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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로 해석한 인터넷 대란

아킬레스건 허브의 연쇄적 붕괴

지난 1월 25일 KT 혜화전화국 DNS 서버의 다운으로 전국의 인터넷이 마비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설을 며칠 앞두고 발생한 일이라 온라인 쇼핑, 설 귀성객들의 열차표 예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그 피해는 엄청났다.

이번 사태는 웜 바이러스의 소행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존의 바이러스 사태와는 달리 그 피해가 심각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몇년 간 복잡계 네트워크를 연구해온 물리학자는 그동안 간과돼 왔던 인터넷의 네트워크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과학자 3형제가 밝혀낸 인터넷 구조


미국의 인터넷 지도. 그림에서 선은 인터넷의 교통량을 나타 낸다. 두꺼운 하얀 선의 경우 1조바이트의 교통량을 의미 한다. 인터넷 지도에서 교통량 이 많은 몇개의 허브를 찾아볼 수 있다.


과연 그런지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우선 네트워크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네트워크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설 귀향길에 도로가 막혀서 우회 길이 없을까 찾을 때 자연스레 펼쳐보는 교통도로 네트워크, 비행기 좌석 뒤편에서 꽂혀있는 책자 속에서 볼 수 있는 항공노선 네트워크, 그리고 한명의 지휘관이 통제하는 군대식의 방사형 네트워크가 있다.

항공노선 네트워크에서는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 뉴욕의 존에프케네디 공항, 로스앤젤레스 공항,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 파리 드골 공항과 같은 수많은 항공노선을 연결시켜주는 허브 공항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교통도로 네트워크의 도로망 지도에서는 이같은 허브가 존재하지 않는다. 방사형 네트워크의 경우는 허브가 하나다.

한편 교통도로 네트워크와 항공노선 네트워크는 둘다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갈 수 있는 길의 가짓수는 여러가지다. 하지만 군대식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중심 사령관이 모두 지휘하기 때문에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인터넷은 이 3가지 네트워크 구조 중 항공노선 네트워크에 속한다. 이 사실은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인 팔루소스 3형제가 1999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즉 인터넷은 소수의 허브 사이트가 수많은 사이트와 연결돼 있고, 대다수 사이트는 몇 사이트와 링크돼 있다.

이같은 인터넷 구조는 미국, 유럽 등의 데이터를 기초로 얻어졌다. 아직 우리나라의 인터넷 구조가 공개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인터넷의 구조도 항공노선 네트워크의 형태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엄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의 인터넷 구조가 인위적으로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유용성을 추구하면서 자연스레(이른바 자체조직화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인터넷도 미국이나 유럽과 비슷한 구조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견고하면서 취약한 항공노선

그럼 이번 인터넷 대란이 항공노선 네트워크의 구조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우선 항공노선 네트워크를 자세히 살펴보자.

항공노선 네트워크에서 미 인디애나주 시골 공항인 사우스밴드 공항이 폭설로 인해 폐쇄됐다고 가정하자. 사우스밴드 공항은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작은 공항이고, 하루에 수백명 또는 수십명 정도밖에 이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공항이 폐쇄된다고 하더라도 대다수 사람들까지 신경을 쓸 일이 못된다.

그러나 허브 공항, 예를 들어 미국 시카고 공항이 폭설로 폐쇄됐을 경우는 어떨까. 허브공항은 수많은 항공노선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공항에 취항하는 수많은 항공기들이 모두 운항되지 못하므로 미국 중부일원에는 심각한 교통대란 사태가 초래된다.

이처럼 항공노선과 같은 복잡계 네트워크는 허브가 존재함으로써 ‘견고하지만 취약하다’(robust-yet-fragile)는 특성을 갖는다. 즉 사우스밴드 공항과 같은 작은 공항이 많이 폐쇄됐다고 해도 전체 네트워크는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견고’하지만, 시카고 공항과 같은 하나의 허브공항이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 전체 네트워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취약’하다. 허브는 인터넷의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이번 인터넷 대란은 허브 역할을 하는 KT 혜화전화국 DNS 서버가 다운됨으로써 전체 네트워크가 심각한 장애를 받은 경우라고 1차적으로 얘기할 수 있다.

