도로만 판단할 수 없다. 표절 의혹을 받은 사람이 사전에 원곡을 알고 있었는지 등 음악 외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또 멜로디뿐만 아니라 편곡에 따른 악기의 음색 등도 따져봐야 한다.
남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악보에서 멜로디만 분석한 만큼 표절을 판별하기 전 일차적으로 유사도 검사에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표절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음악 외적인 요소 등을 고려해 전문가가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적으로는 두 음악 간에 리듬, 가락(멜로디), 화성(하모니) 등 3가지 요소에서 실질적으로 유사성이 있는지를 판단해 표절여부를 가린다. 국내에서는 2006년 가수 MC몽이 부른 ‘너에게 쓰는 편지’의 후렴구 8소절이 그룹 더더의 곡 ‘잇츠 유(It’s you)’를 표절했다고 판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표절 시비를 가릴 수는 없더라도 이번 연구가 작곡가들에게는 의미가 있다. 데이터가 더 많이 쌓이면 기존 음악에서 표절 가능성이 있는 곡을 찾거나 작곡 과정에서 표절 가능성이 있는 곡을 미리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 교수는 “임의의 두 음악에 대해 자동으로 유사도를 계산하기 때문에 음악 데이터가 많을수록 결과의 신뢰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최근 등장한 인공지능(AI) 작곡가에게도 유용하다. 남 교수는 “최근 인공신경망 등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작곡하는 경우가 많다”며 “AI 작곡가에게 비슷한 곡을 만들지 않도록 학습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는 문득 떠올린 ‘예스터데이(Yesterday)’의 멜로디가 이미 존재하는 곡은 아닌지 고민하다가 발매를 한 달 정도 늦췄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연구팀의 알고리즘이 음악가들의 이런 고민을 단시간에 해결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남 교수는 “향후 사람들이 잘 아는 곡들까지 분석할 예정이며, 이로 인해 음악가들이 작곡할 때 기존 음악에서 표절 가능성이 있는 곡을 미리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