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강원도 산골에서 만난 바닷가 나비

황성 어답산 곤충 탐사와 홀로세 생태학교 견학

동아일보 동아문화센터와 동아사이언스가 공동 주최하고 LG가 후원한 중·고교 과학교사를 위한 ‘자연생태계 학습탐사’가 올해로 25번째를 맞았다. 지난 8월 15일부터 2박3일간 이뤄진 이번 탐사에서는 강원도 횡성 일대의 곤충들을 채집했다. 강원도 각 시·군에서 모인 교사들은 한낮 무더위도 잊고 새로운 생명을 발견하는 기쁨을 한껏 만끽했다. 홀로세 생태학교에서 만난 다양한 곤충들은 생명의 다양성이 소중하다는 것을 몸으로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 탐사기간 : 8월 15일9월) ~ 17일(수)
■ 참가교사(가나다순) : 김종식(원주 진광중), 민경아(춘천여중), 이승용(태백 황지고), 이중범(평창 대화고), 이창직(원주 대성중), 최옥(추천 후평중), 최현정(강릉여중), 최희경(태백 상장중), 한승효(영월 석정여중), 함상호(동해 북평여고)
■ 지도교수 및 인솔진행자 : 이강운(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차동준(원주연세대 생명과학과 조교), 이동재(건국대 응용생명과학부 조교), 정창훈(상지대 생명과학과 조교), 조창구(강원도 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장민철(동아문화센터 인솔진행자)
 

이번 탐사팀을 인솔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 9년 동안 정성들여 홀로세생태학교를 만들어 온 그는 기어 다니는 곤충들이 건너지 못할까봐 생태학교로 들어오는 길도 비포장 상태로 둔 채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에 있는 높이 789m의 어답산(御踏山)은 백두대간 한 모퉁이에 병풍을 두른 듯 솟아 있다. 진한의 태기왕을 쫓던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이 산에 들렀다 해서 어답산(왕이 지나간 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산 많은 강원도 횡성에서도 깨끗하기로 소문난 곳으로 유명하다. 8월 15일 오전 10시, 횡성 교육청에 모인 제25회 자연생태계 학습탐사팀 일원들은 어답산으로 출발했다.

비좁은 산길을 덜컹덜컹 따라가다 보니 맑은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그러나 곳곳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행락객들을 스쳐가자 옆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탐사팀을 이끄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이 설명을 시작했다.

“어답산은 최근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는 곳이지만 그로 인한 생태계 변화는 아직 조사된 적이 없습니다. 이번 탐사에서 새로운 종이 발견될지도 관심사죠.”

어답산 기슭의 병지방리에 도착한 탐사팀은 3개조로 나뉘어 곳곳에 ‘피트폴’(pit fall)을 묻었다. 플라스틱 통 안에 꽁치나 막걸리처럼 냄새가 강한 미끼를 넣고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곤충을 유인해 채집하는 도구다. 피트폴 위로는 작은 지붕을 세워 비를 막는다.

점심식사를 마친 탐사팀은 포충망을 들고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잠자리다. 간간이 나비도 보이고 들풀 사이로 여치, 방아깨비가 뛰어다녔다. 포충망을 휘둘러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는 방법을 ‘네팅’(netting), 나뭇가지와 잎을 훑듯이 쳐서 잡는 방법을 ‘스위핑’(sweeping)이라고 한다.

네팅에 열중하던 교사들이 곧 “잡았다”며 크게 소리쳤다. 검정색 바탕에 흰 무늬가 있는 나비다. 정창훈 조교가 꼬리명주나비 암컷이라며 기름종이인 삼각지를 펴 나비를 넣었다. 이렇게 하면 나비의 날개가루를 손에 묻히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뒤에서 걷던 이강운 소장이 나뭇잎 하나를 들고 일행을 불러 세웠다. 대왕팔랑나비 애벌레란다. 조금 잘려 접힌 잎을 들춰보니 그 안에 애벌레가 웅크리고 있었다. 황벽나무 잎을 잘라 이불을 덮듯 집을 만들고 살기 때문에 마치 갉아먹은 듯 보인 것이다.