이제 시카고 공항의 경우보다 좀더 심각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시카고 공항이 폭설이 아니라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폐쇄됐다고 가정하자. 테러리스트는 9.11 사태와 같이 동시다발적으로 미국의 주요도시의 모든 공항을 공격해 폐쇄시켰다. 그러면 미국의 항공망은 거의 마비상태에 도달할 것이고 네트워크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이같은 동시다발적 사태가 이번 인터넷 대란에서도 일어났다. 어떻게 웜 바이러스가 이같은 동시다발적인 테러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우회도로 막히면서 연쇄 붕괴


한 허브가 무너지면 상당한 양의 정보가 우회를 하면서 다른 허브 를 순차적으로 무너뜨린다. 도미 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인터넷망은 생물체의 네트워크처럼 살아 움직이는 기능이 있다. 처음 허브인 혜화전화국 서버에 SQL_overflow라는 웜 바이러스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양의 스팸메일이 밀려왔다. 그러자 서버는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스팸메일을 최대한 우회시킨다. 그 결과 전체 시스템 마비로 번졌다.

인터넷에서 정보가 이동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면 이를 이해하기가 쉽다. e메일이나 웹페이지의 정보가 전달되기 위해 먼저 이에 해당하는 정보가 쪼개져야 한다. 예를 들어 책 한권을 낱장으로 쪼개서 보내는 것처럼 e메일이나 웹페이지들의 정보를 일정한 단위로 잘게 쪼갠다. 이때 정보의 조각 단위를 패킷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 패킷은 우편엽서처럼 주소가 적혀있어 최종목적지까지 무사히 전송된다. 이때 각 서버들은 패킷이 최대한 빠른 길을 선택해 도착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준다. 이같은 인터넷의 정보전달체계를 ‘라우팅 테이블’이라고 한다.

라우팅 테이블 신호체계는 중간에 길이 막혔을 때 데이터 패킷들이 다른 빠른 길로 우회하도록 인도해준다. 소통되는 정보량(교통량)이 많아 한 서버가 다운되면 데이터 패킷들은 우회 길을 선택해 다른 서버로 몰려가게 된다. 그런데 우회한 서버에도 처리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 정보량이 몰릴 경우 그 서버도 마찬가지로 무너지게 된다. 그러면 다시 패킷들은 다른 서버로 몰려가 연이어 서버가 다운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만다. 그래서 여러 서버들이 동시다발적인 테러를 받게 되는 셈이다. 그 결과 전체의 네트워크가 삽시간에 다운돼 버린다(이같은 현상은 필자 강병남 교수의 웹사이트(komplex0.snu.ac.kr)에 있는 자바 애플릿을 실행해보면 좀더 이해가 쉽다).

이번 사태에서는 SQL_overflow라는 웜 바이러스에 의해 혜화전화국 DNS 서버가 다운되면서 인터넷신호체계가 그 전화국으로 밀려오는 데이터를 다른 회선으로 우회시켰다. 그 결과 구로전화국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같은 도미노 현상이 국가 전체의 인터넷 마비로 번진 것이다. 만약 이번 혜화전화국 DNS 서버보다 큰 허브에서 이 일이 벌어졌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을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인터넷의 최대 허브 서버가 다운될 경우 전세계의 인터넷이 마비되고 만다.

IMF 위기도 인터넷 대란과 같은 맥락

도미노 현상은 복잡계의 여러 다른 분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겪은 IMF 사태도 그렇다. 은행, 기업 간의 복잡한 경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는 상태에서 한보라는 재벌 허브의 파산이 다른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쳐 연속적인 도미노 파산을 초래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속에서도 한 기관에 이상이 생기면 이 병의 후유증으로 다른 곳에서 이상이 생겨서 궁극적으로 사망하는 지경에 도달하게 된다.