이날 탐사팀이 채집한 곤충은 잠자리를 비롯해 산호랑나비, 울도하늘소, 광대노린재 등 80~90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북위 36° 이남의 따뜻한 서남해안 지방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암끝검은표범나비(Argyreus hyperbius). 암컷 날개 윗면의 끝부분이 검은색을 띠어 붙은 이름이다. 이강운 소장은 “강원도 횡성에서 이 나비가 발견된 것은 아마 지구온난화의 영향일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또 “앞으로 이 나비가 여기서 서식한다는 게 확인되면 한반도에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질 무렵 탐사팀은 어답산 계곡 옆의 공터에 도착했다. 이강운 소장과 조교들이 ‘라이트 트랩’(Light Trap) 장비를 설치했다. 야간에 불을 밝혀 주위의 곤충들을 유인해 채집하는 방법이다. 이 소장은 “이곳은 앞이 트였고 여러 산이 둘러싸고 있는데다 주위에 다른 광원이 없어 곤충 채집의 최적지”라고 설명했다. 이날은 무덥고 달빛도 약해 더 좋은 조건이라고 한다. 해가 지자마자 발전기에 160W 수은등 2개를 연결해 매달았다. 빛을 멀리 보내기 위해 전등 아래엔 커다란 흰색 스크린을 설치했다.
 

라이트 트랩으로 곤충들을 채집하는 모습. 불빛 아래 스크린에 붙은 한 나방을 대성중 이창직 교사가 잡아 병에 넣으려 하고 있다.


불을 켠지 10분도 안 돼 수만 마리에 이르는 곤충들이 몰려들었다. 하루살이, 강도래, 메뚜기, 무당박각시, 풍뎅이, 사슴벌레, 귀뚜라미 등 수많은 곤충들이 사방에 가득 날아다녔다. 대성중 이창직 교사가 먼저 곤충들 속으로 들어가 포충망을 휘둘러 채집했다. 곧 다른 교사들도 스크린에 붙은 곤충을 병에 잡아넣거나 주위를 맴도는 곤충을 포충망으로 채집했다. 옷에 곤충이 수없이 붙고 귀나 코에도 들어갔지만 모두 채집에 열중하느라 불빛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장 많은 것은 단연 수개미였다. 이강운 소장은 “지금이 수개미들이 짝짓기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30분이 지났지만 곤충들이 계속해서 모여들어 반경 5m 안에는 접근이 어려울 정도였다. 45분쯤 지나자 수개미가 줄어들고 멀리서 나방과 딱정벌레, 송장벌레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송장벌레는 죽은 동물을 먹고 사는 부식성 곤충이다. 이 소장은 “빛보다 곤충들이 밟혀 죽은 냄새를 맡고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명주잠자리,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 같은 희귀한 곤충도 속속 발견됐다. 이 소장은 “이 가운데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곤충도 있을 것”이라며 “곤충을 비롯한 생물 다양성의 확보는 꼭 필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2시간을 넘기자 곤충들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다음날 아침 10시, 탐사팀은 어제 설치한 피트폴을 수거했다. 주로 경사지 나무 밑에 설치한 조원들은 성과가 좋았다. 멋쟁이딱정벌레, 길쭉먼지벌레, 송장벌레, 곱등이 등 많은 곤충이 통 안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햇빛이 비치는 트인 곳에 피트폴을 설치한 조원들은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다.

이동재 조교는 “곤충들은 그늘지고 적당히 경사진 곳에 많이 모이기 때문에 피트폴을 묻는 위치에 따라 채집 결과에 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채집된 곤충은 날개가 퇴화된 지표성 곤충이다. 제일 많이 잡힌 먼지벌레는 날개 대신 빠른 다리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이동한다. 이들은 계곡을 건너지 못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격리돼 시간이 지나면 아종(subspecies)으로 분화된다.

등에 빨간 무늬가 새겨진 홍단딱정벌레가 눈길을 끌었다. 강한 집게를 갖고 있으며 머리 부분이 뾰족하다. 주로 달팽이를 먹는데 두꺼운 껍질을 뚫기 위해 돌출부가 발달한 것이다. 포식 관계에 있는 두 종이 함께 진화하는 ‘공진화’(co-evolution)를 설명할 때 좋은 예가 된다.

다음 목적지는 홀로세 생태학교. 오후 2시 30분에 도착한 탐사팀은 채집한 곤충을 표본으로 만들었다. 삼각지에 채집한 곤충들을 하나씩 꺼내 판 위에 놓고, 기름종이로 누른 다음 핀으로 고정시킨다.

“나비는 윗날개와 아랫날개의 선이 서로 평행을 이뤄야 합니다. 파리목(目)은 앞다리 두 쌍이 앞을 향하고 뒷다리 한 쌍이 뒤를 향하게 맞춰 주세요.”