허브의 붕괴로 말미암아 생기는 일련의 연속적인 도미노 사태는 네트워크 시대에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위험이다. 따라서 한 서버가 다운되더라도 다른 서버로 마비가 전이되지 않도록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네트워크의 다양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항공노선과 같은 네트워크에서 허브의 공격이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는 사실을 역이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감기 바이러스를 박멸하고 싶다고 하자. 감기 바이러스의 세포 안에서는 바이러스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신진대사가 일어난다. 신진대사 작용은 네트워크를 통해 일어나고 이 네트워크는 항공노선이나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 구조를 이루고 있음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 따라서 감기 바이러스의 신진대사 네트워크에도 허브가 존재하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허브에 해당하는 유기화합물 또는 단백질을 제거한다면 감기 바이러스를 쉽게 퇴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과학자들은 어떻게 허브를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효과적으로 찾아내어 제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네트워크


허브공항에 심한 안개라도 끼 면 상당수 항공기 운항에 차질 이 빚어진다. 허브의 붕괴가 전 체 네트워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터넷 대란이나 신체 네트워크는 외부공격에 취약한 허브를 갖고 있는 것일까.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돼 화제가 된 ‘링크’의 저자이기도 한 노트르담대의 바라바시 교수는 그 이유로 2가지를 들었다.

바라바시 교수는 계(界)가 닫혀있지 않고 항상 성장하고 있고,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저변에 깔려있는 현상에서 항공노선 네트워크가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이 2가지 원인은 계의 성격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지만 기본적인 성격은 같다.

항공망의 예를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미 동부로 새로 노선을 취항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제일 선호하는 공항은 뉴욕이다. 뉴욕은 이미 많은 노선망을 갖고 있는 허브공항이기 때문에 미국 동부의 아주 작은 도시에 가기 위해서는 첫 기착지가 뉴욕이어야 갈아타기가 편리하다. 뉴욕 공항의 입장에서 볼 때, 기득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커지는 것이다. 즉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난다. 여기서 뉴욕 공항이 커지게 된 것은 새로운 취항노선이 생겨났기 때문, 즉 계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새로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 때 여기에 검색엔진 하나를 링크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검색엔진으로 구글 사이트가 소문이 나있으므로, 구글로 링크를 하기 쉽다. 여기서도 홈페이지를 새로 만드는 것이 계가 성장하는 것이고, 구글을 선택한데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구글은 점점 더 다른 페이지로부터 화살을 많이 받게 된다. 즉 한번 뜨면 자꾸만 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말미암아 연결선을 많이 갖는 허브가 탄생하게 되면서 항공노선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허브가 만드는 좁은세상

최근 이스라엘의 바-일란(Bar-Ilan)대 하블린(S. Havlin) 교수는 바라바시 교수가 소개한 네트워크 모형이 얼마나 좁은 세상인지를 수학적으로 연구했다.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좁은세상 네트워크의 평균거리 d=ln(lnN)으로, 여기서 N은 네트워크의 총 구성원수다. 이는 과거 네트워크 연구에서 정설로 믿어왔던 무작위 네트워크의 평균거리 lnN보다 훨씬 짧다. 좁은세상 네트워크는 허브의 존재로 인해 두점 사이의 거리는 더욱 짧아지는 것이다.

특별히 세포 속 신진대사 네트워크에서는 평균거리가 전체 네트워크 구성원 수에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신진대사 네트워크의 평균거리는 3이다. 즉 평균 3번의 생화학 반응을 통해 몸속의 모든 물질들이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신진대사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반응경로가 빨라야 하고 따라서 진화과정에서 평균거리가 짧은 종족들이 살아남은 결과라는 막연한 추측이 있을 뿐이다. 아무튼 세포 속의 신진대사 네트워크도 허브의 존재로 인해 네트워크에서 두점 사이의 거리가 매우 짧아지는 효율성을 갖게 된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즉 거리를 줄이기 위한 극단적인 경우는 군대식의 방사형 네트워크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거리가 짧아 효율성이 높다고 할 수 있으나 중심에 있는 허브가 가져야 하는 역할이 엄청나게 커져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오늘날 수도권이 워낙 비대해져서 교통지옥, 공기오염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또 이러한 네트워크의 경우 중심에 있는 허브 하나가 다운되면 전시스템이 한꺼번에 다운되는, 외부의 공격에 극히 취약한 성질을 갖는다.

만약 한국의 인터넷 구조가 관리의 편리함 때문에, 또는 다른 이유에서 인위적으로 방사형 네트워크 구조를 갖고 있다면 최근 우리가 겪었던 인터넷 대란이 비일비재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인터넷은 다변화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적당한 수의 허브를 포함하고 다양한 길을 갖는 항공노선 네트워크의 구조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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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정하웅 교수
  • 강병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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