조교들이 돌아다니며 날개를 어떻게 펴고, 핀을 어디다 꽂아야 하는지 능숙하게 지도했다. 나비목의 날개를 펴서 고정시키는 것을 전시(展翅), 딱정벌레목의 다리를 고정시키는 것을 전족(展足)이라고 한다. 삼장중 최희경 교사는 “버둥거리는 잠자리에 핀을 꽂으며 곤충도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는 생명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후평중 최옥 교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전족판 위에 놓인 곤충들을 핀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홀로세 생태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면 둥근 돔 같은 구조물이 눈에 띈다. ‘UFO 나비집’이라고 이름 붙은 이곳은 나비들만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작은 생태계다. 지름 20m, 높이 7.8m의 돔에 나비의 먹이식물을 심고 기생벌 같은 침입자를 막아 나비가 번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머리 위로 갖가지 나비들이 햇빛 속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무심코 발밑의 애벌레를 밟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차동준 조교의 주의를 새기고 찬찬히 나비들을 관찰했다. 꼬리명주나비, 흰줄표범나비, 산호랑나비, 긴꼬리제비나비처럼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나비도 곳곳에서 꿀을 빨거나 교미를 하거나 알을 낳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계곡 옆에 심은 식물들이나 연못의 수서식물도 이곳에 서식하는 여러 곤충의 먹이가 된다. 물레방아 옆으로는 나비가 먹는 여러 가지 식물을 심어 산란을 유도하기 위해 ‘나비 정원’이 꾸며져 있다.

“주변 산에 사는 곤충도 이곳 홀로세 생태학교로 찾아옵니다. 살아있는 생물 창고라고 할 만하죠.”

이강운 소장의 설명이다.

이어 탐사팀은 딱정벌레 실험실을 찾았다. 가는 길 옆에 쌍살벌이 만든 벌집과 산초나무 잎 위로 풀노린재가 교미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딱정벌레류를 전문으로 사육하는 이곳에는 톱사슴벌레, 애사슴벌레, 장수풍뎅이, 흰점박이꽃무지, 홍단딱정벌레 등을 키운다. 조교들이 딱정벌레를 하나씩 소개할 때마다 교사들은 그 위풍당당한 모습에 반해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산골은 일찍 해가 진다. 번개탄과 숯으로 불을 피운 탐사팀은 횡성 한우고기를 구웠다. 모기를 쫓는 향긋한 쑥 타는 냄새 사이로 시원한 귀뚜라미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탐사의 마지막 날이다. 탐사팀은 홀로세 생태학교의 자랑인 곤충박물관을 견학했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많은 표본을 보유하고 있다. 장수하늘소, 대벌레, 반딧불이, 그리고 형형색색의 나비와 나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1126종에 이르는 곤충 가운데 일부는 멸종 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거나 매우 희귀한 종들이다.

박물관 옆 그늘에 세워둔 나무토막들 사이로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버섯을 키우면 이를 먹는 달팽이가 모여들고, 다시 달팽이를 먹는 딱정벌레가 몰려오고 버섯벌레도 찾아와 자연스러운 먹이사슬이 형성된다.

요즘은 농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쇠똥구리도 관찰할 수 있다. 쇠똥구리가 낳은 알을 조금 덜어내면 일정한 수까지 계속 알을 낳는다. 이를 성충이 될 때까지 보호해 사육한다. 쇠똥을 넣어주면 쇠똥구리는 공 모양으로 만들어 그 안에 알을 낳는다. 알은 쇠똥 안에서 부화해 이를 먹고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돼 나온다. 쇠똥구리는 쇠똥을 완전히 분해시키기 때문에 만져보면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무공해 거름인 셈이다.

견학이 끝나고 일행은 이번 탐사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2박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모두들 곤충의 다양한 생활방식과 아름다움에 감탄했다고 입을 모았다.

강원도 교육과학연구원 조창구 연구사는 “멸종돼가는 쇠똥구리가 안타깝다”며 “앞으로 홀로세 생태학교 같은 생태학습장이 많이 생겨 다양한 체험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춘천여중 민경아 교사도 “학교로 돌아가면 이번 탐사를 통해 배운 것들을 활용하겠다”는 다짐을 내보였다.

홀로세 생태학교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에 있는 홀로세 생태학교(www.holoce.net)는 이강운 소장이 가족들과 함께 1997년부터 8년에 걸쳐 만든 자연 속의 청정 생태학교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의 허름한 집을 개조해 풀과 나무를 심고 곤충을 사육하며 일궈나갔다. 지금은 식물생태관, UFO 나비집, 실험실, 박물관 등을 갖춘 2만2000평 규모에서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를 유지하며 교육 목적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홀로세 생태학교 내의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에서는 곤충 1126종, 식물 764종 등 국내에서 3번째로 많은 다양한 생물을 채집, 보존, 연구하고 있다.

200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김용해 부국장
  • 이상엽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교육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